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의철 - Kim Eui-Cheol (Kim Eu Chul / Kim Uichul)


original LP Sung Eum Limited 1974

A1. 마지막 교정 (작사:김의철 작곡:김의철)

A2. 연인들의 자장가 (작사:김의철)

A3. 섬아이 (작사:김의철 작곡:김의철) 박찬응 노래

A4. 눈길 (작사:김의철 작곡:김의철)

A5. 잘가오 (친구에게) (작사:김의철 작곡:김의철)

B1. 저 하늘의 구름따라 (불행아) (작사:김의철 작곡:김의철)

B2. 친구 (작사:김의철 작곡:김의철)

B3. 평화로운 강물 (작사:김의철 작곡:김의철) 박찬응 노래

B4. 연인 (연주곡) (작곡:김의철)

B5. 우리의 꽃 (작사:김의철 작곡:김의철)

Listen of LP version. Psychefolk Radio show comments :


"Very good folk s/sw album. Track 4, "Island Child" has (slightly forced) very emotional & sad female vocals. The same vocalist sings on the 8th track which continues in a beautiful instrumental (2 clarinets and piano). The dual vocals on "the cloud of.." with acoustic guitar and clarinet and harmony vocals are very beautiful too. A very fine album."

CD Sohtdae ‎– SDCD-001G 24K Gold, DSD Remastered 2003

김의철 - 김의철 노래모음 (DSD Remaster 재발매) -

김의철 노래 | 라운드 (ROUND) / 라운드 (ROUND) | 2004년 02월 20일

김의철 - 김의철 노래모음 -- 김의철 노래 | 뮤직리서치 | 2012년 01월 19일

Music Research Corporation ‎– MRCD 1201

1. 마지막 교정 / Last proof

* 2. 연인들의 자장가 / Lullabies of lovers

* 3. 섬아이 / Island

4. 눈길 / Eye-catching

5. 잘가오(친구) / Good night (My Friends)

* 6. 저하늘의 구름따라(불행아) / Follow the Clouds of the Low Sky

7. 친구(친우) / Friends * 8. 평화로운 강물 / Peaceful River

* 9. 연인 / Lovers

* 10. 우리의 꽃 / Our Flower

Tracks with * I consider essential listens or classics from a western point of view of listening, as tracks to check out for sure because for some reason they seem to stand out as such, which makes them also very suitable for western radio show airplay. Tracks that are only underlined can be considered fine tracks you might better check out as well, but I am not sure how essential they really are.

Compared to nearly all song music from around this time, which often tends to choose safe music with mainstream associations and several song covers, this is the real, directly inspired songwriter based thing, with rather melancholic, sincere qualitative songs with beautiful acoustic pickings, often distant backing female vocals and clarinet, or with second picking guitar.


The album stays with you very easily and it is recommended.


The third and eight song are with the female singer to the fore and the male voice only with some baritone humming along. Her voice cries and vibrated deeply with emotion as if to cry out the melancholy.


Only the 7th track is a bit more up-tempo, with the same instruments and voices. The ninth track is a beautiful instrumental by piano and two clarinets.


음반 수집가들에게는 컬렉션의 마지막이라고 할 만큼 초 희귀음반이자 한국 포크의 명반 - 1974년 작품 ‘김의철 노래모음’이 당시 녹음된 마스터 테입프로부터 음원을 발췌하였으며 김의철의 음악에 대하여 가장 잘 아는 최규성의 해설이 첨부되었습니다.


To the record collectors, it a collectable record, which is very rare, a Korean folk album-1974's Kim U-cheol's song collection was extracted from the recorded master tape and commented on Choi Kyu-sung's best knowledge of Kim's mus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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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prognotfrog.blogspot.be/2006/07/kim-eu-chul-norae-moem-korea-1974-192.html :


"before flying thru bed i start listening kim eu chul. i like to go sleeping with accoustic music. a few days ago i uploaded this album to rapid. maybe my sleepy condition or a need of accoustic music remind me to share this album with you now.

i am not sure the history of this album..as i learned some songs are lullabies.soft guitar chords/solos follows sweet voices in a dreamy scene.i love all the songs in the album..but especially lover's lullaby & the cloud of that sky it follows are awesome..wish i know korean language to understand them..the lyrics must be awesomme..i would like to learn the english meanings of the lyrics..there is one instrumental song in that album also..that many may like..now i start listening this album..and flying thru bed..goodnight to me..and goodmorning/afternoon/evening/night to you al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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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conermusic.tistory.com/238 (roughly translated)


송창식 | 맨 처음 고백 / 손을 잡고 걸어요 (1974)

트윈폴리오에서 독립하여 애플 프로덕션에 둥지를 틀었던 송창식이 오리엔트 프로덕션으로 이적하며 발표한 첫 번째 음반으로, 통산 네 번째 독집에 해당한다. 애플 시절 송창식의 음반이 트윈폴리오의 연장선 혹은, 김희갑의 곡을 받으면서 가요와의 중간적 형태의 위치에 해당했던 반면 동방의 빛과 결합한 새로운 시도들은 향후 송창식의 스타일을 규정지을 정도로 독특한 형태의 진화를 이루었다. 그 진화 가운데는 스매시 히트곡 <한번쯤>과 같이 트로트와 결합했지만 통속적인 느낌이 들지 않는 트랙도 있다. 물론 그 이유는 연주에 참여하고 있는 동방의 빛의 영향력이 클 것이다. 특히 전체적으로 도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무그 신세사이저의 종횡무진 펼쳐지는 활약이 돋보이며, 프로그레시브록의 영향력 아래 펼쳐지는 서늘한 후주를 동반한 <새는>은 단연 압권이다. 송창식이나 동방의 빛의 여타 작품들에서 좀처럼 듣기 어려운 블루스적 감성의 <강변에서>도 독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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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ichul Kim | Kim Ui-chul's song collection (1974)

This album was released through Orient Productions, but the band Music of the East (Light Of The Orient) did not participate. In the performance, Kim Ui-cheol himself contributed guitar, Kim Min-gi and Lee Jung-sun, Kim Young-bae, Kim U-hye clarinet, and Kim Kwang-hee piano. As a result, compared to the recordings of the original Orient productions these are quite different. As can be seen in the arrangement of musical instruments, Kim's arrangement is to be noticed in many songs that show a feel of small chamber music like "Lee Jung-seon". The song "Following the Clouds in the Sky", which shows the essence of the so-called "Three Fingers" (?), later gained a new life as Kim Kwang-suk's remake version, "I'm Unlucky". Unlike traditional folk music, this is a record that shows the stubbornness of Kim Eui-cheol vision relying on the arpeggio and flicking of nylon guitars without any strums of acoustic guitars. It also reveals a religious maturity, which is not difficult to perceive in songs like "The Last Correction" and "Our Flower", showing a common featured in several of his later produced albu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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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re is also a 2012 edition on MRC. Review:


포크 싱어송라이터 김의철의 전설적인 한국포크의 명반!! 70년대의 저항포크가수 김의철의 이름을 기억하는 대중이 몇이나 있을까? 세계기타협회 회장이었던 스페인의 나바스코스와 전설적인 세계적 클래식기타리스트 세고비아의 수제자 볼로틴이 감탄해 마지않았던 기타리스트가 김의철이다. 그가 부른 읊조리듯 사람의 마음을 파고드는 곡 들 중 그나마 대중들의 기억 저편에 살아있는 노래는‘저 하늘에 구름 따라(원제 불행아!’와‘마지막 교정’정도. 하지만 놀랍게도 금지되었던 그의 오리지널 데뷔LP 음반은 중고시장에서 1백만원을 주고도 구경조차 하기 힘든 한국 포크의 명반으로 손꼽힌다. 데뷔음반의 좌절 이후 김의철은 포크의 순수한 정신을 지키기 위해 방송이나 음반을 통한 상업적인 활동을 접고 독일과 미국으로 클래식 기타유학을 떠나 버렸던 비운의 대중음악 아티스트이다. 18년 만에 귀국한 1996년 이후 그는 양희은의 음악감독으로 줄 곧 활동해왔다. 양희은은‘김의철의 기타연주는 세계적’이라고 거침없이 추켜세운다. 그의 형제자매는 클래식 예술가로 유명하다. 큰 형은 29세의 젊은 나이에 뉴저지 심포니, 뉴욕필하모니 악장을 지낸 금호4중주의 창시자인 한양대음대 관현악과장 김의명 교수이다. 그는 보성중학 때 누나가 구해온 합판으로 만든 천 원짜리 기타소리에 매료되면서 기타를 잡았다. 누나로부터 기본코드만 익히고 홀로 기타배우기에 몰입했다. 1969년 중3때 첫 창작곡‘뭉개구름’등 10여 곡을 작곡했을 만큼 음악성은 타고났었다. 청소년기는 혹독한 시련의 연속. 형제들은 모두 외국으로 유학을 떠나고 부모님도 사업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베트남으로 떠나 홀로 한국에 남겨졌다. 견딜 수 없는 외로움과 싸워야했다. 공부보다는 기타만을 끼고 살다보니 70년대 사회분위기에서 미운 오리 새끼 취급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 심신의 견디기 힘든 고통은 가출로 이어졌지만 삶의 무게에 짓눌릴 때마다 오히려 예술혼은 불꽃처럼 피어올랐다. 젊은 날의 그의 노래들은 솔직한 그의 음악일기였다. 보성고 1학년 때 박인희가 DJ를 했던‘세븐틴’의 첫 방송에서 창작곡인‘저 하늘에 구름 따라’를 불러 음악관계자들의 놀라게 했다. 그는 대학진학보다는 음악에 전념하기 위해 개발붐으로 들썩거렸던 강남 반포에 칸 기타스튜디오를 오픈했다. 1973년 3월 어느 날, 성음 나형구사장이“국내 최연소작곡자의 음반 제작”을 제의해 왔다. 첫 음반을 낸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뛰었다. 하지만 유신정권의 색안경에 비친 김의철의 노래들은 너무도 어두웠다. 검열통과부터 삐그덕 소리가 났다. 이에 성음제작소 측은 제목과 가사를 본인의 허락도 없이 수정해 검열을 통과시켰다. 그런 사연 탓에 그의 유일한 독집LP <김의철 노래모음>은 1년 뒤에야 세상 빛을 보았다. 그러나 그 음반은 천재적 음악성을 지닌 김의철을 오히려 대중들과 격리시키는 사망 신고일 줄을 누가 알았을까. 또한 수록곡인 박찬응의 곡들이 ‘창법미숙’이라는 황당한 이유로 방송금지 처분까지 내려지자 스스로 판매금지처분까지 내려버렸다. 총 10곡의 수록곡 중 타이틀 곡인 ‘마지막 교정’은 졸업식 날 즉흥적으로 제목도 없이 만들어 불렀던 노래. 문제의 2면 첫 곡 ‘저 하늘에 구름 따라’는 원제목이 ‘불행아!’였다. 세상과 김의철을 격리시킨 곡이건만 양희은, 이광조, 김광석 등 수많은 가수들에 의해 불리어져 대중이 가장 친숙하게 기억하는 노래가 된 것은 아이러니하기만 하다. 주목할 노 래는 당시 서강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현재 미국 오하이오주립대학 한국학 교수로 재직중인 박찬응 노래 2곡. 소름끼치도록 섬뜩한 목소리로 들려준 ‘섬아이’와‘평화로운 강물’. 밑바닥 인생의 애환이 서린 듯 가슴을 후벼파는 거칠고 처연한 그의 노래는 '창법미숙'이란 미명아래 금지명찰을 달았다. 이 얼마나 어이없는 70년대 유신군사정권의 횡포인가! 이후 80년대 민주화항쟁 때 폭넓게 불리어 졌던 '군중의 함성','이별가'같은 저항 곡들의 발표로 그는 질식할 것 같은 감시에 시달렸다. 김의철의 음악은 처절한 자기극복의 울림이자 가족, 친구, 사회에 바치는 따뜻한 사랑의 연가이다. 견디기 힘든 고통에서도 언제나 그를 완강하게 지탱시켜준 것은 음악과 종교였다. 73년부터 명동 카톨릭 여학생기숙사내의 '해바라기'의 리더를 맡았다. 초기 해바라기는 노래로 의식화운동을 했던 70년대의 또 다른 청년저항문화의 산실이었다. 늘 맑은 노래에 심취된 젊은 관객들로 북적거리자 군사정부는 사퇴압력을 가하며 정보원들을 상주시켰다. 그는 정보원들에게 목탁으로 머리를 얻어맞으며 협박을 받았다. 성당과 가족에게 피해를 준다고 생각한 김의철은 75년 이정선에게 진행을 넘기며 물러났다. 80년 4월 결혼과 함께 서양음악의 근본을 알기 위해 독일과 미국으로 떠났다. 세계적 기타리스트들에게 음악을 사사 받고 연주력을 인정받아 뉴욕에서 기타교수로 재직했다. 이미, 독일의 한 일간지에 그가 소개되었다. '나치가 600명의 저능아를 살해한 것을 기리기 위해 해마다 열리는 추모회에 전 세계 장례 곡들 중 한국의 김의철 곡이 선곡되어 91년부터 10년 간 빠짐없이 불리어지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80년대 민주화항쟁 당시. 작곡자의 이름과 얼굴이 베일에 가려진 채 ‘군중의 함성’과 ‘이 땅의 축복 위하여’ 두 곡이 운동권 학생을 중심으로 널리 불리어졌다. 바로 김의철이 작곡한 노래들이었다. 상업적인 노래만이 양산되고 있는 우리가요계에 김의철 같은 대중음악가가 존재한다는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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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ugh translation via google translate:


“How many of you remember the name of Kim, who was a pretest folk singer of the 70s? This original debut LP album Is considered to be one of the best of Korean folk history.


After the disappointment of the lack of succes of his debut album, Kim broke his commercial activities through broadcasts and recordings in order to defend the pure spirit of Folk, and then left to study classical guitar in Germany and the United States. After returning to Korea in 18 years, he has been active as a music director for Yang Hee Eun since 1996.


His brothers and sisters are aso famous as classical music artists. Kim himself became a professor at the Hanyang University College of Music orchestra and founder of the New York Symphony and the New York Philharmonic at the age of 29.


He caught the guitar after being attracted by the sound of a thousand-won guitar made of plywood that Sisa had found and bought during Boseong Middle School. I learned the basics from his sister and further developed his style on guitar alone. In 1969, when he composed three or more songs, including his first original song, "Crush Cloud", in which his musicality was born. All of the brothers went abroad to study abroad, and their parents left to Vietnam alone to make up for business failure. At that time he had to fight against the unbearable loneliness. He lived with his guitar than studying, while being forced to be treated as an ugly duckling in the social atmosphere of the 1970s. The hardships of the mind and body making him to runaway, overwhelmed by the weight of life, the art soul rose like a flame. His songs about his young days were like his music diary.


In the first grade of Boseong High School, Park In-hee sung "The Sky in the Sky”.” Excited by this development he decided to devote himself to music rather than to continue college. One day in March 1973, the chief speaker of the school had proposed to make music for the youngest composer in Korea. Stil his first steps were closed by darkness. From beyond censorship, there was a loud noise to be heard. Sungwon Works changed the title and lyrics without the artist’s permission and in that way still passed the censorship. Because of this change, his only solo album, <Kim's song collection>, was able to see the light of day a year later. However, who would have known that Kim Ki - chul, a genius musical, was reported to be a death sentence separating him from the masses. Also, the songs of Park Chan-eung, as what could be considered as important songs, they were banned for broadcasting because of the ridiculous reason that the songs were “not mature”.


The title song of the ten songs, "Last Calm", was a song that was made improvised without a title on graduation day. On the second side of the LP, the first song, "Follow the clouds in the sky," had the original title "Unhappy!". It is ironic that the songs that have been isolated by the world and Kim, Cheol Cheol have been sung by many other singers too such as Yang Hee Eun, Lee Gwang Jo, Kim Kwang Suk and others. 'Island kids' and 'peaceful rivers' sounded doomy. This last rough and tumble song, which sold his heart as if his bottomless life had been touched to do so, was banned. There has been lots of banned songs during the tyranny of the military regime of the 1970s. There were also some resistance songs such as "The Shouting of the Crowd" and "The Separator" which were widely calling for the early 1980s democratization struggle.


Kim 's music is melancholy of a person with its resurrection and a warm love for family, friends and society. music and religion only sustained this unbearable pain. Since 1973, Kim had been the leader of 'Sunflower' in the dormitory of Catholic girls in Myeongdong. The early sunflower was the birthplace of another youth resisting culture in the '70s, which was a ritual movement with guiding songs. Always in a sunny song Crowded with young audiences, the military government put pressure onto its organisation. Kim was intimidated and beaten by officials. Kim, who taught this would affect and harms the church and his family, withdrew from the church in 1975. In April 1980, he married and left for Germany and the United States to learn the origins of Western music. He studied music with world-class guitarists and earned his way via performance as a guitar professor in New York.


He was also celebrated by a German daily newspaper, for one of his Korean funeral songs. During the democratic elections in the 80s two songs, 'Shout of the crowd' and 'To bless the land', were widely circulated around the students of the movement. These were songs composed by Kim.


It is indeed grateful that there is a popular musician like Kim, Cheol-cheol in our music industry, where mostly only commercial songs were mass-produced."


There has also been a limited LP+CD reissue in 2003:


김의철 작품집 (2LP+1 24K GOLD CD, Box set) ​ 2003-12-00 솟대

작사.작곡 : 김의철 Side 1 / (LP 1) - 김의철 노래모음 1. 마지막 교정 2. 연인들의 자장가 3. 섬아이 (박찬응 노래) 4. 눈길 5. 친구에게 Side 2 1. 저하늘의 구름따라 (불행아) 2. 친우 3. 평화로운 강물 (박찬응 노래) 4. 연인 (연주곡) 5. 우리의 꽃 Side 3 / (LP 2) - 김의철, 양경숙 戀歌集 1. 촛불을 밝혀요 2. 나 그대를 사랑하기에 3. 님생각 Side 4 1. 봄사월 (가을) 2. 아름다운 얘기 3. 이별의 노래 4.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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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log.aladin.co.kr/urblue/538387

* 클래식 기타 : 김의철,김민기 * 어쿠스틱 기타 : 김영배,이정선 * 베이스 기타 : 이정선 * 클라리넷 : 김의혜 * 피아노/비브라폰 : 김광희 * 코러스 : 김추자,박찬응,백성조,김의혜,윤형주, 김영배,이정선,김의철

큰 울림으로 남겨진 한국 포크의 컬트. 음반 콜렉터들 사이에 100만원을 호가하는 김의철의 데뷔 음반에는 한 여가수가 소름 끼치는 목소리로 노래한 "섬아이", "평화로운 강물" 등 두 곡이 수록 돼 있다.

가요 사상 유례가 없는 "창법 미숙"이라는 이유로 금지 명찰을 단 여성 포크 가수의 노래다. 노래의 주인공은 당시 서강대 영문과 여대생이었던 박찬응. 금지의 멍에로 이름조차 생소한 그녀의 노래를 단 한번이라도 들어본 사람이 라면 처절하게 가슴 속을 파고드는 강력한 소리의 이미지에 충격을 받아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놀라움을 안겨주는 어둡고 괴상한 창법의 이 노래가 유신 정권 하에서 금지곡 리스트에 올랐던 것은 당연했으리라.

하지만 독특한 그녀의 허스키 창법은 한국 가요 사상 가장 처절하고 슬픈 울림으로 포크 마니아들은 받아 들인다.

가히 한국 포크의 컬트로 여길 만큼 철저하게 숨겨진 명곡이다.

그래서인가, 이름조차 생소한 포크 가수 박찬응의 노래는 포크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양희은의 "아침이슬", 현경과 영애의 "아름다운 사람", 한대수의 "바람과 나" 등과 어깨를 나란히해 "가장 좋아하는 70년대 포크가요 순위" 6위 에 당당하게 올라 있을 정도다.

하지만 그녀의 진가는 포크 가수에서 판소리 대가로 변신해 현재는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 한국학 교수가 되어 한국의 소리와 얼을 세계에 알리고 있는 특이한 이력의 소리꾼이라는 점에서 빛을 발한다.

1. 막막한 바다 위에 우뚝 솟은 외딴 섬에 한 소녀 검게 그을린 얼굴에 꿈을 그리다 잠든 어린 소녀 오랜 바위에 걸터앉아 하늘의 정경을 꿈꿀 때 아름다운 별들을 품에 안고 한없이 한없이 미소 짓네.

2. 먹구름이 밀려와 소나기를 쏟다가 파도소리에 밀려 꿈을 그리다 하늘을 엿보는 섬 아이 하나 있었네 오랜 바위에 걸터 앉아 하늘의 정경을 꿈꿀 때 아름다운 별들을 품에 안고 한없이 한없이 미소 짓네.

Rough translation:

* Classical guitar: Kim Eui-chul, Kim Min-ki

* Acoustic Guitars: Kim Young-bae, Lee Jung-sun

* Bass Guitar: Lee Jung Sun

* Clarinet: Kim Euihye

* Piano / Vibraphone: Kwang Hee Kim

* Chorus: Kim Choo Ja, Park Chan Eung, Baek Sung Jo, Kim Eui Hye, Yoon Hyung Joo,

Kim Young-bae, Lee Jung-sun, Kim Eui-chul


A cult of Korean folk left behind by a loud echo. Kim Eui-cheol's debut album, which is worth a million won among record collectors, includes two songs, "an island singer" and "a peaceful river", where a female singer sings with a creepy voice.


It is a song of a female folk singer with a ban because it's unprecedented "immature" nature. The protagonist of the song was Park Chan-eung, an English college student at Sogang University. Anyone who has ever heard her songs even unfamiliar with a yoke of prohibition may have been shocked by the image of a powerful sound that pierces the heart.


30 years later, it would be natural that the song, which is still amazed by the dark and weird creation, was put on the list of banned songs under the Yushin regime. However, her unique huskies are accepted by the folk enthusiasts as the most sad ringing ever in Korean songs.


It is a masterpiece so thoroughly hidden that it is considered a cult of Korean folk. So, even the name of the folk singer Park Chan-eun, who is unfamiliar of a name, among the folk enthusiasts, Yang Hee-eun's "Morning Dew", Hyun-young and "Beautiful People", and the number of "Wind and Me" alongside the shoulders "My favorite 70 It's about sixth in the folk song rankings in the '90s.


However, her true value has changed from a folk singer to a pansori master, and now she is a professor of Korean studies at Ohio State University in the United States.

A girl on a remote island towering over the vast sea

A Little girl asleep with dreams on her tanned face

Sitting on a rock for a long time

holding a beautiful star in her arms and smiling indefinitely.

The clouds are coming and pouring showers of rain and the sound of waves

I was dreaming I had an island child peeping into the sky

When you sit on a rock for a long time

you hold a beautiful star in your arms and smile indefinite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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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RE BIOGRAPHICAL NOTES:

http://blog.daum.net/_blog/BlogTypeView.do?blogid=0DZof&articleno=2636&categoryId=602613&regdt=20111217035246

김의철 Kim, Eui-Cheol

출생: 1953년 / 서울, 대한민국 데뷰 (Debut): 1974년 (김의철 노래모음) 학력: 보성고등학교

김의철을 기억하는 70년대 포크팬들이 몇이나 있을까? 세계기타협회 회장이었던 스페인의 나바스코스와 전설적인 세계적 클래식기타리스트 세고비아의 수제자 볼로틴이 감탄해 마지않았던 기타리스트가 김의철이다.

그가 부른 읊조리는 듯 사람의 마음을 파고드는 곡들중 그나마 대중들의 기억을 간지럽히는 노래는 <마지막 교정>과 <저하늘에 구름따라> 정도. 소리소문없이 사라져버린 대부분의 70년대 포크가수들과는 달리 포크의 순수한 본연의 정신을 지닌채 대중적 인기에 영합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음악적 성취감만을 위해 꿋꿋하게 삶을 견지해온 아티스트이다.

그는 지금 양희은의 음악감독으로 품격있는 포크의 완성을 위해 혼신의 힘을 쏟고 있다. 양희은은 ‘김의철의 기타는 세계적’이라고 거침없이 추켜세운다. 부끄러워서 세상에 내놓지 않은 그의 93년 음반은 양희은의 이야기가 허세가 아님을 증명해준다.

세계적으로 유래가 없는 클래식포크였다. 단순한 포크가락에 클래식의 품격을 더해놓은 발전적 음악형태인 클래식포크는 세계적으로 유래가 없는 독창적이고 품격있는 김의철 음악의 결정판이다.

김민기조차 타의에 의해 포크를 저버린 지금, 그는 숨겨진 한국포크의 자존심이자 현존하는 포크정신의 희망으로 불릴만한 하다.

한국전쟁때 함경도 원산에서 피난온 부친 김인상과 모친 윤정희 사이의 3남3녀중 다섯째로 부산에서 태어난 김의철. 부친은 원산에서 건축업을 크게 벌이며 많은 성당을 건축했을만큼 유복한 집안이었다. 사촌등 온가족들은 월남하여 서울 신당동의 폐허가 된 고아원을 개축, 함께 살았다. 늘 외로움이 버거웠던 할아버지의 유언 때문이었다.

영원한 개구장이 김의철은 5살때 지붕에 올라가 놀다 '동네에 광대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뛰어내리다 크게 다쳐 지금도 다리가 불편한 상태. 이때 자신을 지극 정성으로 돌보아준 할머니에 대한 애정은 각별하다.

후에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밤을 새워 한국적이면서 슬라브적 냄새가 물신 풍기는 장중한 장례식곡을 작곡하여 바쳤을 정도. 김의철의 형제자매는 대단한 클래식 예술가로 유명하다.

큰 형은 한국최초로 29세의 젊은 나이에 뉴저지 심포니, 뉴욕필하모니 악장을 지낸 금호4중주의 창시자인 한양대음대 관현악과장 김의명 교수이다. 그는 초등학교 5학년때 전국 콩쿨에서 대상을 받고 명문 줄리아드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했고 누나들은 피아노와 정치학을 공부하러 독일로 유학을 갔을만큼 뛰어난 재원들이었다.

어려서 다리를 다치고 가족들과 떨어져 지낸 김의철은 중3때 가세가 기울며 내적상념이 많았음을 고백한다.

음악입문은 유아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집안에 있던 애기 바이올린은 김의철의 장난감이었다. 셋째누나가 대학에 들어가며 구해온 천원짜리 기타소리에 매료되면서부터 기타에 빠졌다. 중3때 이미 10여곡을 작곡했을 만큼 음악성은 타고 났었다.

청소년기는 혹독한 시련의 연속이었다. 형제들은 모두 외국으로 유학을 떠나고 부모도 사업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베트남으로 떠나는등 홀로 한국에 남아 다리절단의 위기를 넘기는 8번의 대수술과 견딜수 없는 외로움과 싸워야했다.

고1때부터 삼촌집에 얹혀 살면서 현실 세계보다는 내적인 안정과 만족을 안겨주는 기타배우기에만 몰두하기 시작했다. 공부보다는 기타만을 끼고살다보니 70년대 사회분위기에서 미운오리새끼 취급을 당했다. 수업부족으로 학업중단의 위기에 처하자 외국의 부모로부터 의절을 경고하는 편지가 날라왔다. 심신의 견디기 힘든 고통은 가출로 이어졌지만 삶의 무게에 짖눌릴 때마다 오히려 김의철의 예술혼은 불꽃처럼 피어올랐다.

좌절보다는 '정신세계에 눈을 떴을 뿐 아니라 온통 세상이 멜로디로 꽉 차있다'는 생각이 들만큼 더욱 음악속으로 빠져들었다. 실제로 유일한 독집LP에 수록된 모든 곡들은 당시의 감성을 담은 펑범치 않은 감수성과 음악성을 그대로 드러낸다.

고교동창 백성조는 '너는 우리나라의 음악을 책임져라. 나는 그림을 책임진다'고 말했을 만큼 김의철의 음악에 홀딱 반했던 절친한 친구. 김의철보다 불우한 처지였지만 그의 따뜻한 격려는 김의철에게 큰 음악적 영향을 안겨주며 순수함을 잃지않게 해주었다.

김의철은 고등학교때부터 음악실 세션작업에 참여했다. 김동석의 음반작업세션을 맡으면서 그의 기타솜씨는 제법 알려지기 시작했다.

기독교방송 김진성 PD와 친분이 생기며 전설적인 포크여가수 방의경이 진행하는 인기절정의 청소년프로 <세븐틴>에첫 방송출연을 했다. 이때 부른 노래는 고1때 작곡한 '저하늘의 구름따라'였다. 범상치 않은 기타솜씨와 싯적인 노랫말을 서정적멜로디로 구사하는 김의철에 게 방의경은 홀딱 반해버렸다.

이때부터 두사람은 오누이처럼 지내며 방의경의 노래반주는 김의철이 도맡아 해주었다.

음악에 넋을 빼앗긴 김의철은 대학진학보다는 창작곡들의 녹음작업을 하며 개발붐으로 들썩이는 반포에 칸 기타스튜디오를 오픈, 본격적인 음악여정으로 들어섰다.

이때가 1973년. 녹음한 모든 곡들이 유신정권의 검열에 좌절당하자 성음 나형구 사장은 곡제목과 가사들을 상의도 없이 수정하여 김의철의 유일한 독집LP <김의철 노래모음-성음,SEL-20-0025,74년3월>을 세상속으로 내밀어버렸다. 첫 독집음반의 불법적 탄생은 천재적 음악성을 지닌 김의철을 대중들과 격리시키는 사망신고일줄을 누가 알았을까.

김의철의 음악은 처절한 자기극복의 울림이자 가족, 친구, 사회에 바치는 따뜻한 사랑의 연가이다. 견디기 힘든 고통에서도 언제나 그를 완강하게 지탱시켜준 것은 음악과 종교였다. 카톨릭 신자인 김의철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며 73년부터 명동성당뒤에 위치한 카톨릭여학생기숙사내의 '해바라기'에서 음악활동을 시작했다.

대중들이 기억하는 이정선, 한영애, 이주호, 김영미의 4인조 혼성포크그룹 <해바라기>는 사실 오리지널 멤버가 아니었다. 이주호, 한영애 등은 해바라기 골수 관객출신들. 1기멤버들은 한국의 피터, 폴 & 메리라 불리었던 강성학, 장상태, 배화순이었다. 외국곡만을 부르자 관심이 지대했던 꼴레드 모아 프랑스 수녀는 한국음악이 없음에 실망했다.

이에 김의철이 진행을 자청하며 우리음악이 불리어졌다. 김민기, 현경과 영애, 양병집, 정태춘, 이광조 등은 이 당시 노래운동에 동참했던 쟁쟁했던 멤버들.

해바라기는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청개구리와는 달리 노래로 의식화운동을 했던 또다른 청년저항문화의 산실이었다. 늘 정의감 넘치고 맑은 노래에 심취된 젊은 관객들로 북적거리자 유신정부는 리더 김의철에게 사퇴압력을 가하며 정보원들을 해바라기에 늘 상주시켰다. 성당에 피해를 준다고 생각한 김의철은 75년 이정선에게 진행을 넘기며 물러났다.

보성고시절 작곡해둔 맑고 순수한 노래들로 대중들과 수줍은 대면을 꿈꾸던 73년 무렵. 유신정권의 색안경에 비친 명동 해바라기 노래운동의 주인공 김의철의 노래들은 너무도 어둡고 저항기운이 드세 검열통과가 불가능했다. 음반발표가 어려워지자 조바심이 난 것은 본인보다 성음레코드 나 사장.

주옥같은 멜로디가 아까워 문제되는 노래제목을 주인도 모르게 바꾸어 음반을 만들어냈다. 뒤늦게 자신의 첫 독집음반 <김의철 노래모음>출시소식을 듣곤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러나 자신의 음악이 변질된 사실에 참을 수없는 분노와 음악적 좌절에 치를 떨어야 했다. '다시는 음반작업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판금조치까지 내려 귀하디 귀한 이 음반은 김의철과 대중들을 이어주는 유일한 통로이자 연결고리임은 어찌하랴.

총 10곡이 수록된 독집 1면 첫곡 '마지막 교정'은 모든 포크가수들이 감탄해 마지 않았던 김의철의 대표곡. 졸업식날 방송실 친구가 노래를 하나 부르라하여 즉흥적으로 제목도 없이 만들어 불렀던 노래이다. 부모도 찾아오지않고 기타만을 치는 자신을 이해해준 박종렬 고3 담임선생님의 사랑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불렀던 학창시절의 추억과 아픔을 담고있는 명곡이다.

백코러스는 양병집이 운영하는 카페에서 탄탄한 가창력으로 노래를 부르던 '김추자'(댄스가수 김추자와는 동명이인)였다. '잘가오'는 사랑하는 어머니를 저세상으로 떠나보내고 외로움에 힘겨워하는 친구를 위로하기 위해 만든 눈물나도록 애틋한 노래. 문제의 2면 첫곡 '저하늘에 구름따라'는 원제목이'불행아!'였다.

대중들로부터 김의철을 격리시킨 곡이건만 양희은 등 수많은 가수들에 의해 불리워지며 가장 친숙하게 기억되는 것은 아이러니하기만 하다.'

연인'은 험하게 자란 사람을 사랑하게 되어 번민하는 셋째누나에게 바친 동생의 안타까움이 배여있는 곡. 장본인인 김의혜가 직접 연주하여 들려준 클라리넷연주는 처연하기만 하다.

'우리의 꽃'은 땅을 울리는 혼의 소리로 무궁화꽃의 사시사철에 대한 느낌을 전한 김의철식 애국가요. 서정적 멜로디속에 숨겨진 저항의식을 읊조리듯 들려주는 중저음은 감탄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주목할 노래는 명문 경기여고, 서강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현재 미국 오하이오대학 교수로 재직중인 박찬응이 소름끼치도록 섬뜩한 목소리로 들려준 '섬아이'와 '평화로운 강물'.

문학박사의 노래로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밑바닥 인생의 애환이 서린 듯 거칠고 투박하게 사람의 가슴을 후벼파는 처연한 그의 노래는 '창법미숙'이란 미명아래 금지명찰을 달았다. 이 얼마나 어이없는 70년대 유신군사정권의 횡포인가!

'군중의 함성','이별가'같은 저항곡들의 발표는 김의철을 음악적으로 질식시킬만큼 감시가 뒤따랐다. 좌절의 세월을 보내던중 77년 지금의 아내를 만나 안정을 찾으며 79년 서양음악의 근본을 알기위해 독일과 미국으로 떠났다.

세계적 기타리스트들에게 음악을 사사받은 김의철은 80년대 초반부터는 뉴욕에서도 연주력을 인정받으며 AMERICAN INSTITUTE OF GUITAR에서 기타교수로 재직하기도 했다. 얼마전 독일의 한 일간지에 소개된 김의철.

'나치가 600명의 저능아를 살해한 것을 기리기위해 해마다 열리는 추모회에 전세계 장례곡들 중 한국의 김의철곡이 선곡되어 91년부터 10년간 빠짐없이 불리어지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클래식 작곡에도 열심인 그가 꿈꾸는 음악은 아름답고 품격있는 우리가곡의 맛을 풍기는 클래식포크이다. 미발표CD들은 미국 LA에서 열악한 녹음환경속에 온가족이 참여하여 제작한 <그산하.김의철-킹,92년>과 <김의철2 연가집-킹,KSC3208,93년>. 성악의 대중화에 앞장선 한양대 교수였던 양경숙이 노래하고 김의철이 직접 클래식기타통을 울려주는 광음으로 연주한 사랑하는 아내에게 바치는 곡들이었다.

양경숙의 클래식한 보컬은 대중들의 인기에 아부하는 소리의 차원을 넘어 혼을 담은 김의철의 곡에 힘찬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기계적 조작이 없이 동시녹음으로 제작된 이 순수한 음반은 전세계적으로 유래가 없는 독특한 클래식포크의 진수를 들려주었다.

상업적 목적의 노래만이 양산되고 있는 척박한 우리가요계에 김의철 같은 대중음악가가 존재한다는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Rough translation:

Kim, Eui-Cheol : Born: 1953 / Seoul, Korea Debut: 1974 (Kim U-cheol Song Collection)

Education: Boseong High School


How many folk fans in the 70s do you remember? Kim Eui-cheol was reluctant to admire Spain's Nabascos, the president of the World Guitars Association, and Bolotin, the legendary world classical guitarist Segovia.


Among the songs that dig into the hearts of people as if he were singing, the songs that tickle people's memories are <The Last Correction> and <Follow the Clouds in the Sky>. Unlike most 70's folk singers that disappeared without sound, this artist has lived his life for the sake of his musical accomplishment, not competing in popular popularity in the pure spirit of folk.


He is now a music director of Yang Hee-eun, dedicated to the completion of a classy folk. Yang Hee-eun unanimously says that Kim's guitar is world-class. His old album, to be re-released to the world, proves that Yang is not bluffing.


It was a classic folk with no specific country origin. Classic Folk, an evolutionary form of music that adds classic elegance to simple folk, is the ultimate in unique and elegant Kim Eui-cheol music that has no origin in the world.


Even Kim Min-ki gave his folk by another person, whom he can be called proudly to be part of the hidden Korean folk scene which gives hope of the existing folk spirit.


Kim Eui-chul was born in Busan as the fifth of three sons and three daughters with father Kim In-sang and his mother, Yoon-hee, who fled from Wonsan, Hamgyeong-do during the Korean War. His father was wealthy enough to build a large number of churches in Wonsan. The cousins, including their cousins, lived in Vietnam, reconstructing orphanages in the ruins of Sindang-dong, Seoul. It was because of his grandfather's will that was always standing firm.


Kim Eui-chul, an eternal mischief, climbed the roof when he was 5 years old, and jumped after hearing that the clown came to the village. At this time, the affection for the grandmother who took care of herself with extreme devotion became exceptional.


Later, when his grandmother died, he spent the whole night composing and giving a funeral song with a Korean and Slavic smell. Kim Eui-cheol's brothers and sisters are famous as great classical artists.


His mentor is Professor Kim Eui-Myung of Hanyang University College of Music and Music, founder of the Kumho Quartet, who was the first Korean musician at the age of 29 to play the New Jersey Symphony and New York Philharmonic. He received a grand prize at the national contest in his fifth year of elementary school, majored in violin at the prestigious Juliad, and his sisters were excellent enough to go to Germany to study piano and political science.


Kim Eui-chul, who was injured as a child and fell apart from his family, confesses that he was inclined at the middle of the 3rd and had many internal thoughts.


The introduction to music dates back to childhood. The baby violin in the house was Kim's toy. The third sister fell in love with the guitar because he was fascinated by the 1,000-won guitar sound he had saved. In the middle of the 3rd year had already composed about 10 pieces of music.


Adolescence was a series of severe trials. The brothers all had to fight eight major surgeries and irresistible loneliness, leaving Korea alone to overcome the crisis of leg cutting, leaving abroad to study and their parents leaving for Vietnam to make up for their business failure.


From the old days on, he lived in his uncle's house and began to concentrate on learning other guitars that provided inner stability and satisfaction rather than the real world. As he lived with a guitar rather than studying, he was treated as an ugly duckling in the social atmosphere of the 70s. In a crisis of school interruption due to lack of class, a letter from foreign parents gave a warning. The unbearable pain of the mind and body led to a runaway, but whenever he was weighed down by the weight of life, Kim's art soul rose like a flame.

Rather than being frustrated, he fell into the music as much as he thought, 'I'm not only awake to the mental world, but the whole world is full of melodies.' In fact, all the songs included in the only solo LP reveal the unsophisticated sensitivity and musicality of the time.

"I am are responsible for the music of our country." "I'm in charge of the filling in"' Although he was more disadvantaged than Kim Eui-chul, his mentor's warm encouragement gave Kim Eui-chul a great musical influence and kept him pure.


Euichul Kim has been involved in music room sessions since high school. Kim's guitar skills became known as he was in charge of his recording work session.


Christian broadcaster Kim Jin-sung made a friendship with PD and made her first appearance on Seventeen, a popular climax by the legendary folk singer Bang Eui-kyung. The song that was sung at this time was `` Follow the Clouds of the Heavens, '' which was composed in Ko 1. Bang Eui-kyung fell in love with Kim Eui-chul, who uses lyrical melodies with extraordinary guitar skills and poetic lyrics.


Since then, the two have been like family and the song accompaniment of Bang Eui-kyung took charge of Kim Eui-chul.


Eui-chul, who was fascinated by music, opened the Can Guitar Studio in a full-fledged musical journey in Banpo, which is recording the creation songs rather than going to college and shaking with the development boom.


This was 1973. When all the recorded songs were frustrated by the censorship of the Yushin regime, President Sung Hum Na Hyung-gu revised the title and lyrics without consulting them, and Kim Eui-cheol's only solo LP <Kim Eui-chul Song Sung-sung, SEL-20-0025, March 74> I pushed it out into the world. Who knew that the illegal birth of the first album would be the death report that separates Kim Eui-cheol with genius musicality from the public?


Kim Eui-cheol's music is a mourning self-overdue melody and a warm love song given to family, friends and society. It was music and religion that always sustained him stubbornly even in the unbearable pain. Catholic Eui-chul, a Catholic, graduated from high school and began music activities in 'Sunflower' in the Catholic female dormitory, located behind the Myeong-dong Cathedral.


The four-member mixed-folk group <Sunflower>, which Lee Jung-sun, Han Young-ae, Lee Ju-ho, and Kim Young-mi remembered that he was not the original member. Lee Ju-ho and Han Young-ae are sunflower marrow spectators. The first members were Korean physicists, Jang Sang and Bae Hwa Soon who were called Peter, Paul & Mary. Sister Colled Morea, who was interested in singing only foreign songs, was disappointed that she had no Korean music involved.


Kim Eui-cheol asked for progress and our music was sung. Kim Min-ki, Hyun-kyung and Young-ae, Yang Byung-bap, Jung Tae-chun, and Lee Kwang-jo were the vigorous members who participated in the song movement at this time.


Unlike the Ttree Frogs, which were widely known to the public, Sunflowers were the birthplace of another youth resistance culture where the ritualization movement was performed by singing. As the crowds of young audiences always loved by justice and clear songs, the Yushin government put pressure on the leader Kim Eui-chul to reinforce the information sources in Sunflowers. Kim Eui-chul, who thought it was causing damage to the group, resigned after passing the process to Lee Jung-sun in 1975.


In 1973 he had dreamed of being shy to meet the public with clear and pure songs that he composed during the Boseong period. The songs of Kim Eui-chul, the hero of the Myeong-dong Sunflower Song Movement, reflected in the sunglasses of the Yushin regime, were too dark and could not pass through censorship. When the album release became difficult, he was more nervous than myself.


The gem-like melody was a shame to change the subject of the song without knowing the owner made a record. Later, when he heard about the release of his first solo album, Kim U-cheol's song collection, his heart pounded.


However, he had to face the irresistible anger and musical frustration that his music had been altered. 'I will not work on the record again.' However, how can you make this album precious as a link between Kim Ui-cheol and the public?


The final song 'The Last Correction', which contains a total of 10 songs, is the representative song of Kim Eui-cheol, whom all folk singers admired. It was a song that a friend of the broadcasting room made on a graduation day and sang a song without a title. This song contains the memories and pains of school days, which he sang with gratitude for the love of his senior teacher, Park Jong-ryol, who understood him playing the guitar without his parents.


The back chorus was 'Kim Chu-ja' (the same name as dance singer Kim Chu-ja) who sang with strong singing power in a café run by Yang Byeong-seop. 'Zalgao' is a tearful song made to send a beloved mother to the world and comfort a friend who is struggling with loneliness. The first title of the second page, 'Follow the clouds in the sky,' was the title of 'Unfortunate!'


It is ironic that it is called by many singers including Yang Hee-eun, who isolated Kim U-cheol from the public, and is most memorable. '


Lover 'is a song that expresses the sadness of his younger brother who is devoted to a third sister who is troubled by the love of a grown man. The clarinet performer played by Kim Ui-hye, who is the main character, is performing.


'Our Flower' is Kim Ui-cheol's national anthem that conveys the feeling of Mugunghwa's four seasons with the sound of the soul ringing the ground. The bass, which echoes the sense of resistance hidden in the lyrical melody, is stimulating. Songs to be noted are 'Island I' and 'Peaceful River', which Park Chan-eun, who is a professor at Ohio University and graduated from the Department of English Studies at Sogang University, heard in an appalling voice.


His song, which is rough and crude, screams at the bottom of his life as if the song of a literary doctor is hard to believe. What a foolish 70s Yushin military administration's tyranny!


The release of resistance songs such as "crowd of crowd" and "parting farewells" was watched enough to choke Kim Eui-cheol musically. During his frustration, he met his current wife in 1977 and found stability. In 1984, he left for Germany and the United States to learn the fundamentals of western music.


Kim Ui-cheol, who studied music with world-class guitarists, has been recognized for his performance in New York since the early 80's and has served as guitar professor at AMERICAN INSTITUTE OF GUITAR. Euichul Kim was recently introduced to a German daily newspaper.


'In the annual memorial service to commemorate the Nazi murder of 600 underprivileged children, Kim Eun-chul of Korea was selected among funeral songs from around the world.


He is also eager to compose classical music. The music he dreams of is a beautiful and classy classic fork. The unreleased CDs were produced by the whole family in a poor recording environment in Los Angeles, USA. Songs by Yang Kyung-sook, a professor at Hanyang University, which led the popularization of vocal music, were sung by Kim Eui-cheol to his beloved wife, who played the sound of a classical guitar.


Yang's classical vocals have energized the life of Kim Ui-cheol's song, which goes beyond the sound of the public's popularity. This pure recording produced by simultaneous recording without mechanical manipulations showed the essence of a unique classic folk that does not come from all over the world.

How grateful it is that there is a pop musician like Kim Eui-chul in our barren music scene where only commercial songs are produced.


https://m.blog.naver.com...


예전에 엄청 들었던 김광석 불행아가 문득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더라구요.근데 이 노래는 김광석 다시부르기2에 실려있던 노래죠. 그렇다면 원곡이 있다는 얘기인데요.사실 저는 원곡이 양병집의 저 하늘에 구름따라인줄 알았어요. 그런데 알고보니 김광석 불행아의 원곡은 김의철의 저하늘의 구름따라라는 곡이었더군요.가사도 좋고 곡도 좋아서 양병집이 부른 노래도 좋아했던 기억이 있어요.그런데 정말 이 곡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던 건 김광석 다시부르기II에 불행아라는 제목으로 실렸던 곡입니다.김광석 불행아는 그 전에 양병집이나 이광조가 불렀던 그 곡보다 훨씬 임팩트 있게 다가왔어요.물론 김광석의 리메이크곡들은 마치 그가 원곡인 것처럼 되어버리는 희안한 마법을 쓰죠.곱고 하얗던 부인의 손을 기억하는 60대 할아버지의 마음을 노래하던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도 그렇고 두바퀴로 가는 자동차도 마치 원래 김광석 노래였던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그래서 불행아도 김광석 버전이 훨씬 유명하긴 하죠.김광석 - 불행아 unfortunate guy그런데 원곡은 1974년 김의철이라는 가수의 저하늘의 구름따라라는 곡입니다.제목을 맘대로 불행아라고 바꿨네?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원래 제목이 불행아였다네요.군사정권 시대에 너무 분위기가 어둡고 가사가 길다고해서 원작자 동의 없이 제목도 맘대로 저하늘의 구름따라로 바꾸고 가사까지 중간중간 바꿔 앨범을 발매 했다네요.김의철이 고등학생때 만든 이 노래를 김광석이 불행아라고 다시 원곡의 제목을 찾아주고 가사도 원래대로 바꿔 부릅니다.그래서 '흙 속으로 묻혀갈 나의 인생아~♬'라는 가사가 더 익숙한데 원곡에서는 '헤어갈 나의 인생...'으로 되어있더라구요.김의철이 원래 만들었던 가사대로 노래를 불러 더 유명하게 만들어준 김광석 불행아.원작자도 만족하지 않았을까요? 양병집도, 이광조도, 양희은도 불렀던 이 노래는 지금 들어도 좋은 노래임이 분명합니다.얼마전 슬기로운 감빵생활이라는 드라마에 김광석 불행아가 삽입곡으로 나왔던가봐요.수감자들에게도 어쩌면 딱 와닿을만한 그런 가사와 멜로디.김의철의 저하늘의 구름따라도 한 번 들어보세요.김의철 - 저 하늘에 구름따라어쩌면 그는 노래가사처럼 불행한 시기에 음반을 내서 불행하게 원곡을 훼손 당하고 스스로 본인의 음반을 판매금지시켜야 할 정도로 불행아였을지도 모릅니다.그 노래를 다시 세상에 알린 김광석도 그런 삶을 살다갔는지도 모르죠. 하지만 1974년 발매된 곡을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듣고 사랑해주는 것만으로도 많은 보상을 받은 건 아닐까요?김광석 불행아, 김의철 저하늘의 구름따라...저는 둘 다 좋네요.


Kim Kwang-seok-"Unfortunate Guy"vs Euichul Kim-"Follow the Clouds in the Sky"


"Kim Kwang-suk, who I had heard a lot of times before, suddenly came out of the radio. This song is in Kim Kwang-seok's collection 2. meaning that there is an original song behind it. It turned out that Kim Kwang-suk's original song was called Kim Eui-chul's "Cloud of the Low Sky". I remember the lyrics and the songs were so good that I liked the songs sung by Yang. But what really reminded me of this song was the song titled "Unhappy" in Kim Kwang-seok's Recollection II. Kim Kwang-seok's unfortunate approach came more impactful than the song that Yang Byung-ho or Lee Kwang-jo sang before. Of course, Kim Kwang-seok's remakes use a rare magic that turns out to be as if he were the original singer and writer.


Like the story of an elderly couple in their 60s who sang the hearts of their 60's grandfather who remembered the fine, white hands of his wife. Kim's version still is much more famous.


By the way, the original song is called Kim Eui-chul "followed the cloud of low sky". You may think that changing the title was unfortunate. In the age of military regime, the atmosphere of the original song was too dark and the lyrics were long, so the title was changed without any original author's consent.


This song made by Kim Eui-chul when he was a high school student. That's why I'm more familiar with the lyrics, "My life ought to be buried in the soil". Kim Kwang-seok unfortunately made the song more famous by singing the original words made by Kim Eui-chul. Wouldn't the original be more satisfying?


This song, which was sung by Yang Byeong-do, Lee Kwang-jo and Yang Hee-eun, is definitely a good song to listen to now. Recently, Kim Kwang-seok's unfortunate child appeared as an insert song.


Perhaps he was so unhappy that he had to record such an unhappy time with these song lyrics. Through this original song it became forbidden to sell his record. Maybe Kim Kwang-seok relived that song again.


Aren't many people still rewarded just by listening to and loving the song that was released in 1974? Kim Kwang-seok Unhappy, Kim Eui-chul's version. I like both of them.


http://blog.daum.net/_blog/BlogTypeView.do?blogid=0DZof&articleno=2469&categoryId=602613&regdt=20110916105042

의철의 '현재 21살의 나!' (1974년 잡지에서 발췌)


나? 1953년생. 작년봄 보성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현재 해외에서의 본격적인 음악수학을 위한준비를 진행시키고 있음.


"우리의 음악은 우리들 스스로가 아끼고 개량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지요. 서양음악의 멜로디 자체는 빈틈없는 음악일지 모르나 그것은 분명히 우리의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저는 음악에 동과 서를 가르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진정한 한국적인 음악을 찾아 동서양 음악의 합일적인 발전을 꾀해 보겠다는 커다란 포부를 힘주어 말하는 '마지막 교정'의 주인공 김의철의 눈에는 우리의 의식 밖에 팽개쳐진 한국의 음악을 찾아 수용할 수 있는 자신의 음악공간을 마련하기 위한 집념에 번득인다. 21살의 젊은 그에게서 구도자적인 정신편력이 있었다고 볼 수는 없지만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현재 미국 뉴저지 교향악단의 악장으로 활약중인 맏형을 비롯해 일가족 모두가 음악을 전공한 음악가정에서 성장한 그에게 음악은 온실의 열기처럼 충만해 있다.


고독한 예술혼에 매몰된 음악세계


김의철의 음악은 처절한 자기극복의 울림이자 가족, 친구, 사회에 바치는 따뜻한 사랑의 연가이다. 견디기 힘든 고통에서도 언제나 그를 완강하게 지탱시켜준 것은 음악과 종교였다. 카톨릭 신자인 김의철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며 73년부터 명동성당뒤에 위치한 카톨릭여학생기숙사내의 '해바라기' 에서 음악활동을 시작했다.


대중들이 기억하는 이정선, 한영애, 이주호, 김영미의 4인조 혼성포크그룹 <해바라기>는 사실 오리지널 멤버가 아니었다. 이주호, 한영애 등은 해바라기 골수 관객출신들. 1기멤버들은 한국의 피터, 폴&메리라 불리었던 강성학, 장상태, 배화순이었다. 외국곡만을 부르자 관심이 지대했던 꼴레드 모아 프랑스 수녀는 한국음악이 없음에 실망했다.


이에 김의철이 진행을 자청하며 우리음악이 불리어졌다. 김민기, 현경과영애, 양병집, 정태춘, 이광조 등은 이 당시 노래운동에 동참했던 쟁쟁했던 멤버들.


해바라기는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청개구리와는 달리 노래로 의식화운동을 했던 또 다른 청년저항 문화의 산실이었다. 늘 정의감 넘치고 맑은 노래에 심취된 젊은 관객들로 북적거리자 유신정부는 리더 김의철에게 사퇴압력을 가하며 정보원들을 해바라기에 늘 상주시켰다. 성당에 피해를 준다고 생각한 김의철은 75년 이정선에게 진행을 넘기며 물러났다.


보성고시절 작곡해둔 맑고 순수한 노래들로 대중들과 수줍은 대면을 꿈꾸던 73년 무렵. 유신정권의 색안경에 비친 명동 해바라기 노래운동의 주인공 김의철의 노래들은 너무도 어둡고 저항기운이 드세 검열통과가 불가능했다. 음반발표가 어려워지자 조바심이 난 것은 본인보다 성음레코드 나 사장.


주옥같은 멜로디가 아까워 문제되는 노래제목을 주인도 모르게 바꾸어 음반을 만들어냈다. 뒤늦게 자신의 첫 독집음반 <김의철 노래모음>출시소식을 듣곤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러나 자신의 음악이 변질된 사실에 참을 수없는 분노와 음악적 좌절에 치를 떨어야 했다. '다시는 음반작업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판금조치까지 내려 귀하디 귀한 이 음반은 김의철과 대중들을 이어주는 유일한 통로이자 연결고리임은 어찌하랴.


총 10곡이 수록된 독집 1면 첫곡 '마지막 교정'은 모든 포크가수들이 감탄해 마지 않았던 김의철의 대표곡. 졸업식날 방송실 친구가 노래를 하나 부르라하여 즉흥적으로 제목도 없이 만들어 불렀던 노래이다. 부모도 찾아오지않고 기타만을 치는 자신을 이해해준 박종렬 고3 담임선생님의 사랑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불렀던 학창시절의 추억과 아픔을 담고있는 명곡이다.



백코러스는 양병집이 운영하는 카페에서 탄탄한 가창력으로 노래를 부르던 '김추자'(댄스가수 김추자와는 동명이인)였다. '잘가오'는 사랑하는 어머니를 저세상으로 떠나보내고 외로움에 힘겨워하는 친구를 위로하기 위해 만든 눈물나도록 애틋한 노래. 문제의 2면 첫곡 '저하늘에 구름 따라'는 원제목이'불행아!'였다.


대중들로부터 김의철을 격리시킨 곡이건만 양희은 등 수많은 가수들에 의해 불리워지며 가장 친숙하게 기억되는 것은 아이러니하기만 하다.'


연인'은 험하게 자란 사람을 사랑하게 되어 번민하는 셋째누나에게 바친 동생의 안타까움이 배여 있는 곡. 장본인인 김의혜가 직접 연주하여 들려준 클라리넷연주는 처연하기만 하다.


'우리의 꽃'은 땅을 울리는 혼의 소리로 무궁화꽃의 사시사철에 대한 느낌을 전한 김의철식 애국가요. 서정적 멜로디속에 숨겨진 저항의식을 읊조리듯 들려주는 중저음은 감탄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주목할 노래는 명문 경기여고, 서강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현재 미국 오하이오대학 교수로 재직중인 박찬응이 소름끼치도록 섬뜩한 목소리로 들려준 '섬아이'와 '평화로운 강물'.


문학박사의 노래로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밑바닥 인생의 애환이 서린 듯 거칠고 투박하게 사람의 가슴을 후벼파는 처연한 그의 노래는 '창법미숙'이란 미명아래 금지명찰을 달았다. 이 얼마나 어이없는 70년대 유신군사정권의 횡포인가!


'군중의 함성','이별가'같은 저항곡들의 발표는 김의철을 음악적으로 질식시킬만큼 감시가 뒤따랐다. 좌절의 세월을 보내던중 77년 지금의 아내를 만나 안정을 찾으며 79년 서양음악의 근본을 알기위해 독일과 미국으로 떠났다.


세계적 기타리스트들에게 음악을 사사받은 김의철은 80년대 초반부터는 뉴욕에서도 연주력을 인정 받으며 AMERICAN INSTITUTE OF GUITAR에서 기타교수로 재직하기도 했다. 얼마전 독일의 한 일간지에 소개된 김의철.


'나치가 600명의 저능아를 살해한 것을 기리기위해 해마다 열리는 추모회에 전세계 장례곡들 중 한국의 김의철곡이 선곡되어 91년부터 10년간 빠짐없이 불리어지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클래식 작곡에도 열심인 그가 꿈꾸는 음악은 아름답고 품격있는 우리가곡의 맛을 풍기는 클래식 포크이다. 미발표CD들은 미국 LA에서 열악한 녹음환경속에 온가족이 참여하여 제작한 <그산하.김의철-킹,92년>과 <김의철 2 연가집-킹,KSC3208,93년>. 성악의 대중화에 앞장선 한양대 교수였던 양경숙이 노래하고 김의철이 직접 클래식기타통을 울려주는 광음으로 연주한 사랑하는 아내에게 바치는 곡들이었다.


양경숙의 클래식한 보컬은 대중들의 인기에 아부하는 소리의 차원을 넘어 혼을 담은 김의철의 곡에 힘찬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기계적 조작이 없이 동시녹음으로 제작된 이 순수한 음반은 전세계적 으로 유래가 없는 독특한 클래식포크의 진수를 들려주었다.


상업적 목적의 노래만이 양산되고 있는 척박한 우리가요계에 김의철 같은 대중음악가가 존재한다는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글 출처: 인터넷 여기저기


고독한 방랑자의 염세적 노래들


1973년 경 '포크' 진영이 양극화되었다는 점은 여러 번 지적된 바 있다. 일부는 대중매체를 통해 새로운 대중연예(이 말은 결코 '나쁜' 뜻이 아니다!)로 정착해 가고 있었고, 다른 일부는 '언더그라운드'를 고집하고 있었다. '언더그라운드'라는 말이 당시에 사용되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TV 쇼나 생음악 살롱 등 주류 음악인들의 무대를 거부하는 지향을 가진 '아웃사이더'형의 인물들이 존재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명동의 무대를 예로 들어보면 오비스 캐빈과 쉘부르 등이 이미 스타가 된 포크 가수들의 무대였다면 내쉬빌과 디쉐네 등은 이들 '언더그라운드 포크'의 무대였다. 이런 현상은 단지 음악인들의 '마음'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이 연주하는 사운드에서도 드러난다. 대중매체를 통해 자주 등장한 포크가 '일렉트릭'해지고 '리드믹'해졌던 반면, 언더그라운드 포크는 '통기타 순수주의'를 고수하면서 서정성과 '메시지'를 중시했다.


김의철은 그 가운데서도 가장 비타협적인 경우에 속한다. 그와 비슷한 인맥을 형성했던 오세은과 이정선이 통기타 중심의 음악을 선보이면서도 이런저런 음악적 실험을 시도한 반면, 김의철은 마치 목숨을 걸듯 기타의 플러킹(plucking)에 승부를 건다. 통기타의 리듬 스트러밍(strummimg)은 "마지막 교정"의 후렴구에서만 잠깐 나올 뿐이고, 하나의 코드(화음)에 속하는 음들이 동시에 나오는 일도 그리 많지 않다. 리듬이 비교적 일정한 패턴으로 인식되는 곡은 쓰리 핑거 주법으로 연주하는 "마지막 교정", "저 하늘에 구름 따라", 그리고 컨트리 스타일의 "친구", 트레몰로 주법이 등장하는 "우리들의 꽃" 정도이다. 다른 곡들의 경우 리듬은 기타 아르페지오나 노래의 멜로디에 숨어 있을 뿐이다. 결과는 한 줄 한 줄 섬세하게 튕길 때마다 사색을 담은 기타 연주와 탁 트이지 않은 톤의 목소리로 부르는 노래들이고, 그 느낌은 내향적이고 우울하고 때로는 염세적이다. 기타와 노래 외에 편성된 다른 음이라곤 백킹 코러스와 클라리넷 정도일 뿐이다. "섬아이"에서 베이스 기타가, "연인"에서 피아노가 등장하지만 이런 느낌을 확 바꿔 버리는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이를 연주한 인물들이 외부로부터 초빙된 직업적 음악인이 아니라 내부로부터 조달된 가족이거나 동료라는 사실은 이 음반이 자급자족으로 녹음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참고로 클라리넷을 연주한 김의혜는 그의 셋째 누나이고, 베이스를 연주한 이정선과 객원 가수 박찬응은 그의 동료(혹은 선배)다.


수록곡 가운데 유일하게 자작곡이 아닌 "연인들의 자장가"의 원곡이 우디 거쓰리(Woody Guthrie)의 "Hobo's Lullaby"라는 점은 김의철의 음악적 지향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즉, 이 음반의 화자의 정서(혹은 정체성)가 있다면 '고통받고 소외된 떠돌이'일 것이다. 떠돌이의 절망감은 객원 가수 박찬응의 그로테스크한 목소리를 빌린 단조의 곡 "섬아이"와 "평화로운 강물"에서 극한적으로 표현되는 듯하다. "섬아이"는 3박자 리듬 위에서 A-A-B'-A 형식이 두 절 반복되는 형식인데, 감기라도 걸려서 목이 잠긴 듯한 박찬응의 노래는 처절한 슬픔을 담고 있고 특히 클라리넷과 어우러질 때 슬픔은 더욱 증폭된다. 베이스 기타는 섬의 분위기를 표현하듯 슬며시 꿈틀댄다(참

" Uichul's 'I'm 21 years old now!' (Excerpt from 1974 magazine)


He was born in 1953. After graduating from Boseong High School last spring, he was preparing for a full-scale musical scope abroad.


"We think our music should be something we care about and improve ourselves with. The melody of Western music itself may be tight, but it's certainly not ours. But I don't want to teach Eastern or Western music."


In the eyes of Kim Eui-chul, the hero of 'The Last Correction', speaks with great ambition to seek true Korean music as a unified development of East-West music, he can find and accept Korean music that is outside our main consciousness. We are full of obsession to make more space. The young 21-year-old is not an investigative mentalist, but his father and mother, and the eldest brother who is currently playing the movement of the New Jersey Symphony Orchestra, grew up in a family of music majors.


The music world buried in the lone art soul


Kim Eui-cheol's music is a mourning self-overdue melody and a warm love song given to family, friends and society. It was music and religion that always sustained him stubbornly even in the unbearable pain. Catholic Eui-chul, graduated from high school and began musical activities in (the band) 'Sunflower' in the Catholic female dormitory located behind Myeong-dong Cathedral in 1987.


The four-member mixed-fork group <Sunflower>, which Lee Jung-sun, Han Young-ae, Lee Ju-ho, and Kim Young-mi remembered that he was not the original member. Lee Ju-ho and Han Young-ae are Sunflower marrow spectators. The first members were Korean, Peter, Paul & Mary, ?? Jang, and Hwa-soon. Sister Colled Morea, who was interested in singing only foreign songs, was disappointed that she had no Korean music in it.


Kim Eui-cheol asked for progress and our own music was sung. Kim Min-ki, Hyun-kyung and Young-ae, Yang Byung-bap, Jung Tae-chun, and Lee Kwang-jo were the vigorous members who participated in the song movement at this time.


Unlike the Tree Frogs, which were widely known to the public, Sunflowers were the birthplace of another youth-resistance culture that used to be consciously sung. As the crowds of young audiences always loved by justice and clear songs, the Yushin government put pressure on the leader Kim Eui-chul to reinforce the information sources in sunflowers. Kim Eui-chul, who thought it was causing damage to the cathedral, resigned after passing the process to Lee Jung-sun for 75 years.


In about 73 years, he dreamed of being shy to meet the public with clear and pure songs that he composed during the Boseong period. The songs of Kim Eui-chul, the hero of the Myeong-dong Sunflower Song Movement, reflected in the sunglasses of the Yushin regime, were too dark and could not pass through censorship. When the album release became difficult, I was more nervous than myself.


The gem-like melody was a shame to change the subject of the song without knowing the owner made a record. Later, when I heard about the release of his first solo album, Kim U-cheol's song collection, my heart pounded.


However, he had to face the irresistible anger and musical frustration that his music had been altered. 'I will not work on the record again.' However, how can you make this album precious as a link between Kim Ui-cheol and the public?


The final song 'The Last Correction', which contains a total of 10 songs, is the representative song of Kim Eui-cheol, whom all folk singers admired. It was a song that a friend of the broadcasting room made on a graduation day and sang a song without a title. This song contains the memories and pains of school days, which he sang with gratitude for the love of his senior teacher, Park Jong-ryol, who understood him playing the guitar without his parents.


The back chorus was 'Kim Chu-ja' (the same name as dance singer Kim Chu-ja) who sang with strong singing power in a café run by Yang Byeong-seop. 'Zalgao' is a tearful song made to send a beloved mother to the world and comfort a friend who is struggling with loneliness. The first title of the second page, "Following the Clouds in the Sky," was "Unfortunate!"


It is ironic that it is called by many singers including Yang Hee-eun, who isolated Kim U-cheol from the public, and is most memorable. '


Lover 'is a song that expresses the sadness of a younger brother who is devoted to a third sister who is troubled by the love of a grown man. The clarinet performer played by Kim Ui-hye, who is the main character, is performing.


'Our Flower' is Kim Ui-cheol's national anthem that conveys the feeling of Mugunghwa's four seasons with the sound of the soul ringing the ground. The bass, which echoes the sense of resistance hidden in the lyrical melody, is stimulating. Songs to be noted are 'Island I' and 'Peaceful River', which Park Chan-eun, who is a professor at Ohio University and graduated from the Department of English Studies at Sogang University, heard in an appalling voice.


His song, which is rough and crude, screams at the bottom of his life as if the song of a literary doctor is hard to believe. What a foolish 70s Yushin military administration's tyranny!


The release of resistance songs such as "crowd of crowd" and "parting farewells" was watched enough to choke Kim Eui-cheol musically. During his frustration, he met his current wife in 1977 and found stability. In 1984, he left for Germany and the United States to learn the fundamentals of western music.


Kim Eui-chul, who studied music from world-renowned guitarists, has been recognized for his performance in New York since the early 80's and has served as guitar professor at AMERICAN INSTITUTE OF GUITAR. Euichul Kim was recently introduced to a German daily newspaper.


'In the annual memorial service to commemorate the Nazi murder of 600 underprivileged children, Kim Eun-chul of Korea was selected among funeral songs from around the world.


He is also eager to compose classical music. The music he dreams of is a classic fork that tastes beautiful and elegant. Unpublished CDs were produced by the whole family in a poor recording environment in Los Angeles, United States, Kim Eui-cheol, 92, and Kim Eui-cheol's 2nd Love Collection, KSC3208, 93. Songs by Yang Kyung-sook, a professor at Hanyang University, which led the popularization of vocal music, were sung by Kim Eui-cheol to his beloved wife, who played the sound of a classical guitar.


Yang's classical vocals have energized the life of Kim Ui-cheol's song, which goes beyond the sound of the public's popularity. This pure recording, produced without simultaneous mechanical manipulation, gave the essence of a unique classic fork that has no origin in the world.


How grateful it is that there is a pop musician like Kim Eui-chul in our barren music scene where only commercial songs are produced.


Lone Wanderer's Pessimistic Songs


It has been pointed out several times that the fork camp was polarized around 1973. Some were settling into new public entertainment (meaning 'bad' by no means!) Through the media, while others insisted on the 'underground'. It is unclear whether the term "Underground" was used at the time, but it is clear that there were "outsider" -type figures who aimed to reject the stage of mainstream musicians, such as TV shows and live music salons. Take Myeong-dong as an example, while Obis Cabin and Cherbourg were already staged folk singers, while Nashville and Dishene were the stages of these 'underground folk'. This phenomenon is not only seen in the "hearts" of musicians, but also in the sounds they play. While the forks, which appeared frequently through the media, became 'electric' and 'redmix', the underground fork emphasized lyricism and 'message' while adhering to 'other guitarism'.


Kim Eui-chul is one of the most uncompromising cases. While Oh Se-eun and Lee Jung-sun, who have formed similar networks, tried musical experiments while showing music centered on the guitar, Kim Eui-chul puts his hand on the guitar's plucking as if to risk his life. The guitar rhythm strumming only occurs briefly in the chorus of the "last correction", and not so many notes belong to a chord. Songs whose rhythms are perceived as a relatively constant pattern are the "last correction" played by the three-finger technique, the "follow the clouds in the sky", and the "our flowers" where the country-style "friend" and the tremolo technique appear. For other songs, the rhythm is hidden in the guitar arpeggios or the melody of the song. The result is a song with a thoughtful guitar playing and a non-broad tone of voice every time one bounces delicately, the feeling is introverted, melancholy and sometimes pessimistic. In addition to guitars and songs, the only other sounds organized are the backing chorus and the clarinet. Bass guitars appear in "Seaeye" and pianos appear in "Lovers", but this doesn't change the way you feel. Furthermore, the fact that the characters who played it are not professional musicians invited from the outside but family or co-workers procured from the inside shows that the record was recorded in self-sufficiency. For reference, Kim Eui-hye, who played the clarinet, is his third sister, and Lee Jung-sun and guest singer Park Chan-eun who played the bass are his colleagues (or seniors).


The only song in the song, "The Lullaby of Lovers," which is not a self-made song, is Woody Guthrie's "Hobo's Lullaby", which symbolizes Kim's musical orientation. In other words, if there is an emotion (or identity) of the narrator of this record, it will be a 'tormented and alienated wanderer'. The wandering despair seems to be expressed dramatically in the forging song "Islandeye" and "Peaceful River", which borrowed the grotesque voice of guest singer Park Chan-eun. "Island Eye" is a form of two lines repeated AA-B'-A on a three-time rhythm. Park Chan-Eung's song, which seems to be locked by a cold, contains sadness, especially when he is in harmony with the clarinet. . The bass guitar gently wanders as if to express the atmosphere of the island."

http://www.weiv.co.kr/archives/10892

김의철 | 김의철 노래모음 (19740320) [weiv] 2002.12.22

김의철 – 김의철 노래모음 – 성음(SEL 20 0025), 19740320

고독한 방랑자의 염세적 노래들

1973년 경 ‘포크’ 진영이 양극화되었다는 점은 여러 번 지적된 바 있다. 일부는 대중매체를 통해 새로운 대중연예(이 말은 결코 ‘나쁜’ 뜻이 아니다!)로 정착해 가고 있었고, 다른 일부는 ‘언더그라운드’를 고집하고 있었다. ‘언더그라운드’라는 말이 당시에 사용되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TV 쇼나 생음악 살롱 등 주류 음악인들의 무대를 거부하는 지향을 가진 ‘아웃사이더’형의 인물들이 존재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명동의 무대를 예로 들어보면 오비스 캐빈과 쉘부르 등이 이미 스타가 된 포크 가수들의 무대였다면 내쉬빌과 디쉐네 등은 이들 ‘언더그라운드 포크’의 무대였다. 이런 현상은 단지 음악인들의 ‘마음’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이 연주하는 사운드에서도 드러난다. 대중매체를 통해 자주 등장한 포크가 ‘일렉트릭’해지고 ‘리드믹’해졌던 반면, 언더그라운드 포크는 ‘통기타 순수주의’를 고수하면서 서정성과 ‘메시지’를 중시했다.

김의철은 그 가운데서도 가장 비타협적인 경우에 속한다. 그와 비슷한 인맥을 형성했던 오세은과 이정선이 통기타 중심의 음악을 선보이면서도 이런저런 음악적 실험을 시도한 반면, 김의철은 마치 목숨을 걸듯 기타의 플러킹(plucking)에 승부를 건다. 통기타의 리듬 스트러밍(strummimg)은 “마지막 교정”의 후렴구에서만 잠깐 나올 뿐이고, 하나의 코드(화음)에 속하는 음들이 동시에 나오는 일도 그리 많지 않다. 리듬이 비교적 일정한 패턴으로 인식되는 곡은 쓰리 핑거 주법으로 연주하는 “마지막 교정”, “저 하늘에 구름 따라”, 그리고 컨트리 스타일의 “친구”, 트레몰로 주법이 등장하는 “우리들의 꽃” 정도이다. 다른 곡들의 경우 리듬은 기타 아르페지오나 노래의 멜로디에 숨어 있을 뿐이다. 결과는 한 줄 한 줄 섬세하게 튕길 때마다 사색을 담은 기타 연주와 탁 트이지 않은 톤의 목소리로 부르는 노래들이고, 그 느낌은 내향적이고 우울하고 때로는 염세적이다. 기타와 노래 외에 편성된 다른 음이라곤 백킹 코러스와 클라리넷 정도일 뿐이다. “섬아이”에서 베이스 기타가, “연인”에서 피아노가 등장하지만 이런 느낌을 확 바꿔 버리는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이를 연주한 인물들이 외부로부터 초빙된 직업적 음악인이 아니라 내부로부터 조달된 가족이거나 동료라는 사실은 이 음반이 자급자족으로 녹음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참고로 클라리넷을 연주한 김의혜는 그의 셋째 누나이고, 베이스를 연주한 이정선과 객원 가수 박찬응은 그의 동료(혹은 선배)다.

수록곡 가운데 유일하게 자작곡이 아닌 “연인들의 자장가”의 원곡이 우디 거쓰리(Woody Guthrie)의 “Hobo’s Lullaby”라는 점은 김의철의 음악적 지향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즉, 이 음반의 화자의 정서(혹은 정체성)가 있다면 ‘고통받고 소외된 떠돌이’일 것이다. 떠돌이의 절망감은 객원 가수 박찬응의 그로테스크한 목소리를 빌린 단조의 곡 “섬아이”와 “평화로운 강물”에서 극한적으로 표현되는 듯하다. “섬아이”는 3박자 리듬 위에서 A-A-B’-A 형식이 두 절 반복되는 형식인데, 감기라도 걸려서 목이 잠긴 듯한 박찬응의 노래는 처절한 슬픔을 담고 있고 특히 클라리넷과 어우러질 때 슬픔은 더욱 증폭된다. 베이스 기타는 섬의 분위기를 표현하듯 슬며시 꿈틀댄다(참고로 이 곡을 이정선의 “섬아이”와 비교해서 들으면 여러 모로 흥미롭다. 아웃사이더들의 고독에 대한 상이한 표현방식을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한편 “평화로운 강물”의 경우는 16마디 형식의 노래가 여섯 번 반복되는데 리듬이 세 박자와 네 박자가 교대되는 특이한 진행을 보인다. 기타 주법도 리듬의 변화에 따라 가변적으로 변화하는데, 유심히 들으면 이런 변화가 가사의 스토리텔링과 연관됨을 알 수 있다. 그 점에서 이 곡은 ‘아메리칸 포크’를 듣는 기분이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전주와 간주에서 감화음(diminished chord)을 동반한 기타 주법은 ‘클래식 기타’의 영향을 강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런 고통받고 소외된 정서는 증정본 표지에 그가 친필로 적은 “젊음은 활활 타오르고 있다. 그러나 언젠가는 재 되어 흙으로 변할 뿐이다”라는 문구에서도 잘 나타난다. 이런 정서의 원인을 한국전쟁 때 월남해 온 김의철의 가족사, 그리고 사춘기 시절 부모 형제와 떨어져 지내야 했던 개인사로만 돌려버릴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음반이 발매된 1974년(녹음은 1973년)이 ‘긴급조치의 시기’라는 시대사로만 설명을 대신할 수도 없을 것이다. 어쨌거나 이 음반은 ‘판금’이라는 조치를 당했고 그 결과 김민기, 한대수, 양병집의 음반과 더불어 시장에서 사라진 뒤 컬트가 된 음반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심의를 통과하지 못한 이유는 “섬아이”가 ‘창법 미숙’이라는 것이었다. ‘저속’이 아니라 ‘미숙’이라는 점에 유의하라.

그런데 3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난 지금 이 음반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앞에서 운을 띄웠지만 이 음반에 담긴 음악은 ‘연예’로부터 가장 거리가 먼 경우에 속한다. 김의철이 추구한 방향은 포크 음악이든, 클래식 음악이든 대중음악 ‘이전’의 서양 음악의 뿌리를 찾는 것이었고, 실제로 그의 이후의 경력은 이런 방향을 보여준다. 그 점에서 그는 한대수, 이정선, 조동진, 김민기, 오세은 등과도 상이해 보인다. 이를 ‘또 하나의 서양 콤플렉스’라고 매도하는 것은 부당하지만 그 결과가 ‘의미는 있지만 재미는 없는 음악’이라는 점은 조심스럽게 지적할 수 있겠다. 그래서 이 음반은 일부로부터는 시대를 초월한 아름다움을 가진 품격 있는 음악으로 숭앙 받고 있지만, 다른 일부로부터는 ‘그 시절 그 노래’이며 소문에 비해 흥미롭지 않은 음악이라는 상이한 평을 받고 있다. 아무렴 어떤가. 품격 있는 음악에 대한 수요는 언제든 존재하는 것이니까… 20021222 | 신현준 homey@orgi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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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1 이 음반의 판금과 관련해서는 몇 가지 확인해야 할 대목이 남아 있다. 하나는 이 음반 수록곡들이 금지곡의 공식적 리스트에는 오르지 않았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이 음반이 오리엔트(당시 음반사는 성음)의 나현구 사장이 제작한 작품이라는 점이다. 전해지는 말로는 나현구 사장이 “곡 제목과 가사를 상의도 없이 수정하여” 발매했다는 것이다. 이런 저런 이유로 김의철은 이 음반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지인들에게 나누어 주었던 음반들을 회수하여 스스로 폐기했다고 한다. P.S. 2 이 음반에 수록된 김의철의 곡 “저 하늘에 구름 따라”(원제: 불행아!)는 1980년대 이후에도 대학가의 애창곡이었다. 그런데 이른바 ‘노래운동’ 진영에서 이 곡은 ‘금지곡’이었다. 물론 농담이지만 ‘이런 노래는 가급적 부르지 말자’는 내부적 금기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이런 노래’란 패배주의적이고 허무주의적 메시지를 담은 노래를 말한다. ‘가열차게 투쟁’해야 했던 당시의 상황에서는 왠지 부르고 나면 맥빠지고 의욕이 떨어지는 이 노래의 효과가 부담스러웠던 것 같다. 한편 김의철의 또 한 곡인 “군중의 함성”은 1980년대 중반까지 대학가에서 널리 불렸다. P.S. 3 1979년 유학을 떠난 그는 독일과 미국 등지에서 공부를 하면서 [그 산하, 김의철](킹, 1992), [김의철 2: 연가집](킹, 1993) 등을 제작했지만 정식으로 배급하지는 않았다. 이 음반에서 보컬은 성악가 양경숙이 맡았다. 귀국 후 김의철은 1997년부터 양희은의 음악감독을 맡아 공연과 음반을 도와주고 있고, 앞으로는 방의경, 현경과 영애 등 당시 그의 주위에서 활동했던 포크 가수들이 활동을 재개하는 것을 돕고 싶다고 한다.

Rough translation:

Euichul Kim | Kim Eui-chul's song collection (19740320) 2002.12.22 album

Kim Eui-chul – Kim Eui-chul Song Collection – Vocal Sounds (SEL 20 0025), 19740320


Lone Wanderer's Pessimistic Songs


It has been pointed out several times that the folk movement was polarized around 1973. Some were settling into new public entertainment (meaning 'bad' means never!) Through the mass media, while others insisted on being part of the 'underground'. It is unclear whether the term "Underground" was used at the time, but it is clear that there were "outsider" -type figures who aimed to reject the stage of mainstream musicians, such as TV shows and live music salons. Taking Myeong-dong's stage as an example, Obis Cabin and Cherbourg were already stages of folk singers who were already stars, while Nashville (??) and Dishene were the stages of these "underground folks." This phenomenon is not only seen in the “hearts” of musicians, but also in the sounds they play. While the folks, which frequently appeared through mass media, became 'electric' and 'lead-mix', the underground fork emphasized lyricism and 'message' while sticking to 'other guitarism'.


Kim Eui-chul is one of the most uncompromising cases. While Oh Se-eun and Lee Jung-sun, who have formed similar networks, they tried musical experiments while showing music centered on the guitar, Kim Eui-chul puts his hand on the guitar's plucking as if to risk his life. The guitar rhythm strumming only occurs briefly in the chorus of the "last correction", and not so many notes belonging to one chord. Songs whose rhythms are perceived as a relatively constant pattern are the "last correction" played by the three-finger technique, the "follow the clouds in the sky", and the "our flowers" where the country-style "friend" and the tremolo technique appears too. In other songs, the rhythm is hidden in the guitar arpeggios or in the melody of the song. The result is a song with a thoughtful guitar playing and a non-broad tone of voice every time one bounces delicately, the feeling is introverted, melancholy and sometimes pessimistic. In addition to guitars and songs, the only other sounds organized are the backing chorus and the clarinet. Bass guitars appear in "Island Eye" and pianos appear in "Lovers", but this does not change the feeling. Furthermore, the fact that the characters who played it are not professional musicians invited from the outside but family or co-workers procured from the inside shows that the record was recorded in self-sufficiency. For reference, Kim Eui-hye, who played the clarinet, is his third sister, and Lee Jung-sun and guest singer Park Chan-eun who played the bass are his colleagues (or seniors).


The only piece in the song, not the original song, is the song “Hobo ’s Lullaby” by Woody Guthrie, which symbolizes Kim's musical orientation. In other words, if there is an emotion (or identity) of the narrator of this record, it may be a pained and alienated wanderer. The wandering despair seems to be expressed in the extreme in the forging song “Island Eye” and “Peaceful River” that borrowed the grotesque voice of guest singer Park Chan-eun. “Island Eye” is a form of two lines repeated AA-B'-A on a three-time rhythm. Park Chan-Eung's song, which seems to be locked up with a cold, contains sadness, especially when she is combined with the clarinet. . The bass guitar squirms as if to express the atmosphere of the island (for reference, it's interesting to hear it compared to Lee's "Island Eye" in that you can feel the different way of expressing loneliness of outsiders). The "peaceful river", on the other hand, is a six-word song repeated six times, with a rhythm of three beats and four beats. Other state laws also change variably with changes in rhythm, but you can see that these changes are related to the storytelling of lyrics. In that sense, it feels like listening to the American Folk. In addition, other state laws with diminished chords in poles and lines are a strong indication of the influence of the classical guitar.


This painful and marginalized sentiment, which he wrote on the cover of the presentation, said, “Youth is roaring. But someday it will only become ash and turn into dirt. ” The cause of this sentiment cannot be returned to Kim Eui-cheol's family history, who had been in South Korea during the Korean War, and to a personal history that had to stay apart from his parents and brothers during puberty. The release of the album in 1974 (recorded in 1973) would not be a substitute for the explanation of the epoch of the urgency. Anyway, this album was taken as a sheet metal, and as a result, it became one of the albums that became cult after disappearing from the market along with the records of Kim Min-ki, Han Dae-soo, and Yang Byeong-bap. The reason for not passing the deliberation was that “Island Eye” was “The Immature of Immature.” Note that it is not immature, but immature.


But how can we evaluate the record now, nearly 30 years later? Although you've had luck to be able to listen to it earlier, the music in this album is one of the farthest from the entertainment. Kim's pursuit was to find the roots of Western music, folk music, classical music, and "pop", and his later career shows this direction. In that regard, he looks different from Han Dae-soo, Lee Jung-sun, Cho Dong-jin, Kim Min-ki, and Oh Se-eun. It is unfair to sell this as 'another Western complex,' but it can be pointed out that the result is “music that is meaningful but not fun.” Thus, the record is revered by some as a classy music with a timeless beauty, but by others it is differently regarded as 'the song of those days' and not as interesting as rumors. What do you think? The demand for quality music is always there… 20021222 | Hyunhyeon Jun homey@orgio.net


PS1. There are some points to check regarding the sheet of this record. One is that these songs are not on the official list of banned songs, and the other is that they are produced by Na Hyun-gu, president of Orient. It is said that the president Na Hyun-gu released "the song title and lyrics were modified without consulting". For this and other reasons, Kim Eui-chul did not like this album, so he collected and discarded the records that he gave to his acquaintances.

P.S. 2 Kim Eui-chul's song “Following the Clouds in the Sky” (original title: Misfortune!) On this album has been a favorite of college students since the 1980s. However, in the so-called “Song Movement” camp, this song was “Prohibited.” Of course, it's a joke, but it's true that "don't sing this song whenever possible." This song is a song containing a defeatist and nihilistic message. In those days when he had to fight “hotly fighting,” the song seemed to be burdensome after being sung. On the other hand, Kim Eui-cheol's song, “The Crowd's Shout,” was popular in college until the mid-1980s.

P.S. 3 After studying abroad in 1979, he studied in Germany and the United States, where he produced [Kim Eui-cheol] (King, 1992) and [Kim Eui-cheol 2: Love Song] (King, 1993). Vocal was performed by vocalist Yang Kyung-sook. After returning to Korea, Kim Ui-cheol has acted as music director for Yang Hee-eun since 1997 and has helped perform and record mus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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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CLUSION:


This is an essential collector's item that also western collectors should not miss if into folk/singersongwriters stuff with a real feel and depth of expression.




#folk #singersongwriter #K #LightOfTheEa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