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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혜경 - Kwon Hye-Kyeong


Jigu Records 권혜경 / Kwon, Hye-Kyeong : 골든 compilation -2cd- (2007)*°°'

JMCD-0130-1/2

some favorites : CD2,6: 유성이 흘러간 곳, CD3,8, 애수의 토요일, CD2,11, 밤의 연가

When I checked my old compilations and which artists had separate compilations, I decided to check out Kwon Hye-Kyong for her in some ways distinctive voice. Her voice fits most perfectly with a slower kind of songs. There’s a certain vibration in her voice, which of course just becomes something that cannot be helped at later age. The first track on the compilation, with more commercialised strings, easy drums and bass and some other reed arrangements does not show exactly what this really could really mean and could cause as effect over the years, so this might not be the best first track introduction for foreigners. Seen what else is on the compilation, I understand and grasp well its specific quality and where it comes out to best effect. Kwon, Hye-Kyeong looks like a diva in the early days. The style in which the songs emerge sound like coming from the late 40s, early 50s. They could fit in film music fragments.


Four songs are duets with An Dae-Song. The first one, with army trumpet in the background and spoken word has that nostalgic looking back of a movie fragment as well. The slow and fragile atmosphere with orchestral strings and slow rhythms, subtle electric guitar will catch you end the end, together with the warm emotionality of the songs. The last track of side 1 is I guess another war-related track with several singers.


The second CD starts again with two more recently recorded songs, and older voice(s) and with cheaper keyboard arrangements. Luckily one looks further back to the past too. One track is a duet with Jin Young-Nam. The second album gives you all the time to get into the romantic vibe of the slow waltzes and songs and its specific atmosphere.


The oldest recordings still sound best while most of the songs dominate to come from a later nostalgic compilation session.

CD1-01 산장의 여인 / Cabin Woman

02 꿈속에서 / In my dreams

03 못 잊을 6.25 / 6.25 forgotton

04 석양의 엘레지 / Elegee at Sunset

05 적막의 블루스 / silence blues

06 아무도 모르게 / without anyone knowing 07 헤어지지 말자고 / Don't break up

08 붉은 입술 / red lips

09 행복의 문 / door of happiness

10 슬픔이 시작될 때 / When sadness begins

11 회상 / Recall (remember)

12 성난 독수리 / angry eagles CD2-01 호반의 벤치 / lakeside bench

02 청실홍실 / Blue Room

03 눈물 / Tears

04 나는 몰랐소 / I didn't know

05 청춘 하이킹 / Youth Hiking

06 유성이 흘러간 곳 / Where Meteors Run 07 사랑이 가기 전에 / Before Love Goes

08 애수의 토요일 / sorrowful Saturday

09 밝고 간 자욱 / bright and thin

10 고향에 봄은 와도 / Even if spring comes home

11 밤의 연가 / love songs of the night

12 내 마음을 아시리 / You Know My Heart

Other tracks can be found on:

유성기로 듣던 가요사 두번째(1945~1960) [Disc 11]

CD2-13 산장(山莊)의 여인 / Mountain woman (1956)

CD2-14 사랑의 길 / Road of love

"Mountain Woman" is a song with classical voice but singing a sad song on a rhythmical foundation with small orchestra/combo (piano, oboe, strings and accordion). Also "Road of Love" clearly is an older track in which the voice gets lots of resonance and the smaller orchestra, -which is also more of a combo compared to the later bigger and more seriously sounding orchestras- remains a bit more in the background, with its string instruments, reed instruments, guitar, bass, accordion and such, playing in a slow somewhat dance rhythm.

CD11-4 그대 얼굴 / Your face

On "Your Face" we have full orchestral arrangements (strings, glockenspiel and piano), in which the singing in classical western music style fits perfectly in harmony. The song itself is romantic and filmic, but I have no idea about the theme. It is beautiful.


가요(歌謠) 박물관 / Music Museum 220 Best

CD1-19 한송이 물망초 / A bunch of forget-me-nots (1963)

This is a slowly waltzing song with nostalgic effect, a not so unusual, somewhat typical so more mainstream romantic song of its time, - lullaby-like.

백영호 작곡집: 성난 독수리/지평선은 말이 없다 [Disc 1] / composer Young-Ho Paik


CD1-4 유성이 흘러간 곳 / Where the meteor (?) flowed

CD1-6 슬픔이 시작될 때 / When sadness begins

CD1-11 꿈속에서 / In my dreams


I really like this sad waltz, which was sparsely but carefully composed and arranged by Young Ho Pak with orchestra and a solo organ. It is one of favourite tracks with this singer. "When Sadness begins" is another beautiful sad song, sparsely arranged by gentleman's classical dance rhythms, accordion and strings. A beautiful song and performance as well. "In my dreams" is another nice song moving like a slow dance (a tempo slower than a waltz - I am not specialized enough to be able to define th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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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OGRAPHIES:

산장의 여인’을 부른 원로 가수 권혜경(본명 권오명)씨가 25일 오후 1시 청주 효성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77.

권씨의 측근은 “원래 건강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최근 교통사고를 당해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다 세상을 떠났다”고 전했다.

권씨는 강원도 삼척에서 태어나 서울대 성악과를 나온 뒤 조흥은행에 입사해 일하다 26살 때 케이비에스 전속가수 모집에 응모해 뒤늦게 가수가 됐다. 이듬해 이재호씨가 작곡한 데뷔곡 ‘산장의 여인’이 대단한 인기를 누리면서 단숨에 스타가 됐고, 이어 ‘동심초’ 등의 노래를 발표하며 50년대 후반 최고 인기가수로 활동했다.

그러나 데뷔 2년 만인 59년 심장판막증 판정을 받은데 이어 후두암까지 앓게 됐다. 병과 싸우면서도 박춘석씨가 작곡한 ‘물새 우는 해변’을 발표하기도 했으나,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결국 60년대 중반 가수 활동을 완전히 접고 투병 생활을 계속했다.

평생을 독신으로 지낸 고인은 94년 이후 충북 청원에 정착해 마치 ‘산장의 여인’ 가사처럼 홀로 살아가다 세상을 떠났다. “아무도 날 찾는 이 없는 외로운 이 산장에/ 단풍잎만 채곡채곡 떨어져 쌓여 있네/… 병들어 쓰라린 가슴을 부여안고/ 나 홀로 재생의 길 찾으며 외로이 살아가네.” 발인 27일 오전 9시, 청주시장례식장 (043)291-4444~7.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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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ughly translated with the help of Google Translate as :


Kwon Hye-kyung (real name Kwon Oh-myung), is a singer known for the song “a lady in the mountain”, died at 1 pm Cheongju Hyosung Hospital on October 25. 77. Kwon's ancestor said, “she left the world because of a recent traffic accident while being in poor health, was treated in her final days in the intensive care unit." Kwon was born in Samcheok, Gangwon province, graduated at Seoul National University. At the age of 26, she stopped her former career and applied for a full-time singer-songwriter and singer career. In the following year, Lee Jae-ho's debut song "Woman in the Cabin" became a popular song with which she won stardom. This was followed by songs such as "Dong Seoncho" which made her most popular singer in the late '50s. Just after two years of her debut, she was diagnosed with heart valve disease at 59 years. While fighting against the disease, she still released "Waterbird Beach" written by Park Chun-suk, but after a while failed the battle against the disease so that she was forced to give up her singer activities in the mid-'60s. Until her final days she settled in Chungbuk Cheongwon.


The lyrics of "The Woman in the Cabin" seemed to have become a reality “No one is looking for me in a lonely hut / I am piled up on the leaves of maple leaves / ... I am sick and tired in my bosom / I am looking for a way to regenerate alone and I am lonely still a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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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장의 여인'의 가수 권혜경, 그 후 4년간의 이야기

'사랑은 한갓되이 풀잎만으로 맺었지만 삶은 스스로 두 번 엮다'

2012년 06월 04일 (월) 17:13:02박성서 대중음악평론가 webmaster@newsmaker.or.kr

이름 앞에 늘 '산장의 여인'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던 가수 권혜경(1931~2008) 여사가 타계한 지 4년. 그가 생의 마지막을 보냈던 충북 청주 일원에서는 현재 추모 열기가 한창이다. 두 차례에 걸친 추모콘서트에 이어 문의관광단지 입구에 세워질 '권혜경 노래비'와 함께 '제2의 권혜경'을 발굴하기 위한 '권혜경가요제' 또한 두 차례 열렸다. '아무도 날 찾는 이 없는 외로운 이 산장에...', 한 여인의 삶과 운명을 함께 한 이 노래처럼 만년에 삶의 의지를 불태웠던 곳. 그러나 그 '산장'엔 현재 다른 이가 살고 있다. 집이 남의 손에 넘어간 것이다. 이 '산장'에는 대체 어떤 일이 그동안 있었던 것일까. 내가 만난 권혜경, 그리고 타계 후 4년간의 이야기를 2회에 걸쳐 연재한다.

글 l 박성서 (대중음악평론가, 저널리스트) 사진 l 최광호, 박성서

▲ '산장의 여인' 가수 권혜경

필자가 권혜경 여사를 처음 만난 것은 지난 2004년이다. 원로가수 채록 작업으로 이어진 이 만남의 사진은 최광호가 맡았다. 권혜경 여사는 단숨에 사진작가 최광호를 매료시켰다.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이토록 당당하게 받아들이며 끔찍하게 껴안고 사는 모습에 전율을 느꼈다고 했다. 이러한 감동을 계기로 최광호는 원로 연예인들의 삶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고 이후 채록 일정이 잡히면 그가 누구든 간에 만사 제쳐두고 달려 나와 셔터를 눌러댔다. 권혜경의 그 무엇이 우리나라 대표적인 인물사진작가 최광호를 사로잡았을까. 2004년 부산mbc의 '박성서의 음악파일'을 시작으로 그동안 방송과 신문 지상을 통해 밝힌 우리의 첫 만남은 이러했다. 그 일부분인 당시 기사를 먼저 소개한다.

이 사람이 사는 이야기ㅣ'산장의 여인'의 가수, 권혜경의 삶과 사랑 이름 앞에 늘 '산장의 여인'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가수 권혜경. 그 노랫말대로 운명이 바뀌어 지금껏 살아온, 그러나 대중들 앞에서는 늘 웃는 모습만을 보여주던 가수, 권혜경 여사를 만나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몇 년 전, '산장의 여인'의 작사자 반야월 선생과의 술자리에서였다. 술자리에서 '산장의 여인'의 노래비 또한 세워져야 하는 것 아닐까, 주장하다가 화제는 자연스럽게 가수 권혜경씨의 근황으로 옮겨져 갔다. 문득 그녀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수소문 끝에 전화번호를 입수했다. 그로부터의 몇 년 간의 이야기.

1.

사는 곳은 충북 청원군 남이면이라 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사는 곳의 위치를 알기 쉽게 설명하지 못했다. 바깥출입을 거의 안하고 산지 오래이기 때문이라고도 했고 또 기억력이 자꾸 떨어지는 나이 탓이라고도 했다. 마음에 걸렸지만 무작정 주소만 가지고 길을 나섰다. 작업 때문에 몇 날 밤을 샜기 때문에 핸들을 잡을 수 없었던 사진작가 최광호를 대신해 그의 아내 심옥련이 핸들을 잡았다. 서울서 멀지 않은, 그러나 처음 가보는 길을 셋이서 출발했다. 곧 맞닥뜨리게 될 가수, 권혜경 여사의 현재 모습이 쉽게 떠올려지지 않았다. 오래 전 어느 신문에선가 웃고 있는 작은 사진을 본 것도 생각해보니 무려 이십년 전이다. 이따금씩 들어보는 음반 사진들도 사오십 년 전 모습들일 뿐이다. 그 걸 걱정했을까, 권혜경 여사는 우리가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빨간 옷을 입고 집 앞에 서있겠노라 했다. 그러면서 덧붙였다. '나 권혜경은 이제 백발 할머니야'. 그렇게 찾아낸 그녀의 집은 산마을의 거의 끝자락에 있었다. -백발, 빨간 옷, 눈 주위의 짙은 검정 색조 화장, 때문에 더욱 작아 보이던 얼굴. 주름살 가득한 웃음. 헐렁한 추리닝 바지에 맨발에 신겨진 고무신. 이것이 우리가 만난 권혜경 여사의 첫 모습이었다.

2.

대문 안으로 들어섰다. '예쁜 집'이다. 열 평 남짓한 정원에 꽃나무들이 가득했다. 그 정원 한가운데에 움푹 파여진 구덩이가 시야에 들어왔다. 시간 날 때마다 스스로 혼자 팠다고 했다. 나중에 본인이 누울 곳이라고도 했다. 이 정도 크기면 혼자의 몸을 충분히 눕힐 수 있다고 했고 언젠가, 누군가 찾아와줄 사람들과 되도록이면 가깝게 있고 싶어 일부러 지면에서 얕게 팠다고도 했다. 그 속에 풀이 몇 포기 자라고 있어 판 지 얼마간 지났음이 짐작되어졌다. 그녀의 꿈은 이 묘 앞에 '산장의 여인' 노래비(碑)를 세우고 싶은 것이라 했다. (사진-05)그렇다, 우리는 지금 '산장의 여인'의 바로 그 '산장'에 와 있는 셈이다. (사진-06) '아무도 날 찾는 이 없는 외로운 이 산장에/단풍잎만 채곡채곡 떨어져 쌓여 있네/세상에 버림 받고 사랑마저 물리친 몸/병들어 쓰라린 가슴을 부여안고/나 홀로 재생의 길 찾으며 외로이 살아가네.' -반야월 작사 l 이재호 작곡 l 권혜경 노래 l 1957년 발표. 이 노래는 지금으로부터 50여 년 전, 그녀 나이 스물여섯에 발표한 데뷔곡이자 대표곡이다. 작사가 반야월 선생이 마산결핵요양소를 찾았다가 그 곳에서 보게 된 한 환자복의 여인을 모티브로 해서 즉석에서 노랫말을 지었다. 그리고 이 가사에 '한국의 슈베르트'라 불리던 작곡가 이재호 선생이 곡을 붙였다. 음악생활 내내 지병인 폐결핵이라는 병마에 시달리며 43세라는 짧은 생을 살았던 작곡가 이재호 선생은 이 노래를 만들 즈음엔 폐 한 쪽을 잘라내야 했을 만큼 악화된 상태로 특히 아름다운 이 멜로디는 저간의 사정을 알고 있는 이들의 눈시울을 젖게 만든 노래이기도 하다. 반야월 선생은 당시 의학으로는 쉽게 치료할 수 없었던 불치병, 즉 결핵을 노래로 치유하고 싶었다고 회고했다. 거실은 널찍했고 벽에 걸린 각종 그림과 사진들, 표창장을 비롯해 상패들이 가득 진열되어 있는 거실은 마치 개인 기념관에 들어선 착각마저 불러 일으켰다. 벽면에 커다랗게 걸려 있는 사진들과 현재 그녀의 모습이 묘하게 대비 되었다.앉자마자 그녀가 먼저 여러 가지 얘기를 시작했기 때문에 나는 그저 묵묵히 듣고 있어야만 하는 입장이 되었다.

최광호는 이곳저곳을 샅샅이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고 그의 아내 심옥련은 주방으로 갔다. 나중에 심옥련에게 들은 이야기지만 냉장고는 비어있었고 바닥을 보인 커피, 설탕 등도 모두 굳어 있어 아무것도 내올 수 없었다고 했다. 느닷없이 들이닥친 이 불청객들, 그러나 권혜경 여사는 우리를 향해 '마치 오랜만에 집에 돌아온 자식들 같다', 고 했다.물을 마시기 위해 일어섰다가 냉장고 앞에 붙어있는 글귀에 순간, 시선이 멈췄다. '(나) 죽은 후 연락처. 손성미 02)907-xxxx, 019-xxx-0xxx.' 자필 메모다. 이 메모 속 '손성미'가 누구냐고 물어보았다. 죽은 셋째언니의 서울 사는 딸이라고 했다. 죽음을 거둬달라고 부탁할 이가 '언니의 딸'이라니... 이렇듯 권혜경은 이 집을 지은 이래 줄곧 홀로 이 '산장'에서 살고 있다. 1994년 5월부터다.

3. 가수 권혜경, 본명 권오명(權五明). 1931년 10월 3일, 세무공무원이었던 아버지의 2남 4녀 중 넷째 딸로 삼척에서 출생했다. 이후 의정부로 이사, 대문을 세 번이나 열어야만 집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부유하고 엄격한 가정에서 자랐다. 의정부보통학교를 거쳐 서울의 동구여상을 졸업한 후 부모의 뜻을 따라 당시 조흥은행에 입사해 사회에 첫발을 디딘 그녀. 스물여섯이 되던 해인 1956년, 당시 서울중앙방송국(현 KBS) 가수모집에 응시, 전속가수로 발탁된다.

'사랑이 메아리칠 때', '바닷가에서'의 가수 안다성씨, 그리고 영화배우 박노식씨의 동생인 박노흥씨 등이 그녀의 방송국 입사 동기다. 그러나 부모는 가수활동에 대해 완강히 반대했다. 심지어 '풍각쟁이 광대'는 집 안에 발을 들여놓을 수 없다고 해서 집에서 쫓겨나야 했다. 부모의 뜻을 거역했다는 배신감으로 그녀가 번 돈마저 바닥에 내동댕이쳤던 부모와는 그 후 쉽사리 화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했던가? 점차 부친은 어느 정도 이해해주기 시작했지만 정작 어머니는 끝내 용서치 않은 채 갑자기 타계했기 때문에 권혜경 씨 입장에서는 당시 받은 충격을 감당해내기가 쉽지 않았다. 때문에 그는 스스로 대견하다 싶은 일이라도 생기면 먼저 어머니 무덤부터 찾곤 했다. 이러한 가운데에서도 권혜경은 KBS 전속가수가 된지 얼마 후 발표하는 '산장의 여인' 단 한 곡으로 신데렐라로 부상한다. 이어 그는 당대 최고 작곡가들인 손목인, 이재호, 손석우, 박춘석씨 등과 손잡고 노래를 발표했다.

59년, 신상옥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 '동심초'의 주제가를, 그리고 라디오 드라마 '호반에서 그들은'의 주제가인 '호반의 벤치'를 강수향씨와 듀엣으로 발표했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 '사랑의 길', 김화랑 감독의 '그림자 사랑'을 비롯해 송민도의 노래 '나 하나의 사랑'이 모티브가 되어 영화로 제작되었을 때 이 영화 주제가 또한 권혜경씨가 취입한다. 우리나라 드라마 주제가 제1호인 '청실홍실' 역시 음반으로 취입될 때는 현인과 함께 권혜경씨가 컴비를 이뤄 취입했다. 예명 '권혜경'은 본인 스스로 지었다. 특히 '벼슬 경(卿)'자를 이름에 선택했을 만큼 엘리트 의식 또한 강했다. 실제로 그녀는 그 때까지 가요의 주류를 이루던 트로트 창법과는 다른 클래식한 발성으로 우리 가요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산장의 여인'을 시작으로 인기 가수 대열에 들어선지 얼마 뒤인 59년, 그녀 나이 스물아홉 살에 심장판막증 판명을 받으면서 기구한 운명이 시작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행한 음반 취입과 지방 공연 등으로 당시 그의 허리는 '18인치까지 줄어들었을 정도'였다고 회고했다. 이러한 투병 속에 연예 활동을 하던 전성기의 권혜경은 또다시 후두암까지 선고받는 등 무려 네 가지나 되는 불치의 병마에 시달린다.

그녀의 또 다른 대표곡인 영화 '물새야 울지마라'의 주제가인 '물새 우는 해변'은 작곡가 박춘석씨가 투병 중인 권혜경을 배려해 호흡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원곡의 멜로디 일부를 개작까지 해 건네준 곡이기도 하다. 당시 치료차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지불해야 했던 치료비가 '자그마치 2억5천 만 원 정도였다', 고 술회한다. 이러한 삶에 대한 집착의 대가로, 또 당시 매스컴의 보도대로 기적적으로 소생하는 듯했지만 또다시 병이 재발하는 등 몇 년간의 가수 활동 내내 사투를 반복했다. 그녀의 노래 '산장의 여인'의 끝부분, 한 구절처럼 그녀는 홀로 '재생의 길'을 걷겠다는 의지로 종교에 귀의하기도 했다. 본래 수녀가 되고 싶어 했던 그녀는 절에서 목숨을 건진 후 불자가 된다. 가톨릭에서 불교로 개종하면서 도선사의 청담(淸潭)스님으로부터 하루 5천배씩 절을 하라는 명을 받고 또 다른 힘든 고행을 시작한다. 그리고 비로소 '대명화(大明華)'라는 법명을 받기도 했다. 스스로는 청신녀(淸信女)라 이름 지었다. 한 때 '산장의 여인'을 만들어 부르게 한 작사가 반야월 선생에게. '하필이면 슬픈 노래를 내게 주어 이렇게 힘들고 외로운 인생을 살게 했느냐'며 자신의 심경을 토로한 적도 있다고 전해지지만 그녀는 오히려 그러한 시련을 딛고 일어섰다. 스스로 남은 인생 모두를 '덤으로 사는 인생'이라 스스로 위로하며 자신보다 못한 이웃들을 위한 봉사활동으로 많은 시간을 보내왔다. 권혜경 여사는 그때까지 근 50여 년 간 전국 교도소와 소년원을 돌며 사형수, 무기수, 10대 범죄자 등 재소자들을 격려해오고 있어 수인들 사이에서 지금도 '어머니'라는 칭호로 불리고 있다. 교도소 위문공연, 강연만도 4백여 차례. 이러한 공로로 권혜경은 제 34회 세계인권의 날에 인권옹호유공 표창을 비롯해 현재까지 표창만도 5백여 회 수상했다. 한 때 그녀의 빨간 통굽 하이힐은 이제 고무신으로, 그리고 무스와 스프레이로 치장했던 화려한 헤어스타일은 어느덧 백발로 변했지만 아직도 가발을 네 개나 갖고 있는 '멋쟁이'라고 스스로 말한다.

4.

밤은 깊어갔고 이윽고 그녀의 노래가 '동심초'로부터 시작되었다. '꽃잎은 하염없이 바람에 지고/만날 날은 아득타 기약이 없네...' 한 때 고음이 특히 고왔던 그녀의 목소리는 어느새 굵고 거칠게 변해 있었다. 그러나 놀라우리만치 여전히 호흡이 길었다. 어느덧 세월의 한 '켠'을 지나 삼베처럼 거칠어진 권혜경의 목소리가 가슴을 헤집고 들어와 폐부를 훑고 지나갔다. 전율이 느껴졌다. 노래는 그녀를 살아있게 하는 충분한 힘이다, 단박에 느낄 수 있었다. 동심초, 이 노래를 들으며 여전히 혼자인 그녀의 삶과 사랑이 오버랩 되었다. 한 때 분단국가 한국을 뒤흔든, 그녀의 이루지 못한 로맨스. 하필 '동심초', 북쪽에서만 자라는 풀이라 했다. '무어라 맘과 맘을 맺지 못하고/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설도 시ㅣ김안서 역사ㅣ김성태 곡ㅣ권혜경 노래ㅣ59년 영화 '동심초'의 주제가. '동심초'의 꽃말, 맺을 수 없는 사랑. 이 생각에 미치자 그녀가 아직 살아있는 동안 본인 입으로는 절대 다 털어놓지 않을 얘기를, 혹은 알아서는 안 될 것들을 여전히 궁금해 하고 있는 내 자신이 한 편 부끄러워졌다. 밤11시 30분, 우리는 서둘러 일어나야 했다. 밤길이 위험하니 배웅 나오지 말라는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길 어귀, 차를 세워둔 곳까지 따라 나섰다. '나 권혜경은 뼈대 있는 집안의 양반집 딸이라서...' 그녀가 어둠 속에서 주름살 가득한 웃음으로 잘 가라, 손을 흔들었다. 차창 밖 어둠 속으로 이내 사라지는 그녀의 모습이 점점 작아졌다가 잔상으로 뇌리에 남겨져, 시간이 지날수록 자꾸 커져만 갔다. - 이 글은 지난 2006년, 서울신문에 연재했던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권혜경‘의 내용이다.

이렇게 발표한 당시 이 기사에서는 밝히지 않았지만 권혜경 여사는 이미 '치매'였다. 이후 병원진단까지 받아놓고 있었다. 때문에 보다 정확한 이야기를 듣거나 채록한다는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무리였다. 그런데 우연히 '아빠의 청춘', '고향무정'의 가수 오기택씨 집을 방문했다가, 뜻밖에도 한 통의 편지를 발견했다. 발신자는 권혜경. 수신자는 오기택. 지난 2000년도 초에 쓴 편지였다.편지 내용에는 권혜경 여사로부터 정확히 듣지 못했던 '집에 대한 자신의 심경'이 비교적 소상하게 담겨 있었다. 편지 중 일부를 소개하자면, '시골에 이사 온 지 9년, 그 많은 병이 다 나았어요. 죽으러 왔는데 '암, 심장판막'. 뽕나무를 차 대신 마시고 살았더니 모든 암이 없어졌어. 모든 신이 날 살려주었어. -중략- 연예인은 죽음의 길에서는 집도 잘 지어야지. 집을 예쁘게 지었어. 내가 죽은 후 어려운 아이들에게 주고 싶고 땅도 많이 있는 것 아이들에게 줄 거야. 남이 하지 못하는 일도 많이 했어. 죽음으로서 나의 모든 것이 공개될 거야. -바보 같은 누나, 혜경이가.' 이다. 권혜경 채록작업을 하고 있었던 내겐 매우 반갑고 소중한 내용이었다. 굳이 외딴 곳에 집을 짓고 살아가는 이유가 그동안 궁금했었기 때문이었다.이미 치매가 그러했듯 어느덧 권혜경 여사는 집에 관해서 조차도 때때로 앞뒤 내용이 바뀌는 등 명확히 설명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사진이다. 이 사진을 공개하겠다고 결정할 때까지 적잖이 고심했음을 밝힌다. 이 사진은 권혜경 여사 타계 4개월 전에 권혜경 여사집을 찾았던 오기택씨와 20여년 만에 만나는 첫 장면이다. 처음엔 서로가 서로를 알아보지 못했다. 이 날 만남에 대해서는 짧게 정리해 쓰기가 결코 쉽지 않을 정도로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둘 다 독신이다. 평생을 홀로 살았고 또 누구보다 서로를 위하고 걱정했기 때문에 오히려 만나기를 다른 한편으로는 서로 꺼려했다. 마음 아프게 하기 싫어서였을 것으로 짐작되었다. (계속)

가수 권혜경(1931~2008)은...

본명 : 권오명. 1931년 강원 삼척 출생. 1956년 KBS 전속가수로 활동을 시작. 이듬해 '산장의 여인'을 발표하며 데뷔, 이후 '호반의 벤치', '동심초', '물새 우는 해변' 등을 발표. 1960년대 전성기 시절 심장판막증, 결핵 등 병마와 싸우며 활동, 이후 전국 교도소와 소년원을 돌며 재소자를 위한 4백여 차례 봉사활동을 펼쳐 수인들 사이에서 '어머니'라 불리기도 했다. 생의 절반 이상을 봉사활동에 바쳤던 그는 제34회 세계인권의 날에 인권옹호유공표창을 비롯해 5백여 회 표창을 수상했다. 2008년 5월25일 타계. 현재 청주 일원을 중심으로 '권혜경가요제', '노래비 건립' 등 각종 추모사업이 펼쳐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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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ughly translated fragment with lots of mistakes still in it:

Singer Kwon Hye-kyung, real name Kwon Oh-myeong (權 五 明). On October 3, 1931,s he was born in Samcheok as the fourth daughter of his father's two sons and four daughters. Later, she moved to Uijeongbu and grew up in a rich and strict family who had to open three times a door before being able to enter the house. After graduating from the Uijeongbu Prize in Seoul through Uijeongbu Normal School, she joined Joheung Bank at the time and took the first step into society. In 1956, when he was twenty-six years old, she was chosen as a singer by applying to a singer at the Seoul Central Broadcasting Station (now KBS).


Her love is joining the radiostation, "When the Love Echoes," singer Anda Sung from the beach, and Park No-heung, the younger brother of the movie star Park No-sik. However, parents strongly opposed to singer activities. The 'caric clown' had to be kicked out of the house because he wasn't allowed to step inside the house. After betraying her parents, she couldn't easily reconcile with her parents, who had thrown her money to the floor. But did you say no child wins parents? Gradually my father began to understand a little, but his mother died suddenly without forgiveness, so it was not easy for Kwon Hye-kyung to deal with the shock he had at that time. If she ever wanted to confront himself, she would first find his mother's grave.


In the midst of this, Kwon Hye-kyung emerges as Cinderella with only one song, 'Woman in a Hut', released shortly after becoming a KBS exclusive singer. He then joined hands with the best composers of the time, Lee Jae-ho, Son Seok-woo, and Park Chun-seok, and released this song.


In 59, director Shin Sang-ok released the theme song of the movie 'Consimcho', which caught the megaphone, and 'The Lakeside Bench', which is the theme song of the radio drama 'On the Lakeside,' as a duet with Kang Su-hyang. The theme song is also taken by Kwon Hye-kyung when Kim Ki-deok's film 'Road of Love' and Kim Hwa-Rang's 'Shadow Love', including Song Min-do's song, 'Love of One', were produced as a motif. The first Korean drama theme, 'Cheongsil Hongsil,' was also combined with Hyun-won and Kwon Hye-kyung. The title 'Kwon Hye-kyung' was built by myself. In particular, the elite ritual was also strong enough to choose the 'lightweight' character. In fact, she has been evaluated to raise the level of our song to the next level with a classical utterance that is different from the trot creation method that has been the mainstream of music until then.

She was twenty-nine years old when she became a popular singer and started her career with a woman in a mountain hut. Nevertheless, she recalled that his waist reduced to 18 inches at the time due to the forced recording and local performances.


Kwon Hye-gyeong, who was engaged in entertaining in this struggle, suffers from four incurable diseases, including being diagnosed with laryngeal cancer.


The theme song of her other representative song, 'Waterbird, Don't Cry' is a song given to the composer Park Chun-seok and Kwon Hye-kyung, who rewrote some of the original melodies to prevent breathing. It is also. At the time, the treatment fee that had to be paid between Korea and Japan was about 250 million won. In return for his obsession with life, he reportedly miraculously revived as reported by the media, but again, he struggled for several years, including a recurring ill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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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 60년대 권혜경은 당대의 톱스타, 눈높은 독신녀였다.

가냘픈 체격의 청순미로 사내들 마음을 뛰놀게 했고, 은행원이라면 누구나 알아주던 시절 조흥은행을 그만두고 1956년 <산장의 여인>으로 데뷔한뒤 한때 가수 생활과 일요신문의 기자직도 겸업한 화려한 이력의 가수이다.

그러나 그녀는 뭇 남성 팬들에게 꿈만 먹고사는 공주님으로 비쳤지만, 사실 그녀도 아팠던 첫사랑의 상처가 있었다고 한다.

첫 연인은 일본 유학을 다녀온 엘리트였으나, 지닌 것이라곤 가난밖에 없었다.

그래서 뭇사람이 데이트하느라 커피를 마시고 나면 자기의 두무릅사이에 작게 접은 천 환짜리를 끼워 탁자 밑으로 전달했고, 그는 그 돈으로 찻값을 내며 얼굴을 세울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첫 연인에게는 집안 어른들이 어린 시절 정해준 배필이 있었고 어느 날 그 여자가 권혜경을 찾아와 그사이의 모든 사정을 알리고 간 뒤, 두 사람은 하는 수없이 등을 돌려야 했다.

물론 그 후에도 권혜경의 집 앞을 서성거렸지만 권혜경은 더는 그를 받아들여지 않아 던 것이다.

당시 이 첫사랑의 얘기가 <사랑은 가고 노래만 남아>란 제목으로 <아리랑> 잡지에 실린 뒤, 권혜경의 팬들은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고 한다.

그녀가 불렀던 <산장의 여인>은 <반야월> 선생이 시를 쓰고, <이재호> 선생이 곡을 붙인 콤비 작품이다.

작사가 반야월 선생이 마산방송국에 재직 시 국립 마산 결핵 요양소에 위문공연을 갔을 때 한 모퉁이에서 흐느끼고 있는 미모의 여성에게 눈이 끌렸다.

공연 후 그 사유를 알아본즉 결핵 환자로서 외로운 산장에서 회상에 잠긴 나날을 보내고 있음을 알았다. 이에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여 지은 것이 이 노래였다.

당시 이 슬픔의 노래는 특히 화류계에서 크게 유행했었다. 유흥업소의 여성들이 자신에게 낙착된 어둡고 슬픈 운명을 <산장의 여인>이라는 대상을 통해 발견했던 것이었다.

그 후 이 노래를 부른 <권혜경>도 병마로 인해 고독한 세월을 홀로 보내는 쓸쓸한 삶을 살아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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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the 1950s and 1960s, Kwon Hye-kyung was the top star of the time, a single girl with big eyes. He is a brilliant singer who has played with the slim body of pure physique and made people's mind beaten. He quit his career at Choheung Bank in 1956 and debuted with record called "a woman in a mountain hut" in 1956.


However, she reflected on her male fans as a princess who only lived a dream, but in fact, she had a wound of her first love that had hurt her. The first lover said he was part of an elite who went to study in Japan, but all he had was poverty. There was some kind of betrayal here (not translated). Afterwards, he hung out in front of Kwon's house, but Kwon did not accept him anymore.


At the time, the story of the first love was published in <Arirang> magazine titled <Love goes away and only song left>, and Kwon Hye-kyung's fans were taken with fresh shock.


She called The Woman in the Cabin is a combi-work piece written by Vanyawol, who wrote a poem, and by Lee, Jae-ho. The lyrics were drawn to a beautiful woman who was weeping at a corner when Mr. Banyawol went to a Masan tuberculosis sanatorium when she was at Masan Broadcasting Station. After the show, I found out why, as a TB patient, I spent days reminiscing in a lonely cabin. It was this song that was made unfortunate.


This sad song was especially popular. The women in the entertainment industry discovered the dark and sad fate that had come to her through the object of <the woman of the hut>.


Since then, Kwon Hye-kyung, who sang this song, had lived a lonely life alone because of her ill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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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TRA LINKS:



2 tracks can be found on the composer's Park-Choon Seok 2CD release here

2 tracks can be found on the 12 CD box, CD2 reviewed on next 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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