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실 - Lee Yun-Sil (Lee Yeon-Sil)



The first few tracks are somewhat similar in style as the Eun He item from 1971, which I thought at first was from the same and similarly looking artist, but perhaps this one is even sweeter, with beautiful arrangements, full of subtle romance ; the voice of the singer here is very beautiful too, making the music as a finished product to some unforgetable moments. Some other tracks are sung by male voice, a bit more in direction of taverne song entertainment.


Most tracks I must say are into mainstream song inspiration of 50's and early '60's, with that kind of romantic feeling, but then less heartfelt compared to the best moments on the album.


Limited to 1000 copies.


Translated Korean review:


"This album, which adds value as Lee Yeon-sil's with her debut album, containing also her debut song, Saeksi-si, which was sung by Lee Yeon-sil's most clear voice in her early twenties. It is also more attractive in retaining the voice of their younger days. With it, Lee Yeon-sil entered stardom and became a female folk singer representing Korea."


이연실 - 새색시 시집가네 / I'm married CD 2006 Music Research

* 1/A1.비둘기집 (이연실) / Dove (Lee Yun-Sil) * 2.둘이서 걸어요 (이연실) / Walk by two (Lee Yun-Sil) 3.두마음 (이석) / Two hearts (Lee, Hae-Seok) 4.울고 싶을때 (정우) / When you want to cry (Jung Woo) 5.사랑의 찬가 (박재란) / Hymns of love (Jae Ran) 6 B1.새색시 시집가네 (이연실) / We get married at new color (Lee Yun-Sil) B2.하얀눈길 (이연실) / White snow road (Lee Yun-Sil) B3.황혼길 (이찬) / Twilight Road (Lee Chan) B4.길 (조영남) / Gil (Cho Youngnam) B5.빗속에서 울리라 (박재란) / I will cry in the rain (Jae Ran)

The organization of this LP is as follows: we have two sensitive folk guitar songs by Lee Yun Sil. This is followed by a mainstream schlager/crooner by a male singer, adding after this another mainstream song. "Hymns of Love" after that is a light mainstream pop song with acoustic guitar and lush strings, bass drums. The second side shows two more songs by Lee Yun Sil, this time also accompanied by backing male vocals and harmonies. Like before, this is alternated by two schlager crooner arranged fully with strings (male singer), and also this side ends with another and rather nice light pop song (female singer) with organ, bass and drums and strings. The more commercial songs are acceptable to listen to. But of course it are the Lee Yun Sil tracks that make the album collectable.


This is much more the 'real thing' compared to some of the mainsream song related folk albums I checked and listed around the same time.


Very beautiful angelic-innocent voice and sometimes nice cello/flute/oboe and here and there chamber orchestra arrangements, a nice combination of western early 60s pop music with Korean inspirations and flavours. Almost no percussion is used.


The third track is a very beautiful deep emotional and moving melancholic song accompanied by acoustic guitar arrangements (-one of the most beautiful melancholic song interpretations I have heard-).


There are several (folk-rock/folk) covers involved but I can't say for sure what they all are. One is Bob Dylan I think and another one "Amazing Grace" (not the best choice on the album, but still ok for its arrangement & interpretation).


Last tracks are rather sparsely arranged. Recommended!


‘이연실의 망루(1973년 제작)’로 잘 알려진 이 앨범은 인상적인 자켓디자인 만큼 월드뮤직 스타일의 예술성을 지닌 당대의 명반으로 이연실의 음반 중 가장 고가(중고시세)로 거래되고 있는 희귀음반이다.

2016 MRC 리마스터 재발매반은 더욱 향상된 사운드로 감상 할 수 있습니다. * 중침압 카트리지 재생에 적합한 180 Grams 중량반(wide groove)을 사용. * 500장 한정 블랙(Black) 반. * 초반의 일러스트 재현과 MRC 리마스터

이연실 - 시악시의 마음 / 잃어버린 전설 LP 1973

연실 - 시악시 마음 [500장 한정180g LP 2016 뮤직리서치] / CD MRC 2005

[중고] 이연실 - 시악시의 마음 (LP Miniature) 이연실뮤직리서치 2008-07-03 CD

* 1/A1. 시악시 마음 / Sexy heart

* 2. 인형 / Doll

* 3. 별리 / Isolation

4. 사랑의 성장 / Growth of love

* 5. 기다리는 아이 / The Waiting child

* 6/ B1. 잃어버린 전설 / Lost Legend

7/B2. 소낙비 / Showers

8/B3. 참사랑/나의 길 / True Love / My Way

9/B4. 역 / Station

10/B5. 이밤 / Tonight

Known as 'Lee Yeon-sil's Watchtower' (produced in 1973), this album is a rare album that has been traded at the highest price among Lee's records as it is an artistic master of the world music style as impressive as the jacket design.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sega32x&logNo=150177656164


정확히 70년대에 생겨났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으나, 70년대의 한국의 음악시장 하면 떠오르는 레코드 레이블이 하나 있었다. 그 이름은 바로 오리엔트 레코드. 이 레이블로 음반이 나온 시간은 별로 길지 않다고 알려져 있다. 이것은 아마도 당시 사회를 휩쓸어 예술가들 여럿 잡았던 악명 높은 대마초 파동 때문일 터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리엔트는 짧은 시간에 포크 장르에서 기억에 남을만한 명반들을 여럿 만들어냈다. 그 원동력은 무엇일까? 이장희, 최헌 같은 아티스트들이 소속된 덕이기도 할 것이고, 레코드사의 사장인 나현구가 기본적으로 음악에 대한 깊이와 더불어 음반 엔지니어링에 대한 기술과 지식을 갖추고 있었던 점도 있다.

그리고 세션 밴드이자 록 밴드인 동방의 빛도 빼놓으면 섭섭하겠지. 동방의 빛이 록의 문법으로 포크에 접근하면서, 오리엔트 레코드에서 제작되는 포크 앨범들은 단순히 어쿠스틱 기타의 연주만을 넘어서 무그 신디사이저의 이용, 청량함이 아닌 록의 어두움도 받아들여 상당히 독특한 포크 장르를 당시 한국에서 개척해 나간다. (여기에는 <별들의 고향>을 필두로 사운드트랙 작업을 하게 되면서 생긴 변화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소개할 이연실도 오리엔트 레코드 소속의 아티스트다. 특이하게도 앨범의 커버 때문에 <시악시의 마음 / 별리>는 '망루 앨범', '닭장 앨범' 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지금도 난 컨셉의 의미를 잘 모르겠다. 그러나 인물 초상 중심의 디자인이 판치던 60년대를 지나 본격적으로 커버에 의미를 담고 전체적인 디자인을 신경쓰던 70년대가 도래했으니, 이연실의 그 독특한 감흥을 주는 커버도 그런 시대의 흐름으로부터 만들어진 것이라 본다.

내가 이연실을 알게 된 것은 멜라니 사프카 덕분이었다. 그런 표현 있지 않은가. '한국의~ ' 같은. 처음엔 한영애에게서 두 명의 이름을 발견할 수 있었다. 멜라니 사프카와 재니스 조플린. 보컬이 두 아티스트와 흡사하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한영애는 데뷔 앨범을 내기 이전에 음악감상실에서 노래를 부를 때, 멜라니 사프카의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그러나 자신의 정규 앨범을 취급할 때는 그녀의 곡을 부르지 않았다. 자. 이제 시대가 한영애가 첫 정규 앨범을 낸 1986년부터 멜라니 사프카가 우드스탁 페스티벌에서 노래를 부른 196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안타깝게도 마이클 워들리 감독의 다큐멘터리인 <우드스탁: 3일간의 평화와 음악> 본편에서는 그녀가 노래 부르는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거기서 2년을 더하면 1971년이 된다. 이연실은 그 때 오리엔트 레코드 사의 다른 아티스트들과 함께 부른 포크 데뷔 앨범인 <비의 나그네 / 아가씨들아>에 참여한다. 그리고 나서 1년 뒤에 자신의 독집 앨범을 발표하게 된다. 그녀 말고도 당시에 여성 아티스트들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의외로 당시 이연실과 같은 이미지를 가진 여가수는 흔치 않았다. 서구적인 몸매와 스타일로 발라드와 댄스를 하던 패티 김과 김추자가 있었고 포크 음악을 했지만 힘이 넘쳤던 양희은 등, 다들 다른 스타일을 가지고 있었고 제 능력을 뽐내고 있었던 것이다. 이 때 이연실은 순수한 공주 스타일에 가까웠다. 목소리로만 따진다면 방의경과 비슷한 느낌이랄까? 명랑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어떤 노래든 간에 조곤조곤 노래하는 맛이 있는, 70년대의 여인이었지만 옛날 양갓집 규수 같은 정갈함도 있는... 포크이지만 민요의 멜로디를 차용한 '시악시의 마음'을 잘 어울리게 부를 수 있었던 것도 다 그런 이유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녀는 당대의 남성들의 환상 속에서 존재할 듯한 목소리를 가진 채로 자신만의 음악세계를 보여준 가수였다.

이런 점 때문에 그녀가 이 앨범에서 자작곡을 좀 더 많이 만들어 부르지 않은 점에 대한 아쉬움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연실은 이 앨범에서 한 곡의 작사만 직접 했고, 거의 모든 트랙을 외국곡을 번안한 버전으로 채웠다. 이는 앨범 작업에 양병집이 참여한 것이 이유가 되기도 할 것이다. 양병집은 자신의 앨범에서도 밥 딜런, 피터 폴 & 메리의 곡을 자주 번안하여 불렀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이연실의 경우에는 한국에서 여성예술가가 많이 나오지 못한 점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남아 선호 사상 때문에 여성들은 남성에 비해 많은 것을 볼 기회도, 배울 기회도 얻지 못했다. 누구에게나 독창적인 예술세계가 있기 마련이지만, 세상을 보고 거기서 재고할 기회를 갖지 못한다면 어떻게 폭넓게 자신의 비전을 펼칠 수 있었겠는가. (사실 세계적으로 봐도 여성예술가의 비중이 남성만큼 많지 않다.)

이연실은 전체적으로 곡을 받아서 노래를 부르는 쪽이었다. 그러나 특유의 독특한 보컬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담아 부르려고 많은 애를 썼다. 그 때문에, 아니.. 여성 예술가의 적은 수를 생각하다 보니 이 앨범의 6번 트랙인 '잃어버린 전설'은 원곡을 부른 양병집과는 다른 의미에서 생각하게 만든다. 7번 트랙인 '소낙비'도 그렇고, 이 곡을 비롯해서 9번 트랙인 '역'도 만든 양병집은 1974년에 <넋두리>를 앨범으로 발표하면서 이 세 곡을 특유의 건조한 목소리로 절절하게 노래 부른다. 근데 그 건조한 목소리에는 이상한 블랙 유머도 있어서, 듣고 있는 사람은 뭔가 씁쓸한 냉소 같은 것을 짓기도 하는 것이다. 이 중에서 그가 부른 '잃어버린 전설'은 제 2차 인혁당 학살 때 억울하게 희생당한 사람들을 추모하는 의미로 불려지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가사가 불온하다고 문제 삼던 <넋두리>는 결국 그 이유를 비롯해서 당대의 사회를 비꼬고 있다는 이유로 음반 판매 금지 조치를 당한다. 이연실이 앨범을 발표한 것은 1972년이니 사실 2차 인혁당 학살 사건과는 별 관련이 없다. 1차 인혁당 사건이 있기는 했지만 그 때는 1964년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여성' 이라서 그리 느껴지는 것일까? 양병집과는 다르지만 신기하게도 이연실이 노래 부르는 버전은 자신보다 먼저 태어나 살아간 여성 예술인들에 관해 헌정하는 듯 하다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이를테면 한국 여성 중 최초로 근대 서양화를 그렸다고 알려진 나혜석 같은 이 말이다. 1920년대에 여성의 배울 권리를 주장하던 이 여인은 불륜과 이혼, 남편에게 소송을 거는 등의 당시 기준으로 볼 때 너무나 파격적인 자유부인으로서의 행보를 보여줌으로 인해 결국 1948년에 한 병원에서 쓸쓸하게 죽어갔다. 결혼윤리에 관해서는 생각하기 나름이겠지만, 그 여인에 관해서 뭔가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화가로서의 능력과 더불어 여자도 한 사람의 인간이라는 것을 증명했는데 그것이 시대에 의해 무참히 묻혀버렸다는 점 때문이었다. 양병집의 '잃어버린 전설'은 이연실의 목소리로 불려지면서 마치 이 세상에서 살고 있는 모든 여성들을 위해 부르는 레퀴엠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멜라니 사프카의 'The Saddest Thing' 을 번안해서 부른 '별리'는 단연 이 앨범의 하일라이트다. 뭐랄까.. 사실 이 앨범은 예나 지금이나 참으로 구하기 힘든 앨범이 되어버렸다. 1972년에 처음 발매된 이후로 재발매가 되지 않아 상태 좋은 물품들이 200만원에 육박하는 가격으로 거래됐었다. 그랬던 앨범이 35년이 지난 2008년에 1000장 한정 발매로 CD로 복각되어 발매됐고, 곧 품절됐다. 30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마스터 테이프도 사라졌는지 LP에서 복각된 음질은 사실 기대에 좀 못 미치는 편이다. 하지만 CD 재발매에서 또 몇 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나름대로 팔렸는지 이젠 그 CD 마저도 구하기 힘들게 되어버렸다. 내가 이 앨범을 발견한 것은 제주도에서 군 제대를 한 직후였다. 휴가나 외박이 끝나서 복귀하는 길에 신제주 시에서 언제나 지나쳤던 레코드점이 있었는데, 기회가 되어 갔을 때는 계급이 낮아 뭘 사고 싶어도 못 샀을 때였고, 여유가 생겼을 때는 정작 그 레코드점에 들어가질 못했다.

두 가지 상황이 모두 맞아떨어진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제대를 해서 예비군복을 입고 부대 밖으로 나왔을 때다. 사람들과 헤어지고, 가장 먼저 한 일은 그 레코드점에 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당시에는 이 앨범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 때 구매 했었더라면, 이후 이 앨범을 구하는데 이만큼 고생하지는 않았을텐데.. 당시 그 레코드점에는 이 앨범이 열댓장 정도가 꽂혀져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보유하고 있는 돈은 한정되어져 있었고, 무심했던 나는 다른 앨범들을 사서 여사장과 이야기만 하다 나왔다. 이후, 앨범을 구하는데는 1년 가까운 시간이 걸리게 된다. 제주도에서 포항으로 돌아온 뒤에 '별리'를 듣게 된 거지.. 쩝. 사람이 이렇게 바보 같다.

젊은 여인인데도 불구하고 노인같은 걸걸함이 뒤섞인 듯한 멜라니 사프카의 목소리로 불려진 곡은 이연실의 가늘고 떨리는 목소리로 변환되어 큰 전환점을 맞는다. 이연실의 곡이 참 특이한 것은, 정서적으로는 멜라니 사프카와 비슷한 감흥을 제공하면서 (목소리의 분위기도 비슷하다.) 감상자에게 다가오는 최종적인 느낌은 결국 다르다는 점이다. 이는 양병집의 곡을 소화해 내는 것과 비슷했다. 이연실은 어떤 곡이든 개인적인 지층에서 해석해 내는 능력이 있다. 가령 양병집의 '소낙비'는 밥 딜런의 'Hard Rain's A-Gonna Fall' 을 번안한 곡이다. 밥 딜런은 1960년대에 미국과 쿠바 사이가 미사일 위기로 인해 한창 사이가 살기등등 했을 때 이 곡을 짓고 불렀다. 그러나 이연실의 노래에서는 딱히 그런 점이 보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연실은 국가 간의 위기와 인류에 대한 염려를 부른 밥 딜런과 달리, 한국에서나 혹은 변영주 감독의 다큐멘터리 제목처럼 '아시아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것을 노래한다. '시악시의 마음' 이 그런 점에서 핵심이기는 한데, '별리' 도 그런 것이다.

원래 'The Saddest Thing' 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을 노래하는 곡이고 이연실의 버전 역시 그렇다. 그러나 이연실은 뭔가가 더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마치 너무나 고단한 하루를 보낸 여인이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왔는데 우울한 마음을 누를 길이 없어 처마에 앉아 자신의 기구한 처지를 잠시 읊조린다고 해야할까? 이연실의 목소리가 아예 처음부터 '나 슬픈 목소리요' 를 증명하는 듯한 멜라니 사프카처럼 훅 하고 다가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어쿠스틱 기타 한 대와 더불어 체념하듯 부르는 이연실의 목소리를 들으면 멜라니 사프카만큼 참 쓸쓸하고 슬프게 노래를 부른다는 것을 알게 된다. 고요한 호수에 슬픔이라는 가혹한 운명이 잔잔하게 파문을 일으키는 것처럼, 이연실은 그렇게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귀중한 자신의 목소리를 우리에게 전파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곡들이 번안곡이지만 <시악시의 마음 / 별리>는 원곡보다 더 뛰어난 해석을 한 앨범으로 기억에 남는다.

생각해보면 당대의 남성들이 이연실의 노래와 목소리를 사랑한 이유에는, 이런 점도 있지 않을까? 어떤 죄책감 같은 것? 그녀의 목소리는, 대부분 쓸쓸하고.. 어떤 때는 위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너무나 마초스럽기 그지 없었던 당대의 한국사회에서 수컷이란 동물들이 갖고 있었던 환상이자, 동시에 죄책감이라는 양가적인 감정을 받아들였던 것이.. 그녀의 목소리 아니었을까.

p.s. - 이연실 님의 곡은 '별리'를 꼭 올리고 싶었는데, 이게 유튜브에는 음원이 없어요. 그래서 제 네이버 블로그 배경음악으로 하나 사 뒀습니다. 가사는 옮겨 적어 놓으려 했는데 CD가 제 자취방이 아니라 집에 있어서 (부모님이 좋아하시는 앨범이거든요.) 옮겨 적을까 하다 귀찮아서 말았네요. 이연실 님이 부른 '별리'를 듣고 싶으시다면 제 블로그 음악 플레이어를 켜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고 보니 원래 한국인들에게 유명한 곡이기도 했습니다만, <나는 가수다> 시즌 2에서 국카스텐이 이 곡을 불렀죠. 개인적으로는 영 아니더군요. 국악기와 어울리려고 한 시도는 좋았습니다만..보컬까지 쉴새없이 앵앵거리니까, 그게 그들 특징이라지만 그냥 제 취향하고는 맞지 않았어요. 제게는 언제나 이연실 님의 버전이 최고입니다.


Automatic Translation with errors still in:


"I don't know exactly what happened in the '70s, but there was a record label that emerged in the Korean music market in the' 70s. Its name is Orient Record. It is said that the time the record came out with this label is not long. This was probably due to the notorious cannabis wave that swept the society at that time and caught many artists, but the Orient nevertheless produced several memorable alums in the folk genre in a short time. What was the driving force? The artists such as Lee Jang-hee and Choi Heon-he belonged to it, and Na Hyun-gu, the president of the record company, was basically equipped with the depth and depth of music and the technology and knowledge of record engineering.


And the session band and the rock band Touhou's light would be awful. With the Eastern light approaching the folks in rock grammar, the folk albums produced at Orient Records go beyond just playing acoustic guitars, accepting the use of MUG synthesizers and the darkness of rock, not the refreshingness of the rock. Pioneer (It could be a change from the soundtrack work, starting with <Hometown of Stars>.)


Lee Yeon-sil is an artist of Orient Records. Unusually, because of the cover of the album, 'Siacsi's Mind / Seari' is sometimes referred to as the Watchtower Album or the Chicken Coop Album. I still don't know the meaning of the concept. However, after the 60s, when the design focused on portraits of the figures came into being, the 70s, when the meaning was put on the cover and cared about the overall design, came, and the cover that gives Lee's unique impression was made from the flow of the times.


It was thanks to Melanie Safka that I got to know Lee. Isn't that an expression? Like 'Korean ~'. At first, two names were found in Han Young-ae. Melanie Safka and Janice Joplin. This is because vocals are similar to two artists. In fact, Han Yeong-ae sang Melanie Safka when she sang in the music room before her debut album. However, she did not sing her songs when dealing with her regular album. character. The era dates back to 1969 when Melanie Safka sang at the Woodstock Festival from 1986, when Han Young-ae released her first studio album. (Unfortunately, Michael Woodley's documentary, Woodstock: Three Days of Peace and Music, doesn't show her singing.) Two years add up to 1971. Lee Yeon-sil participates in the folk debut album, Rain's Wayfarers / Girls, which he sang with other artists of Orient Records. Then, a year later, he released his solo album. Other than her, there were no female artists at the time.


Surprisingly, however, few singers with the same image as Lee Yeon-sil at that time were rare. Patty Kim and Kim Chu-ja were dancing with ballads in western shape and style, and Yang Hee, who was folk music but was full of strength, had different styles and showed off his ability. At this time, Lee was close to the pure princess style. If it's just a voice, it's like a room mirror. It's not a cheerful one, but it's a woman in the 70's who has a taste for singing any song, but it also has the neatness of an old sheep's house. Maybe I could call it all for that reason. She was a singer who showed her music world with a voice that seemed to exist in the illusions of men of the time.


This makes her feel sorry that she hasn't made more songs on this album. Lee Yeon-sil wrote only one song on the album and filled almost all tracks with a modified version of the foreign song. This may be due to the involvement of the two houses in the album work. Yang's house often sang songs from Bob Dylan, Peter Paul & Mary on his albums. However, in case of Lee Yeon-sil, it is related to the fact that there are not many female artists in Korea. Because of the preference for boys, women have no chance to see or learn more than men. Everybody has an original art world, but how could he have broadly spread his vision if he did not have the opportunity to see the world and reconsider it? (In fact, there aren't as many women artists in the world as men.)


Lee Yeon-sil received the song as a whole. However, he struggled to express his feelings through his unique and unique vocals. Because of that, no. Thinking about the small number of female artists, the sixth track 'Lost Legend' makes me think in a different way from the original parlor. In addition to the seventh track 'Rain Showers', Yang Byung-bap, who also made this song and the nineth track 'Rotation', released the song in 1974 as an album and sings these songs with a distinctive dry voice. But the dry voice also has strange black humor, so the listener is building something bitter cynic. Among these, his "Lost Legend" began to be called in memory of those who were inadvertently sacrificed during the Second Inhyeok massacre. Even though the lyrics are unsatisfied, Soul-ri is banned from selling the records because of the reason why he was miserable. Lee's release of the album was in 1972, so it is not really related to the 2nd Inhyeok Party massacre. Although there was a first Inhyeokdang incident, it was in 1964.


But does it feel so because it is a woman? It's different from two albums, but strangely, Lee's version of the song evokes the idea that she seems to be dedicated to female artists who were born and lived before her. For example, Na Hye-seok, the first Korean woman to paint modern Western paintings. The woman, who insisted on women's right to learn in the 1920s, died in a hospital in 1948 because of his unprecedented behavior as a free lady, based on his affairs, divorce, and lawsuit against her husband. . Though it may be hard to think about marriage ethics, the reason why I feel a waste for the woman is that, in addition to her ability as a painter, she proved that a woman is a human being. Yang's 'Lost Legend' is sung by Lee's voice and feels like a requiem for all women living in the world.


And Melanie Safka's 'The Saddest Thing', which is called 'Starry', is by far the highlight of the album. In fact, this album has become a very difficult album to find now. Since it was first released in 1972, it hasn't been re-released, so good items were traded at a price of nearly 2 million won. The album, which was released 35 years later, was reprinted on CD as a limited release of 1,000 copies and was soon sold out. Over 30 years, the master tape has disappeared, and the sound quality reproduced from the LP actually falls short of expectations. But over the next few years of CD resale, it's hard to find even a CD that's sold in its own way. I discovered this album shortly after the military discharge from Jeju Island. On the way back from vacation or overnight stay, there was a record store that was always passed by in Shin-Jeju City. When I got the chance, I wasn't able to buy anything because I had a low rank.


Both situations were ironically ironic when they were discharged out of the unit in reserve uniforms. Breaking up with people, the first thing I did was go to the record store. Unfortunately, I didn't recognize the album at the time. If I had purchased at that time, I would not have suffered this album afterwards. I had about ten albums in the record store at that time. But at the time, I had a limited amount of money, and I was indifferent to buy other albums and just talk to the president. After that, it will take about a year to get the album. After returning to Pohang from Jeju Island, I heard 'Byeolri'. Man is so stupid.


Despite being a young woman, the song called Melanie Safka's voice, which seems to be mixed with a begging like an old man, is transformed into a thin and trembling voice of Lee Yeon-sil. What's unusual about Lee's song is that the final feeling that comes to the viewers is different after providing emotional inspiration similar to Melanie Safka. This was similar to digesting the music of the two houses. Lee Yeon-sil has the ability to interpret any song from his personal strata. For example, Yang Byeong-bi's 'Rain Showers' is a song that rewrote Bob Dylan's 'Hard Rain's A-Gonna Fall'. Bob Dylan wrote and sang this song in the 1960s when the United States and Cuba lived in the midst of a missile crisis. But in Lee's song, that is not exactly the case. On the contrary, Lee Yeon-sil sings 'living as a woman in Asia', unlike in Korea or Bob Dylan's documentary title, which calls for a crisis between nations and concern for humanity. The heart of the Sixi poem is the key in this respect, but so is the star.


Originally, 'The Saddest Thing' is a farewell song to a loved one, and so is Lee's version. But Lee Yeon-sil seems to have something more. It's as if a woman who had a very hard day came home with a tired body and couldn't press her feelings down. Lee's voice doesn't come to me like Melanie Safka, who seems to prove 'I'm a sad voice' from the start."



I heard one very good item from Lee Yeon Sil, so I thought it would be a good idea to check out this cheap “original hits best” compilation but I already regret this a bit.


On the first four tracks and on two others a bit further on, the synth arrangements are rather cheap, as if arranged on a Karaoke Bar evening on a cruise ship, with some more acceptable passages when the acoustic guitars are more present. Such tracks remain a sad reminder of Korean pop destiny in the late 70s, early 80s, where all honesty was filtered out with empty effects and tastes, undermining all life from inside until the singers were expressing nothing but the kind of light hearted safe zombie presentation of song covers.


Most tracks luckily are acoustic guitar and voice only, with a few tracks with nature sounds (crickets, a bit of dog barking and water recordings) in the background as an introductory setting. This is better, and Lee’s voice still is good, but there might be little for the western listener to hold on to, for the songs or lyrics matter just a bit more than the musical variations creatively explored from within (and that goes with it), (and the songs are pretty long and somewhat repetitive too), so that I am still not as much convinced (as before).


The last track is a lighter sing-a-long song, a bit like a children's song, perhaps still is the best track to take out for airplay.


이연실 - 반지, 목로주점

1. 반지 / Ring

2. 헌 책방에서 / At a used bookstore

3. 사랑의 슈퍼마켓 / Supermarket of love

4. 목로주점 /Mokro tavern

5. 내 친구야 / My friend

6. 성연이 장난감 / Toy

7. 솔개 / Kite

8. 향기 품은 군사우편 / Scented Military Mail

9. 스텐카라친 / Stenkarachin

10. 고향꿈 / Hometown Dream

11. 가을밤 / Autumn night

12. 타박네 / Tamakne

13. 새색시 시집가네 / My new husband is married

14. 조그만 세상 / A little world

PS. 엄마 엄마 Mom Mom is listed to track 11 but I guess not included


이연실 조용한 여자 / Deathly quiet woman (500장 한정반) (2017 LP)


Side. A 1. 조용한 여자 / Quiet woman 2. 이제는 / Now 3. 찔레꽃 / Bears 4. 먼나라 / Mina 5. 나의사랑 / My love 6. 가을메들리 / Autumn Medley Side. B 1. 한자두자 일곱치 / The number of Chinese characters is seven 2. 주님의 참사랑 / True love of the Lord 3. 새색시 시집가네 / It's a new coloring poem 4. 작은새 / Small bird 5. 안녕 / Goodbye 6. 소낙비 / Showers


속적이고 서민적인 포크송을 구사한 이연실의 대표작 - 1970년대 한국대중가요계를 강타했던


포크송과 통기타의 열풍에서 이연실의 역할은 무엇이었을까? 기성세대의 음악인 트로트에 저항했던 초기의 청년문화를 주도했던 젊은 가수들이 번안 곡을 주로 부르고, 트윈폴리오, 뚜아에무아, 어니언스 같은 외래어를 팀 이름으로 사용한 것은 서구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했음을 의미한다. 데뷔초기 이연실도 대세를 이루며 도도한 흐름을 보였던 번안 곡 열풍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하지만 낭랑하고 토속적인 음색을 바탕으로 민초들의 삶을 순수하고 아름다운 가락으로 담아낸 싱어송라이터로 거듭났던 점에서 그녀는 특별한 존재로 기억된다. 이번에 재발매 된 그녀의 대표 앨범 중에 하나인 ‘고운노래 모음집’은 70년대 대중을 매혹시켰던 그녀의 한국적인 소리를 추억하고 기억하게 할 것이 분명하다. * 대중음악평론가/박성건의 라이너 노트 * 500장 한정판매


"Lee Yeon-sil's masterpiece, is performed in a charming folk song style. It showed Lee Yon Sol’s musical importance, with which she was able to stand firm against the older generation’s trot-genre. A hunger generation led this new scene. Many of the bands used foreign names like Onion to reveal how much they actively accommodated Western culture."


이연실 - 성숙한 모습 [500장 한정반] LP MRC 2017

-I have not heard this album yet-

이연실 전반기 음악활동의 마지막을 장식한 희귀앨범 - 이번에 재발매된「이연실의 성숙한 모습」앨범은 그녀의 70년대 마지막 작품이다. 1975년 2월에 발표한 전작「이연실 고운노래 모음집」을 통해 이연실은 대중적으로나 음악적으로 초기 활동의 정점을 찍었다. 인기상승의 분위기 속에서 불과 5개월 만에 연속해서 발표된 이 앨범은 이연실의 디스코그라피에서 실물 구경이 쉽지 않은 가장 희귀한 음반으로 손꼽힌다. 포크 색채가 선명한 전작들에 비해 이 음반은 통기타 반주가 아닌 오케스트라 세션이 주도하는 팝 스타일의 대중가수로 변신한 이연실의 새로운 시도가 담겨 있다.

1.[Side A] 그누가 뭐래도 2.왜일까 3.여름밤의 이야기 4.아무것도 모르는 그곳에 5.당신은 몰라

6.[Side B] 비개인 오후 7.청산별곡 8.왜 기다릴까 9.상쾌한 아침은 즐거운 하루 10.부모


"A rare album that marked the end of Lee Yeon-sil's music activities in the first half of the year. In his previous film, “Lee Yeon-sil Fine Song Collection,” published in February 1975, Lee Yeon-sil peaked in public and musically. The album, which was released in just five months in a rising atmosphere, is one of the rarest albums in Lee Yeon-sil's discographies. Compared with the previous folks with vivid folk colors, the album contains Lee Yeon-sil's new attempt to transform into a pop-style pop singer led by an orchestra session rather than an accompaniment."


1. [Side A] Who knows 2.Why? 3.Summer Night Story 4.I do not know anything there 5.You do not know

6. [Side B] Non-private afternoon 7.Clearing star 8.Why wait? 9.Fresh morning is a pleasant day 10.Parent


Another track can be found here:


가요(歌謠) 박물관 [Disc 8]

10 여름밤의 이야기 / Midsummer Night's story (1975)

This is folk-pop styled in let's say UK style (Mary Hopkin, ..)



V.A.: 추억의 신청곡 Best 40 [Disc 1]

CD 1 5 찔레꽃 / Brier


This is a nice and delicate folk guitar track taken from the "Deathly quiet woman" LP.



V.A.: 비의 나그네/아가씨들아 / Rain's wayfarers / Babes

CD 9 찔레꽃 / Bri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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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OGRAPHICAL NOTES:

https://www.hankyung.com/thepen/article/7637

1970년대를 풍미하던 통기타 포크 싱어 중 한 명인 이연실. 향토적 애잔함과 도회적 쓸쓸함을 동시에 표출시키던 음성의 소유자. 어린 시절 어느 시점에선가 성장이 멈춰버린 듯 여리디여리게 중얼거리던 '조용한 여자'. 때로는 퇴폐적이면서 감미롭고, 때로는 순수하면서 격렬한 적대감을 유발시키는 노래를 부르던 신비한 가수. 작사, 작곡에도 능했던 뛰어난 싱어송라이터. 홍대 미대를 다니던 어느 날 인생과 음악이 궁금하다면서 휴학계를 던지고 지방으로 내려가 다방 레지 생활을 경험했던 당찬 여장부. 이연실의 히트곡으로는 '조용한 여자', '새 색시 시집가네'(1971)를 비롯해 '찔레꽃'(72), '소낙비'(73), '목로주점'(81) 등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찔레꽃'에 각별한 정이 가는데요. 최근 여러 가수들이 이 곡을 리메이크해 불렀으나 이연실만큼 절절하지는 못한 것 같네요. 빨간 립스틱의 요염한 그녀가 과거 젊은이의 성지로 불리던 명동의 '오비스 캐빈' 2층에서 노래 부르며 궁핍한 시대의 청년들을 위무하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렇게 우리 곁에 머물던 그녀는 90년대 중반 어느 날 거짓말처럼 시야에서 사라졌습니다. 그리하여 신화가 됐지요.

"Lee Yeon-sil is one of the guitarist folk singers of the 1970s. She expressed with her voice both local grief and urban loneliness. At a certain point in his childhood, 'the quiet woman' murmured as if her growth had stopped. A mysterious singer who sings songs that are sometimes decadent and sweet, and sometimes innocent and intense. An excellent singer-songwriter who was also good at writing and composing music. One day, after attending the University of Hongdae, Dang Chan, she threw a leave of absence and said that she was curious about life and music, went to the countryside and shared her experiences a coffee shop.


Lee Yeon-sil's hit songs include 'The Quiet Woman', 'The New Sexy Married Woman' (1971), 'The Brier Flower' (72), 'Rain Shower' (73), and 'Wooden Bar' (81). Personally, I have a special affection on brier flowers. Recently, several singers remade this song and sang it, but I don't think it's as good as it was. It is reminiscent of her bewitching red lipstick who sings on the second floor of the Orbis Cabin in Myeong-dong, formerly called the Holy Land of Young People. She stayed by our side and disappeared without a trace one day in the mid 90's. It became a myth."

http://life.park5611.pe.kr/xe/792647

보고싶은 가수 - 이연실 id: 오작교

http://life.park5611.pe.kr/xe/7926472013.04.05 15:37:27 (*.159.174.196) 2012이연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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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실 (1950년생)

70년대를 풍미하던 통기타 포크가수 이연실,

1970년 '가수 팔도대항전'이라는가요제 프로에서 전북대표로 출전해 입상.

홍익대학교 미술대학교 조소과에 재학중이던 1971년 제5회 MBC팝 콘서트에서

'조용한 여자'등의 자작곡을 진지하게 열창하며 데뷰 리사이틀을 가졌다.

이 리사이틀에서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얻기 시작한 'Melanie Safka'(1947년우수에젖은듯한 목소리의주인공) 풍의 여유와 기교를 과시하며 큰 기대를 받는 유망주로 떠오르는데

이연실은 그해 첫앨법 '새색시 시집가네'를 발표하며 일약 스타덤에 오른다.

일상적인 생활의 삶을 노래하기를 원했던 그녀는 노래뿐만 아니라 작사,작곡 까지 다재다능함과 더불어 진지한 삶의체험을 통해 솔직하면서도 호소력이 짙은, 맑고 청아한 목소리가 그녀의 매력이다.

이연실은 1950년 전북 군산에서 4남2녀중 차녀로 태어난다

군산대학교 교수였던 아버지와 유복한 가정에서 어린시절을 보낸 가수 이연실은 군산여고를 졸업하고 홍익대 미대에 입학한다. 1970년 <가수 팔도대항전>이란 가요제 프로에서 전북대표로 출전하여 입선.

홍대 미대에 재학중이던 이연실은 아르바이트로 소공동 조선호텔뒤 라이브 클럽인 <포시즌>에서 노래를 시작하게 된다. 이때 서울대 철학과 출신으로 배호의 "누가울어" "안녕" , 박경희의 "저꽃속에 찬란한 빛이" 그리고 예비군가를 작사한 60년대 최고의 작사가 전우씨의 눈에 띄여 가수로 데뷔하게 된다. (참고로 전우씨는 1978년 간경화로 42세란 짧은 생을 마감한다)

1971년 9월 제5회 <MBC 팝콘서트>에서 자작곡 "조용한 여자"로 데뷔 리사이틀을 갖고 또한 딕훼밀리의 "또 만나요"를 만든 오세은과 조인트 콘서트를 열며 활발한 가수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그해 11월 데뷔앨범인 <새색시 시집가네>에서 "새색시 시집가네" "둘이서 걸어요" "비둘기집" "하얀눈길"을 발표한다.

1972년 7월 송창식,윤형주,김세환,어은경과 함께 국내 최초의 포크 컴필레이션 앨범을 발표하게 된다. 이 앨범에서 이연실은 "그이 지금 어디에"와 자신이 작사한 "찔레꽃"을 발표한다. 또한 홍익대 재학시절 음악과 인생을 알기위해 휴학까지 하고 대구로 내려가 다방 레지생활까지 하던 열정적이고 당찼던 이연실은 그해 본격적인 가수 활동을 위해 대학생활을 중단하고 홍익대를 자퇴하게 된다.

1973년 3월 3집앨범에서 "시악시 마음" "잃어버린 전설" "기다리는 아이" "별리" 발표

12월 이연실과 최헌의 스플릿 앨범에서 "이밤" "소낙비" "나의 길" 발표

1975년 11월 이연실과 박인희의 스플릿 앨범에서 "한자 두자 일곱치" "먼 나라" 발표

그해 12월11일 일명 대마초 파동에 연루되어 동료가수인 정훈희 이수미 이현과 함께 자수를 하게 된다. 하지만 이연실은 사안이 경미하다고 하여 훈방조치 된다.

1976년 5월 <고운노래 모음집>에서 "조용한 여자" "이제는"를 발표하며 재기 한다. 1981년 5월 이연실의 최대의 히트곡인 "목로주점"이 담긴 앨범을 발표한다. 1983년 2월 양병집의 "오늘 같은날"과 이태원의 "솔개"를 만든 작곡가 윤명환과 손을 잡고 10번째 앨범에서 "그이" "문을 닫고" "겨울"등을 발표한다. 1985년 5월 남편인 김영균과 함께 12번째 앨범에서 "잠실 야구장" "어떤 약속" 발표.

1989년 4월 그녀의 18년 음악인생을 결산하는 마지막 앨범인 13번째 앨범에서 "역" "찔레꽃" "비"등을 발표하고 "민들레"란 노래를 머리에 둔 14번째 앨범인 <새노래 모음집>등 결산과 출발을 의미하는 2장의 앨범을 4월에 동시에 발표하게 된다.

(참고로 14번째 앨범에 수록된 "노란 민들레"는 [겨울공화국]의 민중서정시인이자 평민당 국회의원을 지낸 양성우씨의 서정시에 이연실이 곡을 만든 것으로 민주화 운동과정에서 희생된 넋들을 기리는 일종의 진혼곡이다)

1993년 민주당 임채정의원의 후원회에 전유성,엄용수와 함께 참여한다.

1994년 한돌의 <내나라는 공사중>이란 3번째 독집음반 작업에 동참한다.

90년대 중반에 들어 이연실은 가수 활동을 그만 두면서 이후 이연실의 근황이 전혀 알려지지 않게 되었으며 더욱이 한때 건강마저 좋지 않다는 소문마저 떠돌던 터라 그의 오랜 펜들을 더욱더 궁금하게 그리고 안타깝게 하고 있다.

넘쳐 넘쳐 흘러가는 올가 강물 위에

스텐카라친 배 위에서 노래소리 들린다

페르샤의 영화의 꿈 다시 찾는 공주의

웃음띄운 그 입술에 노래소리 드높다

동편저쪽 무리에서 일어나는 아우성

교만할손 공주로다 우리들은 우리다

다시 못 볼 그 옛날에 올가 강물 흐르고

꿈을 깨친 스텐카라친 장하도다 그 모습

그토록 슬프고 그토록 생생한 나의 노래여!

우리 노래의 첫 운명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박인희와 이연실. 그들은 여느 가수들과는 좀 다른 의미로 내게 다가온다. 바로 고백하자면, 그들은 여옥의 후예들이다. 백수광부의 처가 불렀던 노래가 되기 전의 노래에 곡을 붙이고 말을 만든 여옥처럼 그들은 자연의 소리와 인간의 육성에 음악이라는 옷을 입혔다. 나는 그들의 노래를 들으면서 성장했고 내 성장 주기는 그 노래를 들은 횟수와 정확히 비례한다. .

.

.(중략)

이연실의 노래들도 그러긴 마찬가지였다. 듀엣 한마음 출신의 양하영이 어느 고아원에서 그들과 함께 눈물을 철철 흘리며 부르던 <찔레꽃>이나 봄의 눈부심, 그 찬란한 생명의 태동을 이만큼 더 꿋꿋하게 표현한 곡이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게 하는 <민들레>나 6,70년대적인 정서가 그대로 배여 있으면서도 지금 들어도 결코 낡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목로주점>이나 첫사랑의 아픔이 초경의 비릿함처럼 묻어나는 <새색시 시집가네>나 소월의 시에 가락을 붙인 <부모>도 정겹기가 그지없지만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그가 번안해서 취입했던 <스텐 카라친>이나 <릴리 마를렌> 혹은 더 나아가 우리의 구전민요나 광복군의 노래에서 차용한 <타박네>나 <고향꿈> 같은 곡들이다.

이러한 경향은 동시대의 서유석이나 양병집에게서도 발견할 수 있는 것이겠지만 박인희처럼 이연실 또한 단순한 번안 가수가 아니라 자신의 목소리를 당당하게 낼 줄 알았던 포크 싱어였음을 보여주는 징표라고 할 수 있으리라. 다른 점이 있다면 박인희가 노래에 담겨있는 서정적인 감수성에 치우쳤다면 싱어송라이터로서의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했던 이연실은 포크송만이 지닐 수 있는 민중들의 끈질긴 정한을 잡아냈다는 점이다.

그러한 미덕은 방의경의 <불나무>나 <내 집>, <폭풍의 언덕에 서면 내 손을 잡아주오>나 김인순의 <나비야>와 <하양나비>, 윤연선의 <그 소년>, <고아>, <님이 오는 소리> 그리고 박영애와 이현경의 <아름다운 사람>이나 <그리워라>, <초겨울> 같은 곡으로 흡수되고 확장된다. 그러니까 서유석의 <친구야>나 <그림자>, 양병집의 <부활가>나 <엄마, 엄마 아-엄마>에 나타난 짙은 사회성과 정치성의 또 다른 지점을 이연실이 열어놓았다고 보는 편이 훨씬 더 객관적일 것이다.

아, 그러나 어찌됐든 윤명환의 곡 <오늘 같은 날>이나 <솔개>, <종이꽃>을 부르는 이연실, 그녀의 음성은 서늘하다못해 고혹적이다. 그녀의 음성엔 향토적인 애잔함과 그리움도 녹아있지만 도회적인 쓸쓸함과 고적함의 향취도 진하게 배여 있다. 그러니까 다들 이연실, 이연실 하는 걸까. 뭐라고 정확하게 꼬집어낼 수 없는 그 미묘한 음성은 미국 캘리포니아 오렌지카운티 출신의 여성가수 토니 차일즈와 애팔래치아 산맥의 작은 마을에 은둔했던 제인 리치의 염세적인 슬픔이 깃든 허스키한 목소리를 연상시킨다. 하여, 이연실이 청중들을 끌어당기는 매력은 <꽃반지 끼고>의 은 희가 자아내는 청정무구한 애수와는 그 성격이 다르다고 해야겠다. 곽성삼이 <귀향>이나 <나그네>, <길손> 등에서 추구한 고향의식과 박동률이 <고향가는 길>과 <굴렁쇠>, <잃어버린 시간>에서 보여준 사라진 고향에 대한 생각이 다르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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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ial translation:


Lee Yeon-sil (born 1950) Acoustic guitar folk singer Lee Yeon-sil in the 70's. In 1970, she competed as a representative of Jeonbuk in the singer Paldo Grand Competition.


At the 5th MBC Pop Concert in 1971 while studying at the Department of Sculpture, Hongik University She had a debut song record, earnestly singing her own compositions such as "The Quiet Woman." In this album she emerged as a highly anticipated prospect, showing off the sensation and skill of Melanie Safka (the most important singer of the slower power movement).

Lee Yeon-sil is going to rise to the stardom by releasing her first album 'Sae Saek-si'. She wanted to sing the life of everyday life. She is versatile with not only singing but also as a composer, and expressing sincere life experiences with her attractive and clear voice.


Lee Yeon-sil was born in 1950 as the second daughter of four sons and two daughters in Gunsan, Jeonbuk.


Singer Lee Yeon-sil, who was learning at Kunsan National University spent her childhood in a wealthy family, graduated from Gunsan Girls' High School and enters the University of Hongik University. In 1970, he competed as a representative of Jeonbuk in the singer's Paldo Grand Competition. Lee Yeon-sil, who was then a student at the University of Hongdae, started singing at the four-season live club behind the Sogong-dong Chosun Hotel. At this time, she is from the Department of Philosophy at Seoul National University. She will be debuting as a singer, who will be known for "Who's crying", "Goodbye", Park Kyung-hee's "Glowing Light in the Flowers" as one of the best writers of the sixties.


In September 1971, during the 5th MBC Pop Concert, she made her debut recital with her own song "The Quiet Woman" and also started a joint singer concert with Oh Se-eun, who made Dick Family's "See You Again". In November of that year, her debut album, "Saeksi-si-gyeom-ga-nei", announced songs like "Sae-si-si-si-gyeom-gae", "Walk together," "Pigeon House" and "White Snow Road."


In July 1972, Song Chang-sik, Yoon Hyung-ju, Kim Se-hwan, and Eun-kyung released Korea's first folk compilation album. In this album, Lee Yeon-sil announces "Where is he now" and his "Written Flowers". In addition, Lee Yeon-sil, who had been absent from school to learn about music and life and went down to Daegu to live in a coffee house, stopped her college life and dropped out of Hongik University that year.


In March 1973, the third album, with "Sixi Si Mind," "The Lost Legend," "The Waiting Child," and "Bae-ri." In december Lee Yeon-sil and Choi Heon made a split album where they released "Night", "Rain Shower" and "My Way" In November 1975, Lee Hyun-sil and Park In-hee's made another split album, "Chinese Characters Two Characters Seven"


That same year, on December 11, she was involved in the cannabis wave and embroidered with fellow singer Jeong Hoon Lee Soo-mi Lee Hyun. But Lee Yeon-sil is admonished because of minor involvement.


In May 1976, The Collection of Fine Songs, with "The Quiet Woman", "Now Now," is released. In May 1981, she released an album containing Lee Yeon-sil's biggest hit song, "Mokro Tavern." In February 1983, she joined hands with composer Yoon Myung-hwan, the creator of Yang Byung-bak's "Today's Day" and Itaewon's "Kite," to release "He", "Close the door" and "Winter" on the 10th album. In May 1985, with her husband, Kim Young-gyun, she released the songs "Jamsil Ballpark" and "A Promise" on her 12th album.


In April 1989, her last album, in her 18th year of music, she released her 13th album, "Singer," Brier, "Rain," etc. Two albums will be released at the same time in April. (For reference, "Yellow Dandelion" in the 14th album is a song written by Lee Yeon-sil, who wrote the song during the lyric of Mr. Sung-woo, a lyricist of [Winter Republic] and a member of the Parliamentary Party.)


She participated in 1993 in the Democratic Party with Lim Chae-jung and Yoo Yong-soo.

In 1994, she made her third solo album titled "Under Construction".


In the mid-90s, Lee quit her singer activities, and since then, Lee's recent status has become unknown, and even once rumored that his health was not g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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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속적이고 서민적인 포크송을 구사한 이연실의 대표작 - 1970년대 한국대중가요계를 강타했던 포크송과 통기타의 열풍에서 이연실의 역할은 무엇이었을까? 기성세대의 음악인 트로트에 저항했던 초기의 청년문화를 주도했던 젊은 가수들이 번안 곡을 주로 부르고, 트윈폴리오, 뚜아에무아, 어니언스 같은 외래어를 팀 이름으로 사용한 것은 서구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했음을 의미한다. 데뷔초기 이연실도 대세를 이루며 도도한 흐름을 보였던 번안 곡 열풍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하지만 낭랑하고 토속적인 음색을 바탕으로 민초들의 삶을 순수하고 아름다운 가락으로 담아낸 싱어송라이터로 거듭났던 점에서 그녀는 특별한 존재로 기억된다. 이번에 재발매 된 그녀의 대표 앨범 중에 하나인 '고운노래 모음집'은 70년대 대중을 매혹시켰던 그녀의 한국적인 소리를 추억하고 기억하게 할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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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Yeon-sil's masterpiece of native and common folk songs-What was the role of Lee Yeon-sil in the craze of folk songs and guitars that struck Korean popular music in the 1970s? The young singers who led the early youth culture that resisted the older generation's music, Trot, mainly sang songs and used foreign languages ​​such as Twin Folio, Toi et Moi and Onion as the team's name. Lee Yeon-sil in the early stage of his debut was not free from the crazeal song craze. However, she is remembered as a special singer in that she has been reborn as a singer-songwriter who captures the lives of minchos in pure and beautiful rhythms based on a clear and indigenous tone. One of her representative albums, which was re-released this time, 'Guneun Song Collection' will surely remind and memorize her Korean voice that fascinated the public in the 70s."


http://life.park5611.pe.kr/xe/792647


보고싶은 가수 - 이연실 http://life.park5611.pe.kr/xe/792647 2013.04.05 15:37:27 (*.159.174.196)

이연실 (1950년생)

70년대를 풍미하던 통기타 포크가수 이연실,

1970년 '가수 팔도대항전'이라는가요제 프로에서 전북대표로 출전해 입상.

홍익대학교 미술대학교 조소과에 재학중이던 1971년 제5회 MBC팝 콘서트에서

'조용한 여자'등의 자작곡을 진지하게 열창하며 데뷰 리사이틀을 가졌다.

이 리사이틀에서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얻기 시작한 'Melanie Safka'(1947년우수에젖은듯한 목소리의주인공) 풍의 여유와 기교를 과시하며 큰 기대를 받는 유망주로 떠오르는데

이연실은 그해 첫앨법 '새색시 시집가네'를 발표하며 일약 스타덤에 오른다.

일상적인 생활의 삶을 노래하기를 원했던 그녀는 노래뿐만 아니라 작사,작곡 까지 다재다능함과 더불어 진지한 삶의체험을 통해 솔직하면서도 호소력이 짙은, 맑고 청아한 목소리가 그녀의 매력이다. 이연실은 1950년 전북 군산에서 4남2녀중 차녀로 태어난다 군산대학교 교수였던 아버지와 유복한 가정에서 어린시절을 보낸 가수 이연실은 군산여고를 졸업하고 홍익대 미대에 입학한다. 1970년 <가수 팔도대항전>이란 가요제 프로에서 전북대표로 출전하여 입선. 홍대 미대에 재학중이던 이연실은 아르바이트로 소공동 조선호텔뒤 라이브 클럽인 <포시즌>에서 노래를 시작하게 된다. 이때 서울대 철학과 출신으로 배호의 "누가울어" "안녕" , 박경희의 "저꽃속에 찬란한 빛이" 그리고 예비군가를 작사한 60년대 최고의 작사가 전우씨의 눈에 띄여 가수로 데뷔하게 된다. (참고로 전우씨는 1978년 간경화로 42세란 짧은 생을 마감한다) 1971년 9월 제5회 <MBC 팝콘서트>에서 자작곡 "조용한 여자"로 데뷔 리사이틀을 갖고 또한 딕훼밀리의 "또 만나요"를 만든 오세은과 조인트 콘서트를 열며 활발한 가수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그해 11월 데뷔앨범인 <새색시 시집가네>에서 "새색시 시집가네" "둘이서 걸어요" "비둘기집" "하얀눈길"을 발표한다. 1972년 7월 송창식,윤형주,김세환,어은경과 함께 국내 최초의 포크 컴필레이션 앨범을 발표하게 된다. 이 앨범에서 이연실은 "그이 지금 어디에"와 자신이 작사한 "찔레꽃"을 발표한다. 또한 홍익대 재학시절 음악과 인생을 알기위해 휴학까지 하고 대구로 내려가 다방 레지생활까지 하던 열정적이고 당찼던 이연실은 그해 본격적인 가수 활동을 위해 대학생활을 중단하고 홍익대를 자퇴하게 된다. 1973년 3월 3집앨범에서 "시악시 마음" "잃어버린 전설" "기다리는 아이" "별리" 발표 12월 이연실과 최헌의 스플릿 앨범에서 "이밤" "소낙비" "나의 길" 발표 1975년 11월 이연실과 박인희의 스플릿 앨범에서 "한자 두자 일곱치" "먼 나라" 발표 그해 12월11일 일명 대마초 파동에 연루되어 동료가수인 정훈희 이수미 이현과 함께 자수를 하게 된다. 하지만 이연실은 사안이 경미하다고 하여 훈방조치 된다. 1976년 5월 <고운노래 모음집>에서 "조용한 여자" "이제는"를 발표하며 재기 한다. 1981년 5월 이연실의 최대의 히트곡인 "목로주점"이 담긴 앨범을 발표한다. 1983년 2월 양병집의 "오늘 같은날"과 이태원의 "솔개"를 만든 작곡가 윤명환과 손을 잡고 10번째 앨범에서 "그이" "문을 닫고" "겨울"등을 발표한다. 1985년 5월 남편인 김영균과 함께 12번째 앨범에서 "잠실 야구장" "어떤 약속" 발표. 1989년 4월 그녀의 18년 음악인생을 결산하는 마지막 앨범인 13번째 앨범에서 "역" "찔레꽃" "비"등을 발표하고 "민들레"란 노래를 머리에 둔 14번째 앨범인 <새노래 모음집>등 결산과 출발을 의미하는 2장의 앨범을 4월에 동시에 발표하게 된다. (참고로 14번째 앨범에 수록된 "노란 민들레"는 [겨울공화국]의 민중서정시인이자 평민당 국회의원을 지낸 양성우씨의 서정시에 이연실이 곡을 만든 것으로 민주화 운동과정에서 희생된 넋들을 기리는 일종의 진혼곡이다) 1993년 민주당 임채정의원의 후원회에 전유성,엄용수와 함께 참여한다. 1994년 한돌의 <내나라는 공사중>이란 3번째 독집음반 작업에 동참한다. 90년대 중반에 들어 이연실은 가수 활동을 그만 두면서 이후 이연실의 근황이 전혀 알려지지 않게 되었으며 더욱이 한때 건강마저 좋지 않다는 소문마저 떠돌던 터라 그의 오랜 펜들을 더욱더 궁금하게 그리고 안타깝게 하고 있다.

넘쳐 넘쳐 흘러가는 올가 강물 위에 스텐카라친 배 위에서 노래소리 들린다 페르샤의 영화의 꿈 다시 찾는 공주의 웃음띄운 그 입술에 노래소리 드높다 동편저쪽 무리에서 일어나는 아우성 교만할손 공주로다 우리들은 우리다 다시 못 볼 그 옛날에 올가 강물 흐르고 꿈을 깨친 스텐카라친 장하도다 그 모습

그토록 슬프고 그토록 생생한 나의 노래여! 우리 노래의 첫 운명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박인희와 이연실. 그들은 여느 가수들과는 좀 다른 의미로 내게 다가온다. 바로 고백하자면, 그들은 여옥의 후예들이다. 백수광부의 처가 불렀던 노래가 되기 전의 노래에 곡을 붙이고 말을 만든 여옥처럼 그들은 자연의 소리와 인간의 육성에 음악이라는 옷을 입혔다. 나는 그들의 노래를 들으면서 성장했고 내 성장 주기는 그 노래를 들은 횟수와 정확히 비례한다. . . .(중략) 이연실의 노래들도 그러긴 마찬가지였다. 듀엣 한마음 출신의 양하영이 어느 고아원에서 그들과 함께 눈물을 철철 흘리며 부르던 <찔레꽃>이나 봄의 눈부심, 그 찬란한 생명의 태동을 이만큼 더 꿋꿋하게 표현한 곡이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게 하는 <민들레>나 6,70년대적인 정서가 그대로 배여 있으면서도 지금 들어도 결코 낡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목로주점>이나 첫사랑의 아픔이 초경의 비릿함처럼 묻어나는 <새색시 시집가네>나 소월의 시에 가락을 붙인 <부모>도 정겹기가 그지없지만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그가 번안해서 취입했던 <스텐 카라친>이나 <릴리 마를렌> 혹은 더 나아가 우리의 구전민요나 광복군의 노래에서 차용한 <타박네>나 <고향꿈> 같은 곡들이다. 이러한 경향은 동시대의 서유석이나 양병집에게서도 발견할 수 있는 것이겠지만 박인희처럼 이연실 또한 단순한 번안 가수가 아니라 자신의 목소리를 당당하게 낼 줄 알았던 포크 싱어였음을 보여주는 징표라고 할 수 있으리라. 다른 점이 있다면 박인희가 노래에 담겨있는 서정적인 감수성에 치우쳤다면 싱어송라이터로서의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했던 이연실은 포크송만이 지닐 수 있는 민중들의 끈질긴 정한을 잡아냈다는 점이다. 그러한 미덕은 방의경의 <불나무>나 <내 집>, <폭풍의 언덕에 서면 내 손을 잡아주오>나 김인순의 <나비야>와 <하양나비>, 윤연선의 <그 소년>, <고아>, <님이 오는 소리> 그리고 박영애와 이현경의 <아름다운 사람>이나 <그리워라>, <초겨울> 같은 곡으로 흡수되고 확장된다. 그러니까 서유석의 <친구야>나 <그림자>, 양병집의 <부활가>나 <엄마, 엄마 아-엄마>에 나타난 짙은 사회성과 정치성의 또 다른 지점을 이연실이 열어놓았다고 보는 편이 훨씬 더 객관적일 것이다. 아, 그러나 어찌됐든 윤명환의 곡 <오늘 같은 날>이나 <솔개>, <종이꽃>을 부르는 이연실, 그녀의 음성은 서늘하다못해 고혹적이다. 그녀의 음성엔 향토적인 애잔함과 그리움도 녹아있지만 도회적인 쓸쓸함과 고적함의 향취도 진하게 배여 있다. 그러니까 다들 이연실, 이연실 하는 걸까. 뭐라고 정확하게 꼬집어낼 수 없는 그 미묘한 음성은 미국 캘리포니아 오렌지카운티 출신의 여성가수 토니 차일즈와 애팔래치아 산맥의 작은 마을에 은둔했던 제인 리치의 염세적인 슬픔이 깃든 허스키한 목소리를 연상시킨다. 하여, 이연실이 청중들을 끌어당기는 매력은 <꽃반지 끼고>의 은 희가 자아내는 청정무구한 애수와는 그 성격이 다르다고 해야겠다. 곽성삼이 <귀향>이나 <나그네>, <길손> 등에서 추구한 고향의식과 박동률이 <고향가는 길>과 <굴렁쇠>, <잃어버린 시간>에서 보여준 사라진 고향에 대한 생각이 다르듯이.

엄마일 가는 길에 하얀 찔레꽃 찔레꽃 하얀 잎은 맛도 좋지 배고픈 날 가만히 따먹었다오 엄마 엄마 부르며 따먹었다오 밤 깊어 까만데 엄마 혼자서 하얀 발목 바쁘게 내게 오시네 밤마다 보는 꿈은 하얀 엄마 꿈 산등성이 너머로 흔들리는 꿈

- 이연실, <찔레꽃> 전문

찔레꽃을 부르며 나는 울었다. 가시에 찔려서도 아니고 배가 고파서도 아니고 단지 한 사람이 그리워서였다. 그 사람이 보고 싶어서였다. 보고 싶지만 만날 수 없어서였다. 그이는 이곳에 없기 때문이었다. 이 지상에서 가뭇없이 사라져버렸기 때문이었다. 사랑했던 사람을 그리워하면서도 그와 나는 같은 하늘을 바라볼 수가 없다. 같이 밥을 먹을 수도 차를 마시며 웃을 수도 한 이불을 덮고 잠을 잘 수도 없다. 그가 옷을 입는 방식에 대해서 흉을 볼 수도 없고 팔짱을 끼고 행복한 웃음소리에 파묻혀 산책을 할 수도 없다. 그에 대한 기억이 지워지지 않았는데 그를 이제 더 이상은 볼 수 없다는 이 맹목적 현실이, 나를 아프게 했다. 아니, 그것은 아픔의 범주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공포에 가까운 두려움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옳은 일일 것이다. 그가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 나는 무서운 것이다. 없는 것은 없는 것이다. 부재에 대한 어떤 위안이나 상황설명도 그가 내 눈앞에 실재하지 않는다는 엄연한 진실을 은폐할 도리는 없다. 나는 '공즉시색 색즉시공(空卽是色 色卽是空)'이라는 불가의 보편적인 법리를 믿지 않는다. 아니, 믿을 수가 없다. 믿고 싶지가 않다. 존재의 부재와 현존에 관한 문제는 시각적인 것이다. 청각과 후각에 호소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손으로 만질 수 있고 맛볼 수 있는 상태를 전제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인간의 근원적인 오감에 전적으로 의지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가 없음으로 인해 벌어지는 그 모든 실존의 현상들을 마주하기가 겁이 난다. 슬픔의 무게와 상실의 아픔을 감당할 수가 없다. 고통스러운 것은 끝끝내 고통스러움 그 자체일 따름이다. 이연실의 노래는 내가 사랑했던 대상이 이제는 멀리 떠나버려서 다시는 내게로 되돌아올 수 없음을 상기시킨다. 나는 다만 그의 노래를 가끔씩 흥얼거리면서 어리석은 추억과 감상에 젖을 뿐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러한 추억과 감상이 그의 순전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한 줌의 재로 화하는 날, 나 역시 그들을 미련 없이 떠나보내야 함을 알고 있다. 가슴속에서 깨끗하게 지워내야 함을 알고 있다. 그것이 우리네 인생이라는 것도. 그러나 그 순간이 오기까지는 나는 여전히 바람 불고 비오는 날 혹은 문득문득 누군가가 아무 허락도 없이 내 마음의 빗장을 부수고 내 속으로 쳐들어는 날이면 기꺼이 그들에게 나를, 내 영혼의 전부를 송두리째 온전히 내맡길 준비가 되어 있다. 내게도 그만한 권리는 있지 않겠는가. 이연실의 노래를 부르는 순간, 나는 그의 노래가 되고 싶었다. 흔들리지 않는다는 건 때로 내가 끊임없이 흔들리고 있다는 증거이리라. 나를 흔드는 노래 그리하여 내 생의 일부가 되는 노래, 그 노래는 내 몸과도 같다. 노래가 몸이 되고 몸이 노래가 되는 경지, 노래에 취해 내 몸이 대기 속으로 흡수되는 듯한 어떤 떨림의 순간 나는 더 이상 내가 아니었다. 내가 아닌 나, 단백질의 분자로 구성된 유기물질이 아닌 신성한 존재감에 전율하는 그 무엇. 그것이 무엇이라 한들 어떠랴. 이연실의 노래는 나의 향수를 자극한다. 그 향수는 노스탤지어가 아니다. 내가 향수의 주체가 되어 그의 노래 속으로 걸어 들어갈 때 내 눈앞엔 또 하나의 세계가 펼쳐진다. 그 세계는 '나'의 영혼과 '그'의 영혼이 자유롭게 교감하는 무한 혼융(混融)의 세계이다. 비유는 낡아도 결코 낡을 수 없는 생처럼 그렇게 그의 노래는 살아있다. 김혜린의 <비천무>와 오 수의 <느티나무가 있는 풍경>에서처럼. 글 출처 : 웹진 가슴 최창근 2002/06/22 "동편 저쪽 물 위에서"라는 가사는 "돈 코샄(돈강 유역의 코사크족 혹은, 카자크족)의 무리에서"라는 가사가 와전된 가사인 듯 하다고 한다. 스텐카 라진[Razin, Stepan Timofeyevich, 1630?~1671.6.16] 이라고도 한다. 돈 지방의 카자크의 부유한 가문 출신으로 카자크에 대한 정부의 간섭을 증오하여, 무산(無産) 카자크와 도망 농노(農奴)를 규합, 1667년부터 이듬해에 걸쳐 볼가강 하류와 카스피해 연안을 횝쓸고 다녔다. 1670년 다시 볼가로 진출, 강어귀의 아스트라한을 점령한 뒤 북상(北上)하여 볼가 중류까지의 광대한 지역의 농민을 지주와 관리들에 대항하는 반란에 합류시켰다. 그러나 그해 10월 반란군은 심비르스크(현재의 울리야노프스크) 교외에서 정부군에 대패하여, 라진은 남쪽으로 도망쳐 돈에서 재기(再起)를 꾀하였으나, 이듬해 4월 체포되어 모스크바로 압송 처형되었다. 이 반란은 러시아 역사상 대규모 농민반란으로서, 그는 민요(스텐카 라진)로도 불리어 오랫동안 러시아 농민의 기억에 남았다. 여름에는 그런 생각이 거의 들지 않는데 지금처럼 늦가을이나 겨울만 되면 시베리아와 러시아의 대지가 친근하게 다가온다. 70년대 이연실이 이 노래를 부를때 기관에서의 시선이 곱지 않았다고 한다. 이러저리 짜집기 했기에 글과 사진과 노래의 출처를 밝히는게 웃기는것 같아서 고마 그냥 통과^^ 이럴땐 동네장사가 편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1917년 혁명 후, 내전기 백군이 7년에 걸쳐 가장 치열하게 적군에 저항한 격전지로 유명하며, 솔로호프의 노벨상 수상작인 <고요한 돈 강>의 실제 무대이기도 하다. 그 후 정부의 집중투자로 대규모 공장, 특히 트랙터 공장이 건설되면서 공업지역으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세계 2차대전 중에 200여일에 걸친 '스탈린그라드 전투'로 전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되나, 제대로 성한 건물하나 남지 않은 폐허가 되었다. 전쟁후 대대적인 복구작업에 착수해 1950년대에는 세계 제1의 담수량을 자랑하는 볼가강 하류 볼시키시에 유럽최대의 수력발전소가 완공되었다. 값싼 전력을 이용하려는 각종 중화학공업, 군산복합체도 집중적으로 들어서고 러시아의 핵심 공업 지역중 하나로 각광을 받았다.1961년 스탈린그라드에서 볼고그라드(Volgograd)로 개칭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연실, 그 청아한 음유시인의 기억 유행가, 혹은 대중가요라는 이름은, 그 의미 만으로 보자면 시(詩)와 다르지 않다. 시는 한때 한 시절 사람들의 입에서 떠나지 않는 유행의 노래이며 뭇사람들이 즐기는 신명의 가락이었다. 지나간 가수 중에서 가장 시인다웠던 사람을 고르라면 나는 박인희를 들겠다. 그녀는 박인환의 시 '목마와 숙녀'를 그대로 낭송했고 '세월이 가면'은 곡을 붙여 불렀다. 박인환의 이 시들은 박인희의 그 곱고 애절하면서도 절제있는 목소리를 통해야 제 맛이 날 정도다. 박인희의 '모닥불'이나 '끝이 없는 길' '얼굴'은 한 시절을 감전시킨 음표의 시(詩)다. 그 노래들은 넋나간 듯 늦가을 밤을 지키며 모닥불 가에서 목이 쉬도록 불러야 원음(原音)이 나온다. 박인희 뿐 아니라, 서유석이나 정태춘에게도 시와 대중가요의 쿨한 만남은 계속된다. 그들 또한 모두 각자의 물길로 각자의 노를 저어 각자의 빛깔로 각자의 소신으로 저쪽, 시의 등대가 희부윰한 안개 속을 멀리까지 저어나간다. 하지만 나는 박인희의 시대에 등장해, 알 수 없는 신비감으로 귀를 사로잡았던, 어쩌면 그 야릇한 비현실감 때문에 유령처럼 느껴지는 한 여자를 기억한다. 그가 이연실이다. 이연실의 '찔레꽃'과 '새색시 시집가네' 그리고 '타박네'는 산업화의 멀미 속에서 성장정지의 볼멘소리같은 어린 중얼거림이 기이한 공명으로 울려퍼졌다. 그가 저 향토빛 노래를 부를 때면 그에겐 찔레꽃 민들레 향기가 났고 그의 고무신엔 흙이 묻어 있었다. 하지만 그가 '스텐카라친'이나 '릴리 마를렌'을 부를 땐, 꿈의 담장을 넘어 엿보았던 그 낯선 풍경 속에서 히아신스를 꽂은 소녀가 돋아났다. 그 이국적인 정조는 감미와 퇴폐가 설탕과 프림처럼 섞여 혀끝으로 녹아든다. 내가 한 시절 가장 매료됐던 그녀의 노래는 '조용한 여자'이다. 어젯밤 꿈 속에서 보랏빛 새 한 마리, 밤이 새도록 쫓아헤매다 잠에서 깨어났지요,로 시작하는 그 노래. 이제 막 그리움의 초경(初經)을 시작하는 풋소녀의 싱숭생숭을 마치 숨소리 붙들듯 잡아낸 멋진 노래였다. 하지만 '나는 소녀가 아니고 여인 또한 아직은 아니지만, 장발 단속엔 안 걸리니 여자는 분명 여자지요'라고 말하는, 어렴풋한 정체성의 인식은 그녀가 꿈에서 발견한 보랏빛 새처럼, 살짝 열린 문틈으로 비치는 달콤한 세상으로 향해 있다. 나는 조용한 여자를 통해, 여자의 마음을 엿보았고, 그녀를 통해 여자의 눈을 만났다. 조용한 건, 다름이 아니라, 그녀를 노크해줄 어떤 존재가 아직 나타나지 않은 상태의 고요이다. 순결이란 어쩌면, 아직 사건이 시작되지 않은 영화를 보는 설렘과 기대처럼, 두근거리는 퇴폐의 기분이란 걸, 저 노래는 가르쳐주었다. 이연실의 목소리는 감정을 가공하지 않고, 슬픔을 더 보태지 않은, 교태도 섞지 않은 맑은 물소리같이 흘러들어온다. 잡티가 섞이지 않았기에 어쩐지 불안하고 어쩐지 서글프고 어쩐지 외롭다. 대중가요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느냐를 누가 묻는다면 나는 이연실의 '소낙비'를 얘기하리라. 이 희한한 번안곡에는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영화의 장면들에서 느끼는 시적인 설렘, 혹은 요즘의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포터' 등의 판타지 영화의 매력을 생생하고 아름답게 담고 있다. 검은 고깔모자를 쓰고 빗자루를 타고 날아다니는 마녀와, 그 아래 크레용 그림처럼 펼쳐져 있는 세상. 세상을 덮는 소낙비의 눈으로 바라본 풍경들은, 어쩌면 우리의 상상력이 그리지 못했던 상쾌하고 따뜻한 세상을 스냅스냅으로 보여준다. 빗소리를 타고 날아다니는 노래, 마녀와 세상이 공존하는 노래, 어쩌면 현실의 최루탄과 억압적 공기를 피해, 꿈으로 달아난 사람들이 바라본 한 바탕의 '헛 것'들. 그게 아프고도 감미롭게 붙들린다. 나는 '소낙비' 만한 음유시를, 이연실같은 음유시인을, 이후 들은 적도 만난 적도 없다. 과연 그런지 빗소리에 젖어보시라. (2004, 11, 4) 글 출처 : 옛날다방 (빈섬)

Rough translation:

Lee Yeon-sil (born 1950) Acoustic guitar folk singer Lee Yeon-sil in the 70's.


In 1970, she competed as a representative of Jeonbuk in the singer Paldo Grand Competition. She was at the 5th MBC Pop Concert in 1971 while still studying at the Department of Sculpture, Hongik University. She had a debut recital, earnestly singing her own compositions such as "The Quiet Woman." In this recital, she emerged with a highly anticipated prospect, showing off the sensation and skills of 'Melanie Safka' (the main character of the "wet voice" in 1947).


Lee Yeon-sil was going to rise to the stardom by releasing his first album 'Sae Saek-si'. She wanted to sing the life of everyday life. She was versatile with not only in singing but also as a composer, and guided by a sincere life experience is her attractive and clear voice.


Lee Yeon-sil was born in 1950 as the second daughter of four sons and two daughters in Gunsan, Jeonbuk.


Singer Lee Yeon-sil spent her childhood in a wealthy family with her father being a professor at Kunsan University. She graduated from Gunsan Girls' High School and entered the University of Hongik University. In 1970, she competed as a representative of Jeonbuk in the singer's Paldo Grand Competition.


Lee Yeon-sil, who was a student at the University of Hongdae, started singing at the four-season live club behind the Sogong-dong Chosun Hotel. At this time, she is from the Department of Philosophy at Seoul National University. She debuted as a singer, and became be known for "Who's crying", "Goodbye", Park Kyung-hee's "Glowing Light in the Flowers" as one of the best writers of the sixties. (For reference, Jeon Woo ends his short life of 42 years with cirrhosis in 1978.)


In September 1971, the 5th MBC Pop Concert, she made his debut recital with her own song "The Quiet Woman" and also started a joint singer concert with Oh Se-eun, who performed Dick Family's "See You Again". In November of that year, she had her debut album, "Saeksi-si's Poems," announcing "Saeksi-si's Poems," "Walking Together," "Pigeon House," and "White Snow."


In July 1972, Song Chang-sik, Yoon Hyung-ju, Kim Se-hwan, and Eun-kyung will release Korea's first folk compilation album. In this album, Lee Yeon-sil announces "Where is he now" and his "Written Flowers". In addition, Lee Yeon-sil, who had been absent from school to learn about music and life and went down to Daegu to live in a coffee house, stopped her college life and dropped out of Hongik University that year.


In March 1973, the third album included "Sixi Si Mind," "The Lost Legend," "The Waiting Child," and "Bae-ri."


In December Lee Yeon-sil and Choi Heon released a split album and released "Night", "Rain Shower" and "My Way".


In November 1975, Lee Hyun-sil and Park In-hee's split album released "Chinese Characters Two Characters Seven"


That same year, on December 11, she was involved in the cannabis wave and embroidered with fellow singer Jeong Hoon Lee Soo-mi Lee Hyun. But Lee Yeon-sil is admonished because the matter is from when she was a minor.


In May 1976, The Collection of Fine Songs, "The Quiet Woman", "Now Now," is released and recovers. In May 1981, she released an album containing Lee Yeon-sil's biggest hit song, "Mokro Tavern." In February 1983, she joined hands with composer Yoon Myung-hwan, the creator of Yang Byung-bak's "Today's Day" and Itaewon's "Kite," to release "he", "close the door" and "winter" on the 10th album. In May 1985, with her husband, Kim Young-gyun, she released "Jamsil Ballpark" and "A Promise" on his 12th album.


In April 1989, her last album, which ended her 18-year musical life, she released her 13th album, "Singer," Brier, "Rain," and the 14th album, "Dongle". Two albums will be released at the same time in April.


(For reference, "Yellow Dandelion" in the 14th album is a song written by Lee Yeon-sil, a song written by Lee Yeon-sil during the lyrical lyrics of Mr. Sung-woo, a lyricist of [Winter Republic] and a member of Parliamentarians.)


She Participated in 1993 in 'Democratic Party' with Lim Chae-jung and Yoo Yong-soo. In 1994, she participated in the third solo album titled "Under Construction".


In the mid-90s, Lee quit her singer activities, and since then, Lee's recent status has become unknown, and even once rumored that his health was not good.


On the overflowing Olga river

I can hear a song on a stealthy stomach

a Persian Film of Dreams of Finding a Princesses Again

The sound of singing is high on that lip

Shouts in the horde

a Proud Princess. Like we are.

I'll never see that old Olga river flowing again

Park In-hee and Lee Yeon-sil came in a different way than other singers. They wore music like the sound of nature and the upbringing of human beings, like a quartet who made songs and made songs before they became songs sung by the White Miner's wife. I grew up listening to their songs, and my growth cycle was exactly proportional to the number of times I heard them. .


It was the same with the songs of Lee Yeon-sil. Duet, Yang Ha-young, a native of Yang Hae-young, sheds tears with them in an orphanage, and there is a song that expresses the brilliant spring of glare and the birth of life. Even though the emotions of the 70's are still intact, they are never old, but the first love's pain is buried like a cemented carbide, or in a kind of parents' poetry with melodies. But what's even more surprising are songs such as Stan Karachin, Lilly Marlene, or even Thabakne or Hometown Dream, which he borrowed from the songs of our oral folk songs and liberation troops.


This trend can be found in contemporary Seo You-seok or Yang Byeong-seop, but it can also be said that Lee Yeon-sil, like Park In-hee, was not a simple singer but a folk singer who knew how to express his voice. The difference is that Park In-hee's lyrical sensibilities are in the song, while Lee Yeon-sil, who showed her disposition as a singer-songwriter, caught the tough devotion of the people that only folk songs can have.


Such virtues are Bang-kyung's <Fire Tree>, <My Home>, <Hold My Hand on the Hill of Storm>, Kim In-sun's <Naviya>, <White Butterfly>, Yoon Yeon-sun's <The Boy>, <Or>, It is absorbed and expanded into the songs such as <The Sound of You Comes> and <Beautiful People>, <Wish> and <Early Winter> by Park Young-ae and Lee Hyun-kyung. Therefore, it would be far more objective to see Lee Yeon-sil open another point of dark sociality and politics in Seo Yoo-suk's Friend, Shadow, Yang Byeong-bi's Revival, and Mom and Mom Ah-Mom.


Oh, but anyway, Lee Myung-hwan's song <Let's Like Today>, <Kite>, and <Paper Flower>, Lee Yeon-sil, her voice is alluring because it is cool. Her voice melts with local grief and longing, but the scent of urban loneliness and hardship is deeply imbued. So does everybody do this? The subtle voice, which can't be pinned precisely, is reminiscent of the husky voice of the singer Tony Childs from Orange County, California, USA, and Jane Ritchie's pessimistic sorrow in a small town in the Appalachian Mountains. In other words, Lee Yeon-sil's attraction to the audience is different from the pure innocent sorrow of Eun Hee in the Flower Ring. Just as Kwak Sung-sam's consciousness of hometown and his rhythm that Park Dong-ryul pursued in <Hometown>, <Route>, and <Gillson> differ from his thoughts on the lost hometown shown in <Roadway Home>, <Hoop>, and <Lost Time>.


White brier brier's white leaves taste good

I ate them when I was hungry as if my Mom called me Mom and ate it

It's black at night, when my mom is coming to the end of the bed

In my dream I see every night this white mom

-Lee Yeon-sil, <Brier Flower>


I cried for the brier. Not because it was pierced by thorns, and also not because he was hungry; it was because missed her. I Wanted to see her but we could not meet. She was not here. For she has vanished from the earth. I miss the loved one, for we cannot see the same sky again. You can't eat together, drink tea together, laugh, or be covered together by a blanket. Not being afraid of the way one wears her clothes or can't take a walk with arms crossed in happy laughter. This blind reality, that the memory of her had not been erased and I could no longer see her made me sick.

No, it would be more right to say that it is not a category of pain, but a kind of fear.

It is a scary world where she does not exist. There is nothing without it. No comfort or explanation of absence would conceal the true truth that he did not exist before my eyes. I do not believe in the indispensable universal law of 'color-on-the-fly'. No, I can't believe it. I don't want to believe it.

The problem of absence and presence becomes visual. Then it appeals to hearing and smell. It assumes a condition that can be touched and tasted by hand. For one is wholly dependent on the fundamental five human senses. I am afraid to face all those phenomena of existence that arise from her absence. I can't afford the weight of sorrow and the pain of loss. What is painful is the pain itself at the end.


Lee's song reminds me that a loved one is now far away and can never come back. I just hum her songs from time to time and cry for stupid memories and appreciation of them. At some point when those memories and sentiments fail to fulfill his pure role and turn into a handful of ashes, I also know that I have to leave them for what they are with no regret. I know that I need to clean it up from my heart. It's how our life is to be. But until that moment comes, I'm still ready for the winds and rain that come my way until suddenly someone breaks one's heart and breaks into me without my consent. Wouldn't I have that right too to feel this way?


The moment I sang Lee's song, I wanted to be her song. Not to be shaken by it would be the evidence that I am constantly shaken. The song that shakes me is the song that becomes part of my life. That song is like my body. When the song became the body and the body became the song, a moment of trembling came over me as if my body was absorbed into the atmosphere ; in which I was no longer myself. What I ws not is that I'm thrilled with the divine presence, not the organic matter made up of molecules of protein. What is it like? Lee's song stimulates my fragrance.


The perfume of it is not just nostalgia. As I become the subject of nostalgia and walk into his song, another world unfolds before my eyes. The world is an infinite blending world in which 'my' soul and 'his/her' soul freely communicate. A parable is that like a life that is old and never grow old. In that way this song is alive. Like in Kim Hye-lin's Bicheonmu and Oh Su's Scenery with Zelkova.


Source: Webzine by Choi Chang Geun 2002/06/22


The lyrics, "On the East Side of the Water," seem to be full of lyrics, "from the horde of the Don Cossacks, or the Cossacks of the Don River.


Also known from Razin (Razin, Stepan Timofeyevich, 1630? ~ 1671.6.16). Born from the wealthy family of the Cossacks in the Don province, he hated the government's interference with the Cossacks.


In 1670 he went back to Volga, occupied the Astrakhan of the estuary, and then went north, joining a rebellion against landowners and officials in a vast region up to the middle of Volga. In October of that year, however, the rebels defeated the government troops in the suburbs of Simbirsk (now Ulyanovsk), and Razin fled south to recover money, but was arrested and executed in Moscow the following year. This rebellion was a large peasant uprising in Russian history, and he was also called a folk song (Stenka Razin) and has long been a memory of Russian peasants.


I rarely think about it in the summer, but in late autumn or winter, the land of Siberia and Russia is approaching intimately. When Lee Yeon-sil sang this song in the '70s, her gaze at the institution was not multiplied. Because it was squeezed around, it's funny to reveal the source of the texts, photos, and songs. I am thankful for it, and let it pass.


After the Revolution of 1917, the Civil War White Army was known for its fierce fighting against the enemy over seven years, and is the actual stage of Solohof's Nobel Prize-winning Quiet Don River. Later, with the government's intensive investment, large-scale factories, especially tractor plants, began to turn into industrial areas. During World War II, the world-renowned reputation of the Battle of Stalingrad over 200 days, it became the ruin of a well-built building.


In the 1950s, Europe's largest hydroelectric power plant was completed in the 1950s, the lower Volga city, boasting the world's largest freshwater. Various heavy chemical industries and military-industrial complexes that are trying to use cheap electricity were also concentrated and gained the spotlight as one of Russia's core industrial areas, which was renamed Volgograd in Stalingrad in 1961 to this day.


Lee Yeon-sil, the memory of the elegant bard poet


Popular songs, or pop song by no means could be different from poetry.


Poetry was once a song of fashion that did not leave people's mouths and was a melody of apprecation that everyone enjoyed. If you choose the most shy singer of the past, try to listen to Park In-hee. She recited Park In-hwan's poem 'Horse and Lady' and sang 'When the Time Goes'. The poems of Park In-hwan can only be tasted through Park's fine, heartfelt yet modest voice. Park In-hee's 'Bonfire' or 'Endless Road' and 'Face' are poems of musical notes that touched an age. These songs must be kept in their late nights as if they were intoxicated, and they must be sung at the campfire to get their original sound.


Not only Park In-hee, but Seo Yoo-seok and Jung Tae-chun continued the cool encounter between poetry and popular songs.


They also all paddle their own oars with their own waterways, and with their own convictions in their own colors, the lighthouse of the poem runs far in the mist. I remember a woman who appeared in the time of Park In-hee, and who caught her ears with an unknown mystery, and who seemed to be a ghost because of her weird unreality. As a guest in the situation.


Lee Yeon-sil's brier, Saeksi's marriage, and Tamakne resonated with bizarre resonances in the midst of industrialization. When she sang that local song, she smelled of a dandelion of brier flowers, and her rubber shoes were dusty. But when she sang 'Stenkarachin' or 'Lily Marlene', a girl who wore hyacinths emerged from the strange scenery that she looked beyond the fence of dreams. The exotic chaotic sweetness and decadence mix like sugar and prim and melt into the tip of the tongue.


Her most fascinating song of all time was "The Quiet Woman."


The song that started with a purple bird last night in my dream, kept me awake all night. It's a wonderful song that captures the puzzling foot girl who is just beginning the menace of longing. In a dim perception of identity, she says 'I'm not a girl and I'm not a woman yet, but it's not a long haircut, is a woman,' is a sweet world open to the slightly open door, like the purple bird she found in her dreams.

I peeked at the woman's heart through a quiet woman and met her eyes. Quiet is nothing but a stillness that has not yet appeared to knock her. The song taught me that chastity is a feeling of pounding decadence, like the excitement and expectation of watching a movie that has not yet started. Lee's voice flows like clear water that does not process emotions, adds sorrow, and does not mix with coquetry. Because the blemishes were not mixed, it was somehow anxious and somehow sad and lonely.


If anyone asks how far the pop song can go, I'll talk about Lee Yeon-sil's 'rain shower'.


This fascinating draft song vividly and beautifully captures the poetic excitement of the film 'The Society of Dead Poets' or the fantasy of such films as 'The Lord of the Rings' and 'Harry Potter'. A witch flying with a black hat and flying on a broom, and a world like crayon paintings beneath it. The landscapes seen through the snow showers of the world show a snap-snap of a fresh and warm world that our imagination could not draw.


Songs flying in the sound of the rain, songs with the witch and the world coexisting, and perhaps 'hover things' as seen by people who fled to their dreams, avoiding tear gas and oppressive air. It hurts and is sweetly held. I have never heard or met a poetry like 'rain showers', a poet like Lee Yeon-sil. Let's get wet in the rain. (2004, 11, 4)

See also https://m.blo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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