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국환 - Myeong Kook-Hwan / 明 國 煥


Several tracks can be found on:

유성기로 듣던 가요사 두번째 / The second gratin of Meteor Singers (1945~1960) [Disc 3]

* 8 공주(公主)의 비련(悲戀) / Princes of Princesses (guitar & accordion)

9 구원(久遠)의 정화(情火) / Purification of Salvation (guitar & accordion)

10 마도로스 초년병(初年兵) / First year's Soldier

* 11 내 고향으로 마차는 간다 / The carriage goes to my hometown. (carriage sounds, jazz)

12 방랑시인(放浪詩人) 김삿갓 / Wandering poet Kim Satgat

13 흐르는 백마강(白馬江) / Flowing White Horse River

14 남산(南山) 나그네 / Namsan (Southern Mountain) Traveller

15 서러운 금요일(金曜日) / A bitter friday (tango)

16 봄비 내리는 주막(酒幕) 집 / Jumak House with Spring Rain

A first favourite is "Princess of Princesses", sung with slow vibrating old man's voice, accompanied by accordion and acoustic guitar, all in a very slow mode which is like a depressed tango that does not come its inner passion outwardly. It has enough emotional depth to convince with it. The second track, with the same instruments slightly speeded up the tone, which turns the blues into a tone closer to a happy one, remaining in the nostalgic mode of a country-folkloristic sounding form of trot music. The next track clearly is a war-related trot song (with trumpet themes referring to the army and a certain direction towards a marching rhythm), an in that way very time-framed song. The carriage song is original because its foundation is an arranged and orchestrated carriage rhythm. "The Wandering Poet" is a nice mainstream trot song with nice melody and catch. The track after that is convincing enough mainstream trot with accordion lead and different extra arrangements. Also "Namsan Traveller" is trot music with a wandering spirit. "A bitter Friday" is tango-styled, led by accordion and string orchestra. The last track has also a certain variety of orchestration, still is basic mainstream trot music.

가요(歌謠) 박물관 / Music Museum: 220 Best

CD1-2 방랑시인(放浪詩人) 김삿갓 / Wandering poet Kim Satgat (1957)

This track should be most representative for this singer. It is a mainstream trot track with worked out arrangements. The singer's voice leads the song well, but stylistically has not much out of the ordinary, except that it sounds yes let's say ... nice. I still won't recommend or present it without a reason to foreigners.

CD9-16 주유천하 / Oiling (?) the earth (1962)

This a bit more contemplative trot track.

도미도 베스트 컬렉션 100 VOL.1 / 50-60 Domido (5CD)

CD1 16 백마야 우지마라 / White horse, Ujimara

This mainstream trot track has organ as lead instrument, mainstream rhythms and studio thoughts of idea for lush mostly string-based orchestrations.

* CD2 2 아리조나 카우보이 / Arizona Cowboy

"Arizona Cowboy" is of course an American country-based song. It is nice to hear something different. It is light pop music. Myeong Kook-Hwan's voice fit well to this style.


Only underlined tracks without * can be considered rather interesting tracks as well. I hesitated to consider this a must to check out, but it is a bit too much fun to leave out.

CD2 9 The carriage goes to my hometown

This is a later version of the previously listed track, in a more commercially arranged and with bigger orchestra, the song turned into mainstream trot.​ It didn't improve.

A few songs that are worth checking out but that I did not find on any of the compilations are for certain the following ones:

부두의 비가 / Rain of the pier -exotic-

* 이별의 서울역 / Parting Seoul -tango-


"Rain of the Pier" is I think a rumba with congas, brass, accordion and violins. Here Myeong Kook Hwan's voice fits well too with a certain warm power to a baritone undertone. "Parting Seoul" is a tango led by piano, trumpet and accordion is worth tracing as well. I heard lots of trot tracks from the singer too, which are more mainst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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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OGRAPHY:

Parts roughly translated from Wikipedia:

Myeong Kukhwan.


Born January 9, 1933. Professional singer, Genre Trot. Activity Period 1947 ~ Present.


Born in Yeonbaek, Hwanghae-do. He won the competition in 1947, and when the Korean War broke out in 1950, he left his family and joined the Marine Commando in 1951, where he set up military forces in various battles. Later, in 1954, he made his debut with the song 'White Maya Uji Mara', "Arizona Cowboy", "Hakdo'' and `"Hope''. He received the 39th Singer Day Achievement Award in 2005 and the 5th Korean Popular Culture Award in 2014. His granddaughter is currently a trot singer and works under the title 'Lira'. His most representative song is "Wandering poem Kim Satg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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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newsmaker.or.kr/news/articleView.html?idxno=47409


[박성서 평론] ‘방랑시인 김삿갓’의 가수 명국환의 삶과 노래

술 한 잔에 시 한 수, 노래 한 자락으로 시대를 함께 하다

2017년 07월 10일 (월) 14:57:40박성서 webmaster@newsmaker.or.kr

‘백마야 울지 마라’를 시작으로 ‘방랑시인 김삿갓’, ‘내 고향으로 마차는 간다’, ‘아리조나 카우보이’ 등으로 우리나라 1950년대와 60년대 가요계를 풍미했던 원로가수 명국환(84세).

1.4 후퇴 당시 열여덟 살의 어린 나이로 월남, 8240 KLO 정훈국 공작대원으로 활동하며 한국전쟁 당시 서부전선을 지켰다. 이후 명국환은 다양한 장르의 노래로 가요사에 큰 획을 긋는다.

때로 서민의 삶을 진지하게, 때로는 이국적인 정서가 물씬 풍기는 50년대식 멋과 낭만을 구사해온 그. ‘주유천하’, ‘거지왕자’, ‘한석봉’ 등 그가 발표했던 많은 드라마주제가와 영화주제가들 속에도 당시 국민들의 삶이 절절히 녹아있다. 궁핍했던 시대의 위로와 희망, 그 힘겨운 시대를 노래와 함께 건너온 가수 명국환. 지금은 비록 혼자지만 음악으로 인해 결코 외롭지 않은 삶을 살았다고 회고하는 외곬인생, 원로가수 명국환의 과거, 그리고 지금 살아가는 이야기.

글 Ⅰ 박성서(음악평론가, 저널리스트)

‘죽장에 삿갓 쓰고 방랑 삼천리...’방랑시인 김삿갓을 평생 노래하다

1. 죽장(竹杖)에 삿갓 쓰고 방랑 삼천리/흰 구름 뜬 고개 넘어 가는 객이 누구냐/열두 대문 문간방에 걸식을 하며/술 한 잔에 시 한 수로 떠나가는 김삿갓. 2. 세상이 싫든 가요 벼슬도 버리고/기다리는 사람 없는 이 거리 저 마을로/손을 젓는 집집마다 소문(笑文)을 놓고/푸대접에 껄껄대며 떠나가는 김삿갓. 3. 바랑에 지치었나 사랑에 지치었나/괴나리봇짐 지고 가는 곳이 어데냐/팔도강산 타향살이 몇몇 해든가/석양 지는 산마루에 잠을 자는 김삿갓. -‘방랑시인 김삿갓’ (김문응 작사, 전오승 작곡, 명국환 노래)

조선 왕조 철종 때의 방랑시인, 난고 김병연(蘭皐 金炳淵, 1807~1863)의 생애를 그린 영화 ‘김삿갓(1957년, 이만흥 감독)’의 주제가다. 풍자와 해학을 통해 피폐해가는 세상을 개탄한 방랑시인 김삿갓의 일생 중 가장 외로웠던 시기를 그린 영화다. 2000년 10월, 매년 ‘김삿갓 문화큰잔치’가 열리는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 입구, 노루목천에 이 ‘방랑시인 김삿갓’ 노래비가 세워졌다. 아울러 노래비에서는 항상 이 노래가 흘러나온다. 발표 이듬해인 68년 6월, 왜색가요로 금지(금지번호 304호)되기도 했던 ‘방랑시인 김삿갓’은 가수 명국환의 출세작인 동시에 가수로서의 영광과 고뇌를 함께 해온 노래다.

징집 피해‘여장’까지 했으나 결국 홀로 남게 돼 자원입대, 군예대원으로 전쟁터 누벼

명국환은 1933년 1월, 황해도 연백군 연안읍에서 부친 명원표(明元杓)와 모친 지입분(池立粉) 사이에서 3남 3녀 중 장남으로 출생했다. 1.4후퇴 때 피난 내려오기 전까지 인구 3만 명 규모의 이곳에서 청소년기를 보냈다. 1948년, 연안중학교 3학년 때 연안극장에서 열린 콩쿨대회에서 ‘남아일생(남인수)’을 불러 입상할 정도로 ‘노래 잘 부르는 소년’으로 통했다. 학교에서도 음악점수만큼은 ‘갑’이었다. 그러나 매우 엄하셨던 부친의 반대로 인해 가수의 꿈을 접어야 했다. 6.25 한국전쟁으로 명국환은 가족들과 함께 남쪽으로 피난길에 오른다. 이때 부친은 합류하지 못했다. 피난길에 징집을 피하기 위해 내무서원의 눈을 속이고자 누이 옷을 빌려 입은 채 ‘여장’까지 했다.

“피난길에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결국 혼자가 됐어요. 살아갈 길이 막연했죠. 할 수 없이 먹고사는 해결하기 위해 강화에 본거지를 둔 8240 KLO 유격부대 군위문대에 자원입대했죠.” 전쟁은 운명처럼 그렇게 그의 삶을 바꿔놓는다. 향토유격대인 육군 8240부대(8240 KLO)는 북파공작원 부대, 즉 H.I.D였는데 그는 이곳에서 정훈공작대원으로 서해안에 배치되었다.

“군 위문대였지만 전투요원이나 다름없었어요. 위험한 고비도 숱하게 넘겼고 모두 군복을 입고 무대에 섰지만 계급은 없었죠. 나중에는 멀리 속초, 원주 등까지 위문공연을 다녀야 했는데 그때 나는 주로 ‘남아일생’ 등을 불렀고 반공극 ‘나는 보았다’ 무대에도 섰던 기억이 나요.”

‘군번 없는 용사’로 전선을 누비던 명국환은 휴전이 되자 위문대가 해체되면서 서울로 온다. 이후 대한민국 제대장병보도회(이후 서울재향군인회)가 주최한 콩쿨대회에 참가, 당시 인기곡이었던 ‘전선야곡(신세영)’과 지정곡인 ‘마음의 사랑(박재홍)’을 불러 1등을 차지한다. 이 대회에서 3등을 차지한 인물은 이후 ‘백장미 일기’, ‘눈물의 구포다리’를 발표한 이갑돈씨로 현재 대한가수협회 원로가수회장을 맡고 있다.

“한 턱을 내라고 덤벼들 깡패들이 무서워 입상식이 끝나기 무섭게 뒷문으로 뺑소니를 쳤죠.” 그는 이 콩쿠르에서 입상한 뒤 곧바로 샛별악극단(단장 손기성)에 입단, 본격적인 연예인 활동을 시작한다. 당시 샛별악극단은 그가 군 복무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멤버들이 대부분이라 쉽게 적응할 수 있었다. 이 악극단에서 만난 가수 겸 배우 나애심의 소개로 그의 오빠인 작곡가 전오승을 만나게 되면서 비로소 데뷔곡인 ‘백마야 울지 마라’를 취입하게 된다. 가수 박경원과는 데뷔 동기다. 오아시스를 통해 발표된 SP음반 ‘백마야 울지 마라’ 뒷면에 수록된 곡이 박경원의 데뷔곡 ‘비애(悲哀)부르스’다.

백의민족에 전하는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 ‘백마야 울지 마라’

1. 백마는 가자 울고 날은 저문데/거치른 타관 길에 주막은 멀다/옥수수 익어가는 가을 벌판에/또 다시 고향 생각 엉키는 구나/백마야 백마야 울지를 마라. 2. 고향을 등에 두고 흘러가기는/내 신세 네 신세가 다를 게 없다/끝없는 지평선을 고향이거니/인생을 새 희망에 바라며 살자/백마야 백마야 울지를 마라. -‘백마야 울지 마라’ (강영숙 작사, 전오승 작곡, 명국환 노래)

한국전쟁 직후인 1954년에 발표된 이 노래는 어떠한 고난과 역경이 있더라도 백의민족으로써 내일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말자, 라는 메시지가 담겨있다. 또한 작곡가 전오승은 이 해에 첫딸을 얻는다. 바로 영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에서의 ‘옥희’ 역을 맡았던 깜찍한 아역배우 전영선이다. 이 첫 딸이 54년 백말 띠 해에 태어났기 때문에 이 걸 기념해 지었다는 에피소드도 함께 회자되었다.

이 노래로 명국환은 전성기를 구가하기 시작한다. 당시 HLKA(서울중앙방송국, 현 KBS 제1라디오)의 ‘노래 수첩’, ‘노래와 경음악’, ‘노래 파티’ 등 가요프로그램을 살펴보면 송민도, 나애심, 원방현 등과 함께 방송 출연을 거의 독차지했음을 알 수 있다. 아울러 1955년, 이갑돈, 임미란 등과 함께 전속가수로도 발탁되었다.

아울러 이 무렵 설립되는 신신레코드사(이후 신세기)에 작곡가 전오승과 함께 스카웃, 전속가수로 활동을 시작한다.

신세기로 스카웃된 전오승-명국환 콤비의 거침없는 히트 행진

전오승-명국환 콤비는 신신(신세기) 전속1호 작품인 ‘방랑시인 김삿갓’을 시작으로 ‘공주의 비련’, ‘백제왕의 최후’, 그리고 ‘내 고향으로 마차는 간다’ 등을 잇달아 발표하며 거침없는 히트행진을 이어간다. 또한 전속 이전에 발표했던 영화주제가 ‘구원의 정화’ 역시 음반으로 새롭게 제작된다.

동시에 유니버샬레코드사를 통해 발표한 ‘캬라반의 꿈(손석우, 손석우)’, ‘향수의 밤차(고명기, 박시춘)’, 박춘석 작곡의 ‘흐르는 백마강(백호, 박춘석)’, ‘아라비아 야곡(백호, 박춘석)’, 그리고 파라마운트레코드사를 통해 발표한 ‘아리조나 카우보이(김부해, 전오승)’ 등으로 거침없는 인기가도를 질주했다.

이 노래들은 모두 50년대 SP(축음기) 시대의 소중한 산물이다. 당시 우리나라 음반 산업은 전쟁 직후였던 터라 물자부족으로 아스테이트나 PVC같은 재료들이 턱없이 부족하던 때였고 또한 음반 제작 시설 또한 열악해 숯불을 직접 피워 원료를 녹이거나 동판을 제작하던 시절이라 음반을 한 장, 한 장 만들어낸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던 때였다.

특히 방음시설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 소음이 비교적 덜한 야간시간을 틈타 밤 새워 녹음해야 했을 만큼 많은 어려움이 뒤따랐다. 게다가 동시녹음 시절이라 취입하다 가사가 약간 틀려도 큰 문제가 없으면 그냥 OK사인을 냈다고 회고한다.

‘아리조나 카우보이’, ‘공주의 비련’등 노래만큼 사연도 많아

발표한 노래 숫자만큼이나 에피소드 또한 많다. ‘방랑시인 김삿갓’은 80년대 들어 전두환 전 대통령의 애창곡이라 해서 다시 한 번 화제가 되었던 노래다. MBC 정치드라마 ‘제4공화국’을 통해 그가 장교시절 이 노래를 특히 애창했다는 일화가 소개되면서 부터였다. 때문에 그가 퇴임할 때 일부 언론에선 ‘떠나가는 전삿갓’이라고 표현했을 정도. 또 다른 히트곡인 ‘아리조나 카우보이’도 한때 메이저리그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에서 활동했던 투수 김병현의 애칭으로 불려지기도 했다.

이렇듯 명국환은 다양한 소재의 노래들을 발표했다. ‘한석봉’, ‘이차돈의 한’, ‘논개의 비가’, ‘만고스님 서산대사’, ‘에밀레종’ 등 고전을 50년대식으로 해석해 발표했는가 하면 50년대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탱고 리듬의 ‘이태리의 정원’ ‘집시의 탄식’ ‘모정’ 같은 번안곡도 상당수 발표했다. 이 노래들을 통해 바이얼리니스트 문대항 등 50년대 음악인들의 명연주도 들을 수 있다. 50년대를 대표하는 가수였던 만큼 당시 국민들의 꿈, 이국에의 동경을 대신한 이국적인 가사와 멜로디의 노래도 많다. ‘알젠틴 탱고’, ‘캬라반의 꿈’, ‘아라비아 공주’, ‘버마의 옥피리’, ‘텍사스 카우보이’ 등이 그것이다. 또한 평민 출신의 대령과의 사랑으로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킨 영국 마가렛 공주의 비극적인 사랑을 그린 ‘공주의 비련’ 등도 당시 큰 사랑을 받았다.

명국환이 부른 드라마주제가 & 영화주제가들

라디오 드라마주제가와 영화주제가 역시 많이 발표했다.

1. 만승(萬乘)에 높은 자리 아우님께 사양하고/비웃음 손가락질 한잔 술에 잊으련다/푸른 풀 붉은 단풍 초야에다 몸을 묻어/하---- 너털웃음 휘파람에 한숨지네. 2. 금지(金枝)라 옥엽(玉葉)이라 귀하신 몸 오늘에는/떠도는 구름이냐 흘러가는 물이련다/지는 해 걷는 발에 늘어나는 주름살이/봄바람 가을비에 흰 수염이 향기롭네. -주유천하 (周遊天下, 조흔파 작사, 김호길 작곡, 명국환 노래)

양녕대군의 거짓 광태와 서민으로 위장한 채 궐 밖에서 주유천하하며 많은 미담 기화를 남긴 내용을 그린 영화로 1962년, 안현철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신영균, 최남현, 방수일이 출연했다. 라디오 드라마에서 양녕대군 역은 성우 이창환이 맡았다. ‘얄개전’으로 유명한 작가 조흔파(본명 조봉순) 극본에 김호길이 주제가를 작곡했다.

이외에도 명국환이 발표한 영화주제가들을 살펴보면, 조선 말기 기독교 신자들의 순교를 그린 ‘구원의 정화(1956년, 이만흥 감독)’, ‘김삿갓(1957년, 이만흥 감독)’, ‘지평선(1961년, 정창화 감독)’, ‘한석봉(1963년, 이만희 감독)’, ‘거지왕자(1963년, 안현철 감독)’, ‘백마고지(1963년, 김수길 감독)’, ‘훈장은 녹슬지 않는다(1966년, 박성복 감독)’ 등이 있다.

금지의 늪 딛고 작곡자로 변신

특히 당시 엄격한 동시에 한편 애매모호한 심의 기준으로 심적 갈등을 겪기도 했다. 특히 그의 최대 히트곡인 ‘방랑시인 김삿갓’이나 ‘청춘의 삼색 깃발’ 같은 노래들이 금지되면서 가수활동에 타격을 받는다.

“무엇보다 당시 심의위원들이 클래식, 즉 순수음악을 하는 인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대중가요에 적용되는 심의가 매우 엄격했어요. 이를테면 마이너 곡조, 즉 단조의 노래는 비탄조, 왜색조라며 제재시켰기 때문에 자연히 대중가요 작곡가들은 애조를 담은 곡들을 기피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했죠.” 당시 이러한 규제 때문에 대중들의 정서에 부합하는 노래들이 상대적으로 많이 나오지 못한 것이 늘 아쉽다고 그는 말한다.

그는 특히 지방공연을 비롯한 일선 장병 위문공연을 자주 다녔는데 당시 어려운 여건으로 인해 겪어야 했던 애환도 적지 않다. 일례로 지방공연을 갔을 때 한 순간 쇼 단장이 잠적해버려 개런티를 한 푼 받지 못한 채 갑자기 빈털터리 신세가 된 적도 다반사, 서울로 돌아올 차비조차 없어 열차 승무원에게 사정해 무임승차했던 에피소드도 있을 정도. 그런가 하면 반대로 모직회사나 방직회사 같은 곳에서 공연을 한 뒤 출연료 대신 당시 매우 귀했던 나일론 옷감이나 ‘아무리 신어도 떨어지지 않는다’는 00양말 등을 현물로 받아 주위 분들에게 선심 쓰기도 했던 일화는 되레 흐믓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60년대 들어 작곡가로 변신하기도 했던 그는 1965년 국제가요대상 10대 가수로 선정되기도 했다. 1965년, 동양TV의 후원으로 국제신보사가 주최한 제1회 ‘국제가요대상’에 10명의 후보로 선정된 것. 방송가요대상이 탄생하는 계기가 되는 이 국제가요대상은 모두 12개 부문에 걸쳐 시상되었는데 디스크 대상을 비롯하여 가요, 보컬그룹, 작곡, 작사 등을 선정, 시상했다. 이때 가요부문에 선정된 10대 가수로는 명국환씨를 비롯해 남일해, 박경원, 안다성, 최희준, 박재란, 이미자, 한명숙, 현미씨였다.

환갑 때, 자신의 삶을 돌아보다가 만든 노래 ‘아버지’

현재 한국참전예술인협회와 대한가수협회 원로가수회에 적을 두고 있는 그는 한때 원로가수들의 친목단체인 동심회(同心會)의 회장을 맡는 등 선후배 가수들의 친목과 권익 보호에 앞장 서왔다. 동심회는 70년대 초, ‘울고 넘는 박달재’의 가수 박재홍씨가 주축이 되어 곽규호, 김광남, 나애심, 최병호 등 14명의 원로들과 함께 발족한 모임으로 주로 불우한 이웃을 위한 위문공연 활동을 펼치던 친목단체. 아울러 대한불자가수회 회장을 맡아 불우이웃 돕기, 무의탁노인 돕기 자선공연 활동을 펼쳐왔다. 지난 2004년에는 대한민국 보관문화훈장을 서훈 받았다.

그는 북에 두고 온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로 만들었다. 60세 환갑 때 자신을 되돌아보다가 문득 만든 노래였다. “아버지 다시 한 번 불러 보고 싶어요/그때는 너무나 몰랐어요/아버지 용서해주세요/인자한 웃음도 사랑의 매도/너무나 고마워요 그리워져요/고독한 일생을 살다 가신/아버지 어디 계신가요.” -‘아버지 (명국환 작사, 작곡, 노래)

그는 현재 혼자다. “모두 네 번의 결혼에 실패했어요. 내가 바람기가 있는 것도 아닌데 계속 실패한 것은 아마 팔자소관인가 봐...”

현재 경기도 부천에서 홀로 지내는 그의 집을 방문한 사람은 필자가 처음이라고 했다. 갈수록 밖으로의 외출을 가급적 자제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결정된 인터뷰 장소였다. 때마침 며칠 뒤 KBS ‘가요무대’에 출연하게 되었다며 늘 입버릇처럼 말했듯 ‘여건이 허락하는 한 무대에서 최선을 다 할 것’임을 강조한다. “5개월 만에 서는 무대야, 어쩌면 이게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고... 내 노래가 어떨지는 사람들이 보고나서 판단하겠지.” -약간 설레면서도 긴장된 어조다. 그의 머리맡에는 이번 가요무대에서 부를 ‘삼각산 손님’ 악보와 기타 한 대, 그리고 라디오가 놓여있었다. 라디오는 자는 동안에도 계속 틀어놓는다고 했다.

노래가 그의 전부였듯 오로지 가수 활동에만 전념해온 원로가수 명국환, 그가 새삼 힘주어 말한다. “외롭지 않아요. 노래가 늘 나와 함께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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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lated with help of Google Translate (but with many mistakes still in):


Life and Song of Ming Kuk-hwan, a singer of 'The Wandering Poet's Kim Satgat'

[Park Seong-seo] A poem in a glass of wine. July 10, 2017 14:57:40


Myung Guk-hwan (now age 84), is a senior singer who enjoyed the Korean music industry in the 1950s and 1960s, began this with ‘Don't cry,’ ‘Wangsi-in Kim Satgat,’ ‘Wagon goes to my hometown,’ and ‘Arizona Cowboy’.


At the age of eighteen, he was a member of the Deputy General of the 8240 KLO Chung Hoon-kuk in Vietnam, defending the Western Front during the Korean War. Since then, Myung Kuk Hwan makes great strides in singing songs with various genres of songs.


At times, people have taken seriously the lives of ordinary people and have been using the 50's style and romance with exotic emotions. The lives of the people of that time are also melted in many drama and film themes he released, such as Juyu Chunha, Prince of Geography, and Han Seokbong. Singer Myung Kuk Hwan has come across the difficult times, the hopes and hopes of the times. Even though he is now alone, he is a lonely man who lives a life that is never lonely because of music.

Written by Park Sung-seo (Music Critic, Journalist)


-'Wandering Poet Kim Satgat' (Written by Kim Mun-eung, composed by Jeon-oh Seung, Myeong Guk-hwan): This is the theme song of Kim Sagat (1957, Lee Man-heung), which depicts the life of Nango Kim Byung-yeon (1807-1863), a wandering poet during the Joseon dynasty. It is a film about the lonely days of Kim Sagat, a wandering poem that mourns the world that is ravaged by satire and humor.


In October 2000, the song was set up at the entrance of Kim Satgat-myeon, Yeongwol-gun, Gangwon-do, where the Kim Satgat Culture Big Feast is held, and at Noru Mokcheon. In addition, the song always comes out of the song rain.


In June, 68, the poet Wanderer Kim Satgat, who was banned as a wacky song (No. 304), is the song of Myung Kuk Hwan's upcoming song and has been a singer's glory and agony.

He even did a conscription damage, but was left alone.


Myeong Guk-hwan was born in January 1933 as the eldest son of three sons and three daughters in the coastal town of Yeonbaek-gun, Hwanghae-do. At the retreat, 1.4 years of retirement were spent in adolescence, with a population of 30,000. In 1948, when he was a third year student at a coastal middle school, he was called a “song singer” enough to win a prize called “Nam-Il-Saeng (Nam In-soo)” at a contest held at a coastal theater. At school, the music score was 'A'. However, the opposition of his father, who was very severe, he had to stop purchasing the dream of becoming a singer for a while. In the Korean War, Myeong-guk takes refuge to the south with his family. At this time his father could not join. In order to avoid conscription on the way to evacuation, he borrowed her sister's clothes and tried to deceive the insider's eyes.


“Families were scattered on the way out and were finally alone. The way to live was vague. Inevitably, I volunteered to join the 8240 KLO Shortstop Army Guard, which is based in Ganghwa, to solve the problem. ”


War changes his life like destiny. The local guerrilla unit, Army 8240 (8240 KLO), was a North Korean Air Force unit, or H.I.D.


“It was a military guard, but it was like a combat agent. There were a lot of dangerous humps, and everyone was on stage in military uniform, but there was no rank. Later, I had to go to Sokcho, Wonju, etc., and at that time, I mainly sang “South Korea Life” and remember that I was on the stage of the anti-communist “I saw.”


Myung-guk Hwan, who was on the frontline as an army soldier, comes to Seoul after the dismantlement of the Ummun University. Afterwards, he participated in the competition organized by the Korean Veterans Medical Association (the Seoul Veterans Affairs Association) and won the first place by singing the popular song “Seon Yagok (Shin Se Young)” and the designated song “Love of Mind (Park Jae Hong)”. The third person in the competition was Lee Gap-don, who announced “Baekjangmi Diary” and “Gupo Bridge of Tears,” and currently serves as the senior singer chairman of the Korean Singer Association.


“I was scared by the thugs trying to get a chin, and I ran into the back door terribly at the end of the ceremony.”


After winning the competition, he joins the Star Star Orchestra (Director Son Ki-sung) and starts full-fledged entertainer activities. At the time, the Star Star Orchestra was easy to adapt because most of his members had known him since his military service.


With the introduction of singer and actress Nae-Shim, who met at the troupe, he met his brother, composer Jeon-oh Seung, and finally his debut song, 'Do not cry, maya'. Singer Park Kyung-won and his debut. The song recorded on the back of the SP album `` Do not cry white horse '' released through the Oasis is Park Kyung-won's debut song `` Sorrows''. A message of comfort and hope for the white people, is this song “Do not cry white horses.”


Let the white horses go crying and the day is far away / the trail is far away, the corn is far away, the corn is ripening in the fall field, and you are thinking about your hometown again.

Leaving my home on my back / My oath is no different / Home to an endless horizon / Let's live life with new hope / Don't cry the white horse.


-'Do not cry white horse'

(Written by Kang Young-sook, composed by Jeon-oh Seung, Myeong Guk-hwan)


Released in 1954, shortly after the Korean War, the song contains the message: Let's not give up hope for tomorrow as a white people, no matter how hard or hard it may be. Composer Jeon O-seung also gets his first daughter this year. This is a cute child actor Jeon Young-sun who played the role of 'Ok Hee' in the movie 'Love Room Guest and Mother'. The first daughter was born in the 54th year of the end of the year, so the episode was also celebrated.


With this song, Myeong Kuk-hwan begins his heyday. If you look at the song programs such as 'Song Handbook', 'Song and Light Music', and 'Sing Party' of HLKA (Seoul Central Broadcasting Station, currently KBS Radio 1), you can see that they were almost exclusively on TV along with Song Min-do, Nae-sim and Won Bang-hyun. . In 1955, he was appointed as a singer along with Lee Gap-don and Im Mi-ran.


At the same time, Shin Shin Records, which is founded at the time of the new century, will start his career as a scout and a singer with composer Jeon Oh.


Jeon Seung-seung, Myung Kuk Hwan, scouted for the new century


Jeon Oh Seung-Myeong Guk Hwan Combi presented 'Shinju' (Nomad), Kim Satgat, the first work of Shinshin (New Century), 'The Princess's Rise', 'The King's Last', and 'Wagon Goes to My Hometown'. Continue the wild hit march. In addition, the previously released film theme, “The Purification of Salvation,” is also newly produced as a record.


At the same time, 'Karaban's dreams (son Seok-woo, Son Seok-woo)', 'night car of perfume (Kim, Ki-chun)', 'Cheong-baek white river (baekho, Park Chun-seok)' and 'Arabian Yagok (backhoe, Park Chun-seok) and 'Arizona Cowboy (Kim Bo-hae, Jeon-seung)' announced through Paramount Record Co., Ltd.


These songs are all precious products of the SP era of the 50s. At the time, the record industry in Korea was shortly after the war, and there was a shortage of materials such as estate and PVC due to the shortage of materials. Also, the record production facility was also poor, so it was a time to burn charcoal directly to melt raw materials or produce copper plates. It was never easy to make one.


In particular, due to the lack of soundproofing, there were many difficulties that had to be recorded all night long during the night with relatively low noise. In addition, because of the simultaneous recording time, if the lyrics are slightly wrong, but if there is no big problem, just recalled saying OK.


There are as many stories as the song "Arizona Cowboy" and "Princess Princess".


As such, Myung Kuk Hwan released songs of various subjects. Classical interpretations such as' Hanseokbong ',' One of Lee Cha Don ',' Rain of Nongae ',' Mango Monk's Ambassador Seo 'and' Emile Bell 'have been interpreted and presented in the 50's, while the' 50's tango rhythm He also released a number of adaptations such as Garden, Gypsy's Sigh, and Mood. Through these songs, you can hear famous musicians of 50s musicians such as violinist Mun Dae-hang.


As a singer representing the fifties, there are many exotic lyrics and melodies that replaced the dreams of the people at that time and longing for foreign countries. Argentine Tango, Caravan's Dream, Princess of Arabia, Burmese's Octy, and Texas Cowboy.


In addition, the "Princess of Princess", which depicts the tragic love of Princess Margaret, who attracted the attention of the world with the love of a commoner, was also loved at the time.


Drama Topics & Movie Themes


Radio drama and film topics were also released.


1. A high seat in a high place, refraining from my brother / singing, drinking a glass of laughter, fingering, / burying me in the green grass of red maple leaves / ha ---- sighing in a whistle laughter.

2. It's a golden leaf. It's your body. Today's body is a drifting cloud or a flowing water.

-Joo You Cheon-ha


In 1962, director Hyun-cheol Ahn took a megaphone and Shin Yeong-gyun, Choi Nam-hyun, and Kwon-il-il appeared on the film. In the radio drama, the role of Yangnyeongdaegun was played by voice actor Lee Chang-hwan. Kim Ho-gil wrote the theme song in a play by Jo Hun-pa, who is famous for his “Yalgajeon”.


In addition to the film subjects presented by Myung Kuk Hwan, the purification of salvation (directed by Lee Man-heung in 1956), Kim Sa-gat (directed by Lee Man-heung in 1957), and the horizon (1961, directed by Chung Chang-hwa) depicting the martyrdom of Christian believers in the late Joseon Dynasty ), `` Han Suk Bong (directed by Lee Man-hee in 1963) '', `` Beggar Prince (directed by Ahn Hyun-cheol in 1963) '', `` White Horse Notice '' (directed by Kim Soo-gil in 1963) 'There is.


Turned into a composer on the marsh of Ban


Especially at the time, they faced mental conflict on the basis of strict and ambiguous deliberation criteria. In particular, his biggest hits, such as “The Wandering City Kim Satgat” and “The Three Colors of Youth,” were banned and hit by singer activities.


“First and foremost, the deliberations applied to popular music were very strict because the judges were composed mainly of people who played classical music or pure music. For example, minor tunes, or minor songs, were banned and distorted, so they were naturally popular, and composers tended to avoid songs containing affection. ” It's always a pity that not much comes out, he says.


In particular, he frequently attended local military performances, including local performances, and many of the tribulations he had to suffer at that time were difficult. For example, when a local performance went to the show, the director of the show was hidden for a moment, and he was suddenly deprived of a guarantee, and there was no chance to return to Seoul. On the contrary, after performing in a place such as a wool company or a textile company, instead of the fee, it was a kind of anecdote that I received a lot of nylon cloth or `` Socks no matter how much I can fall off '' at the time. Remains.


He was transformed into a composer in the 1960s, and was selected as the top 10 singer of international songs in 1965. In 1965, Tong Yang TV was selected as one of 10 candidates for the 1st International Music Awards hosted by the International Sinbo Company. The International Music Awards, which led to the birth of the Broadcasting Music Awards, were presented in 12 categories. At this time, the top ten singers selected in the music division were Myung Guk Hwan, Nam Il Hae, Park Kyung Won, Anda Sung, Choi Hee Jun, Jae Jae Ran, Lee Mi Ja, Han Myeong Sook, and Hyun Mi.


When he was sixty, he looked back on his life


He currently writes at the Senior Citizens' Association of Korean War Artists Association and Korean Singer Association, and has been at the forefront of protecting the fellowship and interests of senior junior singers, including chairman of Dongsimhoe, a fellowship of senior singers.


The concentric society was founded in the early 70's by Park Jae-hong, a singer of Park Dal-jae, who was crying over the group. . In addition, he has served as the chairman of the Korea Buddhist Order and conducted charitable performances to help the underprivileged and help the elderly. In 2004, he was awarded the Korea Cultural Heritage Medal.


He sang a longing for his "father." When I was sixty years old, I looked back at myself and made a song.


"I want to call you once again / I didn't know so much / Please forgive me / Sell your laughter love / Thank you so much / Miss you / Live a lonely life / Where is your father?"

-'Father (lyric songwriter, composition, song)

He is currently alone. “All four failed marriages. I don't have a breeze, but I think it's probably my fault. ”


I am the first person to visit his house in Bucheon, Gyeonggi-do. It was an unavoidable interview site because it kept them from going out. Just a few days later, she appeared on KBS ‘Ko-Yo Stage’ and emphasized that she will always do her best on the stage as circumstances permit.


"It's a stage in five months, maybe it's the last time ... I think people will see what my song is going to judge."


At his bedside, there was a "Samgaksan Guest" sheet music, a guitar, and a radio for this song. The radio kept it on while I was sleeping.


As the song was all about him, the senior singer Myung Kuk-hwan, who has been dedicated exclusively to singer activities, speaks with strength.


“I'm not lonely. The song is always with me… ”


#50s #30s #40s #M #Tr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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