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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무룡 - Choi Mu-Ryong / Choi Mooryong


This is a collection of old time music Trot (50s styled), with slow male singing and small combos (reeds, strings) with solo instruments like accordion or sax or acoustic/early electric picking guitar and such.


The best part is CD2 where also responding female harmony singers are added, adding a charming filmic aspect to the music, improving with it the whole atmosphere. Choi Mu-Ryung was also a film actor.


First it was unclear to me how much the actor Choi Moo-ryong (February 25, 1928 – November 11, 1999) had anything to do with this music compilation, but it truly is the same person who became more focused on being a singer after a while.


최무룡 골든 / The Best of the "Golden Boy" KBS Media 2013.02.27 2CD


CD 1 01. 외나무 다리 / The Wooden Bridge

02. 외아들 / 외아들 / The Only Son

03. 아들의 심판 / Judgment of the Son

04. 살고보세 / Alive and well

05. 추억은 영원하리 / Memories will last forever

06. 애수의 호반 / The lakeside of sorrow 07. 사나이 우는 마음 / The Crying Man

08. 사랑은 오직한길 / Love is only one way

* 09. 검은 그림자 1 / Black Shadow 1. -boogie-

10. 특등 신부와 삼등신랑 / 특등 신부와 삼등 신랑 / The Priests

11. 모상 / 모상 / Parenthood

12. 사랑은 봄비처럼 / Love is like spring rain CD 2 01. 단둘이 가봤으면 / If you go alone

02. 23시 밤 고동 / Beating at 23 o'clock

03. 굳바이 블루스 / Goodbye Blues

04. 막 내린 인생극장 / Theater of life

05. 동경 나그네 / Tokyo traveler 06. 등대불 / Lighthouse

07. 항구의 밤 12시 / 12 o'clock at the harbor

08. 끝없이 걷고 걷던 길 / The endless walk

09. 첫사랑 엘레지 / First Love Elegy

10. 성진의 노래 / Sung Jin's Song

11. 상처 / Wound

12. 교차로 블루스 / Intersection Blues


Tracks with * I consider essential listens or classics from a western point of view of listening, as tracks to check out for sure because for some reason they seem to stand out as such, which makes them also very suitable for western radio show airplay. Tracks that are only underlined can be considered fine tracks you might better check out as well, but I am not sure how essential they really are.

In this case, the grading was difficult and many more tracks could as easily be appreciated.


Other tracks can be found on:



유성기로 듣던 가요사 두번째 /

Second generation of singers of the Meteor Period (1945~1960) [Disc 7]

CD7-9 살고 보세 / Live and see

Baek Sul Hee has a warm baritone voice here, in duet with a female singer this is like a filmic romantic fragment out of a movie. It is a rather hum or sing-along track.

CD11-13 남몰래 우는 목숨 / A secrelly crying life


A nice trot-like and again rather filmic and nicely arranged song.

CD12-13 꿈은 사라지고 / Dreams disappear (1959)

The third song is a romantic song in the same atmosphere as a context as the previous songs. THere's a mouth harmonica solo lead repeating the theme mixed with other arrangements.



유성기로 듣던 가요사 두번째 / Music Museum: 220 Best (1945~1960) [Disc 12]

13 꿈은 사라지고 / Dreams disappear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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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OGRAPHY:


1. 소개

대한민국의 영화배우. 본명은 최한련. 배우 최민수의 아버지이다. 수많은 영화에 출연하며 흥행가도를 달렸던 스타로, 당대에는 아들(최민수)보다 훨씬 존재감이 큰 배우였다. 한마디로 일세를 풍미했던 대배우.

2. 트리비아

개성상업학교[4]를 나와 중앙대학교 법학과에 재학 중 연극에 심취하면서 연극배우로 데뷔하였다가[5][6] 1954년 영화감독 이만흥의 영화 탁류를 통해서 영화계에 데뷔하여 허장강, 이예춘, 독고성 등과 함께 영화계 대스타로 성장하였다.[7] 주요 출연작으로는 잃어버린 청춘, 오발탄, 5인의 해병, 동춘, 둘째 어머니, 죄많은 여인, 잡초 등이 있다. 원로배우 엄앵란의 회고에 따르면, 상당히 신사적이고 매너가 좋았다고 한다. 길을 가다 진흙탕이 있으면 겉옷을 그 위에 덮어 여배우가 밟고 지나가게 배려해줬다고. 신성일은 그런 경우 '야, 뛰어와서 건너!'라고 외친다는 부연설명도 김승호, 최남현, 김진규, 박암 등 다른 영화배우들과 함께 임화수에게 구타를 당한 적도 있다고 하며[8], 1960년 4월 24일 기사에 유지광, 임화수의 구속을 언급하는 기사에서 충무로 2가의 반공예술인단 사무실에서 동대문파 4, 5명에게서 용공 사상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구타당했다고 나온다. 총 3번 결혼을 한 관계로 가정사가 꽤나 복잡하다. 첫번째 부인 강효실 사이에 1남 3녀를 두었고(이 중 아들은 배우 최민수다) 두번째 부인인 김지미 사이에서 1녀, 세번째 부인 차모씨 사이에서 1남 1녀를 두었다. 1962년 당시 김지미와 함께 간통 혐의로 구속되었고,(이때 최무룡의 아내는 배우 강효실.) 수갑을 찬 두 사람의 행복해 하는 모습에 당시의 언론은 연일 화제였다(...) 지금 관점으로도 충분히 파격적이지만 당시 시각으로는 그야말로 대형 스캔들이었다. 결국 1963년 최무룡은 강효실과 이혼하는데, 이때 이혼 위자료를 김지미가 지불했다. 그 당시 대한민국 최고의 위자료인 400만원(위자료 330만원+채무 70만원)을 지급하면서 다시 화제가 되었다. 이때 400만원은 이루 헤아리지도 못하는 거액이었다. 심지어 6년 뒤 최무룡과 이혼할때도 김지미가 이혼 위자료를 전부 부담했다고 한다. 당시 여성 혼자 그정도의 재력을 갖고 있기가 힘든 시대였고 통상적으로 이혼 위자료를 남성이 다 책임지던 시절임을 감안하면 김지미의 위력이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는 부분. 김지미는 2003년 신동아 인터뷰에서 4번의 결혼과 이혼을 회고하며 '나이 많은 남자, 어린 남자, 능력 있는 남자, 다 살아봤는데 남자는 별거 아니더라. 남자는 다 어린애고, 부족하고, 불안한 존재다. 그렇지만 함께 자녀를 낳아 기렀던 최무룡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밝혔다. 참고로 간통 당시 최무룡은 무려 백일무렵의 갓난아들 최민수를 둔 상태였고, 이혼후 김지미가 잠깐 최민수를 맡아 기른적도 있다고 한다. 이런 복잡한 가정사 때문에 최민수와 최무룡의 관계는 꽤 오랫동안 좋지 않았다. 전성기 시절부터 가수로서 음반도 발매하여 "외나무 다리"와 "꿈은 사라지고"라는 자신의 명곡도 있어서 가요무대에 출연한 적이 있다.(곡들 대부분이 나쁘지 않으니 들어보자.)

꿈은 사라지고 (1989년도 영상)


3. 말년

제13대 국회의원(파주군, 신민주공화당→민주자유당)을 지냈으나 정계에 별다른 족적을 남기지는 못했다. 14대 국회의원 공천에서 탈락한 후 1993년부터 한국영상자료원장을 지내다가 1994년에 분당 택지불하를 미끼로 22억원을 가로채 사기 혐의로 구속되어 집행유예 선고를 받은 바 있다.

1998년부터는 악극 <이것이 유랑극단>, <아리랑> 등지에 출연하면서 연기에 대한 의지를 불태우다 1999년 11월, 경기 부천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쓰러져 향년 71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사후 보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다.

[1] 현 파주시 문산읍

[2] 최초의 성우라 할 수 있는 KBS 성우극회 특기 출신 중 한 명이다.

[3] 아들 중 한 명이 그 유명한 배우 최민수다.

[4] 지금으로서는 상상이 안되겠지만, 당시는 분단 이전이었음을 상기하자. 수원과 용인의 관계를 떠올리면 쉽다. 임진면(현 문산읍) 출신인데, 당시 문산에서 가장 가까운 대도시는 경성이 아닌 개성이었다.

[5] 이 때 그는 백조가극단에 속해 있었는데, 백조가극단을 운영하던 여배우 전옥의 딸이 바로 최민수의 어머니가 되는 강효실이다. 강효실은 부모가 이혼한 후 아버지 강홍식을 따라 평양으로 갔고, 일본인 계모의 슬하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아버지, 친어머니의 대를 이어 배우가 되었다. 이후 한국전쟁 도중 월남하여 어린 시절 헤어졌던 친어머니 전옥과 재회하게 된다. 그러나 모녀가 오랫동안 떨어져 있다 다시 만나 서로가 어색할 수 밖에 없었고, 자연히 갈등이 있었는데, 그러다가 어머니의 극단에서 같이 연기를 하던 최무룡과 가까워지게 된 것이다. 전옥은 후배 최무룡을 각별히 예뻐하며 아꼈지만, 사위로는 최무룡이 탐탁치 않았는지 최무룡과 강효실의 사이를 반대했는데, 두 사람은 결국 전옥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하였고, 최민수가 태어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최무룡과 김지미의 간통으로 최무룡과 강효실은 결국 이혼하게 된다.

[6] 최무룡과 강효실의 결혼식에 재밌는 뒷 이야기가 있는데, 최무룡과 강효실이 만나 결혼하게 된건 부산 피난 시절의 일인데, 미군의 함정을 빌려서 선상 결혼식을 하였다. 당시 결혼식에는 신랑의 가까운 친구들 가운데 입담이 좋은 사람이 재담을 섞어 하객들을 웃기면서 신랑, 신부의 앞날을 축복해 주는 축사라는 순서가 항상 꼈었는데, 최무룡과 강효실의 결혼식에서는 최무룡의 고향 친구라는 이가 그 축사 라는 것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축사가 한 시간이 다 되도록 끝날줄 몰랐고, 마침 그 때 몸이 불편했던 강효실은 함정이 좌우로 요동을 치는 바람에 뱃멀미를 하게 되었고, 뱃멀미를 견디다 못해 결국 졸도를 하고 말았다고 한다. 다행히 신랑이 신부를 재빨리 부축해서 무사할 수 있었지만 결혼식은 아주 우습게 끝이 나게 되었다고 한다.

[7] 공교롭게도 앞에 세명 다 아들이 부친의 뒤를 이어 배우의 길을 걷고 있다. 각각 허기호 - 허준호 형제, 이덕화, 독고영재이다.

[8] 이 부분은 야인시대에서도 그대로 묘사되었다. 야인시대에서 청년기의 최무룡 역할을 맡은 배우는 무인시대에서 최우를 맡은 정재곤.


Korean movie star. His real name is Choi Han Ryeon. His father is the actor Choi Min-soo. He starred in numerous films that were a big hit. He was a much more present actor than his son (Min-soo Choi). In short, he was a big actor.


After leaving Kaesong Commercial School, he studied at the Chung-Ang University Law School. He made his debut as a theater actress. Then he became a movie star.


After a total of three marriages, the family history is quite complicated. He had one son and three daughters between his first wife, Kang Hyo-sil (one of whom was actor Choi Min-soo), and one daughter between Kim Ji-mi, the second wife, and one daughter of Chamo, a third wife.


In 1962, he was arrested for adultery with Kim Ji-mi (at this time, Choi Mu-ryong's wife is actor Kang Hyo-sil). At the time, it was a huge scandal. Finally, in 1963, Choi Mu-ryong divorced Kang Hyo-sil, and Kim Ji-mi paid for the divorce alimony.It became a hot topic again for paying 4 million won (the above material 3.3 million won + debt 700,000 won), the largest alimony at that time in Korea. Even when he divorced Choi Mu-ryong six years later, Kim Ji-mi was responsible for all the divorce alimony. At that time, it was difficult for women to have the same wealth alone, and in general, it was a time when men were responsible for all the divorce alimony.


Kim Ji-Mi recalled four marriages and divorces in an interview with Shin Dong-ah in 2003. All men are young, lacking, and insecure. But Choi Mu-ryong, who had a baby with her, is the most memorable. '


For reference, at the time of adultery, Choi Mu-ryong had a newborn son Choi Min-soo of about 100 days old, and Kim Ji-mi raised him for a while after divorce. Because of this complicated family history, Choi's relationship with Choi Mu-ryong has been bad for quite some time.


Since his heyday, he has also released a record as a singer, and he has appeared on the music stage with his masterpieces, "The Pine Bridge" and "Dreams are gone." (Most of the songs are not bad.)


3. Last years


He served as the 13th National Assembly member (Paju-gun, New Democratic Republic → Democratic Liberal Party), but did not leave any mark in the political circle. After dropping out of the 14th National Assembly member's nomination, he has been the director of the Korea Film Archive since 1993.


Since 1998, he has appeared in the dramas <This is a wandering troupe> and <Arirang>, and he ignited his will for acting. Afterwards, a custody certificate was iss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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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CLUSION:

Although not each track is equally original, Choi Mu Ryong has a warm baritone voice, the arrangements are colorful and filmic, the switch from actor to singer sounds like a logical transmission from wide screen to a musical scene that created the same sort of attractive atmosphere. It is easy to appreciate even when not too many songs can be lift out so eas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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