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그마 - Magma


마그마 - 마그마 [LP/CD]

LP 열린음악(The Open Music) | 2017년 02월 23일

01. 알수없어 / I couldn't know - 5:00

02. 이럴수가 있을까 / How Did This Happen - 3:21

* 03. 아름다운 곳 / Beautiful Place - 4:47

04. 기다리는 마음 / The feeling that is waiting - 5:00

05. 우린 서로 사랑하니까 / because we love each other - 3:19

6/ B01. 해야 / Hey, Sun - 5:01

7 /B02. 잊혀진 사랑 / forgotten Love - 6:31

8/ B03. 그날 / That day - 3:54

* 9/ B04. 탈출 (경음악) / Escape - 5:41

Tracks with * I consider essential listens or classics, or tracks to check out for sure because for some reason they seem to stand out as unique moments, which makes them also very suitable for western radioshow airplay. Tracks that are only underlined can be considered fine tracks you might better check out as well, but I am not sure how essential they are.


Item with much hardrock in it, appreciated by Western collectors. Has also something primitive "tough guy attitude" in the hardrock tracks. You can hear a great electric guitar solo on this 3rd track. 4th track is a more soft poprock track. Also 5th track is more "rock". I understand the importance of the group, but still I find the full item overrated. It surely has many good elements. These tracks are the most inventive ones. Last track is brilliant instrumental (progressive/psychedelic) hard rock performance, making the album more valuable.



Tracks on compilations:



7080을 위한 추억의 그룹 사운드 /

Memories of 'group sound' in the 70s and '80s (2CD)

CD2-14 해야 / S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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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OGRAPHIES:

"There were many University song contests in Korea between lately 70s and early 80s. It were big contests which were supervised by broadcasting stations. It just was a boom at the time, and Magma also was University rock band and they entered one of the contests. And they got a prize on it. The supervisor of the contest was MBC (Korean broadcasting(TV) station). So the name of contest was MBC University song contest and this album is a compilation of the contest. MBC released this compilation album which had songs of winners on the contest. It had only one song by Magma." Folkie Jin


early live picture of Magma

(taken from a 1980.campus song festival LP where they appeared with the song "Sun")



음반소개. 오리지널 마스터 음원 그대로 발매되는. 국내 하드록의 진정한 유산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 초반에 이르는 그나마 길지 못했던 국내 록 음악의 역사는 1975년 소위 '긴급조치 9호'라는 족쇄에 붙들려 그동안 쌓아왔던 그 모든 것을 한순간에 잃어버리게 되었다. 그나마, 디스코라는 새로운 유행에 편승할 수 있었던 나머지 몇몇 그룹들은 고고클럽의 어둠 속으로 숨어버리고, 그렇지 않고 밝은 곳에서 활동하고 싶었던 밴드 마스터나 보컬 출신의 음악인들은 트롯과 고고가 믹스된 '트로트 고고' 내지는 '록뽕'이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키며 히트 차트를 오르내리게 된다. 물론, 그 모든 활동들이 위에 이야기 했던 시기인 60년대 말에서 70년대에 이르는 소위 국내 록의 르네상스 시절과는 비교할 수 없는 어쩌면 국내 록에 있어서 가장 어두웠던 암흑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앞이 보이지 않던 암담했던 시기에 록 음악이 다시 한 번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된 계기는 아이러니하게도 그 '긴급조치 9호'라는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던 집단을 배경으로 했던 '대학 가요제'였다. 물론 여기서의 대학 가요제란, MBC라는 한 방송국에서만 개최되었던 행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대학가요제를 필두로 여타 방송국들에서 앞 다투어 만들어진 캠퍼스 페스티벌 모두를 일컫는 말이다. 1977년 처음으로 열렸던 MBC 대학가요제에서 서울 대학교 농과대학 출신의 그룹 샌드 페블스의 대상 수상은 다른 캠퍼스 그룹들에게는 자신감을 또 지금까지의 TV와 라디오를 독식해온 기성 가요에 식상해 있던 젊은 청자들에게는 또 다른 신선함으로 다가왔음에 틀림없다. 그때부터 캠퍼스 그룹들의 무대는 한해에 한두 번 열리던 정기 발표회나, 교내 축제의 초대가수의 자리에 국한되지 않고, 보다 크고 보다 많은 청중들이 있는 자리로 옮겨갈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이들이 가요제를 통해서 발표하는 많은 곡들은 어쩌면 '록'이라는 원초적인 음악에 접근하기에는 무리가 있었을 지도 모르지만, 가요제 수상의 후광을 얻은 이들의 발표회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해외 그룹들의 레퍼토리들인 딥 퍼플(Deep Purple)이나, 그랜드 펑크 레일로드(Grand Funk Railroad), 유라이어 힙(Uriah Heep), 또는 레드 제플린(Led Zeppelin)등의 커버곡 들은 이들의 숨은 실력을 보여주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들이 출연하는 TV 프로그램이나 몇몇 발표회를 접하면서 한구석 석연치 않은 부분이 바로, 창작곡에 대한 문제였다. 종주국의 음악들은 그렇게 잘 연주하고 노래하면서, 자신들의 음악을 할 때는 그 원초적인 힘이 없을까 하는 부분 말이다. 마그마라는 그룹의 위치는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수없이 명멸했던 많은 캠퍼스 그룹들 가운데에서 단연 독보적이라고 할 수 있다. 대학가요제의 예선에서부터 보여줬던 그 파워풀한 연주와 하이톤의 보컬은 "드디어 이제는 우리나라에서도…"라는 왠지 모를 뿌듯함을 안겨주었던 게 사실이다. 마그마는 베이스 기타와 보컬을 담당하는 조하문에 의해 결성된 그룹이다. 조하문은 1978년 대학 입학 당시 아스펜스(Aspense)라는 5인조 그룹에서 기타를 담당하다가 기타리스트가 탈퇴하는 바람에 포지션을 베이스로 옮겼다. 아스펜스는 젊은이의 가요제에 출전하기도 했지만 예선에서 고배를 마셨고, 어렵사리 준비했던 공연이 당시 10.26 사건으로 무산된 후 해산하게 된다. 이후 조하문이 3학년이 되며 가장 소규모의 편성으로 밀도 있는 음악을 하려 재편성한 밴드가 바로 마그마다. 그가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의하면 어린 시절 가장 충격적으로 들었던 국내의 록 음악은 베이스 라인이 인상적인 신중현과 엽전들의 '저 여인'이었다고 한다. 신중현과 엽전들 역시 3인조의 가장 기본적인 록 음악의 편성이라는 점은 재편성되는 그룹의 인원을 3인조로 만드는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로 자리 잡게 된다. 마그마는 조하문과 김광현(기타), 그리고 문영식(드럼) 이렇게 3인조로 결성되며 그 시작부터 헤비메탈을 지향하고, 외국곡만 연주하는 단계를 벗어나 스스로 만든 곡을 연주하기로 합의했다. 그리고 가을에 있을 대학가요제를 목표로 이대 앞의 연습실에서 하루 2시간씩 매일 연습하며 '해야', '알 수 없어', '이럴 수가 있을까' 등 9곡의 자작곡을 완성했다. 당시 같은 연습실을 썼던 밴드 가운데는 라이너스와 로커스트가 있다. 라이너스에서 베이스 기타를 연주했던 문영삼은 마그마 문영식의 친형이다. 라이너스의 독집 크레디트를 살펴보면 기타리스트에 김광현의 이름이 적혀있는데, 당시 상황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대학가요제 출전곡을 '해야'로 선택한 이유에 대해 조하문은 "당시 대학가요제는 조용한 분위기의 포크송 계열만 입상을 했는데, 그렇게 해서는 우리 마음에 차지도 않았고 입상을 위해 음악적 개성을 바꾼다는 게 싫었기 때문이다."라고 밝힌 바 있다. 일반적으로 볼 때 3은 완성의 숫자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그 중 하나만 제 위치를 잡지 못했을 때에는 쉽사리 그 균형이 깨어질 수 있는 위험을 안고 있는 숫자이기도 하다. 밴드 역시 기본편성이라고는 하지만 어느 한 멤버의 실력이 다른 멤버와 균형을 이루지 못한다면 '완성'은 이루어질 수 없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마그마(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그룹 이름도 3음절로 되어있다)가 3인조로 출발할 당시 자신들의 실력에 대한 자신감을 엿볼 수 있다. 1980년 MBC 대학 가요제의 시상식 장면 은상을 호명 받은 마그마가 다른 팀과는 대조적으로 고개를 푹 숙이고 단상으로 오르던 모습은 그때까지 그들 자신의 음악에 얼마나 자신감에 충만해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한 예였다. 대학가요제에서의 은상 수상 이후 지상파 방송이나, 각 대학의 축제 등에서 이들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으나, 드럼을 맡고 있던 문영식의 도중하차는 그룹의 존속을 더 이상 어렵게 만들었다. 위에서 이야기했던 삼각형의 한 꼭지점의 자리 이탈이라고나 할까. 리더 조하문의 카리스마적 기질과 기타리스트 김광현의 개성이 충돌을 일으켰던 것 역시 밴드 해체의 이유가운데 커다란 부분을 차지했을 테고. 결국 1981년 말 MBC에서 주최했던 '독립 기념관 모금' 행사에 새로운 드러머와 함께 참여한 이후 국내 록 음악계에 있어서 더 이상 마그마라는 이름은 찾아보기 힘들었고, 조하문은 몇 년이 지난 후 솔로로 데뷔해서 '이 밤을 다시 한 번'의 스매시 히트와 함께 대중적으로 사랑 받는 '가수'로 거듭나게 된다. 대학가요제에서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마그마의 유일한 음반을 살펴보자. 간결한 드럼 신호와 함께 확실한 라인의 리프로 포문을 여는 '알 수 없어', 다시 녹음된 대학가요제 입상곡 '해야'는 음반 발매와 함께 방송을 통해 어느 정도 에어플레이 됐던 트랙들이다. 이렇게 대표곡에서 들을 수 있는 마그마 특유의 사운드는 고등학교시절 프랑스에서 밴드 활동을 했던 기타리스트 김광현의 현란하지만 기본에 충실한 플레이와 '나이프 조'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던 조하문의 날카로운 보컬로 이전 대학가요제에서 볼 수 있었던 여타 캠퍼스 밴드들과 확실한 선을 그었다. 음반에서 가징 귀 기울여 들어야 하는 곡은 심야방송 '전영혁의 음악세계'를 통해서도 연말 순위에 오른 바 있는 '아름다운 곳'과 '잊혀진 사랑'이다. 느슨한 전개 속에서 청자를 잔뜩 긴장시키며 등장하는 '아름다운 곳'의 앙칼지고 도발적인 보컬은 분명 국내 록의 역사에 있어서 전대미문의 것이었다(이 곡 때문에 외국의 록 마니아 들은 마그마를 일본 밴드 플라워 트래블링 밴드Flower Travelling Band와 비교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잊혀진 사랑'(원래 제목은 '4차원의 세계'였지만 심의에 걸려서 '잊혀진 사람'으로 제목이 바뀌었고, 음반이 발매될 당시 오타로 인해서 '잊혀진 사랑'으로 표기되었다.)의 점진적인 몰입은 전성기 종주국의 사이키델릭 밴드들에 비견될 만 하다. 한 마디로 거칠 것 없고 자신감 넘치던 당시 마그마의 모습을 그대로 담은 베스트 트랙들이다. '기다리는 마음'은 평범한 멜로디의 기존 가요풍 발라드지만 밴드 편성의 편곡으로 색다른 느낌이다. '아름다운 곳'과 '기다리는 마음'은 1989년에 발매된 조하문의 2집 음반에 각각 '고통 없는 나라'와 '슬픈 기다림'으로 제목이 바뀌어 재수록됐다. 음반의 마지막에 자리 잡은 연주곡 '탈출'은 음반에서 가장 긴 러닝타임을 가진 곡으로 기타리스트 김광현이 리드하는 프로그레시브한 전개가 돋보인다. 이번 재발매에서는 처음 녹음됐던 마스터음원을 그대로 담아 최초 녹음 당시의 의도를 고스란히 옮겼다. 최초 녹음 시 악기의 특성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은 녹음이 아쉽게 느껴지긴 하지만, 척박한 현실 속에서 태어난 한국 록의 금싸라기 같은 명반 가운데 하나라는 점에는 토를 달 정도는 아니다. 밴드로서의 롱런이 이루어지지 못한 점이 더욱 아쉬운 마그마의 유일한 음반이다. 글 송명하 (파라노이드 편집장) * 오리지널 아날로그 마스터 테이프 * 독일 커팅 스튜디오 SST 래커 커팅 * 독일 전문 오디오파일 프레스 공장 팔라스 프레싱 * 오디오파일용 180g 중량반 * 소량 한정반 본 LP는 제품의 특성상 상품의 하자로 인한 불량 외에는 반품이 불가함을 알려드립니다. 디스크

LP 01[Side A] 알 수 없어 02이럴 수가 있을까 03아름다운 곳 04기다리는 마음 05우린 서로 사랑하니까 06[Side B] 해야 07잊혀진 사랑 08그 날 09탈출


Google Translation (with mistakes):


Record Introduction

Original master sound source released - A true heritage of domestic hard rock


In the late 1960s and early 1970s, the history of domestic rock music, which had not been long, was lost in a moment by the fetters of the so-called 'emergency measure No. 9' in 1975. At the same time, some of the other groups who were able to ride on the new trend of disco hid themselves into the darkness of the Gogo Club, while bandmasters and vocal musicians who wanted to be active in the bright spots had a trot and gogo mix. The birth of the new word 'rock pong' is going up and down the hit chart. Of course, it may be said that the darkest period in the domestic rock is probably not comparable with the so-called domestic rock renaissance of the late 60s and 70s, when all of these activities were mentioned above.


Rock music's new start in the dark, unprecedented period was, ironically, the 'College Song Festival' set in the group that wielded a powerful power after the 'emergency measure no.9'. Of course, 'university song' here did not mean that the event that was held only was limited to one broadcasting station called MBC, but rather refers to all the campus festivals that have been contested by other stations. At the MBC College Song Festival, held for the first time in 1977, the Grand Prize of the Group Sand Pebbles from Seoul National University College of Agriculture gave confidence to other campus groups and young listeners who have been fed up with all the ready-made songs that have been broadcast on TV and radio. One must have to come to a renewed freshness.


Since then, campus groups have been able to move to a larger and larger audience, not limited to regular presentations held once or twice a year, or to singers at school festivals. Of course, many of the songs they announce through the music festival may have been difficult to access the original music of 'Rock', but groups like Deep Purple, amongst a repertoire of overseas groups, appeared in the presentations of those who received the halo of the song festival. Cover songs such as from Deep Purple, Grand Funk Railroad, Uriah Heep, or Red Zeppelin were enough to show their hidden skills.


However, the problem with creative songs was that they weren't sure when they would ever see some TV programs or broadcast presentations. The music of Jong-juk plays and sings so well that the original power is lacking in their music. Magma's position is by far the most unique of the many campus groups that have thrived in that sense. It is true that the powerful performance and high tone vocals that had been shown in the preliminary stage of the university song festival gave us some reason to say, "It is finally in our country now."


Magma is a group formed by Jo Ha-moon, who plays bass guitar and vocals. When he entered college in 1978, he played the guitar in a five-member group called Aspenense, and moved to the base as the guitarist withdrew. Aspen also participated in the Young Children's Song Festival, but he confessed in the preliminary round, and the performance he had prepared for was dismissed after the 10.26 incident. Later, Jo Ha-moon became a third grader, and Magada, who reorganized the dense music into the smallest group, this led to Magma. In his interview, he said that the most shocking Korean rock music of his childhood was 'She Woman' of Shin Jung-hyun and Yeon-jeon, whose bass line was impressive. The fact that Shin Joo-hyun and Yeopjeon are also the most basic three-member rock group is one of the main reasons for the three-member group.


Magma was formed in three teams: Jo Ha-moon, Kim Kwang-hyun (guitar), and Moon Young-sik (drum). From the start, Maga agreed to play heavy metal and play music made by himself instead of playing foreign songs. In addition, he aimed at the university song festival in the fall and practiced his own songs in the practice room in front of Ewha University every day for two hours, including 'must', 'unknown', and 'can this be done'. Among the bands that used the same practice room at the time were Linus and Locust. Moon Young-sam, who played the bass guitar at Linus, is the eldest brother of Magma Moon Young-sik. Looking at Linus's solo credit, the guitarist has Kim Gwang-hyun's name on it, but that didn't seem to matter at the time. "The college song was just a folk interpretation of a quiet folk song, so it didn't come to our minds and we didn't want to change the musical personality for the prize." So he said. "


Generally speaking, 3 (band members) refers the number of completion, but it is also a number that carries the risk of breaking the balance if only one of them is not in place. The band is also about basic organization, in which 'completion' cannot be achieved if one member's skills are not balanced with other members. In that sense, Magma (unintentionally, but ironically, the group name also has three syllables) reveals their confidence in their trio when they started out as a trio. Magma, who was took silver at the 1980 MBC College Song Festival, shook his head and climbed to the top, in contrast to the other teams, as an example of how confident his music was.


After winning the Silver Prize at the University Song Festival, they could not easily see them in terrestrial broadcasting and festivals at each university, but Moon Young-sik, who was in charge of the drum, made the group's existence no longer difficult. I think it's a deviation from one of the triangles discussed above. The charismatic temperament of leader Jo Ha-moon and the personality of guitarist Kim Kwang-hyun were also a big part of the reason for the breakup of the band. Eventually, after joining a new drummer at MBC's 'Independence Hall Raising' event, the name Magma was hard to find in the domestic rock music industry. Jo Ha-moon debuted solo after a few years. Once again with a smash hit, he will be reborn as a 'loved singer'.


Let's take a look at Magma's only record, which was a big sensation at the University Song Festival. 'Unknown', which opens the doors with a clear drum riff with a simple drum signal, and the re-recorded college song festival 'Haya' are tracks that have been air-played to some extent with the release of the album. The magma-specific sound that can be heard in the representative song is the brilliant vocal of the guitarist Kim Kwang-hyun, who was a band in France in high school, and the sharp vocals of Jo Ha-moon, nicknamed 'Knife Joe'. Drew certain lines with other campus bands that could. The music that must be listened to on the album is 'Beautiful Place' and 'Forgotten Love', which have been ranked at the end of the year through the late-night broadcast 'Jeon Young Hyuk's music world'.


The vocal and provocative vocals of 'Beautiful Place' appearing in a loose development with a lot of celadon's hearing are certainly unprecedented in the history of domestic rock. Compared to the Traveling Band). On the other hand, the gradual immersion of 'forgotten love' (original title was '4D world', but it was changed to 'forgotten person' due to deliberation, and marked as 'forgotten love' due to typo when the album was released). Is comparable to the psychedelic bands in the heyday. In a word, they are the best tracks that capture the magma of the time when it was full of confidence. 'Wait for the Heart' is a traditional ballad with a typical melody, but it's a different feeling with the arrangement of the band. 'Beautiful Places' and 'Wait for Hearts' were re-recorded in Jo Ha-moon's 2nd album, released in 1989, with titles 'Country Without Pain' and 'Sad Waiting', respectively. The song 'Escape' at the end of the record is the longest running time on the record, with a progressive development led by guitarist Kim Kwang-hyun.


In this re-release, the original sound recording of the master was preserved as it was, and the original intention was recorded. While it may feel unfortunate that the recording did not take into account the characteristics of the instrument at the time of the first recording, it is not enough to say that it is one of the gold-rich alums of Korean rock born in a harsh reality. The lack of a long run as a band lead to this only record of Magma.


Written by Song Myung-ha (Editor, Paranoid)


Original analog master tape German cutting studio SST lacquer cutting Germany professional audio pile press factory 180g weight plate for audio file Small quantity limited edition


LP01[Side A] I don't know 02 Can this be? 03 Beautiful place 04 Waiting heart 05 Because we love each other 06 [Side B] should 07 Forgotten love 08 that day 09 escape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7954650&memberNo=655217


[음반소개] 마그마 "MAGMA (Self Title Debut Album)"

마그마 (MAGMA) ( 1980 ~ 1981 )

Vocal & Bass : 조하문 (연세대 지리학과)

Guitar : 김광현 (연세대 불문학과)

Drum : 문영식 (서울대 경영학과)

한동안 잊고 있었던 음반소개 재개합니다.ㅎㅎ 이번 소개하고자 하는 음반은 한국 그룹 사운드 앨범으로. 1980년 제4회 대학가요제에서 "해야"로 은상을 수상했던 캠퍼스 밴드 <마그마>의 셀프타이틀 데뷔 앨범입니다. 희한하게도 그룹의 리더였던 '조하문' 자신도 이 앨범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해서 화제였었던 기억이 나네요.^^ 이 앨범에서 특이했던 점은 자신들이 캠퍼스 밴드라는걸 강조하기 위한 것인지 앨범에 그룹 멤버들의 소속 대학과 학과를 표시하고 있습니다. 보통 그룹들이 발표하는 앨범들을 보면 대부분 자신이 맡은 파트를 쓰는데 말이지요.~

그룹 <마그마>는 리드보컬 연세대학교 지질학과생이던 '조하문'이 같은 대학 불문학과생이던 '김광현'과 의기투합하여 결성이 됩니다. '김광현'은 "라이너스"의 베이시스트인 '문영삼'의 동생인 서울대 경영학과생인 '문영식'을 영입하면서 <마그마>의 3인조 그룹 라인업을 완성합니다. 명문대생으로만 구성된 3인조 트리오라... 흐흠...

[ CD 내지에 수록된 마그마 멤버 - 좌측(문영식), 우측뒤(조하문), 우측앞(김광현) ]

이들은 1980년 MBC대학가요제에 출전하여 "해야"로 대박을 터트립니다. 강력한 헤비사운드로 말이죠. 폭발적인 샤우팅과 현란한 일렉트릭 기타 연주, 사이키델릭한 분위기의 사운드가 어우러진 "해야"는 은상을 수상하게 되는데 여기에도 말이 많았다죠.. 그 해의 그랑프리는 연세대 의대생 듀오인 "이범용과 한명훈"의 "꿈의 대화"였습니다. <마그마(MAGMA)>의 데뷔앨범은 대학가요제 이듬해인 1981년에 출시가 됩니다. 하지만 이 앨범이 출시되자마자 고별앨범이 되었죠. 앨범 발표후 그룹은 해산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룹의 리드보컬인 "조하문"은 1987년 솔로 데뷔 앨범을 내는데 앨범에는 "마그마 조하문"이라고 해서 출시합니다. 최대 히트곡인 "해야"도 물론 수록했구요. 사운드가 많이 변화되었긴 했지만요... 이후 솔로로 4집까지 앨범 내지만 1집만큼의 인기를 얻지는 못했죠...

개인적으로 볼 때 <마그마>의 앨범은 다양한 평가를 받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1980년대의 출현한 한국의 전설적 밴드로 회자되고 있고 한국에서 최초의 Hard Rock Album으로 평가받기도 하며,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에도 선정되었죠. 구입한 CD는 2004년 리버맨뮤직이라는 음반사에서 출시한 것인데 CD 포장비닐 안에는 일본에서 유행했던 간지 같은게 있었는데 거기에도 영문으로 그에 대한 내용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들이 앨범을 출시하게 된 사연도 참 재밌더군요. 대학가요제에서 강력한 헤비 사운드와 폭발적인 고음 샤우팅 창법, 신들린 기타연주 구성된 <해야>로 관객들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 넣은 것은 물론, 청년층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고 합니다. 수많은 공중파 방송에 출연하여 대중적인 인지도는 얻었지만 멤버들중 2명은 졸업 후엔 직업 가수로 활동할 생각이 없었답니다. 다만 졸업하기 전에 기념으로 음반을 남기자고 멤버들끼리 합의했었다는군요. 그 결과가 힛트레코드사에서 발매된 마그마 1집, 바로 이 앨범입니다.

앨범에는 총 9곡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지금이야 이러한 사운드가 드물지 않지만 1980년이라는 시대를 생각하면 상당히 충격적인 사운드였을 겁니다. 사이키델릭하면서도 헤비한 사운드가 무척이나 매력적인 곡들이죠. 제 귀로 듣리론 그룹의 사운드는 "산울림" 느낌이 강한데 창법은 그보다 훨씬 헤비메탈에 가깝지 않았나 싶습니다. 게다가 "잊혀진 사랑"이나 "알수 없어"와 같은 곡에서는 Italian Progressive Rock의 느낌까지 느껴지구요. "탈춤"에서는 다양한 이펙터들을 사용하여 사이키델릭 사운드의 진수를 탁월한 연주력을 통해 들려주고 있습니다. 약관의 나이에 대단하죠.. 수록곡들 모두 다 멤버들이 직접 작곡하였는데 "해야"와 연주곡인 "탈춤"을 제외한 나머지 7곡을 '조하문'이 작곡하였고, "탈춤"은 '김광현'이, "해야"는 '조하문'과 '김광현'이 공동 작곡한 것으로, 작사는 '조하문'이 전부 한 것으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잊혀진 사랑"의 경우엔 가사가 인생을 생각케 해주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앨범 발표 이후 '김광현'과 '문명식'은 각각 프랑스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고 합니다. 지금 세대들에겐 절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라 여길 것 같단 생각이 드는데 명문대 출신이라 그런건가요? 그들은 지금은 어디서 뭐하면서 지내는지가 궁금해집니다... 당시 한국 음악계에서 새로운 사조를 보여준 그룹이었지만 단 한장의 앨범만 남기고 바로 해산했다는게 참... 만약 "서태지와 아이들"이 1집 "난 알아요"만 내고 해산했다면 한국 음악산업이 지금과 같이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겹쳐지면서 많이 아쉬워집니다. Hard Rock이나 Heavy Metal이 한국 문화계에서 대중화와 일반화가 되었을 수도 있을테니 말이죠... 갑자기 이렇게 말했던 사람이 생각납니다. "헤비메탈? 그게 사람이 들을 소리냐? 개도 싫어하겠다.". 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죠.ㅋㅋ

Rough Translation with Google Translate:

Magma "MAGMA (Self Title Debut Album)"

MAGMA (1980-1981)

Vocal & Bass: Cho, Ha-moon (Department of Geography, Yonsei University)

Guitar: Kwang-Hyun Kim (Yonsei University)

Drum: Moon Young-sik (Seoul National University)

They will release this album that we have forgotten for a while. This is the self-titled debut album of the campus band Magma, which won the silver award at the 4th University Song Festival in 1980. Strangely, the leader of the group, 'Joha-moon', remembers that it was a hot topic because he didn't have this album. It shows colleges and departments. Usually when you look at the albums released by the group, most of them write their part.


The group Magma is formed by joining the lead vocal at Yonsei University's geology student, Cho Ha-moon, and Kim Kwang-hyun, who was a student at the same university. Kim Kwang-hyun completes the three-member group lineup of Magma by recruiting Moon Young-sik, a management student at Seoul National University, the younger brother of Moonlin, a bassist in Linus. Trio consisting of only prestigious college students ...


[Magma members on the CD are -Left (Moon Youngsik), Right Back (Chao Hamun), Right Front (Kim Kwang-hyun)]


They entered the MBC College Song Festival in 1980 and hit the jackpot with a Powerful heavy sound. The combination of explosive shouts, brilliant electric guitars, and psychedelic sounds, "Hah" won a silver prize. MAGMA's debut album was released in 1981, the year after the college song. But as soon as this album was released, it became a farewell album. The group was disbanded after the album was released. The group's lead vocalist "Jo Xiamen" releases his solo debut album in 1987, which is released as "Magma Jo Xiamen." Of course, he also recorded the biggest hit song "Hoo". The sound has changed a lot, but since then I have released four albums as a solo, but it did not get as popular as one.


Personally, I think that Magma's album has received various evaluations. It is said to have emerged as a legendary Korean band that emerged in the 1980s, and has been evaluated as the first hard rock album in Korea.


The CD that I purchased was released by Liveman Music in 2004, and there was a kind of kanji that was popular in Japan in the CD packaging vinyl. It was also interesting how they have re-released the album first.


At the University Song Festival, <Heavy>, was composed of powerful heavy sound, explosive treble shouting technique, and godly guitar performance, which attracted the audience into the crucible of enthusiasm and became explosive popularity among young people. They appeared on numerous airwaves and gained public recognition, but two of the members had no intention of becoming a professional singer after graduation. But before the graduation, the members agreed to leave the record in memory. The result is the first album released by Hit Trecord.


The album contains a total of nine songs. It's not uncommon for now, but it must have been quite shocking given the 1980s. The psychedelic and heavy sound is very attractive. The sound of the group in my ears has a strong "mountain ringing" feeling, but I think the window technique is much closer to heavy metal than that. Plus, songs like "Forgotten Love" and "I Can't Know" give you the feel of Italian Progressive Rock. "Dal-dance" uses a variety of effects to convey the essence of psychedelic sound through excellent performance. It's great at the age of the terms and conditions. All of the songs are composed by the members themselves. 'Joha-moon' and 'Kim Kwang-hyun' are co-composed, and lyrics are written by Jo-ha-moon. In the case of "Forgotten Love," the lyrics remind us of life.


However, after the release of the album, 'Kim Kwang-hyun' and 'Civilization' went to study in France and the United States, respectively. I think it's something I don't understand for generations, but you're from a prestigious university? They are curious about where they are doing now ... It was a group that showed a new trend in the Korean music industry at the time, but it was dissolved right after leaving only one album. If it was dissolved, it would be very sad that the Korean music industry would be as it is now. Hard Rock or Heavy Metal may have become popular and generalized in Korean culture. "Heavy metal? Is that what people hear? I don't like underdogs." He may now think this way."


https://www.mk.co.kr/news/culture/view/2019/08/658931/


그 시절 용암같이 뜨거웠던 `마그마`의 `해야`

1980년 대학가요제 은상 출신

[스쿨오브락 - 120]대표적인 대학가요제 출신 스타로는 신해철이 있다. 밴드 무한궤도를 이끌고 혜성같이 등장한 그는 대상 타이틀을 거머쥐면서 가요계에 화려하게 데뷔했다. `록 키즈`였던 그는 솔로 시절 `꽃미남` 발라드 가수로 활동하다가 훗날 그룹 `넥스트`를 결성하고 끓어오르던 록 본능을 여과 없이 발휘한다. (신해철은 이런 걸로 주목받는 걸 매우 싫어했지만) 무한궤도는 서강대 연세대 서울대 등 명문대 출신이 총집결해 만든 밴드로 화제를 모았다.

그들이 1988년 대학가요제에 출전해 `그대에게`로 대상을 따내기 훨씬 전 비슷한 콘셉트로 주목받았던 밴드가 있었다. 명곡 `해야`를 남긴 밴드 마그마가 주인공이다. 마그마는 조하문 김광현 문영식 3명으로 이뤄진 라인업으로 1980년 대학가요제에 나가 은상을 차지했다. 서울대와 연세대 출신으로 이뤄진 밴드였다. 마그마의 `해야`는 동시대에 나온 서양 하드록 넘버와 견줄 만한 수작이었다. 아마추어 이상의 실력을 자랑했다. 능숙한 솔로 플레이로 곡을 화려하게 만드는 김광현의 기타, 칼박을 자랑하는 문영식의 드럼은 이들이 대학생인지 전문 세션맨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프런트맨 조하문은 특유의 무표정으로 베이스를 치며 상당한 수준의 보컬 능력을 과시했다. 조하문은 그 시대에 흔치 않게 두성 발성으로 고음을 올리는 보컬 중 하나였다. 당시는 지금처럼 보컬트레이닝이 활성화된 시기도 아니었다. 유튜브만 들어가면 볼 수 있는 보컬 강좌도 그때는 전무했다. 오로지 서양의 발성을 수없이 카피하면서 얻은 능력이라 할 것이다. 이들은 단 한 장의 앨범만 내고 해체했지만 이들이 미친 영향력은 크다. 포크가 주류였던 당시 밴드 문화에 하드록, 헤비메탈을 들고 관심을 끌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워주었다(이런 측면에서 무한궤도의 성공 역시 마그마의 발자취에 일부 기댄 점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해야는 발표된 지 거의 4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무대에 종종 올려지며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다.

(좌측부터)문영식, 조하문, 김광현/사진=나무위키

사진설명(좌측부터)문영식, 조하문, 김광현/사진=나무위키

어둠 속에 묻혀 있는 고운 해야

아침을 기다리는 애띤 얼굴

어둠이 걷히고 햇볕이 번지면

깃을 치리라

말간 해야 네가 웃음지면

홀로라도 나는 좋아라

어둠 속에 묻혀 있는 고운 해야

아침을 기다리는 애띤 얼굴

해야 떠라 해야 떠라

말갛게 해야 솟아라

고운 해야 모든 어둠 먹고

애띤 얼굴 솟아라

눈물 같은 골짜기에

서러운 달밤은 싫어

아무도 없는 뜰에

달밤이 나는 싫어라

후략

대학가요제에서 마그마가 연주한 이 곡은 크게 두 가지 면에서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첫 번째는 중간에 기타 솔로를 주무기로 삽입된 연주 구간이었다. 프로 밴드 못지않게 곡을 끈적끈적하게 끌고가면서 특유의 속도감을 잃지 않았다. 아마추어 대학생이 만들었다고 보기에는 쉽지 않은 도전과 곡 배치였다. 두 번째는 곡 후반부 `아마도 없는 뜰에` 구간부터 터져나오기 시작하는 조하문의 두성이다. 잘생긴 얼굴로 별 표정 변화 없이 빠르게 손가락을 놀리면서도 얼굴 내부 공명을 활용해 두성 음질의 곡을 뽑아내는 조하문의 단단한 샤우팅을 놓고 호평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대학가요제 이후 단숨에 스타로 발돋움한 이들은 군 문제 등에 걸려 갈등하다가 결국 앨범 하나만 내고 해체하기로 한다. 해체 이후 리드 기타 김광현은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그는 불문과였다) 박사학위를 받고 대구대에서 교수로 활동 중이다. 드러머 문영식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한국 경제연구소 등에서 근무했다고 한다.

해체 이후에도 대중의 시선에 머물러 있던건 조하문이었다. 대중은 그의 탁월한 보컬 역량을 곁에 두고 싶어했다. 그는 대중에게 인기를 끌 만한 훤칠한 키와 야성적인 마스크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발라드를 부르는 솔로로 변신해 `내 아픔 아시는 당신께` `이 밤을 다시 한번` 등의 히트곡을 뽑아내는 인기 가수로 발돋움한다(조하문의 곡을 카피해 무대에 올린 가수 면면만 봐도 당시 그의 인기를 알 수 있다. 서문탁 홍경민 몽니 정동하 이석훈 등의 쟁쟁한 가수가 여전히 그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

당시 그는 방송사 섭외 1순위에 꼽힐 만큼 대중성을 자랑했다. 하지만 그는 "당시의 조하문은 인기에는 별 관심이 없었고 그저 음악이 좋았던 청년"이라고 회고한다. 그러면서 "남들 눈에 내가 어떻게 비칠지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말도 시키는 말 외에는 별로 하지 않았던게 사실이다. 음악이 좋았을 뿐 엔터테이너로서의 기질은 없었던 것이다. 이제와서 생각해 보면 교만이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천성적으로 자신에 대한 포장에 능숙해야 하는 연예인의 삶과는 맞지 않았던 셈이다. 그래서 그는 젊은 시절 대마초도 접하고, 공황장애에 시달려 자살을 생각할 정도로 망가져 간다.

지금 조하문은 목사로의 삶을 살고 있다. 뒤늦게 신학교에 입학한 그는 캐나다로 건너가 목회활동을 하다가 현재는 한국의 한 교회 담임목사로 활동 중이다. 교회 외에서 그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건 주로 기독교 방송뿐이다. 그는 화려했던 20~30대 삶을 `힘들었다`고 표현하고 목사로의 현재의 삶에 대한 `감사`를 얘기한다. 사실 그의 커리어 후반부에 나왔던 `내 아픔 아시는 당신께`에서 나오는 `당신`은 중의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어둠을 헤치는 세월은 말없이 흘러만 가는데

지나간 시간이 서러워 한없는 눈물만 흐르네

그러던 어느 날 사랑을 만났네

누구도 느낄 수 없는

내 아픔 아시는 당신께 내 모든 사랑드려요

이 눈물 보시는 당신에게 내 마음드려요

어느덧 구름은 걷히고 따스한 햇살이 내게로

젖었던 내 마음 마르고 파아란 하늘이 감싸오네

이제는 나는 사랑을 배웠네

누구도 느낄 수 없는

내 아픔 아시는 당신께 내 모든 사랑드려요

이 눈물 보시는 당신에게 내 마음드려요

내 아픔 아시는 당신께 내 모든 사랑드려요

이 눈물 보시는 당신에게 내 마음드려요

여기서 나오는 `당신`은 곡 발표 직후에는 `연인` 정도로 해석됐지만 지금은 그가 신앙을 염두에 두고 `당신`을 `절대자`로 가정해 쓴 곡이라는 해석이 우세하다. 한마디로 대중가요를 가장한 `CCM`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에게 목사라는 운명은 처음부터 정해졌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가 한국 록 역사에 중요한 이정표를 세운 밴드를 이끌었고, 또한 한때 정말 좋은 가수였다는 사실이 부정되지는 않을 것이다.

[홍장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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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ma` of` magma` that was like hot as lava in those days, back in 1980, duding its Song Festival.


[School of Rock-120] A representative star of the university music festival is Shin Hae Chul. Leading the band's caterpillar and appearing as a comet, he made his debut in the music scene, winning the title of the contest. As a rock kid, he worked as a soloist and handsome ballad singer. He later formed the group Next and showed off his rock instinct without filtration. (Shinhaecheol did not like attracting attention for this kind of thing.) Wuhan orbit is a band made by a group of prestigious universities such as Sogang University, Yonsei University and Seoul National University.


There was a band that attracted attention with a similar concept long before they took part in the University Song Festival in 1988. The main character is the band Magma who left us the famous song 'Hah'. Magma won the Silver Prize at the 1980 Song Festival in a lineup of three artists, Kim Kwang-hyun and Moon Young-sik. It was a band composed of Seoul National University and Yonsei University. Magma's 'Hah' was a masterpiece comparable to the Western hard rock numbers of his time. Boasted more than amateur. Kim Kwang-hyun's guitar and Kwang-bak's drums, make the song gorgeous with skillful solo plays, and were confusing whether they were college students or professional session men. Frontman Jo Ha-moon hits the base with his distinctive expressionless expression, demonstrating a significant level of vocal abilities. Jo Xia-Moon was one of the most unusual vocalists in the era. At the time, vocal training was not as active as it is now. At that time, there was no vocal course that you could see if you entered YouTube alone. It will be said that only the ability to gain the number of copies of the Western utterance. They disbanded only one album but had a big influence. When Folk was the mainstream, it reminded me of the band's culture that could attract attention with hard rock and heavy metal (in this respect, the success of the caterpillar could not deny any part of Magma's footsteps). It has been almost 40 years since it was announced, but it is still on stage and continues to live.


It Should be fine to be buried away in the dark

when a A pretty face is waiting for you the morning

When the darkness is lifted and the sun spreads

it Will strike the feathers

I love it when you laugh

It Should be fine to e buried in the dark

when A pretty face is waiting for you the morning

I have to float I have to float

You have to grow red

You must be fine to eat up all the darkness

A rising face

In the valley of tears

I hate the sad moonlit night

In the garden of my soul I really don't like these moonlit nights

This song, played by Magma at the University Song Festival, was a big topic in two ways. The first was a section in which the guitar solo was inserted into the main weapon. It's as sticky as the pro band, and it doesn't lose its speed. It was a challenge and song arrangement that was not easy for an amateur college student to make. The second one is Jo Ha-moon's Doo-sung who starts bursting from the end of the song in the "probably no courtyard" section. A handsome face began to rave about Jo Ha-moon's solid shouting, which makes quick voice teasing without changing his facial expressions, but uses the internal resonance to extract songs of two voices.


After the college song festival, they became a star at once and struggled with military problems. After the breakup, Reed Guitar Kim Kwang-hyun left for study in France (he was a French professor) and received a Ph.D. Drummer Moon Young-sik went to the US to study at the Korea Economic Research Institute.


It was Jo Hamun that stayed in the public eye even after the dissolution. The public wanted to have his outstanding vocal skills aside. He also had gilded keys and wild masks that would be popular with the public. He transforms himself into a singer who sings ballads and becomes a popular singer who draws hit songs such as 'To You Who Know My Pain' and 'This Night Again'. Popular singers such as Seo Moon-tak, Hong Kyung-min, Hongni, Jung Dong-ha and Lee Seok-hoon are still singing his songs).


At the time, he was so popular that it was ranked as the number one broadcaster. But he recalls, "At that time, Xiamen was not interested in popularity and was just a good young man." He said, "I didn't care much about how others would see me. So I didn't say much except for words. It was good music, but I didn't have the temperament as an entertainer. It didn't fit the life of a celebrity who had to be good at packing herself. So he encounters cannabis as a young man and suffers from panic disorder and is ruined to think about suicide.


Jo Ha-moon is now living as a pastor. Later in the seminary, he went to Canada to work as a pastor and is now a pastor in a church in Korea. Outside of the church, his only appearance is mainly Christian broadcast. He expresses his struggling life in his 20s and 30s and talks about gratitude for his present life as a pastor. In fact, 'You', which comes out of 'To You Knowing My Pain', which appeared later in his career, has a double meaning.


The years that go through the darkness flow silently

The past time is so sad, with tears that are falling

Then one day I met love

No one can feel

the pain I knew,

I love you all my love

I give you my heart

when you see these tears

The clouds are lifted up and the warm sunshine comes to me

My wet heart is surrounded by a dry blue sky

No one can feel

the pain I knew,

I love you all my love

I give you my heart

when you see these tears

I know my pain, I love you all my love

I give you my heart when you see these tears


'You' is interpreted as 'lover' right after the song is released, but now he is presumed to be a song that he assumed 'you' as an 'absolute' with faith in mind. In short, it is likely that it is 'CCM' disguised as a popular song. For him, the fate of a pastor may have been determined from the beginning. Nevertheless, it will not be denied that he led a band that marked an important milestone in Korean rock history and was once a really good singer.


[Hong Jang Won reporter]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mode=view&artid=200712201603161&code=900307


[대중음악 100대 명반]33위 마그마(Magma) ‘Magma’

-파격적 노래 ‘하드록의 전설’-

지금의 대학가요제와 1970년대 후반~80년대 초반의 대학가요제 수준이 상당히 다르다는 것은 이제 거의 상식에 가깝다. 지금의 대학가요제가 대학생들의 뽐내기 잔치 혹은 학예회 수준이라면, 그 시절의(강변가요제, 해변가요제 등을 모두 포함한) 대학가요제는 말 그대로 새로운 뮤지션들의 등용문이나 같았다. 박정희 정권 하에서 벌어졌던, 대마초 파동과 금지곡으로 대표되는 가요정화운동은 내로라하는 기존의 가수들을 대부분 ‘은둔’하게 만들었고, 대학가요제에 등장했던 젊은 대학생들은 그 시기와 묘하게 맞물리며 선배들의 빈자리를 대신 할 수 있었다. 활주로, 블랙 테트라, 열기들, 김수철, 김학래 등은 그렇게 각 대학가요제들을 통해 처음 등장하였고 이후 80년대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였다.

마그마 역시 이런 대학가요제, 그리고 80년대의 한국 대중음악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밴드이다. 흔히들 마그마를 가리켜 한국 헤비메탈의 효시라는 평가를 내린다. 그만큼 당시 마그마처럼 하드한 록 음악을 구사하는 밴드는 드물었다. 아니, 이후 티삼스가 ‘매일매일 기다려’라는 노래로 87년 강변가요제에 나오기 전까지 이런 ‘센’ 음악을 하는 대학생 밴드는 거의 없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의 무겁고 날카로운 하드 록·사이키델릭 사운드는 당시 많은 음악마니아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줬고, 이 앨범을 거의 ‘전설’의 수준으로 올려놔줬다(물론 이 전설의 배경에는 여간해선 구하기 어려웠던 앨범의 희소성도 큰 역할을 하였다).

이들의 음악은 한마디로 그때까지 한국에선 들을 수 없던 음악이었다. 동시대의 캠퍼스 그룹사운드들은 록과 가요의 경계에 서있는 음악을 주로 구사하였고, 그외의 기성가수들은 포크 음악 또는 트로트 음악을 하고 있던 시절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마그마는 기성세대에게 어쩌면 소음으로 인식될 수도 있는 ‘해야’란 노래를 가지고 대학가요제 무대에 섰다. 그 무대에서 들려준 ‘해야’의 드라마틱한 구성과 조하문의 강렬한 샤우팅은 지금껏 유래가 없는 것이었다. 대학가요제 심사위원단은 이 파격적인 노래에 은상을 수여하였고, 마그마는 이듬해 여러 우려와 기대를 동시에 안은 채 정규 앨범을 발표하였다.

그렇게 발표된 정규 앨범은 ‘해야’를 듣고 품었던 많은 음악 마니아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조하문은 한 곡을 제외하고 앨범 안의 모든 곡을 만들며 앨범의 방향을 주도했으며, 그의 강렬한 샤우팅 창법은 그를 한국 헤비메탈 보컬의 계보 맨 앞자락에 놓는다 해도 그리 의아하지 않을 수준의 것이었다.

또한 기타리스트 김광현은 적절하게 이펙터를 활용하며 하드 록·사이키델릭의 어법에 충실한 연주를 들려주었다. 조하문의 파격적인 샤우팅과 김광현의 강렬한 기타 연주까지 마그마의 모든 에너지가 결집돼 있는 ‘아름다운 곳’은 한국 헤비메탈의 효시라 평가하기에 충분한 곡이고, 심야 라디오 방송에서 꾸준히 리퀘스트되며 마그마의 전설에 큰 역할을 한 ‘잊혀진 사랑’은 한국 록의 역사에 길이 남을 명곡이다.

또한 제목 옆에 붙어있는 ‘경음악’이라는 표기를 비웃기라도 하는 것처럼 시종일관 무겁고 날카롭게 펼쳐지는 연주곡 ‘탈출’에서 김광현의 사이키델릭한 연주는 김수철의 ‘어둠의 세계’에 필적할 만한 명연이었다.

마그마는 이 한장의 앨범 이후 해체하였고 다소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조하문은 ‘이 밤을 다시 한번’과 ‘눈 오는 밤’을 부르며 솔로 가수로서의 활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보다 더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 조하문은 목회자가 되어 있다. 지금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전하는 데 인생의 가장 큰 가치와 의미를 두고 살아가고 있겠지만, 그가 청년 시절에 들려줬던 이 놀라운 음악 역시 한국대중음악 역사에서 큰 의미를 지니고 있는 ‘록의 복음’이었다.

〈김학선|웹진 가슴 편집인〉

[대중음악 100대 명반]33위 마그마(Magma) ‘Magma’

◇마그마 프로필

Translation:


Magma: ‘Magma’, ‘Legends of Hard Rock’


It is almost common sense that the current level of college music and the level of college music in the late 1970s and early 80s are quite different. Where the current college song is at the level of the jubilant feast or academic society of college students, then the college song of the time (including riverside songs, beach songs, etc.) was literally the entrance door for new musicians. The song purification movement, represented by cannabis waves and banned songs, under the Park Chung Hee regime, made most of the existing singers 'recluse', and the young college students who appeared in the college song festival were able to intertwine with the period and take the place of seniors. Runway, Black Tetra, Fever, Kim Soo-chul, and Kim Hak-rae first appeared in each of the college songs and later played a pivotal role in Korean pop music in the 80s.


Magma is also an indispensable band when it comes to college music festivals and Korean pop music in the '80s. It is often said that magma is the filial piety of Korean heavy metal. At that time, few bands used rock music as hard as magma. It is no exaggeration to say that there were very few college student bands doing this “Sen” music until Tsams came to the riverside music festival in 1987 with the song “Wait every day.” Their heavy, sharp hard rock and psychedelic sound gave a fresh shock to many music enthusiasts at the time and raised the album to almost "legendary" level (although the scarcity of the album, which was difficult to find in the background of this legend) Played a big role).


In short, their music was unheard of in Korea. The contemporary campus group sounds mainly used music standing on the border between rock and music, and other established singers were folk or trot. In this situation, Magma was on the stage of a college song with a song ‘야’, which may be perceived as a noise by older generations. The dramatic composition of ‘야’ and the intense shouting of Jo Ha-moon told the stage had no origin. The college song jury awarded a silver medal for this extraordinary song, and the following year Magma released a regular album with many concerns and expectations.


The released album did not disappoint the expectations of many music enthusiasts who listened to ‘야’. He made all the songs in the album except one, leading the direction of the album, and his intense shouting technique was unsurprising if he placed him at the top of the genealogy of Korean heavy metal vocals.


In addition, guitarist Kim Kwang-hyun played the sound with the effect of hard rock and psychedelic, using the appropriate effects. 'Beautiful Place', which combines all the energy of magma, including Jo Ha-moon's exceptional shouting and Kim Kwang-hyun's intense guitar performance, is enough to be evaluated as the filial piety of Korean heavy metal. 'Forgotten Love' is a masterpiece of Korean rock history.


In addition, Kim Gwang-hyun's psychedelic performance was comparable to Kim Soo-chul's “Dark World,” as he ridiculed the “light music” label next to the title.


Magma dismantled after this one album, and after a while, Jo Ha-moon began his career as a solo singer, singing 'this night again' and 'snowy night'. And now, even longer, Jo Ha-moon is a pastor. He may now live with the greatest value and meaning of life in preaching the words of Jesus Christ, but this amazing piece of music that he played as a young man was also called “The Gospel of Rock,” which has great meaning in Korean pop music history.


Kim Hak Sun | Webzine Editors


[Magazine] Magma ‘Magma’ ◇ Magma pro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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