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병집 - Yang Byeong-Jib (Ang Pyong-Chip)


양병집 - 1집 넋두리 (Remastered) (LP Miniature Sleeve) (재발매)

Sung Eum Limited SEL-20-0028 LP 1974

Rythmon GEBL-SC04 CD 2010 양병집 - 넋두리 [LP miniature] CD

LP / 2005-03-31 / RythmOn, Bihaengsun (GEBL-4)

양병집- 1집 넋두리 (180g) (500장 한정반) LP GEBLSL04 2015-10-21/22

1. 서울하늘(1) / Seoul Sky (1)

* 2. 잃어버린 전설 / The Lost Legend

3. 타복네 / Tabokne (Tabakne)

4. 아가에게 / To my Baby

5. 나는 보았지요 / What I saw

6. 너와 나의 땅 / Our Land

7. 소낙비 / Showers (?)

8. 서울하늘(2) / Seoul Sky (2)

9. 역 / Station

10. 그녀 / She

Also this album sound like from a protest singer to me, accompanied often by a rather progressive band. Track 2 has beautiful analogue synths with acoustic guitar and sad singing. It is an ok to good album with a few better tracks.


Rateyourmusic : "something between Bob Dylan, Pete Seeger and Peter, Paul & Mary"


저주받은 걸작 - [양병집 / 넋두리]

70년대 한국포크의 최고 명반 중 하나, 우리나라 3대 저항가수의 첫 독집음반 [양병집/넋두리]는 `삶을 직시하는 노래, 현실을 꿰뚫는 노랫말`로 유신 정권 젊은이들이 `억눌림의 문화`에 대항, 아름답게 승화시켰던 70년대의 소중한 대중문화 유산이다. 이 앨범엔 70년대의 소리인 Woody Guthrie, Pete Seeger, Bob Dylan, Peter Paul & Mary가 도사리고 있고 전래가요 `타복네`, 그리고 자작곡 `아가에게`까지 담겨 있어 그 음악적 깊이를 더한다. 당대의 현실을 `거친` 말로, 그리고 특유의 `쓴` 목소리로 거침없이 내뱉는다. [넋두리]는 결코 놓칠 수 없는 당대의 걸작이다. 1970년대, 세계의 젊은이들이 반전운동의 확산과 함께 히피 문화를 만들어내고 있을때 우리는 `통기타, 생맥주, 청바지`로 일컬어지는 `청년문화`와 `이농현상` 그리고,`공돌이, 공순이` 로 일컬어지는 `또다른 문화` 가 있었다. 이런 배경속에서 탄생된 양병집의 [넋두리(모음)]은 70년대, 그앞면과 이면을 정확히 관통하는`메시지 송` 이자, 포크송 보다 진보적이고 저항적인 요소가 많은 `프로테스트송`(protest song) 이라 볼 수 있다. 김민기, 한대수와 함께 70년대 우리나라3대 저항가수중 하나로 일컬어지는 양병집의 첫 음반 [넋두리]는 그가, 이음반에 일관된 성격을 부여하는 프로듀서로서의 능력과 감각을 겸비했음을 보여주며 그만의 독특한 창법,과 현실을 심도있게 헤집고 들어가는 작가주의적 성향을 다분히 취하고 있다. 그래서 [넋두리]는 70년대 우리 젊은이들의 메시지를 담고 당시의 정서 공감대를 대변하는 작용을 한다. 이 음반에 수록된 곡들은, `타복네` 와 `아가에게`를 제외하고는 모두 아메리칸 포크이지만 양병집이 새롭게 편곡하고 노랫말을 만들어 불러 이노래들은 원곡과는 사뭇 다르다. 여기서 `소낙비` 만이 원곡의 가사에 준했으며 나머지 곡들은 모두 아메리칸 포크의 뼈대에 당시 한국 현실을 빗댄 가사를 붙였기 때문이다. 이처럼, 양병집은 밥딜런,과 피트시거, 우디 거슬리를 들고 70년대 한국 젊은이들 앞에 `개간꾼`처럼 등장 했지만 안타깝게도 당시 시대적 상황은 그의 넋두리를 용납지 않았다. 그래서 [넋두리]는 불과 1년 4개월만에 짧은 생애를 마감하게 되고 대중들로부터도 잊혀지게 된다. - 이제 30년의 세월이 지나 다시 이음반이 거론되어야 하는 이유는 [넋두리]가 70년대의 가객, 양병집의 치열한 몸짓으로 표현된 당시 사회의 모순, 그앞면과 이면을 정확히 관통한 기록임과 아울러 사회적, 음악적 가치를 지닌 대중문화의 유산이기 때문이다. 이제, 생생히 복원된 [넋두리(모음)]을 통해 감동으로 다가올 양병집의 메시지에 보다 많은 이들이 다가설수 있게 되길 바란다.


Translation via Google (with several mistakes still in it):


"One of the best albums of Korea's Folk in the 70s is the first solo album by [Yang Byeong-bap] where the song is considered to represent “the face of life as the song that penetrates reality”. It is a precious pop cultural heritage of the 70s that beautifully sublimated. The album contains the sounds of the 70's, of Woody Guthrie, of Pete Seeger, Bob Dylan, and Peter Paul & Mary, where the song 'Tabokne' and his own song 'To Baby' add to the musical depth. He unleashed his present reality with 'rough' words and with a distinctive 'bitter' voice. As a complaint this is a masterpiece of the day that should not be missed.


In the 1970s, when young people around the world were creating a hippie culture with the spread of the anti-war movement, which we called 'youth culture' and 'a rural phenomenon', there also was another culture called "Gongdol, Gongsun". Born in such a background, the collection of two LPs is a 'message song' that exactly penetrates the front and the back of the 70's, and is related with 'protest songs' with more progressive and resistive elements than folk songs. It is this way we need to see this.


Together with Kim Min-ki and Han Dae-soo, with Yang Byung-Hwa's first album he became one of the three resistance singers in Korea in the 1970s, showing that he has the ability and sense as a producer to give a consistent personality to the album. The artis' has a tendency to penetrate deep into things. Its message contains the voice of our young people in the 70's and represents the emotional consensus of the time.


The songs on this album are all American folks except "Tabokne" and "Agae", but they are also new arrangements and songs. So Nakbi was based on the lyrics of an original song, and the rest of the songs were lyrics that were based on the Korean reality at the time of American Folk boom.


Like this, Yang Byung-Hwa appeared as a 'clearer' voice in front of Korean youths in the 70s with Bob Dylan, Pete Seeger, and Woody Gursley, but unfortunately, the contemporary situation did not tolerate his complaining. Thus, his complaint ended in a short life meant that in just one year and four months he was forgotten by the public.


-Why should this group be discussed again over the years?


This is because this is a record of penetrating gestures of the 70's. It is a record penetrating deeper into society's contradictions. Once again, I hope that more people will be moved by the message and will be reached with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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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OGRAPHY:


http://www.newsmaker.or.kr/news/articlePrint.html?idxno=3958

[박성서 평론] ‘자전적 에세이집-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 펴낸 포크가수 양병집 이야기[2]

1970년대를 거칠고 쓴 목소리로 풀어낸 '넋두리'

2013년 02월 11일 (월) 19:17:27박성서 webmaster@newsmaker.or.kr

신랄한 언어의 풍자가, 그가 구사했던 슬프고도 아름다운 아메리칸 포크의 한국화(韓國化). 김민기, 한대수와 더불어 70년대 우리나라 3대 저항가수로 일컬어지지는 양병집이 최근 출판한 자전적 에세이,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 이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는 양병집이 1973년도에 전국포크송콘테스트에 나가 ‘역(逆)’이라는 제목으로 불렀던 번안곡의 첫 부분이다. 이 노래는 밥 딜런(Bob Dylan)의 ‘Don't think twice, It's alright’을 번안한 번안곡으로 양병집이 발표한 이후 이연실, 그리고 고(故) 김광석이 부르면서 더욱 세간에 알려졌다.

이 책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는 포크가수 양병집의 삶을 이야기하는 동시에 우리 시대의 빛과 그림자를 담고 있다. 저항가수로서의 일기, 1970년대 포크·번안가수로서의 작업, 그리고 7080세대가 추억하는 당대의 음악사적 분위기가 자연스레 녹아들어 있는 이 책의 1부에서는 청년, 중년 시절 양병집의 가수 및 기획자로서의 삶을, 2부는 호주에서의 생활을 이야기한다. 3부에서는 말년에 가족을 호주에 두고 혼자 한국으로 귀국한 이후의 이야기다. 자전적 에세이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 펴내면서 다시 주목받고 있는 양병집의 음악세계. 그 음악에 담긴 한 가객의 이야기를 세 회에 나눠 연재한다.

글 l 박성서 (대중음악평론가, 저널리스트)

아메리칸 포크에 당시 한국 현실을 빗댄 가사로 대부분 채워져 있는 양병집의 첫 음반 ‘넋두리’의 당시 금지 사유는 ‘가사와 창법 저속’이었다. 결국 ‘저주받은 걸작’이 되어버린 이 음반은 '노래나 불러보자'는 '서울하늘'에서의 넋두리로 시작되어 풍자, 관조, 역설 등을 거친 뒤'...그래서 나는 다시 기타를 집어 들고 그 다음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는 자조 섞인 말로 끝맺는다.

이 음반에 실려 있는 곡 중 하나가 ‘타복네’다. '타복네'의 본래 우리 말 표기는 '타박네'이다. 문학박사 이어령은 그의 저서 '흙 속에 저 바람 속에'에서 이 이름의 유래를 '타박타박 걷는 아이'라는 뜻에서 유래된 '타박네'라고 주장했다. 허나 양병집이 채보해 비로소 완성한 이 노래의 제목은 '타복네'이다. 50년 12월, 부산 구포에서 출생한 그는 어릴 때 어머니로부터 이 노래를 들으며 자랐다. 어머니가 평양시 하수구리 출신이라 '타박네'를 평안도, 또는 함경도 등 이북 사투리로 '타복네'라 발음했다. 타박네는 다소 밝은 느낌의 어감이지만 타복네는 약간 투박하긴 해도 대신 따듯한 정감이 묻어난다고 양병집은 말한다.

어린 시절의 그에게 이 노래를 '철부지 교육용' 혹은 '자장가'를 대신해 들려준 어머니, 김경패(金景貝)여사는 정태춘 곡인 '양단 몇 마름'의 2절 가사를 직접 만들어준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는 후에 '다시 부르고 싶은 노래들(예음/88년)' 음반에서 다시 '엄마 엄마 아 엄마' 그리고 독립군가였던 '부활가' 등 구전가요를 채보, 발표하기도 했다. 이 노래들은 모두 어머니로부터 배운 것들이다. 그의 어머니는 특히 구전가요를 많이 알고 계셨는데 거슬러 올라가보면 그녀의 부친은 평양의 지주로써 독립운동가 조만식 등에게 독립자금을 대어주던 분이었다. 가끔 집으로 몰려들어 이따금씩 부르던 노래들을 역시 귀동냥으로 배웠다가 후에 소중한 패물 건네듯 아들에게 물려준 유산들인 것이다.

그리고 이 음반 수록 곡 중 '아가에게'가 그의 유일한 창작곡이다. 그가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았음직한 음악적 인자를 어렴풋이나마 드러내 보인 그의 첫 번째 작품이다. 이 노래 역시 어머니에 대한 시각, 그리고 어머니의 마음을 담고 있다.

'당시는 싱어 송 라이터 시대였기 때문에 나도 작곡 좀 해봐야겠다' 싶어 '마른 수건 짜듯해서 만들어본 노래'라고 스스로 털어놓는다. 그가 이후에 발표하는 '바둑', '아침이 올 때까지', '어느 날 오전이었지' 같은 노래들 역시 많지 않은 그의 자작곡들이다.

신랄한 언어풍자가 양병집

부친과 함께

양병집은 신랄한 언어의 풍자가다. 그의 노랫말은 이전 노래들과 판이 다르고 창법 또한 판이하다. 내가 양병집의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귀를 번쩍 트이게 하는 느낌을 받은 것은 그가 던지는 메시지에 결코 뒤지지 않는 독특한 창법 때문이었다. 양병집은 노래의 각 행 끝을 짧고 격하게 발음하면서 서두르듯 종료시킨다. 마치 목이 눌리기라도 하듯 목을 조이면서 소리를 내는 것이다. 이른바 '토해내는' 소리다. 이 독특한 '양병집 풍(風)의 창법'은 우리 판소리에 근원하고 있다. 이미 그의 창법은 낯설지 않다. 실제로도 양병집은 우리의 모던 포크에 토속적 요소를 도입하기 위해 수고를 기울였던 인물이다.

밝고 맑은 태양의 혜택 받은 이탈리아 사람들은 낙천적이고 그 기질에 맞게끔 이탈리아의 노래들은 고음인 소프라노나 테너라야 걸맞다. 명 테너인 카루소나 마리오 란자, 스테파노, 도밍고가 이탈리아 사람인 것은 그 때문이다. 이에 비해 대낮에도 부엉이가 우는 숲의 나라 독일의 가요는 거의 예외 없이 바리톤이나 알토에 걸맞다. 바흐의 칸타타나 슈베르트의 음악은 피셔 디스카우트나 하마리 율리아 같은 저음가수가 불러야 제 맛이 난다. 더 북쪽으로 올라가 춥고 눈보라치고 밤이 길고 음산한 러시아에서는 베이스의 최저음 소리가 걸맞다. 샤리아 핀의 '볼가강의 뱃노래'나 크리스토프의 '보리스 고도노프'가 아니면 들을 맛이 안 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탈리아처럼 밝지도 못하고 또 러시아처럼 음산하지도 못한 한국인의 정서에 가장 걸 맞는 목청은 어떤 것일까. 명창 송만갑이 제자들을 가르치면서 자주 말했다던 바로 '높낮이'의 소리다. 소리는 높은 듯하지만 그늘이 끼게 하고 낮은 소리에도 거칠고 탁한 소리를 배합하는 것이 바로 높낮이의 창법이다.

그 걸고 탁한 소리를 얻기 위해 명창들은 폭포 아래에서 혹은 동굴 속에서 피를 토해 가며 몇 년 독공(獨空)을 한다지 않던가. 이렇듯 한국인의 소리에 가장 근접해 있는 것이 판소리라면 공교롭게도 양병집의 독특한 창법은 그 판소리와 많이 닮아 있고 또 서로 맞닿아 있는 것이다. 또한 그에게선 한국인의 보편적인 정서의 인자(因子)도 찾아볼 수 있다. 서양음악은 '신에 감사하고 축복하는 교회음악이 온상'이기에 장중하고 쾌조(快調)인데 반해, 한국의 서민음악은 벼슬아치에 억눌리고, 가난에 억눌리고, 일에 억눌리고, 윤리 도덕에 억눌리는 '억눌림이 온상'이기에 한이 맺힌 애조 혹은 절규에 가까운 그 무엇이다.

그래서 이 [양병집/넋두리]는 유신 정권 젊은이들이 '억눌림의 문화'에 대항했던 70년대의 몸짓을 지름길로 다가와 공감케 하는그 '뭣'이 있다. 이러한 양병집 식 창법은 바로 정통포크가 담고 있던 당대의 정신과 그 메시지를 더욱 강하게 전달하는 작용을 한다. 이 넋두리 음반은 74년, 1500장 정도가 발매, 800여장이 팔리고 나머지는 모두 회수되었다고 전해진다. 이 음반은 금지되어 묻혀지는 수난을 당하지만 그러나 이 음반에서 후에 '너와 나의 땅'은 투코리언즈에 의해, 그리고 '그녀'는 임장욱에 의해 '긴 노래'라는 제목으로, 그리고 '역'은 김광석에 의해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라는 노래로 다시 살아나 대중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그는 75년 7월, '서울하늘'이 금지곡으로 묶인 것과 때를 같이해 당시 연예가를 뒤흔든 대마초 파동의 시점에서 양병집은 기타를 내려놓고 무대를 떠난다. 그 무렵 그는 첫 음반 [넋두리] 이후 두 번째 음반을 준비 중이었다. 때 마침 그를 찾아온 정태춘으로부터 얘기, 양단 몇 마름, 보리 고개, 겨울나무 등 악보를 받아 녹음까지 마쳤으나 이른바 '대마초 파동'으로 인해 이 음반 제작 또한 무산된다. 당시 한국 연예계를 강타한 이 대마초 파동으로 우리는 당시 그가 두 번째로 시도해 취입한 노래들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렸다. 때를 같이해 70년대, 젊은이들로부터 사랑받았던 포크는 휴면기에 들어간다. 양병집 또한 기타를 내려놓고 다시 증권회사에 재입사, 증권분석가로 변신한다. 물론 그 역시 대마초 파동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으나 가수가 아닌 회사원이라는 신분으로 화를 면할 수 있었다.

그 후 그가 80년, 두 번째 독집앨범 [아침이 올 때까지]를 발표하며 다시 대중 앞에 등장할 때까지 그는 한, 두 번 산발적인 활동을 시도하긴 했지만 그는 여전히 미완성이자 미지칭인 채 남겨졌다. 그러나 양병집 역시 김민기, 한대수와 더불어 활동을 접고 나서야 비로소 젊은이들, 그리고 전문가들 사이에서 평가 받기 시작했다. 김민기, 한대수와 더불어 유신 정권 아래 재갈이 물려지고 이름조차 금지된 이름, 양병집. 이때까지 비록 [넋두리]라는 단 한 장의 독집음반만을 발표한 그였지만 그 안에 담긴 메시지는 완성도 높은 그의 노래와 더불어 두고두고 파장을 일으킨다.

[넋두리]-. 이 음반이 그가 김민기, 한대수와 더불어 70년대 3대 저항가수라고 평가되는 이유에 대한 결론이다.

정태춘과 양병집

그는 증권회사 직원으로 근무한지 또 얼마 되지 않아 사표를 던지고 신촌으로 향한다. 70, 80년대의 신촌은 청년문화의 메카였다. 그는 이곳에서 라이브 카페를 차려 운영한다. 그가 새롭게 손을 댄 이 까페들이 바로 당시 신세대 뮤지션들의 산실이자 아지트였다. 이곳에 최성원, 조동익이 있었고 전인권과 허성욱이 만났으며 해바라기의 이주호와 유익종도 함께 거기에 있었다. 그는 1986년 호주로 이민을 떠나 자동차 세일즈, 교포식당 경영, 그리고 신문기자 생활 등을 전전하다 1999년 10월, 호주에서 귀국했고 2001년에는 영주권마저 반납했다. 그동안 그는 80년 두 번째 독집 [아침이 올 때까지]를 비롯해 여섯 장의 독집음반을 발표했다.

이 음반들을 통해서 여전히 그는 무뎌지지 않는 메시지를 보여준다. 세월에 따라 그가 내뱉고자 하는 메시지는 때론 이솝우화만큼이나 더욱 쉽게 감지된다. 그 중 그가 88년 말에 발표한 음반, [부르고 싶은 노래들/70년대 통기타 노래 모음(예음/YERD 7005)]에 실려 있는 '세 마리 까마귀'의 가사를 보자. 이 노래는 Peter, Paul & Mary의 '3 Ravens'에 노랫말을 붙인 것이다.

새까만 까마귀 세 마리 나무 위에 앉아서 자기들끼리 웃으며 하는 말 오늘 아침 식사는 무슨 고기로 할까 내려와 내려 내려 내려와 아----

새파란 풀밭 사이로 지나가던 망아지 까마귀를 보면서 하는 말 그렇게도 썩은 고기가 맛이 있단 말인가 내려와 내려 내려 내려와 아----

1년 2년이 지난 후 15년이 지나고 나무 위에 찬 바람 불어도 까마귀는 내려올 생각조차 않누나 내려와 내려 내려 내려와 아----

어두운 밤이 지나고 새 아침이 찾아와 졸고 있는 까마귀 머리에 온화하고 따스한 빛을 부어주누나 내려와 내려 내려 내려와 아----

이 음반이 타이틀 그대로 [부르고 싶은 노래들/70년대 통기타 노래 모음]이라 함은 그가 군사정권을 향해, 그리고 이 사회를 향해 '아직도 할 말 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그는 다시 서울하늘 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후 동서남북, 16년 차이, 그리고 최근에 BJ 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하여 김하용덕과 손지연 같은 후배 가수들의 음반을 제작, 포크의 맥을 잇는데 주력하고 있다.

1년 4개월이라는 짧은 생을 마감해야 했던 이 [저주 받은 걸작/넋두리]. 이 음반은 70년대의 가객, 양병집의 치열한 몸짓이자 기록이다. 동시에 70년대 사회의 모순, 그 앞면과 이면을 정확히 관통한 피 묻은 화살이다.

[넋두리]는 70년대의 또 다른 얼굴이자 사회적, 음악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것이 30년도 더 훌쩍 뛰어 넘어 세기를 바꾼 이 시점에서라도 반드시 재발굴되어야 하는 충분한 이유다.

그럼 양병집의 자서전적 에세이집 ‘두바퀴로 가는 자동차’를 펼쳐보자. (계속)


Automated Translation (with mistakes):


"The story of the folk singer Yang Byeong-ho, who published “An Autobiographical Essay LP – A Car with Two Wheels” & 'Fouling Around' released in a rough and bitter voice of the 1970s. [written by Park Sung-seo]


The satirical language of its tense language is the Korean interpretation of the sad and beautiful American folk songs that he sang.


Along with Kim Min-ki and Han Dae-soo, Yang Byung-bak, who is said to be one of Korea's three largest resistance singers in the 70s, recently published an autobiographical essay, 'Cars on Two Wheels'. This two-wheeled car is the first part of a remake song, which was called the station by the two LP's at the National Folk Song Contest in 1973. The song was made more famous by Lee Yeon-sil and late Kim Gwang-seok after the song was released by Yang Byeong-bi, a song that was altered by Bob Dylan's "Don't think twice, It's alright".


The book, A Two-Wheeled Car, tells the story of the folk singer's life at the same time and contains the light and shadow of our time. The first part of this book, which contains a diary as a resistance singer, works as a folk and street singer in the 1970s, and a musical history of the 70s 80s generation, is a life of a singer and a planner in both young and at middle aged. Part 2 talks about life in Australia. In Part 3, this is a story after returning to Korea alone with family in Australia. The musical world of Yang's two LP's is getting attention again as he unfolds his autobiographical essay, “Cars on Two Wheels. The story of a guest in the music is serialized in three sessions.


The reason for the prohibition of the first album "Fulriri" which was mostly filled with lyrics about the American reality at the time, was "Lyrics and Chang-Cho." After all, this album, which became a cursed masterpiece, began with complaining in 'Let's sing or sing' in 'Seoul Sky' and after satire, contemplation, and paradox ... when he started to sing the next song '.


One of the songs on this album is 'Tabokne'. The original Korean word for tabokne is tabakne. Dr. Yi Ryung insisted that his name is derived from his book, "In the Wind, in the Wind," as "Tabakne," which is derived from the meaning of "A child who walks." However, the song was completed by Yang Byung-Ho and the title of the song is 'Tabokne'. Born in Gupo, Busan in December 50, he grew up listening to this song from his mother as a child.

Since her mother is from Suri-guri in Pyongyang, she pronounced 'tabakne' as 'tabokne' in North Korean dialects such as Pyeongan-do or Hamgyeong-do. Tabakne is a rather bright texture, but Tabokne is a bit crude, but warm feelings instead, says Yang.


His mother, who played this song on behalf of Cheolji-ji for education or lullaby, is also the author of two verse lyrics of Jung Tae-chun's song, 'Several Ends.'


He later wrote and released oral songs such as 'Mom, Mom, Mom' and 'Independent Soldier', a resurrected song. These songs are all learned from his mother.


His mother was especially aware of the oral songs, and as far back as her father was the proprietor of Pyongyang, he gave independence activists Jo Man-sik and others. It is a legacy that was sometimes flocked home and learned songs from time to time as ear-matchings, and then handed them on to his son as if they were handed out precious treasures.


Among the songs included in this album, 'To Baby' is his only original song. It is his first work to show a glimpse of the musical factors he would have inherited from his mother. This song also contains a view of mother and her heart.


I want to write a song because I was a singer-songwriter era. Tell yourself, `` I made it like a dry towel. '' His later releases, "Go", "until the morning" and "one morning," are not many of his own compositions.


With father The parlor is a satire of acidic language. His song is different from the previous songs and the method of creation is also different.


The first time I heard a song from a parlor, it was the unique ingenuity that kept his ears flashing. The nursery rushes to the end of each line of the song in a short and violent manner. It's as if you're being squeezed by the neck and making a sound. It is a so-called 'vomit' sound. This unique 'window of the winds of the sheep' is rooted in our pansori. Already his creation is unfamiliar. In fact, the parlors have worked hard to introduce a native element into our modern folk.


The Italians who are benefited by the bright and clear sun are optimistic, and according to their temperament, Italian songs are only high soprano or tenor. That's why famous tenors Carusona, Mario Lanza, Stefano and Domingo are Italian. In contrast, in the daytime, the owl's forest, where the owls roar, is almost without exception, suitable for baritone or alto. Bach's cantatana and Schubert's music can only be tasted by bass singers like Fisher's Discuss and Hamari Julia. Going further north, cold, blizzards, long nights and sultry rhythms make bass bass sounds sound. That's why it doesn't taste unless it's Shariapin's "Volga Song" or Christophe's "Boris Godofov." Then what kind of voice is the best for Koreans who are not as bright as Italy or as obscene as Russia? It is the sound of 'heise' that Master Song Song-gap often said while teaching his disciples. The sound seems to be high, but it is the method of raising and lowering to make the shadow shade and mix the rough and muddy sound to the low sound.


To get that muddy sound, the masters vomit blood for years under a waterfall or in a cave. If Pansori is the closest to Koreans' sounds, unfortunately, the unique ingenuity of Yang Byeong-sook is very similar to that of Pansori and is in contact with each other. He also finds the factors of Koreans' general emotions. Western music is majestic and pleasant because 'church music that gives thanks and blesses God is hotbed', while Korean pop music is suppressed by shackledness, by poverty, by work, and by ethical morality. It is something that is close to the sympathy or scream that Han has made because 'oppression is a hotbed'.


Thus, there is a '뭣' that allows young people in the Yushin regime to approach and sympathize with the gestures of the '70s against the culture of oppression. The two-bottle-windowed creation acts to convey the spirit and the message of the day that Orthodoxy Fork contained. It is said that the complaining record was released in 1984, about 1500 copies were sold, 800 copies were sold and the rest were recovered. This album is forbidden and buried, but later on in this album 'You and My Land' by Tucorians, 'She' by Lim Jang-wook, under the title 'Long Song', and 'Translation' It was revived by Kim Kwang-seok with the song 'Cars with Two Wheels' and was loved by the public.


He left the guitar with the guitar at the point of the cannabis wave that shook the entertainment artist at the same time as 'Seoul Sky' was bound to be prohibited in July 75.


At that time he was preparing a second album after the first recording. At the time, he finished the recording with the music, such as the story, a few dry ends, barley hills, and winter trees from Jung Tae-chun, who visited him. The cannabis wave that struck the Korean entertainment world at the time lost the opportunity to hear his second attempted blown songs. In the seventies, Folk, who was loved by young people, enters dormancy. The two houses also put down their guitars and rejoined the securities company to become a securities analyst. Of course, he was not free from the cannabis wave, but he was able to escape from being a singer, not a singer.


He then released his second solo album [Until the Morning], in 80, until he appeared in public again.


He attempted sporadic activities once or twice, but he was still left unfinished and unknown. However, it was not until Yang Byung-Hwa was closed with Kim Min-ki and Han Dae-soo, but it began to be evaluated by young people and experts.


Along with Kim Min-ki and Han Dae-soo, under the Yushin regime, his name even became forbidden to mention.


Up to this point, he had only released one single album, [Fulfillment], but the message contained in it was accompanied by his mature song, causing a wave.


[Complaining]-. This album concludes why he is regarded as Kim Min-ki and Han Dae-soo as the 3rd resistance singers in the 70s.


Jung Tae-chun and Yang Byeong-bo


Shortly after he worked as a securities company employee, he resigned and heads to Sinchon. Sinchon in the 70s and 80s was the mecca of youth culture. He runs a live cafe here. These newly opened cafes were the birthplace and hangout of the new generation of musicians. There was Choi Sung-won and Cho Dong-ik, Jeon In-kwon and Huh Sung-wook, along with Lee Ju-ho and beneficial species. He immigrated to Australia in 1986, where he worked in auto sales, Korean restaurant management, and newspaper journalism. In October 1999, he returned from Australia and returned his permanent residence in 2001. In the meantime, he has published six solo albums, including his second album [Until the Morning] in 80 years.


Through these recordings he still shows a message that does not blunt. Over time, the messages he wants to spit out are sometimes as easily detected as Aesop's fables.


Among them, he released his album in late '88, [Songs to Sing / 70's Acoustic Guitar Collection (Preview / YERD 7005)].


Through these recordings he still shows a message that does not blunt. Over time, the messages he wants to spit out are sometimes as easily detected as Aesop's fables.

Let's take a look at the lyrics of 'Three Crows' in the album he released in late '88, "The Songs I Want to Sing / 70's Acoustic Guitar Collection (Art / YERD 7005)". The song is sung to Peter, Paul & Mary's 'Ravens'.

Three black crows are sitting on the tree

What do they say to one another

What meat will you have for breakfast?

Come down come down

Foal passing through the green grass

A Horse is looking at crow

Is the rotten meat that delicious?

Come down come down

15 years after 1 year 2 years

The cold wind blows on the trees

The crow doesn't even think

Come down come down

Dark night passes and new morning comes

Dozing crow in the head

Pours warm and warm light

Come down come down

Does this record literally mean "Songs I Want to Sing / 70's Acoustic Guitars" did not mean that he had 'still something to say' towards the military regime and this society?

He returned to Seoul under the sky again. Since then, he has been focusing on connecting the folks of the folk by producing records of junior singers such as Kim Ha Yong-deok and Son Ji-yeon by establishing BJ Entertainment recently.


This cursed masterpiece was compelled to end his short life of 1 year and 4 months. This record is the fierce gesture and record of the assassin and Yang Byeong-bo in the 70s. At the same time, it is a bloody arrow penetrating exactly the contradictions of society in the 70s, its front and back.


Complaint is another face of the '70s and has social and musical values. This is a good reason to re-excavate even at this point of time, which is more than 30 years old.


Then let's unfold the autobiographical essay book, “Cars on Two Wheel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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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CLUSION:

This album above is a fine protest album also because of its nice colored voice and expressiveness within its simplicity and character. Even when not understanding its lyrics the album works as a creative voice message. Western collectors should or could trace and appreciate this album too. Imagine a kind of Korean Bob Dylan.




#singersongwriter #folk #BobDylan #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