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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의경 - Bang Eui-Kyeong

The first copy I had was in bad shape, so I airplayed only one track of it.

Folkie Jin comment:

"This album is Ultra rare and the highest price record in Korean folk records. Normal price is over 2000 $!! Every Korean folk collectors wanting killer item!! Although it has a normal female S/SW sound it has very fragile and deep feeling female voice and it gives nostalgia towards the 70s to Korean old music fans."

(CD) 방의경 - 내노래 모음 (LP Miniature)

This is an inspired songwriter album of (an attractive, convincing) voice with acoustic guitar only, with mostly melancholic, sensitive songs with clearly a story in them. I am not sure if how much it will work for all western listeners to maintain attentive listening from start to finish to this collection of somewhat comparable songs, but one should be able to recognise its qualities. One very good song (accompanied by acoustic guitar and some mouth harmonica passages) is sung by a mature or slightly smoked voice of a male singer.

A Coloured LP has been reissued on coloured vinyl in 2012.

A 1.그들 / They

2.폭풍의 언덕에 서면 내 손을 잡아주오 / Hold my hand on the hill of storm

3.들에 있는 나의 집 / My house in the field

4.불나무 / Firewood

5.파도 바람 구름 철길 친구 / Waves wind clouds railroad friends

6.나그네처럼 / Like a stranger

B 1.할미꽃 / Pasqueflower

* 2.내리는 비야 / Raining

3.풀잎 / Leaf

* 4.친구야 / Friend

5.겨울 / Winter

6. 오가는 길 / Directions

LP reissue release date: Feb 20, 2012 on Rhythm On, Limited to 600 copies.

CD reissue release date: Nov 01, 2011 on Rhythm On.

Tracks with * I consider to be (the most) essential listens or perhaps classics, also very suitable for western radioshow airplay. Tracks that are only underlined can be considered great tracks as well, not sure how essential they are. In this case it was a real difficult pick.


70년대의 포크 명곡 ‘불나무’로 유명한 방의경은 국내 최초로 1972년에 창작앨범을 발표한 전설적인 여성 포크 싱어송라이터다. 그녀는 여성뮤지션으로는 유일하게 한대수, 김민기, 김의철과 같은 저항적인 프로테스탄트 창작 포크 앨범을 발표했던 선구적인 여성 싱어송라이터다. 그녀가 남긴 단 한 장의 독집은 국내 최초의 여성싱어송라이터 창작앨범이라는 대중음악사적 의미를 넘어 순백의 아름다운 정서와 가락을 담아낸 한국포크의 명품 음반으로 각인되어 있다. 또한 양희은이 불러 유명한 70년대의 대표적인 번안 포크송 ‘아름다운 것들’의 가사와 창작곡 ‘불나무’ 그리고 김인순이 불러 히트했던 ‘하양나비’는 모두 대중이 기억할 만한 그녀의 작품들이다. 하지만 상업적인 음악활동보다는 순수 아마추어적 활동반경을 유지하다 훌쩍 미국으로 떠났기에 방의경은 여전히 베일에 가려진 전설적인 존재로 남아있다.

1972년 발표된 그녀의 유일한 독집은 당대의 어두운 사회현실을 맑고 아름다운 은유적인 노랫말로 표현한 명반이다. 젊은 세대들이 지금의 개념으로 이 음반을 듣는다면 통기타 한 대와 노래가 전부인 열악한 편곡이나 팅 빈 것 같은 사운드의 질감 때문에 실망할 것이 분명하다. 실제로 단출한 통기타 반주에 이따금 새소리, 파도소리 같은 자연효과음이 삽입된 것이 사운드의 전부이지만 방의경의 맑고 청아한 목소리는 그 모든 열악한 것들을 극복하는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또한 ‘그들’, ‘폭풍의 언덕에 서면 내 손을 잡아주오’, ‘들에 있는 나의 집’, ‘불나무’, ‘파도 바람 구름 철길 친구’, ‘나그네처럼’, ‘할미꽃’, ‘내리는 비야’, ‘풀잎’, ‘겨울’, ‘오가는 길’ 등 수록된 11곡(‘친구야’ 한 곡은 서유석이 노래)의 창작곡들은 단 한번이라도 듣고 나면 꼼짝없이 중독되는 놀라운 마력을 발휘한다. 멜로디들은 동요처럼 단순 반복적이지만 맑은 목소리와 아름다운 언어로 조탁한 순백의 감성은 왜 이 앨범이 포크 팬들 사이에 전설적으로 회자되어 왔는지에 대한 조용한 웅변일 것이다.

사실 이 앨범은 발매 즉시 방송과 판매금지 조치가 내려진 소위 저주받은 걸작이다. 수록곡들은 대부분 방송금지의 멍에를 썼다. ‘데모하는 학생들이 즐겨 부른다’는 이유였다. 시중 음반가게에 진열된 그녀의 모든 음반은 들을 수 없게 칼로 그어져 폐기되었다. 그 때문에 한국 대중음악사에 기록될 ‘최초의 여성 싱어송라이터 앨범’은 남겨진 음반 숫자가 손가락을 꼽을 정도로 희귀 아이템이 되어 정당한 평가조차 받지 못하고 사장되었다.

이번에 새 생명을 부여받아 세상에 다시 나온 <방의경 내노래 모음>의 오리지널 LP를 실제로 본 사람은 드물다. 실제로 90년대 말 포크음반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이 음반의 존재유무를 두고 논란이 벌어졌었다. 그래서 이 음반은 신중현사단의 사이키델릭 여제 김정미 NOW음반과 더불어 ‘부르는 것이 가격’인 가요 음반의 여왕으로 대접받고 있다. 이 음반에 담겨진 맑고 아름다운 트랙들은 어두운 군사정권 시대의 빛이 되었고 이제 후대의 청자들에게 전설적인 70년대의 낭만적 감흥을 간접 경험하는 소중한 경험으로 다가갈 것으로 기대된다.

글 /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Translated with the help of Google Translate :

Famous for the folk song interpretation of ‘Firewood' in the 1970s, this legendary female folk singer songwriter released her first album in 1972 in Korea. She is a pioneer female singer - songwriter who released the the first protestant creative folk album. She is one of the most popular singers in Korea, and the first female singer song writer that reached beyond the general meaning of popular music history, with beautiful emotions and whispering songs creating with it a masterpiece of Korean folk. In addition, Yang Hee-eun also interpreted the popular 70's popular folk song "Beautiful Things", as well as the song "Fire Tree" and Kim In-sun's hit "Hayangabi" making it part of her memorable works. Knowing that she left for going towards the United States and continuing there on an amateur level rather than participating anywhere into a commercial music circuit, this add to regarding her approach and vision as legendary and mysterious.

Her solo album, released in 1972, expresses the reality of the darker side of society of the day in clear and beautiful metaphorical lyrics. If the younger generation would be listening to this record with the current idea of how it should be done, this approach might be disappointing because here the sound is poorly arranged with almost nothing but a singing voice. In fact, it are merely the sounds of birdsongs, waves, and other natural sounds that are sometimes inserted into the accompaniment instead, but the clear and clean voices of the environment also work to come over as a great resonance overcome all of the harshness. It tells the singer’s truth about life in her own home, in the house in the fields, in the fire wood, Songs like 'Villa', 'grass leaf', 'winter', and 'way to go' exhilarate magical power to be addicted to once one hears it for the forst time. The melodies are simple and repetitive as they go, but the whiteness of the sensibility, which is scrutinized with a clear voice and a beautiful language, is a silent eloquence about why this album has been legendary among folk fans.

In fact, this album is a so-called cursed masterpiece with broadcast and sales banned immediately upon release. Most of the songs have been added to the broadcast ban. The reason is that students who are demonstrating enjoy it. All of her recordings on display at the music store were scratched and discarded. Therefore, 'the first true female singer-songwriter album' to be recorded in Korean pop music history became a rare item with which even the few records people got hold on did not even give it the chance for a fair evaluation.

It is rare for people who have actually seen the original LP of "The Collection of Songs in My Heart," which came to life again this time in a new edition. It is so that since the late '90s controversy over the existence of this record had arisen among folk record aficionados. Today, this album is treated as a treasure, taking it to the ranks of appreciation along with Kim Jung-mi NOW album of Shin Jung-hyun division's psychedelic creations. The clear and beautiful tracks on this album only could be revisioned after the ending of the dark military regime now can finally expect to become a valuable experience for indirect audiences experiencing the romantic inspiration of the legendary 70s only through the ears of its future listeners.

Written by Choi Kyu-sung, popular culture critic


<70년대 통기타 문화의 산실이었던 명동 YWCA ‘청개구리’가 되살아난다.

첫 주자는 김민기, 양희은, 박인희와 함께‘아름다운 것들’, 하양나비’,‘불나무’ 부르며 청개구리의 터를 닦았던 여대생 싱어송 라이터 방의경이다. - 네이버 지식검색 - >

김민기씨와 동 시대에 가장 활발한 활동을 펼쳤는데 노래의 특징은 서정적인 가사와 밝은 노래 스타일을 가졌다고 한다.

그리고 정미조씨와 더블어 이대 교내 축제에 최고 스타였다고 한다.

방의경씨가 짧은 기간 작곡한 노래들은 불나무, 김세화씨가 부른 하양나비, 양희은씨가 부른 아름다운 것들 작사, 귀하, 72년에 첫 음반을 냈지만 군사정권의 탄압으로 사회성이 있다고 불나무를 비롯한 대부분의 곡들이 금지되었고 유일하게 "친구야" 가 서유석씨에 의해 불려지게 되어 살아 남았다.

양희은씨보다 빠른 시기에 몇 년간 짧은 기간 할동을 하다가 도미하여 40 여 년 간 머물다가 최근에 들어와 음악을 알리게 되었다고 한다.

다행히 그 동안 전파를 타지 못했던 주옥같은 곡들이 이번에 재 제작되면서 음악을 사랑하는 많은 애호가들에게 단비가 되어 줄 수 있을 것 같다.

순수하게 아마추어리즘으로 음악을 좋아하는 나는 방의경씨의 음악을 듣고 끌려서 구입을 하게 되었다.

조만간 여유로운 시간이 되면 조용히 감상하고 싶다.


Translated with help of Google Translate:

"Myeong-dong YWCA “Tree Frog,” was the birthplace of acoustic guitar culture in the 70s, has revived. The first runner was a female college singer-songwriter Bang Eung-kyung, who cultivated the tree frog's grounds with Kim Min-gi, Yang Hee-eun, and Park In-hee, calling them “beautiful things”, white butterflies, and “firewood.”

Kim Min-ki had most activities around the same time, the song is characterized by lyric lyrics and bright song style. She was also the best star at Jung Mi-jo and the Double A University Campus Festival.

The songs composed by Bang Ui-kyung for a short period of time were composed of firewood, (??) a song by Kim Se-hwa, one song written by Yang Hee-eun, and some beautiful songs by Yang Hee-eun. The songs were banned and the only "friend" survived being called by Seo Yoo Seok. Yang Hee-eun has been working for a few years at a time earlier than Mr. Yang, and stayed on for 40 years.

Fortunately, gem-like songs that haven't been propagated in the past have been re-produced this time, which can be a daunting affair for many lovers of music.

I love the music with pure amateurism, so I listened to Bang's music and bought it.

If you have a leisurely time, I want to watch it quietly."

팬사랑이 되살려낸 잃어버린 노래·전설의 가수


1970년대 서울 명동 와이더블유시에이(YWCA)회관에는 청년문화 공간 청개구리가 있었다. 청개구리 창립멤버이자 ‘1세대 포크 싱어송 라이터’로 꼽히는 서울대생 김민기와 이대생 방의경이 노래로 시대의 아픔을 달래던 공간이다. 71년 어느날, 방의경은 회관의 강당에서 공연을 앞두고 경기여고 교복 차림의 후배 양희은에게 노래 지도를 하고 있었다. 그의 이대사대부중·고 3년 후배 오정기는 와이틴(Y-Teen) 회장으로 회관에 들렀다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봤다. 그로부터 30년 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동창회에서 두 사람은 우연처럼 재회했다. 하지만 다시 만난 선배의 모습에 오정기는 마음이 아팠다. 노래도 무대도 잃어버린 채 이민 생활에 지쳐 있던 선배에게 ‘그 빛나던 젊은 날의 아름다운 꿈과 음악’을 되찾아주고 싶었다.

“그때부터 인터넷에서 ‘방의경’에 관한 모든 정보를 찾아보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포크음악 마니아들이 모인 사이트 ‘바람새’에서 선배 음악을 찾아 부르는 동호인들을 발견했지 뭐예요.”(오정기)

“그때부터 거의 매일 정기가 나에 관한 자료를 팩스로 이메일로 보내줬어요. 아직도 나를 기억해주는 팬들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얼마나 가슴이 뛰던지요.”(방의경)

오는 11일 오후 5시 이대 김영희홀에서 44년만에 1·2집 음반 복원 기념 ‘방의경 콘서트’가 열리게 된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공연을 위해 미국에서 잠시 귀국한 방의경씨와 팬 대표이자 후원자인 오정기씨, 공연 기획자 김지상씨를 지난 7일 한겨레신문사에서 함께 만났다.

1970년대 첫 여성 싱어송 라이터

김민기와 ‘청개구리’ 창립멤버 활동

유신정권 1집 판금…·2집 실종에 ‘좌절’

76년 미국 이민…희귀 명반 대명사로

2002년 후배 오정기씨와 재회

팬카페 ‘바람새 친구’ 인연 이어줘

‘내노래 1·2집’ 복원 11일 후원자 초청 공연

‘꽃잎 끝에 달려있는 작은 이슬 방울들!~♪’ 세월은 가도 노래는 남는 법. 방의경의 이름은 잊혀졌지만, 그가 작사한 번안곡 ‘아름다운 것들’은 지금도 널리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음악을 따로 배운 적은 없어요. 중학시절부터 시를 많이 썼어요. 마치 바람이나 비가 말해주는듯 영감이 떠올랐죠. 그러다 기타를 치며 제멋대로 연주하고 노래했어요. 그래서 늘 민기가 대신 악보에 옮겨주곤 했죠.”

남녀공학으로 유난히 학예 실습 교육을 권장하던 이대사대부중·고 6년간 그는 이미 ‘대표 가수’였다. 이대 장식미술과에 입학해서도 강의실보다는 청개구리에서 어울리는 시간이 더 많았다. 덕분에 72년 첫 음반 <내 노래 모음>이 나왔다. 19살 때 쓴 ‘겨울’을 비롯, 포크의 명곡으로 꼽히는 ‘불나무’, ‘풀잎’ ‘친구야’ 등 12곡이 담겼다. 혼자서 직접 작사·작곡·노래에 기타반주까지 해낸, 진정한 의미에서의 우리나라 첫 여성 싱어송라이터 독집음반이다. “모두 500장을 발매했다는데, 정작 저조차 갖지 못했어요. 발매 1주일쯤 뒤 광화문의 음반점으로 달려갔을 땐 이미 공안당국에서 압수해간 뒤였어요. 판매는 물론 방송 금지곡이 됐구요.”

외마디 항의조차 할 수 없었던 독재 시절, 그는 한층 깊어진 슬픔을 담아 74년 2집 음반을 준비했다. 하지만 비밀 아지트 같은 녹음실에 숨어 애써 작업한 음원들은 세상에 나와보지도 못한 채 사라졌다. “음반을 내주겠다는 지인에게 맡겼는데 그만 분실했다고 했어요. 악보도 없었요.”

그 바람에 그의 1집은 지금 ‘컬렉션의 끝’이라 불리며 ‘희귀음반의 대명사’로 남았다. 음악적 완성도뿐 아니라 대중음악사적으로도 가치가 높아 수백만원을 호가한다.

그에게 음악을 빼앗아간 결정타는 74년 민청학련 사건이었다. “난 그저 자유롭게 꿈꿀 수 있는 아름다운 세상을 노래했을 뿐인데 ‘저항 가수’가 돼 있었어요. 내가 만든 노래를 부르던 친구들이 끌려가고 갇히고 심지어 죽어가는 현실을 더 이상 견딜 수가 없더라구요.”

76년 그는 약혼자와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장식미술 전공을 살려 액세서리 제조사업을 하며 낯선 땅에 정착하느라 정신없이 살았다. 그 사이 독재자는 죽고 군사정권이 무너지고 민주화가 이뤄진 고국에서 그는 ‘포크의 전설’이 됐다.

1971년 서울 명동 와이더블유시에이 청개구리의 집에서 공연중인 방의경(왼쪽 둘째)과 김민기. 방의경씨 제공

1971년 서울 명동 와이더블유시에이 청개구리의 집에서 공연중인 방의경(왼쪽 둘째)과 김민기. 방의경씨 제공

“자기가 직접 만든 유일한 음반조차 없다는 얘기를 듣고 기가 막히더군요. 바람새 동호인들에게 선배의 근황을 꾸준히 알리고 다시 노래를 만들고, 부를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어요.”

가톨릭 의대 간호학과 때 만난 의사 남편과 81년 이민을 간 오씨는 뉴욕을 거쳐 동부 조지아주에 살고 있었지만 서부 캘리포니아에 있는 방씨와 긴밀히 연락하고 만나며 고국 팬들과 이어주는 매신저를 자처했다. 이성길씨가 만들었던 ‘바람새’ 사이트가 저작권료 문제로 문을 닫은 뒤 2006년 오씨를 비롯 2천여명의 회원들은 다시 뭉쳐 ‘다음 카페 바람새 친구’를 열었다. 마침 2009년 한국으로 역이민한 오씨는 2008년과 2011년 방씨의 귀국 콘서트를 이뤄내기도 했다. 2005년무렵부터 목소리를 되찾은 방씨가 교회에서 성가를 부르며 다시 노래도 만들게 된 덕분이었다. 공ㅇ

“가장 기뻤던 순간은 1집 음반을 찾았을 때였죠. 카페를 통해 선배의 안타까운 사연을 알게 된 대구서문복지재단의 사무국장 신동혁씨가 2014년 재단 기부 물품인 오디오 시스템과 200여장의 엘피(LP)음반을 정리하다가 발견한 1집을 미국 출장길에 만나 선배에게 직접 전해줬어요.”

1971년 서울 명동 와이더블유시에이 청개구리의 집에서 공연중인 방의경과 양희은(왼쪽)

1971년 서울 명동 와이더블유시에이 청개구리의 집에서 공연중인 방의경과 양희은(왼쪽)

1971년 서울 명동 와이더블유시에이 청개구리의 집에서 공연중인 방의경

1971년 서울 명동 와이더블유시에이 청개구리의 집에서 공연중인 방의경

한층 고무된 오씨와 팬들은 폐기된 1집과 분실된 2집을 다시 만들어 ‘한국포크음악의 유산’으로 남기기로 했다. 바람새 친구의 활동가 김지상씨가 기꺼이 제작과 기획을 맡았다. 작은 모바일사업체를 운영하는 그는 피시통신 시절부터 방의경 노래의 열혈팬이었다고 했다. “순수한 팬의 마음으로, 좋아하는 노래와 가수를 되찾은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그래서 음반도 제작 기금 펀딩 후원자에게만 주는 한정판으로 만들었구요, 공연도 후원자들에게 답례로 마련한 자리예요. 물론 현장에서도 후원은 가능합니다.”

이번에 복원된 ‘내 노래 노음 1, 2집’에는 1집 엘피판의 잡음까지 그대로 살렸고, ‘하얀나비’, ‘마른풀’, ‘종이꽃’ 등 분실된 2집 음원 가운데 방씨가 기억하는 노래와 미국에서 새로 만든 곡까지 30여개를 모았다. 성공회대 김창남·박경태·김진업 교수로 이뤄진 더숲트리오가 유일한 초대손님으로 공연을 함께 한다.

“저더러 ‘저항 가수’라고들 하는데, 그저 아름다운 세상을 기다리는 염원을 노래할 뿐입니다. 기적같은 인연으로 함께 꿈꿀 수 있는 팬들도 만났으니, 못다한 노래 열심히 부르며 살 겁니다.”

방씨가 이번 콘서트의 제목을 ‘꿈을 이루는 세상을 바라보며’로 정한 이유다.

김경애 기자


Translated with help of Google Translation (with some mistakes still in):

Singer of Lost Songs and Legends Revived by Fans and Music Lovers, 2016

In the 1970s, the YWCA Hall in Myeong-dong, Seoul, had a youth culture space called Tree Frog. Seoul University student Kim Min-ki and Lee Dae-seng Bang Bang-kyung, a founding member of Tree Frog, and one of the “first-generation folk singers-songwriters”, soothes the pain of the times with songs. One day in '71, Bang was instructor singing a song to Yang Hee-eun, a junior high school student wearing a school uniform. This second-year middle school student, Jung Jung-gi, visited the hall as Y-Teen chairman and watched it from a distance. Thirty years later, at a reunion in Los Angeles, the two reunited like a coincidence. However, Oh Jung-gi was hurt by the appearance of his senior. I lost the song and the stage, and wanted to bring back the beautiful dreams and music of the bright young day to seniors who were tired of their immigration life.

“From that time on, I started looking up all the information on he Internet. But on the site of the folk wind enthusiasts, “Wind Birds,” I found the club members who searched for senior music. (Oh Jung Ki) “Since then, I have faxed emails about me almost every day. I was thrilled to hear that there are still fans who remember me. ”

That's when the “Bangyeong-Gyeong Concert” was held to commemorate the restoration of the 1st and 2nd album after 44 years at Lee Dae Kim's Hall at 5 pm on May 11th.

Bang Eun-kyung, a fan representative and supporter, Oh Jung-ki and a performance planner, Kim Ji-sang, who returned from the United States for a while, met at the Hankyoreh Newspaper on the 7th.

First female singer-songwriter in the 1970s

Kim Min-gi and founding member of the activity of 'Tree frog' (or House of the Blues Frogs)

'Small dew drops hanging on the tip of the petals! ~ ♪' Even when the song goes away, the song lingers on. Bang's name is forgotten, but his lyric song 'Beautiful Things' is still widely loved by the public.

“I never learned music. I have written many poems since middle school. Inspiration came to me as if the wind or rain were telling me. Then I played the guitar and played it freely. So I always transferred Minki to sheet music instead. ”

She was already a 'representative singer' for six years, Lee Dae-dae, a middle school student who had been highly recommended for co-education. Even after entering the Department of Decorative Art, I spent more time with Tree Frogs than in the classroom. Thanks to this, my first album <My Song Collection> came out in 72 years. It contains 12 songs, including 'Winter', written at the age of 19, and 'Firewood', 'Herbleaf' and 'Friends'. It is the first female singer-songwriter solo album in Korea in which she wrote all the lyrics, composed and sang guitars on her own. They have released 500 copies, but I didn't even have any of them. When we ran to the music store in Gwanghwamun about a week after the release, it was already seized by the public security authorities. It was banned. ”

During this dictatorship, when one couldn't even protest she prepared her second album after 1974 years with deeper sorrow. However, the hard-working music hiding in a recording studio like a secret agit disappeared without even appearing in the world. “I told my acquaintances to give me the record, but I told him I lost it. There was not even any sheet music of it”

As a result, his first album is now called 'The End of the Collection' and remains the 'pronoun of rare records'. Not only musical perfection but also popular music history, it is worth millions of won.

The final blow that stole his music was the 74-year civil academy. “I just sang a beautiful world that I could dream of freely, and it became a resistance singer. I couldn't stand the fact that my friends who were singing my songs were dragged, trapped and even dying for it. ”

In 1976 he emigrated to the United States with her fiancé. She made a major in decorative arts and made accessories, and lived in a strange land. In the meantime, the dictator died, the military regime collapsed, and democratization took place. She became a legend of the folk music.

“I was amazed to hear that there wasn't even a single album I made myself. I kept telling the birds of the wind birds about my seniors and started to find a way to sing and sing again. ”

After immigrating with her husband, who was a doctor who she met at the Catholic Medical School in Nursing in 1981, Oh lived in New York and lived in Eastern Georgia.

After the 'windbird' site created by Lee Sung-gil closed down due to a royalty fee issue, in 2006, more than 2,000 members gathered together and opened 'Dae Café Wind Bird Friend'. In 2009, Mr. Oh immigrated to Korea in 2009 and performed a concert for Bang's return home in 2008 and 2011. Mr. Bang, who had recovered his voice since 2005, sang a song in the church and sang again.

“The most pleasant moment was when I found my first album. Shin Dong-hyuk, the director of the Daegu Seomun Welfare Foundation, discovered the sad story of seniors through the café. I delivered it myself. ”

Inspired by Mr. Oh and his fans, they decided to recreate the first abandoned and the second lost album and leave it as a legacy of Korean fork music. Kim Ji-sang, an activist of Windbird's friend, was willing to produce it and plan it. He runs a small mobile company and said he has been a big fan of Bang's song since the days of PCC. “With pure fans, I want to share the joy of regaining my favorite songs and singers. That's why we made a limited edition of the album only for funders of the production fund. Of course, sponsorship is possible in the field. ”

This song, 'My Songs No. 1 and 2,' preserved the noise of the 1st Elf Fan, and the song that Mr. Bang remembers among the 2nd lost music sources such as 'white butterfly', 'dry grass' and 'paper flower' Collected 30 songs, even new songs made in the United States. The Forest Trio, consisting of professors Chang-nam Kim, Kyung-tae Park, and Kim Jin-up, is the only guest.

“Some are called“ resist singers, ”they just sing aspirations waiting for a beautiful world. I met fans who can dream together with miracle ties, so I will live singing hard. ”

That's why Bang chose the title of this concert as “Looking at the world of dreams.”

By Kim Kyung-ae, staff reporter



This album is an essential collectors item. Also for western collectors this album should be on their list. She made the first singer-songwriter album. Within the category of albums of simple honest and sensitive songs with guitar it can hardly be done be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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