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s V.A.: 유성기로 듣던 여명의 한국동요 / Korean Nursery Rhymes of Dawn (1924 ~ 1945)


유성기로 듣던 여명의 한국동요 / Korean Song of Dawn (reissue: 1993.10)


This is a series of children songs being recorded during Japan’s occupation period.


I am not sure if it was part of an original series. The songs fit very well together.


More or less I recognise two possible categories. One sort of approach is led by voice with piano only. This voice is almost classical in nature, but then with a rather grotesque voice colour to it. After the development of the song there are responses by a small combo of musicians, violin or trumpet.


The second sort of songs have a more jazz and a jazz context in them.


In between are a few exceptional workouts. There’s at least one song with acoustic guitar and trumpet, or accordion (CD2/6).

Then we have two old time jazz tracks with Hawaiian guitar with grotesque female voice and violins (CD2/2 and CD2/13).

A few tracks are sung with more voices at once, like a children's choir. In one track they make a funny short song from an army marching band song with tatataa voice imitations of the trumpet for the song theme.


A very nice CD from an interesting era.


List of artists (and songs):

* 유성기로 듣던 여명의 한국동요(1924~1945) [Disc 1]

1 이정숙 / Lee Jeong-Suk (=Lee Jung-Sook)- 오빠생각 / Brother

2 이정숙 / Lee Jeong-Suk -고드름 / Icicle

3 서금영 / Seo Kem-Young (Suh Geum-Young)- 낮에 나온 반달 / Half moon by day

4 서금영 / Seo Kem-Young- 고향의 봄 / Hometown spring

5 이정숙 / Lee Jeong-Suk- 설날 / New Year

6 서금영 / Seo Kem-Young- 달마중 / During the month

7 서금영 / Seo Kem-Young- 짚신짝 / Straw shoes

8 이정숙 / Lee Jeong-Suk- 귀뚜라미 / cricket

9 이경숙 / Lee Kyung-Sook- 하모니카 / harmonica

10 서금영 / Seo Kem-Young- 해바라기 / sunflower

11이경숙 / Lee Kyung-Sook, 이정숙 / Lee Jeong-Suk, 최명숙 / Choi Myeong-Suk - 꿀돼지 / Honeypig

12 이경숙 / Lee Kyung-Sook, 이정숙 / Lee Jeong-Suk, 최명숙 / Choi Myeong-Suk- 골목대장 / Alley

13 서금영 / Seo Kem-Young - 바닷가에서 / By the sea

14 서금영 / Seo Kem-Young - 무명초 / Cotton plant

15 최명숙 / Choi Myeong-Suk - 도레미파 / Doremifa

16 최명숙 / Choi Myeong-Suk - 휘파람 / whistle

17 최명숙 / Choi Myeong-Suk - 퐁당 퐁당 / Fondant fondant

18 최명숙 / Choi Myeong-Suk - 푸른 언덕 / Green hills

19 이경숙 / Lee Kyung-Sook - 옥토끼 / Octopus

20 김현순 / Kim Hyeon-Sun - 조선의 꽃 / Flowers of Joseon

* 유성기로 듣던 여명의 한국동요(1924~1945) [Disc 2]

1 이정숙 / Lee Jeong-Suk - 우리애기 행진곡 / I like our marching song

2 이삼룡 / Lee Sam-Ryong - 기럭이/ spirits

3 서금영 / Seo Kem-Young - 봉사꽃 / serving flowers

4 이경숙 / Lee Kyung-Sook - 은행나무 아래서/ under the ginkgo

5 이경숙 / Lee Kyung - Sook, 이정숙 / Lee Jeong-Suk - 나무잎 배 / leaf pears

6 채규엽 / Chae Gyu-Yeop - 오양간 송아지/ the calf

7 서금영 / Seo Kem-Young- 병정나팔/ soldiers

8 서금영 / Seo Kem-Young - 가을 밤/ autumn night

9 최명숙 / Choi Myeong-Suk - 쪼각빗/ combs

10 최명숙 / Choi Myeong-Suk - 고향하늘 / Hometown Sky

11 서금영 / Seo Kem-Young, 이경숙 / Lee Kyung - Sook, 중앙보육학교 / Central Nursery School,

최명숙 / Choi Myeong-Suk - 밤새톨을 굽다가/ Baking overnight

12 이정숙 / Lee Jeong-Suk - 짱아

13 이정숙 / Lee Jeong-Suk 갈잎 피리/ Leaf Flute

14 최선숙 / Choi Seon-Suk - 자장가 / Lullaby

15 최선숙 / Choi Seon-Suk - 고요한 강가/ calm riverside

16 녹성동요회 / Sung Dong Yong-He fellowship - 가을/ fall

17 최선숙 / Choi Seon-Suk - 겨울 밤/ winter night

18 녹성동요회 / Sung Dong Yong-He fellowship - 눈오는 아침/ snowy morning

19 녹성동요회 / Sung Dong Yong-He fellowship - 용용 약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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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ICAL CONTE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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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1930년대 최고의 동요가수였나?

이정숙과 서금영

동요(童謠)는 어린이의 생각과 표현을 담아서 만든 가사와 노래의 혼합입니다. 어린이의 생각에는 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가장 깨끗하고 순진무구한 영혼이 그 속에 깃들어 있지요. 우리 민족이 제국주의침탈로 온갖 시련과 고통에 허덕일 때에 당시 아동문학가들은 많은 동요를 만들어서 힘든 시간을 견디어가던 겨레에게 따뜻한 위로와 격려를 보내주었습니다. 그 이름도 고결한 소파(小波) 방정환(方定煥, 1899∼1831) 선생을 비롯하여, 홍난파, 윤극영, 정순철, 윤복진, 박태준, 윤석중 등 당대최고의 아동문학가 및 작곡가들이 1923년 봄, 색동회를 조직하고 동요보급과 확장에 노력했던 일들은 이제 아득한 신화처럼 여겨집니다. 봉건시대에는 어린이란 말조차 없었지요. 그저 개똥이, 돼지, 강아지 따위의 동물명으로 부르고 최소한의 인권조차 부여되지 않았던 아동들에게 처음으로 ‘어린이’란 이름을 만들어 부르고, 그들의 존재를 하늘처럼 소중하게 생각했던 선각자들의 거룩했던 꿈과 포부를 생각해봅니다. 이런 동요는 1920년대 중반부터 대중들 앞에 그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했습니다. 기록상으로 보면 1926년 9월에 발표된 홍재유의 동요음반 <할미꼿>과 <춤추세>가 첫 음반으로 추정이 됩니다. 그로부터 1939년 5월까지 약 13년 동안 약 230여종이 넘는 동요음반이 10개의 음반회사에서 제작 발매되었습니다. 동요라는 장르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며 왕성하게 음반을 제작 발매했던 회사는 단연 리갈레코드사였습니다. 여기서 활동했던 동요가수들은 이정숙, 서금영, 이경숙, 최선숙, 원치승, 강한일, 녹성(綠星)동요합창단 등입니다. 김복진은 동화구연(童話口演) 음반을 주로 발표했지요. 리갈 소속 작사 작곡가로는 윤석중, 선우만년, 송무익, 이정구, 신고송, 윤복진, 홍난파, 원유각, 유기흥, 김성도, 박종선, 강석흥, 박소농, 고호봉, 임원호, 이인숙, 민영성, 손정봉, 원치승, 송찬일, 지상하, 현증순, 정윤희, 한만금, 송완순, 김정임, 지상하, 박천룡, 유기흥, 남궁인, 김여수 등입니다. 두 번째로 동요음반을 많이 제작발매한 곳은 빅타레코드사입니다. 빅타에서 활동했던 가수들은 김연실, 김순임, 윤현향, 강석연, 김정임, 전명희, 송보선, 정경남, 진정희, 계혜련, 신흥동인회 등입니다. 윤백남은 동화구연 음반제작에 참가했습니다. 빅타 소속 작사 작곡가로는 이정구, 모령, 정인섭, 정순철, 최순애, 박태준, 엄흥섭, 안기영, 윤석중, 홍난파와 일본인 중산진평입니다. 세 번째로는 콜럼비아레코드사였고 여기서 활동한 가수로는 이정숙, 채동원, 서금영, 최명숙, 이경숙, 이삼홍 등입니다. 작사 작곡가로는 윤석중, 홍난파, 박태현, 이원수, 방정환, 정순철, 유지영, 윤극영, 한정동, 윤백남 등입니다. 오케레코드사에서도 아동물음반을 발매했었는데 동요가수로는 김숙이, 정경남, 고천명, 조현운, 김소희, 전병희, 송보선 등이며, 작사 작곡가로는 박세영, 염석정, 김태오, 원유각, 목일신, 김성칠, 조현운 등이 활동했습니다. 닙본노홍과 같은 일본음반사에서는 홍재유(홍재후), 임건순, 이정숙, 서금영, 이경숙, 최명숙 등이 음반을 발표했고, 작사 작곡가로는 홍난파와 박태준이 전담했습니다. 이글레코드사에서는 서금영, 이경숙, 최명숙이 음반을 내었고, 그들을 위해 김태오, 김신명, 박노춘, 김수경(윤복진), 박수순, 홍난파 등이 작사와 작곡을 맡았습니다. 시에론레코드사에서는 강금자, 신카나리아, 임수금의 음반이 보이고, 닛토레코드에서는 이종옥과 이정숙의 음반이 확인이 됩니다. 디어레코드에서는 강금자와 신카나리아의 동요음반도 보입니다. 태평레코드사는 동요음반 제작발매에 가장 소극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전체목록을 샅샅이 살펴보아도 길귀송의 동요음반 하나만 확인이 됩니다. 여러 음반사마다 발간했던 동요 곡들의 제작에 참여한 가수와 작사작곡자 명단을 살펴보면 이름이 겹치는 경우가 자주 발견이 되지요. 그것은 그들의 활동이 나타내는 인기의 척도나 적극성을 말해주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 이정숙

취입동요음반들을 가수별로 집계를 해보면 누가 가장 최고의 동요가수였었던가를 우리는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최다취입가수는 단연 50여곡 이상을 음반에 취입한 이정숙(李貞淑)입니다. 그녀는 피아노연주 2곡과 작사 1편까지 포함해서 가장 적극적인 활동을 펼친 한국근대 최고 동요가수였습니다. 이정숙이 활동했던 음반사로는 주된 터전이었던 콜럼비아, 리갈사를 비롯하여 닙본노홍, 이글, 리갈레코드사 등 여러 곳이었습니다. 그만큼 이정숙은 어린 소녀의 몸으로 한국동요사에서 동요음악을 유성기음반으로 취입하여 전국적인 동요보급 확산에 크게 기여했던 인물입니다.

▲ 리갈사에서발매된'오빠생각'가사지

뜸북 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 뻐꾹 뻐꾹 뻐꾹새 숲에서 울 제 우리 오빠 말 타고 서울 가시며 비단구두 사가지고 오신다더니 기럭 기럭 기러기 북에서 오고 귀뚤 귀뚤 귀뚜라미 슬피울건만 서울가신 오빠는 소식도 없고 나뭇잎만 우수수 떨어집니다 -이정숙의 대표곡 <오빠생각> 전문

이정숙에 이어서 그 다음 위치를 차지하는 동요가수로는 서금영이 16곡으로 두 번째에 해당되고, 김숙이가 15곡, 그리고 녹성동요합창단이 12곡, 최선숙이 11곡, 진정희와 이경숙이 9곡, 김순임와 계혜련이 8곡, 강금자가 6곡, 신카나리아와 최명숙이 각각 5곡, 전명희, 이삼흥, 송보선, 신흥동인회가 각각 4곡씩 발표하고 있습니다. 김정임, 고천명, 임수금, 홍재유(홍재후)는 3곡씩, 강석연, 양재익, 이정옥, 길귀송, 정경남, 윤현향이 2곡씩의 동요를 발표했습니다. 한국근대 최고의 동요가수 이정숙(李貞淑)은 서울에서 태어나 성장했고 중앙보육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정확한 출생연도는 알 수 없지만 1910년에 태어난 서금영과는 거의 동년배로 보입니다. 금강키네마와 조선배우학교를 설립했던 유명영화감독 이구영(李龜永, 1901∼1973)의 누이동생이었지요. 무성영화 <낙화유수(落花流水)>를 김영환과 함께 제작했습니다. 이때 삽입곡주제가(<강남 달>)를 유경에게 부르도록 했는데 이게 관객들의 뜨거운 반응을 얻게 되자 1929년 7월, 이미 동요가수로 장안에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던 이정숙에게 이 노래를 정식으로 취입시키고 무대 위에서 직접 부르도록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물론 오빠의 배려도 있었겠지만 이정숙은 1927년 5월 닙폰노홍 음반사에서 <이 동리 저 동리>란 동요 곡을 발표했던 이미 어엿한 동요가수였습니다. 윤극영이 조직한 최초의 어린이합창단 ‘다알리아회’가 일본의 닛토레코드 초청으로 우리 동요 17곡을 취입할 때 가장 많은 곡을 취입했던 인기 높은 동요가수이기도 했습니다. 그녀는 리갈과 콜럼비아레코드사의 대표적인 동요가수였고, 그밖에 닙본노홍과 이글, 리갈레코드사에서도 동요곡을 발표했습니다. 이정숙은 서금영과 함께 유명작곡가 홍난파(洪蘭坡, 1898∼1941)로부터 동요창법에 대한 특별지도를 받았습니다. 1926년 7월15일, 경성라디오방송국이 체신국 방송소를 이용해서 전파를 송출할 때 여기에 최승일과 함께 출연해서 유행가 <곤돌라>, <푸른 별>, <뱃노래> 등을 불렀습니다. 배우 신일선(申一仙, 1912∼1990)은 나운규(羅雲奎, 1902∼1937)의 영화 <아리랑> 주제곡도 이정숙이 처음 부른 것으로 증언합니다. 1927년 9월에는 장충단에서 열린 시민위안 추석놀이 음악영화대회에 단성사 멤버들과 함께 출연하기도 합니다. 취입음반은 1934년 6월, 리갈에서 내었던 동요 <참새 춤>까지 확인이 됩니다. 1937년 여름, 중앙무대에서 막을 올린 연극 <예수나 안 믿엇더면>(채만식 작) 공연에 아역배우로 출연했던 이름이 보이고, 1956년 서울방송국 어린이프로에 세 차례 출연해서 동요를 부르거나 피아노연주를 했다는 기사만 확인할 수 있을 뿐입니다. 결혼한 뒤 가정생활에 충실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 서금영

다음으로 손꼽을 수 있는 동요가수로는 서금영(徐錦榮, 1910∼1934)입니다. 그녀는 황해도 황주에서 태어났고, 일찍이 전당포(典當鋪)를 운영하던 부모를 따라 서울로 옮겨와서 살았습니다. 1925년 동아일보 신년호에는 서울의 보통학교 재학생 중 장래가 촉망되는 아동 140명을 선발해서 특집을 꾸몄는데, ‘장래의 문학가’에는 교동보통학교의 윤석중(尹石重, 1911∼2003)과 설정식(薛貞植, 1912∼1953)이 여기에 뽑혔습니다. 그들은 나중에 자라서 예측대로 명망 높은 시인이 되었습니다. ‘장래의 음악가’에는 동덕여자보통학교의 재학생 서금영이 선발되었지요. 뿐만 아니라 수재아동의 가정을 소개할 때 ‘창가 잘 하는 아가씨’로 그녀에 대한 취재기사가 사진과 함께 실렸습니다. 보통학교 졸업 후에는 이정숙이 다녔던 중앙보육학교로 진학했는데 재학시절 이미 이름난 동요가수로 여러 무대에 올랐습니다. 1931년 중앙보육학교 졸업생 명단에 서금영의 이름이 확인됩니다. 같은 해 이화여전 졸업생 명단에 시인 모윤숙(毛允淑)의 이름이 보이는 것을 보면 그와 동년배쯤 될 것입니다. 서금영도 이정숙과 마찬가지로 홍난파로부터 각별한 사랑을 받으며 창법지도를 받았던 제자였습니다. 1931년 1월 <바닷가에서>, <무명초> 등이 취입된 첫 음반을 콜럼비아에서 발표한 뒤 1934년 6월 <해바래기>, <봉사꼿>까지 내리닫이로 10여곡 이상을 취입하면서 명성을 얻었습니다. 높은 인기를 반영하듯 콜럼비아를 주된 무대로 하면서 리갈, 이글, 닙본노홍 등 여러 레코드사에서 초빙을 받아 다양한 음반들을 발표했지만 그해 여름 장티푸스로 돌연히 세상을 떠났다고 하네요. 당시 서금영의 나이 불과 23세였습니다. 홍난파는 서금영의 사망소식을 접하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1931년 홍난파의 질녀 홍옥임이 동성애에 빠져서 파트너와 함께 열차에 투신자살한 쇼킹한 사건이 있었는데, 그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아끼던 제자 서금영의 사망소식을 접했으니, 홍난파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짐작이 됩니다. 이런 과정에서 ‘울밑에선 봉선화야 네 모양이 처량하다’로 시작되는 절창 <봉선화>가 빚어졌다고 하는군요. 노래 속의 봉선화는 질녀이기도 했고, 요절한 제자 서금영의 표상으로 작용했을 것입니다.

아가야 나오너라 달마중 가자 앵두 따다 실에 꿰어 목에다 걸고 검둥개야 너도 가자 냇가로 가자 비단물결 남실남실 어깨춤 추고 머리감은 수양버들 거문고 타면 달밤에 소금장이 맴을 돈단다 아가야 나오너라 냇가로 가자 달밤에 딸각딸각 나막신 신고 도랑물 쫄랑쫄랑 달마중 가자 -서금영의 대표곡 <달마중> 전문

우리들의 어린 시절, 아련한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이정숙과 서금영을 비롯한 옛 동요가수들의 노래는 한 세기의 세월을 껑충 뛰어넘어서 21세기에도 여전히 우리 심금을 울리게 합니다. 두 사람의 음색과 창법을 비교해보면 이정숙은 서금영에 비해 한층 낭랑하고 또랑또랑한 울림으로 펼쳐집니다. 가련함과 애처로움이 듬뿍 느껴지는 애수의 정서가 서금영에 비해 더욱 가슴을 아리게 합니다. 이에 대조적으로 서금영의 음색과 창법은 나직하고 은은함이 느껴지는 편안한 분위기가 온몸을 부드럽게 감싸줍니다. 다른 동요가수들의 경우도 두 소녀의 창법과 크게 다르지 않으며 대체로 유사한 경우라 할 것입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한국어의 억양과 발음법이 10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는 동안 엄청나게 그 변화의 양상을 나타내고 있다는 점입니다. 어떤 이는 초창기동요를 들을 때 마치 북한가요를 듣는 느낌과 비슷하다는 소감을 말하기도 합니다. 그만큼 북한가요에 남아있는 1930년대 창법의 흔적도 있는 것일 테지요. 여러분은 혹시 어떤 소감을 갖는지요? 대표적인 동요전문작사가로는 윤석중, 김수경(윤복진), 유기흥, 원유각, 윤극영, 김성도, 박세영, 이정구, 유지영, 송완순, 엄흥섭, 한정동, 김태오, 방정환, 최순애 등을 들 수 있습니다. 동요전문작곡가로는 홍난파를 위시하여 윤극영, 박태준, 박태현, 정순철, 김영환, 김신명, 안기영, 원치승, 조현운, 염석정 등과 일본인 중산진평을 손꼽힙니다. 식민지시대에서 동요음반은 이처럼 가슴속에 쌓인 상처와 울분으로 고통스러워하던 민족의 삶에 마치 어머니의 손길과도 같은 부드럽고 아늑한 사랑과 평화의 분위기로 마음을 한결 안정시켜주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활동 속에 이정숙과 서금영, 그리고 이름이 아주 묻혀버린 소녀 동요가수들의 애달픈 노력이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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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gle Translation :

Who was the best "nursery rhyme singer" of the 1930s? Lee Jung Sook and Geum Young Seo. A nursery rhyme is a mixture of lyrics and songs made from children's thoughts and expressions.


In the mind of a child, the most pure and innocent soul in the world is in it. When our nation suffered from all kinds of trials and sufferings due to imperialist invasion, the children's literaries of the time made many nursery rhymes and gave warm consolation and encouragement to the people who had endured their hard times. In the spring of 1923, the best children's literary and composers such as Hong Jung-fa, Yoon Kuk-young, Jung Soon-cheol, Yun Bok-jin, Park Tae-jun, and Yoon Seok-jung, including the ?? No. The work that I tried to expand is now considered a myth. In the feudal age, there was no word for children. Just think of the holy dreams and aspirations of the pioneers who made the name 'children' for the first time for children who called dogs, animals such as pigs and puppies, and who were not given even minimal human rights, and valued their existence as heavenly. see.


This agitation began to appear in public in the mid 1920s. According to the record, Hong Jae-yu's nursery albums <Halumi> and <Dance Trend>, released in September 1926, are the first records of this kind. Since then, about 13 years until May 1939, more than 230 nursery rhymes have been produced and released by 10 record companies.


Regarding the genre of nursery rhymes, the company that produced and released the album vigorously was Regal Record Company. The nursery singers who were active here were Lee Jung-suk, Seo Geum-young, Lee Kyung-sook, Jeon-sook Won, Won Chi-seung, Kang Il-il, and Nokseong Song-song Choir. Kim Bok-jin mainly released fairy tales. Regal composers include Yun Suk Joong, Sun Woo Man, Song Mu Ik, Lee Jung Gu, Shin Song Song, Bok Jin Jin, Hong Nan Pa, Won Yok Pak, Organic Heung, Kim Sung Do, Park Jong Sun, Kang Seok Heung, Park So Nong, Go Ho Bong, Executive Ho, Lee In Sook, Min Young Sung, Son Jung Bong, Won Chi Seung, Song Chan-il, Jeon Ji-ha, Jeung Jeung-sun, Jung Yun-hee, Han Man-geum, Song Wan-soon, Kim Jung-im, Jeon Ji-ha, Park Chun-ryong, Yu-hung Heung, Nam Gung-in, Kim Yeo-su.


The second place that produced and released many nursery rhymes albums is Victa Records (Victor Records?). The singers who worked at Victor are Kim Yeon-sil, Kim Soon-im, Yoon Hyun-hyang, Kang Suk-yeon, Kim Jung-im, Jeon Myung-hee, Song Bo-sun, Jung Kyung-nam, Chul-hee Hee, Gye Hye-ryeon and Shin Heung Dong-in. Yoon Baek Nam participated in the production of a fairy tale performance record. The songwriters of Victor Records are Lee Jung-gu, Moyung, Jung In-seop, Jung Soon-cheol, Choi Soon-ae, Park Tae-jun, Eom Heung-seop, Ahn Ki-young, Yoon Suk-jung, Hong Nan-pa and Japanese Zhongshan Jing.


The third was Columbia Records, and the singers who worked here were Lee Jung Sook, Chae Dong Won, Seo Geum Young, Choi Myeong Sook, Lee Kyung Sook, and Lee Sam Hong. The composers include Yun Suk Joong, Hong Nan Pa, Park Tae Hyun, Lee Won Soo, Bang Jung Hwan, Jung Soon Cheol, Yoo Ji Young, Yoon Kuk Young, Han Jung Dong, and Yun Baek Nam.

O'Record also released a children's music record, including nurses Singer Kim, Kyung Kyung Nam, Go Chun Myung, Cho Hyun Woon, Kim So Hee, Jeon Byung Hee, Song Bo Sun, and songwriters. , Hyun-woo Cho and others.


On Japanese labels such as Nippon No-hong, Hong Jae-yu (Hong Jae-hoo), Lim Gun-soon, Lee Jung-sook, Suh Geum-young, Lee Kyung-sook, and Choi Myeong-sook released their albums. At Egle Record, Seo Geum-young, Lee Kyung-sook, and Choi Myeong-sook recorded the album, and for them, Kim Tae-oh, Kim Shin-myeong, Park No-chun, Kim Soo-kyung (Yun Bok-jin), Park Soo-soon, and Hong Nan-pa wrote and composed music. In Sierra Records, you can see recordings of strong contributors, new canaries, and deposits. In Nitto Records, records of Jong-ok Lee and Lee Jung-sook are confirmed. In the Dear Records, you will also be able to see nursery rhymes and new Canary songs. Taepyeong Records seems to have been the most passive in the production of nursery rhymes. Even if you look through the entire list, you can see only one song of the song. If you look at the list of singers and songwriters who participated in the production of nursery rhymes published by various labels, it is often found that names overlap. It's a measure of popularity or a measure of their activity.


Lee Jung Sook, the best nursery rhyme singer

If we count the songs by singers, we can easily see who was the best nursery rhyme singer. The most influential singer is Lee Jung-sook, from whom over 50 songs have been recorded. She was one of the most sway singers in Korean modern history, including two piano plays and one song. The music labels Lee Jung-sook played were several places including Columbia, Regal, and Nippon-no-Hong, Eagle, and Regal Records. Lee Jung-sook is a young girl who has contributed to the spread of nursery rhymes throughout the country by incorporating nursery rhyme music from the Korean nursery rhymes.


-Lee Jung Sook's representative song <Brother Thinking>


Next to Lee Jung-sook, the song was the second place with 16 songs, Seo Geum-young, 15 songs by Kim Sook-yi, 12 songs by Nok Sung-dong Choir, 11 songs by Choi Sook-sook, 9 songs by Shin-hee and Lee Kyung-sook, and Kim Soon-im and Gye. Hye Ryun has 8 songs, Kang Geumja has 6 songs, Shin Canaria and Choi Myung Sook have five songs each, and Jeon Myung Hee, Lee Sam Heung, Song Bo Sun, and Sin Heung Dong Inhoe are each presenting four. Kim Jung-im, Go Cheon-myung, Lim Su-geum, and Hong Jae-yu (Hong Jae-hu) released three songs each, Kang Seok-yeon, Yang Jae-ik, Lee Jung-ok, Gil Gui-song, Jung Kyung-nam, and Yun Hyun-hyang.


The best nursery rhythm singer in Korea, Lee Jung-sook was born and raised in Seoul and graduated from the Central Childcare School. The exact year of birth is unknown, but it is almost the same age as Seo Geum-young, born in 1910. He was the younger sister of Lee Gu-young (李 유명 永, 1901-1973), a famous film director who founded Geumgang Kinema and Chosun Actor School. The silent film <Flower Flowing Water> was produced with Kim Young-hwan.


At this time, the theme of the song was sung by Yoo Kyung. I called it myself. In the process, of course, my brother's consideration, but Lee Jung-sook was a sway singer who released the song `` Lee Lee-ri '' in May 1927. It was also a popular nursery singer whose first choir sung by Kuk Yeong-young, the `` Dalia Association '', took the most of our songs when we invited 17 songs to Japan's Nitto Record. She was a representative nurse singer of Regal and Columbia Records, as well as Nippon Noh Hong, Eagle and Regal Records.


Lee Jung-sook, along with Sue Geum-young, received special guidance on nursery rhyme from the famous composer Hong Nan Pa (洪 (, 1898-1942). On July 15, 1926, when Kyungsung Radio Station broadcasted radio waves using the Post Office Broadcasting Station, it appeared with Choi Seung-il and sang `` Gondola '', <Blue Star>, and <Singing Song>. Actor Shin Il-sun (申 一 仙, 1912-1990) testifies that Lee Jung-suk also sang the theme song of Na Un Kyu (羅雲奎, 1902-1937). In September 1927, she appeared with Danseongsa members at the Citizen Comfort Chuseok Games Music Film Contest held in Jangchungdan.


The song record is confirmed until the nursery rhyme <Sparrow Dance> which was performed in Regal in June 1934. In the summer of 1937, he appeared as a child actress in the play `` Jesus or Not Believe '' (Chae Mansiksik), which ended on the central stage.In 1956, she appeared on Seoul Children's Pro three times and sang songs or piano. You can only check the article that said. She is believed to have been faithful to his family life after he got married.


Seo Geum-young


The next best singer is Seo Geum-young (徐錦榮, 1910-1934). She was born in Hwangju, Hwangdo, and moved to Seoul to live with her parents, who had previously run a pawn shop. In the 1925 Dong-A Ilbo New Year's Issue, 140 specially selected children from Seoul's regular schools are selected for the future. , 1912-1953). They later grew up to be prominent poets as expected. Seo Geum-young, a student of Dongduk Women's Normal School, was selected for the future musician. In addition, when introducing the home of a child with a child, a reporter about her was published with a picture.


After graduating from ordinary school, she went to the central nursery school where Lee Jung-sook attended. In 1931, the name of Geumyoung Seo is confirmed on the list of graduates of the Central Nursery School. In the same year, if you see the name of the poet Mo Yun-sook on the list of graduates of Ewha Women's University, she will be about the same age as him. Like Geum-sook Suh, Seo Geum-young was a disciple who received special guidance from the Hong Nang and was instructed. In January 1931, she released her first albums, including <Beach by the Sea> and <Momyoungcho,> in Columbia in 1934. . Reflecting its high popularity, she made his major debut in Columbia and released various recordings from several record companies including Regal, Eagle, and Nippon Norhong, but he died of typhoid fever that summer. At that time, she was only 23 years old.


The Hongnanists were shocked when they heard about Sue Geum-young's death. In 1931, Hong Ok-im, a niece Hong Ok-im, fell into homosexuality and shocked herself with a partner. She heard about the death of the disciple Seo Geum-young, who had died before the shock. . In this process, the incense <Bambonghwa> is started, which begins with 'Bambong beneath your shape'. The balsam in the song was a niece and would have served as a symbol of the disciple Seo Geum-young.

Come on, sweetie.

Pick it up, put it on a thread, hang it around your neck

Black dog, let's go to the stream

Silky silk room

If you're riding a weeping willow

The salt drifts in the moonlight

Come on, stream, sweetie.

Reported clogs in the moonlight

Let's go to the ditch

-Seo Geum-young's representative song <Dalmama>


The songs of former singers, including Lee Jung-suk and Seo Geum-young, who remind us of our old memories of childhood, are still ringing our hearts even in the 21st century. If you compare the tone of the two people and how to create a window, Lee Jung-sook is more crisp and rounder than Seo Geum-young. The feelings of sorrow, which are full of pity and tenderness, are more heart-loving than Seo Geum-young. In contrast, Sue Geum-young's tone and changgeum softly wraps the whole body with a relaxed atmosphere that is soft and subtle.


Other nursery rhymes are not much different from the creation of the two girls and are generally similar. One interesting fact is that Korean accents and pronunciations have changed dramatically over the course of nearly 100 years. Some people say that when they hear their first nursery rhyme, it is similar to hearing it. There may be traces of the 1930s founding that remain in North Korea. How do you feel?


Representative nursery rhyme singers include Yun Seok-jung, Kim Su-kyung (Yoon Bok-jin), Yu-Hung Yu, Won Yu-gak, Yoon Kuk-young, Kim Sung-do, Park Se-young, Lee Jung-gu, Yu Ji-young, Song Wan-soon, Uhm Heung-seop, Han Jeong-dong, Kim Tae-oh, Bang Jung-hwan, and Choi Soon-ae. Song composers include Hong Poong, Yoon Keuk-young, Park Tae-jun, Park Tae-hyun, Jung Soon-cheol, Kim Young-hwan, Kim Shin-myung, Ahn Ki-young, Won Chi-seung, Cho Hyun-un, and Yeom Seok-jeong.


In the colonial era, nursery rhythms calmed the hearts of the people who suffered from the wounds and tears accumulated in their hearts with a gentle and cozy atmosphere of love and peace, just like a mother's hand. We must remember that in these activities there was a painstaking effort by Lee Jung-sook, Suh Geum-young and the girl nurse singers whose names were so buri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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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sonal remark: I am sure there can be told a similar story about songs from early Shanghai which included a lot of nursery rhymes and children songs. It would be interesting to compare parallels of influences.


See also separate page for Lee-Jung-S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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