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희은 - Yang Hee-Eun


양희은의 데뷔 음반이 40년 만에 처음으로 CD로 발매된다.

also listed as vol.1/ Soft Songs (The Original)

A1. 아침이슬 / Morning dew

2. 엄마 엄마 / Mom Mom

* 3. 세노야 세노야 / Senoya Senoya

* 4. 그 날 / That Day

* 5. 사랑의 기쁨 / (Plaisir D'armour= The Joy of Love)

B1. Puff

* 2. Seven Daffodils (일곱송이 수선화)

3. Try To Remember (잊지못할 추억)

4. Both Sides Now (구름 사랑 그리고 인생)

5. All My Trials Lord

"This is a nice, rather good folk-pop album of the kind of acoustic songwriter with guitar. One of the songs, the third, has some Korean song flavour. It also includes various covers like “Plaisir D'Amour”, partly sung in English, partly in Korean, ”Puff”, ”Seven Daffodils” another beautiful tearful song arranged with two picking guitars. The part with Korean lyrics strangely enough sound better or a bit more emotionally strong/fitting compared to the still fine English part. Further we have ”Try To Remember”, ”Both Sides Now”(Joni Mitchell) with a slightly changed version, also partly in English and Korean, and ”All My Trials Lord”. As far as I heard well Yang Hee Eun started to become popular in the universities. But the choice on the album still suffered from government control. However, the songs could never be safe enough, and the album was still taken off the market for many years to come."

Hearing it back after these years I must say that it is still highly recommended to Western collectors of 60s-70s styled folk singer songwriters. All songs are in fact nice. There's a unique honest sadness and innocence in them. A very beautiful voice and performance with a rare inner purity.


Tracks with * I consider essential listens or classics, also very suitable for western radioshow airplay. Tracks that are only underlined can be considered great tracks as well, not sure how essential they are.

‘아침이슬’을 포함한 4곡의 창작곡과 ‘일곱 송이 수선화’등 6곡의 번안곡 등 총 10곡이 수록된 이 음반은 1971년 9월에 LP로 세상에 나왔다 ‘아침이슬’과 양희은의 등장은 대학가를 중심으로 큰 인기를 얻었고 1973년에는 건전 가요로 선정되기도 하였지만, 정부는 다음 해에 태도를 돌변하여 이 앨범에 수록된 김민기 작곡의 노래들을 금지곡으로 지정하였다 ‘아침이슬’의 가사 중에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타오르고”라는 부분이 대한민국의 적화를 암시한다며, ‘그날’ 과 ‘엄마! 엄마!’는 ‘시의 부적합’과 ‘허무주의 조장’이라는 게 금지의 사유였다. 그리하여 이 세곡은 방송을 비롯한 대중매체에서 사라지고 이 앨범은 음반 진열장에서 치워졌지만 금지된 노래들은 오히려 민주화의 시위현장에서, 소외된 노동현장에서 시대를 논하는 각종 모임에서 불멸의 생명력을 키워갔으며 저항가요의 대명사로 확고하게 자리매김 하였다. 세월은 흘러 마침내 민주화의 성취로 이 노래들은 복권되었지만 이 앨범은 어떤 연유인지 재 발매되지 못하고 절판되고 말았다. 음반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이 음반은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에 선정되었고 중고 음반 샵에서 상당한 고가로 판매되어 왔다. 이번 ‘양희은 고운 노래 모음’의 부활은 그녀의 데뷔 40주년을 기념하는 의미와 더불어 세시봉과 오비스케빈을 기억하는 세대에게는 추억의 선물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명반의 복원을 통해 그 영원한 가치를 보존할 수 있게 된 것이 다행이라 하겠다.


"Yang Hee-Eun is a called the Korean Joan Baez, especially her second album is a lovely female voice and pastoral folk music with a little Jazz approach. I personally think that the (1972) record is a best of best Korean female folk music in 1970th Korea." Folkie Jin


(CD) 양희은 - 1집 고운 노래 모음 (The Original) (재발매)

CD release date: Mar 24, 1971 on Yejeon Media

1971년 발표된 양희은의 데뷔앨범인 ‘고운노래모음’은 언급자체가 새삼스런 한국 포크의 명품 음반이다. 1970년 서울 명동 YWCA ‘청개구리홀’에서 만난 포크의 전설 김민기와 양희은이 빚어낸 포크송들은 대중가요의 범주를 뛰어넘어 시대의 상징이 되었다.


1971년 봄, 대한일보 강당 무대. 공연이 끝날 즈음 김민기의 서울대 미대 동급생 김아영이 양희은에게 찢겨진 ‘아침이슬’의 악보조각을 건넸다. 조각난 악보를 테이프로 붙여 지금껏 간직할 만큼 ‘아침이슬’은 양희은을 감동시킨 최초의 노래였다.

1971년 6월, 재수 끝에 서강대 사학과에 진학한 양희은은 방송인 이해성, 신태성, 김병우의 주선으로 명동 사보이호텔 뒤에 있던 라이브클럽 ‘OB’S 캐빈’에 출연하기 시작했다. 청순한 외모와 탁월한 가창력은 단숨에 명동 다운타운가의 인기가수로 떠올랐다.


킹레코드 박성배 사장의 마음을 사로잡은 그녀는 음반취입 기회를 잡았다. 뚝섬 마장동스튜디오에 양희은의 데뷔음반 녹음을 위해 명동 YWCA 청개구리홀 멤버들이 모였다. 음악적 중심을 이룬 김민기가 멜로디 파트를 맡고 국내 최초의 시각장애인 가수로 등장해 장안의 화제였던 이용복이 12줄 스틸기타로 리듬파트를 맡아 녹음을 마쳤다.


“당시 김민기가 창작한 곡을 잘 몰라 즉흥적인 애드리브로 따라갔다. 양희은의 참신하고 맑은 목소리를 들으면서 우리나라에도 진짜 포크음반이 탄생한다고 느꼈다"(이용복)

김민기가 창작한 ‘아침이슬’, 엄마!엄마!’, ‘그날’ 등 3곡과 서울대 작곡과생 김광희의 창작곡 ‘세노야 세노야’를 포함해 명동 라이브클럽 ‘OB’S 캐빈’에서 양희은이 주로 불렀던 ‘일곱 송이 수선화’, ‘펍’ 등 6곡의 팝송 번안 곡까지 총 10곡이 수록된 시대의 명반이 세상에 나왔다. 1971년 9월의 일이다. 남산 어린이회관 앞 광장에서 촬영한 재킷 사진에 등장한 포크 대모 양희은의 첫 모습은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선머슴 같은 청바지, 청남방, 청색 운동화 그리고 생머리에 통기타가 전부였지만 그 이미지는 순수했고 당당했다. 맑고 청아한 보컬로 들려준 이 환상적 콤비의 아름다운 멜로디와 시적인 노랫말은 동시대 젊은이들의 가슴을 후려쳤다.


양희은의 팝 번안 곡들도 원곡을 능가하는 포크의 순수 결정체의 질감을 뿜어내며 청년세대들에게 회자되었다. 타이틀 곡 ‘아침이슬’은 아름다운 시적인 가사의 우수성을 인정받아 1973년 군사정부에 의해 ‘고운 노래’상을 수상했다. 1975년 갑자기 공연윤리위원회(현 영상물등급위원회)에 의해 금지곡 판정을 받아 시중에 배포된 이 앨범을 포함 김민기의 노래가 수록된 모든 앨범은 압수되어 폐기 처분되었다.


1975년 2월 12일 유신체제 찬반 국민투표 날, 투표반대 집회에서 ‘아침이슬’이 학생 시위대에 의해 불리어질 계획이 사전에 발각되었기 때문. 당시는 모든 대중가요 음반에 의무적으로 건전가요 한 곡을 넣기 시작했던 시기다.

금지곡 ‘아침이슬’이 여전히 건전가요 리스트에도 버젓이 등재되어 빚어진 이후의 웃지 못 할 해프닝은 시대의 희극이었다. 수록곡 중 김광희 곡 ‘세노야 세노야’를 제외한 김민기의 창작곡들은 방송에서 자취를 감췄다. 대부분의 노래엔 ‘시의 부적합’

'허무주의 조장’이란 금지 사유와는 달리 ‘아침이슬’의 금지엔 아무런 이유조차 없었다. 세간에서는 가사 속의 붉은 태양이 북측의 인사를 암시한다는 억지 해석까지 나돌았다. 양희은은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저항가수의 상징이 되었다. ‘저항적 의미보다는 그저 아침이슬의 이미지를 노래로 만들었을 뿐’이라는 작곡자 김민기의 덤덤한 작곡후기와는 상관없이 70-80년대 민중들은 군부독재로 억압받는 어두운 시대상황에서 이 노래가 지닌 맑고 순수한 이미지가 민주화 운동에 제격이라는 공감대를 형성했다. 오랜 기간 대중매체에서 사라진 금지 당한 곡들은 대학생들의 시위현장에서, 소외된 노동현장에서, 국민의 각종 모임에서 더욱 질긴 생명력으로 시퍼렇게 살아나는 잡초 같은 생명력을 발휘했다. 1970~80년대 시위 현장에서 어김없이 불리어진 주제가였던 ‘아침이슬’은 수를 헤아리기 힘들만큼 많은 가수들에 의해 리메이크되었고 지금도 각종 모임의 대미를 장식하며 참석자들에게 강한 연대의식을 안겨주는 국민가요로 애창되고 있다.


‘1만 번도 넘게 불렀다’는 양희은의 증언처럼 ‘아침이슬’은 국민이 ‘가장 즐겨 듣는 대중가요 1위’로 선정되기도 했다. ‘아침이슬’이 최초로 수록된 양희은 1집 <고운노래모음>은 2008년 경향신문과 가슴네트워크가 선정한 <한국대중음악 100대 명반>에서

67위를 차지하며 70년대를 상징하는 한국포크의 클래식 앨범으로 공증되며 한국 포크의 상징적 앨범으로 각인되어 있다.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


Translated roughly with the help of Google Translate :


"In 1971, Yang Hee-eun's recorded her debut album, 'Beautiful Song Collection’. It is a masterpiece record. The folk songs created by Yang Hee Eun became a symbol of the times beyond the category of popular songs.


In 1970, Yang Hee Eun had met the folk legend Kim Min Ki, at YWCA. In the spring of 1971, after a performance of Korean theater, Kim Min-ki's classmate Kim A-He handed a piece of music of "morning dew" to h Yang Hee-eun. Taped versions of the sheet music of 'Morning dew' was the first song to impress Yang Hee Eun. In June 1971, Yang Hee Eun went to the Sogang University Dept. of Sogang University. Kim Byung-woo, had appeared on the live club 'OB'S Cabin' behind Myeongdong Savoy Hotel. Yang Hee-Euns own pure appearance and excellent singing power made her suddenly emerg as a popular singer of downtown Myeongdong.


King Record, who caught the heart of Park Seong-bae, took a chance to record. For the recording of Yang Hee-eun's debut album in Ttukseom Majang-dong Studio, members gathered. Kim Min Ki, who has a musical center role, plays the melody part, Yoon-bok, acquaintance Chang'an, appeared as a supporting singer.


Three songs, such as 'Morning Dew', 'Mom! Mom!' And 'Day' were created by Kim Min Ki it also included 'Sennoya Senoya' by Kim Kwang-hee, performed at the Myeongdong Live Club 'OB'S Cabin'. There are six other songs, including 'Seven Songs of Daffodils' and 'Pubs' All 10 songs were recorded one one day of September 1971.


The front cover photo showed Yang Hee-Eun within her own dignity. With her voice she expresses crystal vocals, melody , in combination with the poetic lyrics this struck the hearts of contemporary young people. The folk style ehances the original song. The title song 'Morning Dew' was recognized for its excellence in beautiful poetic lyrics. It won the 'Fine Song' award. In 1975, suddenly the performance ethics committee added a ban on the record and the albums were confiscated and disposed of. It was because on February 12, 1975, "morning dew" was performed at the rally against voting day. "Morning Dew" is still listed as a favourite one to contemporary singers. Also Kim Min Ki 's original compositions have been left out on the air. In most songs, unlike the reason for the prohibition of nihilism, there was no other reason one could find to ban the morning dew.

But again, even the mention of the red sun was interpreted it was song that was in suggestive favour suggestive for the North Korea area. Anyhow, Yang Hee-eun became a symbol of resistance by a singer even against her own will. It even created a consensus stating that expressing a pure image always shows a good foundation for a democratization movement. For a long time in the media forbidden songs the had come forward from college students' protests, from alienated labor, At various gatherings of the people, people showed its own vitality like the weeds surviving powerfully. In the 1970s and 1980s, the theme song 'Morning Dew', had become a theme song that was called out on protest scenes. It has been reused by many singers and still is revered revered as a national song that gives a strong sense of solidarity amongst the participants.


Like the testimony of Yang Hee-eun, who said, “I was called more than 10,000 times", "morning dew" itself became the most popular song. 'Morning Dew' was first recorded in Yang Hee Eun 1. The <Good Song Collection> was selected by Kyunghyang Newspaper and Chest Network in 2008 It is amongst <100 Popular Korean Pop Songs> The album itself is considered a classic album of Korea Folk, very much symbolising some essence of the 70s, a symbolic album of its times."


by Choi Kyu Sung, popular culture critic.



양희은의 데뷔 음반이 40년 만에 처음으로 CD로 발매된다. '아침이슬'을 포함한 4곡의 창작곡과 '일곱 송이 수선화'등 6곡의 번안곡 등 총 10곡이 수록된 이 음반은 1971년 9월에 LP로 세상에 나왔다. '아침이슬'과 양희은의 등장은 대학가를 중심으로 큰 인기를 얻었고 1973년에는 건전 가요로 선정되기도 하였지만, 정부는 다음 해에 태도를 돌변하여 이 앨범에 수록된 김민기 작곡의 노래들을 금지곡으로 지정하였다. '아침이슬'의 가사 중에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타오르고"라는 부분이 대한민국의 적화를 암시한다며, '그날' 과 '엄마! 엄마!'는 '시의 부적합'과 '허무주의 조장'이라는 게 금지의 사유였다. 그리하여 이 세곡은 방송을 비롯한 대중매체에서 사라지고 이 앨범은 음반 진열장에서 치워졌지만 금지된 노래들은 오히려 민주화의 시위현장에서, 소외된 노동현장에서, 시대를 논하는 각종 모임에서 불멸의 생명력을 키워갔으며 저항가요의 대명사로 확고하게 자리매김 하였다. 세월은 흘러 마침내 민주화의 성취로 이 노래들은 복권되었지만 이 앨범은 어떤 연유인지 재 발매되지 못하고 절판되고 말았다. 음반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이 음반은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에 선정되었고 중고 음반 샵에서 상당한 고가로 판매되어 왔다. 이번 '양희은 고운 노래 모음'의 부활은 그녀의 데뷔 40주년을 기념하는 의미와 더불어 세시봉과 오비스케빈을 기억하는 세대에게는 추억의 선물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명반의 복원을 통해 그 영원한 가치를 보존할 수 있게 된 것이 다행이라 하겠다.


양희은 - 당신의 꿈, 작은배 (신중현 작편곡집) (LP 2017 뮤직리서치)

양희은 - 당신의 꿈 / 작은 배 (신중현 작편곡집) (Remastered) (CD-LP Miniature) 26-7-2017

고운노래모음 1집 [180g LP] 2016 예전미디어

Classic reissue with very beautiful folkpsych/rock songs. The first track, from Yu Seok Suh is one of my real favourites.

"Seo Yoo-Seock Shin Jung Hyun songs collection. From this record only the side A songs were reissued only CD format together with the Yang Hee Eun records in 2003. Side A songs are Shin Jung Hyun's songs ; Side B are other music writers songs. I think that this record is a good folk rock or psychedelic folk album from Korea."


Korea had a Folk scene in the 70's too. But it only had few folk rock albums then. Mostly Korean folk singers were influenced by American folk singers (Bob Dylan, Simon and Garfunkel, Peter Paul and Mary, Joan Baez etc.). So almost folk singers belong to modern folk. Only a few singers tried add western folk music (mostly American folk) to traditional standards.


Only occasionally folk rock was made by a rock musician. This musician was Shin Jung-Hyun. I think there was no another musician like him in Korea. He made three psychedelic folk rock albums with folk singers.


First we have Kim Jung-Mi's "Now"(1973) but then also Seo Yoo-Seok's "Shin Jung-Hyun Jakpeangok jip" (Shin Jun-Hyun songs collection, 1973) and Yang Hee-Eun's "Shin Jung-Hyun Jakpeangok jip"(1973). I think that he was interested about adding psychedelic music to folk music by the year 1973. Both albums (Seo Yu-seok and Yang Hee-Eun) were made only sides A by Shin Jung-Hyun. Sides B were composed by other composers. These records were a new experiment for the Korean Folk history.


Yang Hee-Eun is a famous female folk singer and early her albums songs are all Korean folk godfather Kim Min Gi's songs. But at this album she meets Shin Jung Hyun. So her voice of this album is a different than her other albums. Her voice is a dry voice with no feelings at this album. Shin Jung Hyun was interested to combine Western music with Korean traditional rhythm at this time. So this album is combination music of Western folk music plus Korean traditional rhythm and Psychedelic sounds. But nobody tried such experiment like Shin Jung- Hyun ever since. I think that it is a very sorrowful thing. Also featuring here is Professor Lee Kyo Suk played the harp at this album. (He taught music theories to Shin Jun Hyun)."


Folkie Jin

http://themen.musicchain.net/tag/신중현%20작편곡집 :

SIDE 1

* 1. 당신의 꿈 / Your Dream * 2. 나도 몰래 / Secretely * 3. 길 / Dream * 4. 고운 마음 / Fine heart * 5. 풀들의 이야기 / The story of the grasses


포크 디바, 싸이키델릭 사운드에 초대받다

"Folk diva invited to psychedelic sound"

After all these years I still don' understand why Kim Yung Mi was recognized, but Yang Hee Eun steed unnoticed by Western collectors. Also this work was a cooperation of Shin Young Hyun and a singer, in this case a folk singer whose voices fitted to the psychedelic folkrock sound created for this. Highly recommended! There has been done some reissues.

이 음반의 주인공은 물론 양희은이다. 그렇지만 1970년과 1971년 두 종의 '고운 노래 모음' 음반을 발표한 양희은의 음반이라기보다는 가장 왕성한 창작욕을 가지고 있을 당시 신중현의 '외도'로써 파악하는 편이 나을 듯 싶다. 다시 말해서 뒷면의 곡들만 없다면 양희은의 다른 디스코그라피와는 떼어놓아도 관계가 없을 법한, 양희은의 목소리만 빌린 말 그대로의 '신중현 작·편곡집'이다. 양희은의 '고운 노래 모음'음반은 이 음반 이후에 다시 '3'이라는 번호로 이어지고 있다. 본 리뷰에서는 뒷면의 곡들을 제외한 '신중현 작·편곡집'만을 살펴보려고 한다. '신중현 작·편곡집'으로의 양희은의 앨범. 하지만 또 다른 시각에서 본다면, 이전까지 '신중현 작·편곡집'에서 들을 수 있었던 신중현 사단 소속 가수들 특유의 창법이 없다. 마치 코를 잔뜩 막고 노래를 부르듯 비음 섞인 발성과 앞의 음절과 뒤의 음절을 이어서 발음하는 창법 말이다. 이러한 '신중현식 창법지도'는 비단 1960년대의 신중현 사단에만 귀속되지 않고, 1980년대에 나왔던 이문세의 음반에 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과연 그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가장 커다란 수단 가운데 하나였던 발성을 포기하면서, 혹은 의도적으로 배제하면서 표현하려고 했던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이를 위해 먼저 [71 폭송 히트모음 제1집](KLS 27)에 수록된 신중현의 "마부타령"을 들어보자. 어쿠스틱 기타 하나에 신중현 자신이 직접 노래를 부르는 단순한 곡이다. 하지만 이 곡은 이전까지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영미) 포크와 우리의 민요 가락과의 조우를 시험해 본 소중한 트랙이다. 물론 이렇게 우리 전통음악에 서구의 옷을 입히려는 작업은 이후 신중현의 작품들에서 계속해서 그림자를 길게 드리우며 또다른 강박관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양희은과 신중현 두 명 모두에게 있어서의 새로운 시도. 그런 이유로 이 음반은 무척이나 신선하다. 이전 두 장의 정규 음반을 통해 '아메리칸 포크' 스타일의 음악으로 자신의 세계를 가지고 있었던 양희은, 그리고 '소울 앤 싸이키델릭 사운드'로 나름의 특유의 아우라를 가지고 있었던 신중현의 결합에 의한 화학적 변화는, 이 앨범에도 수록되었고 또 비슷한 시기에 발표된 여타 '신중현 사단'의 목소리로 녹음되었던 동일한 곡들을 들어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나도 몰래"는 앞에서 언급했던 "마부타령"의 연장선에 있는 곡들로서 한국의 전통음악과 서양 음악의 조우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다. 이 곡과 "당신의 꿈"은 (양희은이 노래를 부른) 이 음반 외에 김정미가 노래를 부른 음반에도 수록되어 있는데 양자는 매우 다르다. 일렉트릭 기타로 연주한 것과 어쿠스틱 기타로 연주한 것의 차이 외에 결정적 차이가 있다. 그것은 김정미의 목소리가 심각하다면, 양희은의 목소리는 덤덤하고 건조하다. 다시 말해서 감정을 싣지 않고 노래를 부르고 있다는 점이다. '신중현식 창법'에 의해 신중현의 감정을 표현하던 가수들과 비교해 볼 때 양희은은 아무런 감정도 싣지 않음으로써 역설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처럼 들린다. 물론 이런 창법은 이전의 양희은의 포크적인 창법에서 온 것이다. 하나 더. 신중현은 여기서 한국의 전통 가락을 표현하기 위해 이전의 포크에서 시도되지 않았던 록 음악의 리프를 도입한다. 한국 전통음악과 영미 포크 음악의 조우와 더불어, 이 음반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또하나의 특징은 포크와 싸이키델릭의 결합이다. 또 하나의 걸출한 음반인 서유석의 신중현 작.편곡집에서도 느낄 수 있는 '몽환적'인 느낌은, 이전까지 '싸이키 사운드'로 불리우며 공연장이나 극장에서 현란한 조명에 어우러진, 다소 '퇴폐적'인 집단 가무의 형태를 벗어나서 차분히 앉아서 사운드를 들으면서 머릿 속에 그려지는 또 다른 세계에 빠져드는 새로운 형태의 '싸이키 사운드'이다. 이는 여타 그룹 사운드들이 시도했던 것과도 다른 것이었을 뿐만 아니라 통기타 하나로 공동체 의식을 가질 수 있었던 포크 음악과도 확연하게 구분된다. 그런 의미에서 따라 부르기 어려운 포크 음악, 다시 말해서 감상 전용의 포크 음악의 탄생이기도 하다. 하지만 시도는 시도였을 뿐, 다른 시각에서 본다면 포크도 록도 그렇다고 싸이키델릭도 아닌 이 새로운 음악에 대중들은 무관심했다. 양희은의 이름표를 달고 나온 음반이었지만 어느 곡 하나 히트한 곡도 없다. 이전의 음악들처럼 베이비 코드 몇 개로 통기타를 치면서 따라 부르기 쉬운 멜로디도 없는 이 곡들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이후 그렇게도 많이 쏟아져 나왔던 여러 가지 형태의 '양희은 히트곡 모음집'가운데에도 이 곡들을 찾아 보기는 힘들고, 이는 신중현과 관련된 음반들에서도 마찬가지다. 다시 한번 정리하면 이 음반은 양희은의 목소리를 통해 영미의 포크 음악과 한국의 전통 가락, 그리고 싸이키델릭 사운드가 결합할 수 있는 가능성을 타진해 보려던 신중현의 외도성 프로젝트다. 그리고 록 음악의 기본 줄기를 이루는 리프를 포크에 도입하는 등, 그전까지 유행하던 '함께 부르는' 포크송과 달리 감상 전용의 포크 음악이다. 아무도 가보지 않은 곳에 혼자 길을 닦고, 이정표를 세운 작업. 하지만 이후 그 이정표를 따라는 이는 아무도 없었고, 그 길을 만든 이조차 뒤 돌아보지 않는 잊혀진 길이 되어버린 것 같다. 20021024


Rough translation with the help of Google Translate:


"The main character of this album is Yang Hee Eun. Yang Hee-eun had already published two "good song collection" albums in 1970 and 1971. This collection however is literally Shin Jung-hyun's work and arrangements, which only borrowed Yang Hee-Eun's voice. For Yang Hee - eun 's' Song Collection' this became the third album of her discography. In this review, I will only look at 'Shin Jung Hyun' s composition and arrangement 'except for the songs on the back.

The record combined the talent of Yang Hee Eun, who had her own world of expression with 'American Folk' style music known from two previous regular recordings, and Shin Jung Hyun, who had his own unique aura with 'Soul and Psychedelic Sound.'

The song "I Do not Know" is a continuation of "Mabu Tateung" a Korean folk song interpretation in which Korean traditional music and Western music are combined. This song and "Your dream" (recorded by Yang Hee Eun) was also included in the recordings of Kim Jung - Mi 's songs, but the two versions are very different. There is a crucial difference in the difference between playing with an electric guitar and playing with an acoustic guitar. Where Kim Jung-mi's voice is serious, Yang Hee-eun's voice is more plain and dry. In other words, more like a singing without emotion. Compared to the singers who expressed Shin Jung-hyun's feelings by Shin Jung Hyun Formula, Yang Hee-eun seems to paradoxically express her feelings freely without bearing any emotion. Of course, this method comes from the former Yang Hee Eun 's folk technique. Shin Jung-hyun introduces a rock music touch that was not tried before in the previous interpretations how to express something with a Korean traditional rhythm.

Except for the combination of Korean traditional music and English and American folk music, the album also combines folk with psychedelic music. The 'dreamy' feeling that can be felt in the arrangements, including another remarkable recording of the song by 'Seo Jung-suk', also known as 'Seok Jung Hyun', it brings us to a new type of 'psychedelic sound' that drifts into another world drawn in the head while sitting calmly, listening to the sound. This is not only different from what other group sounds attempted, but it is distinctly different from the folk music that was able to have a conscious sense of global folk music as a whole. In this sense, it is also the birth of independant folk music.

But the attempt was an attempt, and from a different point of view, the public remained indifferent to this new form of music, which was neither rock, nor psychedelic music. It was a record with the name tag of Yang Hee-eun, but it was not the formula of creating one hit after the other. People tend to listen to music in order to remember these tunes with an easy melody to sing along with. Such songs are less present in the case with the records related to Shin Jung Hyun.

Once again, this album is a project of Shin Jung-hyun's explorative vision, which seeks to explore the possibility of the combination of Korean folk music, Korean traditional melody, and psychedelic sound through Yang Hee Eun's voice. It is discovering roads no one else has ever visited before, and setting milestones. But since then, no one has followed the milestone, and it seems that it has become a forgotten road that did not go beyond its own teritory. "

Yang Hee Eun LP, 1974

A nice, charming, unpretentious and inspired songwriter folk album with attention to the additional arrangements in some songs. Some of the most heartfelt, mostly a bit more sad, and most original songs keep the foundation of guitar picking(s) with voice(s) with not much more added.


Track 5 this is with an additional male voice for some harmonies. Some lalalaa's in some songs too.

Track 3 is a bit more mellow, like an adult lullaby (track 3), but within acceptable proportion within the song collection.


In general the songs are well sung with convincing voice, nice pickings and fine arrangements. These arrangements include strings and reed instruments with some studio band on drums, electric bass and electric rhythm guitar.


The ninth and more up tempo track is a rock song with the electric band only and with some electric organ arrangements. This track has some small electric guitar solo (with organ / drums) and short distorted wah-wah ending.


The last track is a light and almost funny waltz instrumental led by two acoustic guitars, and some instruments leading the solo, one by one, like by a wahwah-trumpet, organ, oboe, Hammond organ, Moog synth, while relaxed rhythm leads the track (-triangle accents and shakers included-).


For the moment the album is available on Itunes only.


앨범명 : 양희은 [내님의 사랑은/작은배] [My Love is a Small Boat] 발매사 : (1976.09.30) 서라벌 SLK-1014

Side A * 1. 내님의 사랑은 / My Love * 2. 세노야 세노야 / Senoya Senoya 3. 아름다운 것들 / beautiful things 4. 하늘 / The sky 5. 잊을수 없는 사랑 / Unforgettable Love

Side B * 1. 작은배 / Small boat 2. 가난한 마음 / Poor Mind 3. 빈자리 / Vacancy 4. 가려마 / Do not cover * 5. 누가 알게 될까 / Who will know 6. 군가 / Gunga

The digital version on iTunes only had 10 songs, included 작은 배 / Small Boat as track 4 and did put track 5 on track 10 and left out 군가 / Gunga for some reason ?


Also this record is recommended to western collectors.


고운노래모음 2집 [180g LP] 2016 예전미디어

01. 아름다운 것들 / Meanwhile 3:45

02. 그 사이 / Doll 3:42

03. 서울로 가는 길 / Road to Seoul 4:11

* 04. 인형 / Bottom wind 3:06

* 05. 저 부는 바람 / Small pond 1:43

* 06. 새벽 길 / White ball 2:14

* 07. 백구 / Dawn 5:48

08. 등대지기 / Lighthouse Keeper 3:01

09. 아무도 아무데도 / Beautiful things 5:19

10. 작은 연못 / Nobody anywhere 3.52

​I was still lucky to find a copy of this reissue, because such reissues are very limited worldwide. Yang Hee Eun has one of the great voices of the guitar folk style. This folk style fits well with the British folk pop items even though its interest were more related with the American scene one could eventually imagine a hint to a French chansonier here and there.


I really like this area of delicacy in sentiment, which nowadays is no longer found or is at least less innocent and today lacks the same integrity.


The arrangements are sparse; its foundation is voice and guitar most often but not always. There clearly has been given attention to make the voice best carrying, eventually with vocal harmonies being added, flute/clarinet or drum/bass arrangements or also chamber string arrangements and such, always suited to the songs best.


Track 6 is slightly blues-rockier with bass/drum and jazz piano.


A great compilation of songs.


1집 타이틀곡 <아침이슬>로 존재를 알린 양희은의 정규2집 앨범 1집 타이틀곡 <아침이슬>로 존재를 알린 양희은은 포크콘서트 공연을 통하여 본격적인 행보를 시작하였고, 공연은 상상을 초월하는 인파로 인산인해를 이루었으며, 그녀를 청년시대를 대표하는 포크가수로 존재가치를 업그레이드 시켰다. 청바지 차림에 맨발로 고목나무 위에 걸터앉아 통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사진으로 장식된 양희은 2집은 재킷만으로 동시대 젊은이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우아하면서도 감정이 절제된 청량감이 감도는 노랫가락은 기존의 낡은 사랑 타령 가요들을 누르며 포크송의 위세를 떨치게 했다. 2집 수록 곡 <서울로 가는 길>, <백구>, <작은 연못>, <새벽 길>, <아름다운 것들>은 1집에 버금가는 파장을 일으키며 빅 히트 했다.


양희은은 혼성듀엣 뚜아에무아 출신 박인희, 라나에로스포 출신 은희, 최안순 그리고 이연실, 방의경과 함께 통기타, 청바지, 생맥주로 대변되는 70년대 청년문화를 이끌었던 1세대 여성포크가수다. 1집 타이틀곡 ‘아침이슬’로 존재를 알린 양희은은 서울 YMCA강당에서 Y틴들을 대상으로 <포크콘서트 희은이와 함께>를 개최하며 본격적인 음악 행보를 시작했다. 양희은의 공연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인파가 몰려들며 인산인해를 이뤘다.

1집과 거의 동시에 발표된 ‘71년 폭송 히트모음1집’과 정규 2집은 그녀를 청년시대를 대표하는 포크가수로 존재가치를 업그레이드 시킨 히트 앨범들이다. 양희은의 정규 2집 <서울로 가는 길>은 1972년에 발표되었다. 이 앨범은 타이틀 곡 없이 기타를 연주하는 양희은의 상반신 사진과 공연사진 2장이 디자인된 초반이 별도로 존재한다. ‘서울로 가는 길’이 타이틀로 명기된 고목나무 사진으로 장식된 음반은 정식 발매된 재반이다.

초반, 재반의 재킷 뒷면 분위기는 비슷하지만 1장의 사진이 수록된 초반과는 달리 재반에는 4장의 사진이 수록되었다. 앨범에 참여한 뮤지션들조차 존재를 모르는 희귀한 초반은 실제로 정식 발매가 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총 10곡이 수록된 재반과는 달리 팝송 번안 곡 ‘아름다운 것들’과 김민기 곡 ‘새벽길’이 빠진 8곡이 담겨 있다. 양희은의 트레이드인 청바지 차림에 맨 발로 고목 나무위에 걸터앉아 통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사진으로 장식된 정식 발매 재반은 재킷 이미지만으로 동시대 청소년들과 청년들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이 음반을 통해 양희은은 70년대 청년문화에 불을 지핀 대표 노래꾼으로 확실하게 떠오르는 원동력을 획득했다. 우아하면서도 감정이 절제된 청량감이 감도는 노랫가락은 기존의 낡은 사랑타령가요들을 파괴시키며 포크송의 위세를 떨치게 했다. 1집에 비해 음악편성이 한결 풍성하고 탄탄해신 정규 2집에는 많은 뮤지션들이 참여했다. 김민기를 필두로 1집 히트곡 <세노야 세노야>를 창작했던 김광희가 김민기 곡 ‘백구’와 ‘등대지기’의 편곡까지 맡았다. 또한 정성조 쿼텟, 바이올리스트 김동석은 이 앨범의 멜로디에 예술성을 더했고 기타리스트 강근식도 세션으로 참여해 앨범의 완성도에 힘을 더했다. 자유로운 분위기를 원테이크로 담아낸 4번 트랙 ‘인형’은 김광희, 남성듀엣 4월과 5월의 오리지널 멤버 이수만, 조영남, 고영수가 웃음 녹음에 참여했고 휘파람 소리의 주인공은 조영남이다.

처음 젊은 세대들에게 인기를 끌었던 노래는 1집 타이틀곡인 ‘아침이슬’이 아닌 거의 동시에 발매된 컴필레이션 앨범 ‘71년 폭송 힛트모임 1집’ 수록곡인 김정신 곡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이었다. 발표하는 앨범마다 학생층에 널리 회자되는 여파를 몰아 2집 수록곡 ‘서울로 가는 길’, ‘백구’, ‘작은 연못’, ‘새벽길’, ‘아름다운 것들’은 앞선 음반들을 능가하는 파장을 일으키며 거의 모든 곡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빅히트를 터트렸다. 그 중, 포크 여성 싱어송라이터 방의경이 개사한 ‘아름다운 것들’은 70년대를 대표하는 포크송으로 사랑받으며 1973년에만 4회에 걸쳐 재발매되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김민기가 요주의 인물로 유신정권의 사찰대상이 되어 버린 이후, 시대의 해프닝은 퍼레이드를 벌였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은 ‘왜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느냐’는 황당한 꼬투리였고, 2집 수록곡 ‘작은 연못’은 부정적으로 묘사된 가사 내용이 ‘정권을 비꼰다.’는 이유로 차례로 주홍 글씨 낙인이 찍혔다. 이에 김민기 1집과 더불어 양희은의 1집과 2집은 대중의 시야에서 사라지며 한동안 저주받은 걸작으로 포크 팬들 사이에 회자되었고 2015년 43년 만에 재 발매되며 부활했다.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Roughly translated:


"Yang Hee-eun is a first-generation female folk singer who led a youth culture in the 70s, represented by a combination guitar, jeans and draft beer with Park In-hee from mixed duet Too et Moi, Eun-hee from Lanaerospo, and An-sun Choi and Lee Yeon-sil and Bang Eui-kyung. Yang Hee-eun, who announced the existence of her first title song “Morning Dew,” began a full-fledged musical walk by holding Folk Concert Hee-eun with Y Teens at the YMCA auditorium in Seoul. Yang Hee-eun's performance brought out the imagination and crowded people.


Almost simultaneously with the first album, '71 Years of Hit Hit Collections' and 2 regular albums were hit albums that upgraded her value as a folk singer representing the youth. Yang Hee-eun's 2nd album <Road to Seoul> was released in 1972. This album has a separate design with the first half of Yang Hee Eun's upper body and two performances playing the guitar without the title song. The album, which is decorated with photographs of the old tree with the title 'Road to Seoul', is officially released.


In the beginning and in the back of the jacket, the atmosphere was similar, but in contrast to the early one, which was recorded, four were recorded. Even the musicians who participated in the album, the rare early days who do not know existed, do not appear to have actually been released. Unlike the second half, which contains a total of 10 songs, there are eight songs missing the pop song `` Beautiful Things '' and the Kim Min-ki song ``Dawnbreak Road'' The official release, which was decorated with Yang Hee-eun's trade-in jeans and barely sat on an old tree and played a guitar and singing, shook the hearts of contemporary teenagers and youth by just seeing the sleeve image.


Through this recording, Yang Hee-eun gained the impetus to emerge as a representative singer who lit the youth culture in the 70s. The elegant and understated cool melody smashed the old love tatters and made the folk song stand out. Compared to the first album, many musicians participated in the 2nd regular album. Kim Kwang-hee, who created the first hit song <Senoya Senoya> with Kim Min-gi, arranged the Kim Min-ki songs 'Baek-gu' and 'Lighthouse Keeper'. In addition, Chung Sung-Jo's quartet and violinist Kim Dong-suk added artistry to the melody of the album and guitarist Kang Geun-sik also participated in the session to enhance the album's completeness. The 4th track 'Doll', which contained a free atmosphere with one take, was Kim Kwang-Hee, the original members of the male duet April and May, Lee Soo-man, Cho Young-nam, and Ko Young-Soo participated in the recording of laughter.


The first song that was popular with the young generation was not the first title song, `` Morning Dew, '' but the Kim Jung-shin song, `` Love that can't be achieved, '' which is included in the compilation album `` 1st Vol. Each album released releases the aftermath that is widely spoken by the students, and the two tracks, 'Road to Seoul', 'Baekgu', 'Little Pond', 'Dawnway', and 'Beautiful Things' are almost overwhelming the previous recordings All the songs hit big hits simultaneously. Among them, `` Beautiful Things '', which was introduced by Folk female singer-songwriter Bang Eui-kyung, was loved as the representative folk song of the 70's and recorded four hits in 1973.


Since Kim Min-ki became the target of the Yushin regime as a person of interest, the Happenings of the era had a parade. 'Love that can't be achieved' was an absurd pod about why 'love can't be achieved', while the second song 'Little Pond' was negatively marked with a scarlet letter because of the negatively portrayed lyrics. . In addition to Kim Min-gi's 1st album, Yang Hee-eun's 1st and 2nd albums disappeared from the public's view, and were cursed for a while by folk fans and were re-released after 43 years of revival in 2015. / Kyu-Sung Choi Critic



Sail Music 양희은 / Yang Hee Eun : 고운노래 모음 3집 (re.2017)

high quality miniature LP-CD reissue 2017-03-28 ****

LP Sail Music 2017.08.29

possible favourites : track 1,2,5,8

* 1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 Love that can't be achieved

* 2 작은 배 / Small boat (dinghy) / belly

3 불나무 / Fire wood

4 행복의 나라 / A country of happiness

5 하늘 / Sky

* 6 나도 몰래 / Secretly

* 7 길 / A Way

* 8 가난한 마음 / Poor heart

* 9 빈자리 / Vacancy

* 10 새 며느리 / New daughter-in-law


Yang Hee Eun’s voice and song with no doubt will be recognised as one of the best of the era, with a quality in voice, songs, melody and effective simple arrangements that will and should be understood, felt and appreciated anywhere outside Korea as well. There’s something of an essence and purity that can no longer be spoiled by the fact they’re singing in a different language most foreign people can understand, because all of its other qualities compensate richly for it. Even outside the realm of Shin-Young Hyun all essentials are there. A few different tracks are more heavily arranged. Another essential album.


만인들의 통기타 입문곡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한국 포크의 거목 조동진의 곡 <작은 배>, 한국 포크의 명곡 <행복의 나라>, 신중현의 사이키델릭함과 포크 음악이 만난 <나도 몰래>, <길> 등이 수록된 시대를 초월한 명곡들로 가득한 한국 포크의 대모 양희은의 정규 3집


양희은 고운노래 모음 3집(73.3.1 유니버살)=A.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김정신 작사작곡), 작은배(고은 작사, 조동진 작곡), 불나무(방의경 작사작곡), 행복의 나라(한대수 작사작곡), 하늘(박두진 작사, 서유석 작곡) B. 나도 몰래(신중현 작사작곡), 길(신중현 작사작곡), 가난한 마음(방의경 작사, 김광희 작곡), 빈자리(이탄 작사, 김광희 작곡), 새 며느리


Yang Hee Eun Fine Song Collection Vol. 3 (73.3.1 Universal) = A. Love that can't be achieved (composed by Kim Jung-shin), small beat (composed by Goeun, composed by Jo Dong-jin), firewood (composed by Bang-kyung), country of happiness (composed by Han Dae-soo), sky (composed by Park Doo-jin, composed by Seo Yoo-seok) B. Song Shin-hyun composed), Gil (composed by Shin Joong-hyun), Poor Mind (composed by Bang-kyung)


other review:


한국 포크의 대모’ 양희은의 데뷔 초창기의 앨범들은 대부분 김민기의 창작곡들로 이루어져 있다. 1971년 발표한 그녀의 데뷔앨범「고운노래모음 제1집」과 1972년에 발매된「고운노래모음 제2집」은 한국 포크의 명반으로 대접받는다. 앨범에 수록된 '아침이슬', '백구', '작은 연못', '새벽길', '서울로 가는 길' 등 시대를 초월한 명곡들의 면면이 말해주듯 모두 김민기의 색채가 짙게 채색된 앨범들이었다. 1973년 발매된 양희은의「고운노래모음 제3집」은 옛 서울 종로구 중학동 한국일보 사옥 밑에 위치한 한마당 한옥에서 촬영된 커버사진으로 꾸며졌다. 이 앨범은 김민기가 아닌 다른 창작자들의 노래들로만 구성된 양희은의 첫 정규 앨범이다. 이 앨범에는 전작들과는 달리 김민기의 작품이 한 곡도 없다. 대신 조동진, 한대수, 서유석, 신중현, 김광희, 방의경 등 당대를 대표하는 쟁쟁한 창작자들이 대거 참여했다. 앨범에 수록된 총 10곡은 약간의 신곡과 이미 발표된 노래들이 다시 수록되거나 커버버전까지 복잡하게 혼재되어 있다. 홀로서기를 시도한 양희은의 인기는 이 앨범에서도 예외 없이 확인되었다. 여대생 김정신이 작사 작곡한 타이틀곡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은 이 앨범이 발매되기 이전부터 대학가와 청소년층에서는 이미 유명한 노래였다. 원래 이 곡은 1971년 발매된 양희은의 첫 앨범보다 조금 앞서 발매된 옴니버스 앨범「’71 폭송 힛트 모음 제1집」에 먼저 수록되어 상당한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옴니버스 앨범의 금지로 양희은의 정규 3집의 타이틀곡으로 다시 수록되었다. 고은의 시에 곡을 붙인 '작은 배'는 80년대 이후에 한국 포크의 거목으로 성장한 조동진의 등장을 알리는 서곡이었다. 한국 포크의 명곡 '행복의 나라'는 창작자인 한대수를 비롯해 많은 가수들이 무수한 공연에서 이미 불렀다. 음반으로는 이 앨범에 1년 앞서 양희은이 가장 먼저 취입했지만 앨범의 금지로 인해 널리 알려지지는 못했다. '행복의 나라'는 이 앨범에 다시 수록되면서 비로소 널리 알려졌고 시대를 초월해 사랑받는 명곡의 지위를 획득했다. 또한 한대수는 이 앨범을 통해 가수보다 작곡가로 인지도를 획득하게 된다. 이밖에 싱어송라이터 서유석은 박두진의 시에 곡을 붙인 '하늘'을, 서울대학교 음대 작곡과 여대생 김광희는 '가난한 마음'과 '빈자리'를 양희은에게 제공했다. 이 노래들도 이 앨범을 위해 만들어진 신곡이 아니라 서유석과 김광희가 이미 자신들의 노래로 발표한 커버버전이다. '하늘'은 1972년「서유석의 걸작집」에, '빈자리'는 1972년 발매된 옴니버스 라이브 앨범「맷돌」에 먼저 실렸다. '불나무'는 1972년 발표된 라이브클럽 내쉬빌의 대학생 창작자들이 제작한「아름다운 사람아 / 아름다운 노래를」과 양희은 봉투앨범「불나무」에 연속적으로 먼저 실렸다. '가난한 마음'도 1972년 발매된 양희은의 신중현 작품집에 이어 봉투앨범에 먼저 실렸다. 특히 1972년 이화여대생 싱어송라이터인 방의경의 정규 1집에도 실린 '불나무'는 ‘노래제목이 사전에도 없는 단어라 수상하다’는 이유로 방송금지가 되었다. 사장될 위기의 노래는 이 앨범에서 양희은이 다시 불러 당대의 포크 팬들에게 알려졌다. 전작들과는 달리 이 앨범에서 양희은의 큰 변화는 신중현의 존재에서 비롯된다. 두 사람은 이 앨범에 앞서 이미 1972년에 한국 최초로 싸이키델릭 포크 사운드를 실험하는 협업을 시도한바 있다. 신중현곡 '나도 몰래'와 '길'은 그 앨범에 이어 다시 수록되었다. 신중현과의 협업을 통해 양희은은 전작들에서 보여준 음악과는 선명한 차이점을 보여준다. 신중현은 포크의 담백한 질감을 살리면서 환상적인 싸이키델릭한 록을 접목해 60년대 후반부터 경도되어 온 새로운 싸이키델릭 사운드를 선보이며 자신의 존재감을 높였다. 신중현은 양희은에 이어 이듬해인 1973년에 서유석과도 비슷한 성격의 싸이키델릭 포크 앨범을 연속 발표하며 포크와 록의 교류를 통해 음악적 확장을 모색했다. 비록 그 앨범들은 활동금지의 멍에를 쓴 신중현과 운명을 같이했지만 한국 록과 포크를 상징하는 신중현과 양희은이 협업을 통해 새로운 음악적 실험을 시도한 점은 평가할 만하다. 이 앨범의 대표곡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은 통기타를 배울 때 가장 먼저 연주하는 포크송 중 하나로 애용되었다. 가장 기본적인 슬로우 록 리듬에 운지가 쉽고, 간단한 기본코드만으로도 누구나 쉽게 연주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은 수많은 기타 교본에 첫 번째 연습곡으로 수록됐다. 또한 '행복의 나라'도 통기타를 배우면 반드시 연주해보는 곡 중의 하나로 사랑받으며 국민가요화 되는 기반을 마련했다. 그런 점에서 이 앨범은 통기타 연주의 교과서 같은 앨범이라고 할 수 있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은 ‘왜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느냐, 너무 비관적이다’라는 황당한 이유로 한동안 금지곡 목록에 올랐다. 대표곡이 금지곡으로 묶이면서 이 앨범은 전작들처럼 시장에서 한순간에 사라졌다. 그 바람에 양희은 정규 3집은 정식 발매된 1973년 초반과 1975년 재반까지 두 가지 버전이 존재한다. 사실 우둘투둘한 엠보싱 재킷에 오렌지 라벨로 발매된 초반은 실체 구경이 쉽지 않다. 오히려 귀한 앨범으로 소문난 1, 2집 보다 더 개체수가 희박하다. 그 바람에 불법으로 제작된 음반이 끊임없이 시중에 유통되어 많은 카피 음반이 존재한다. 44년 만에 오리지널 정식 초반의 모습으로 복원된 이 앨범의 재발매가 반가운 이유이다.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한국대중가요연구소 대표 oopldh@naver.com


Roughly translated with the help of Google Translate :


"Korean Folk 's godmother' Yang Hee Eun 's debut album is composed mostly of Kim Min Ki' s original songs. Her debut album "Beautiful Song Collection Vol. 1" released in 1971 and her second album “Beautiful Song Collection Vol. 2" released in 1972 are both treated as Korean folk albums. It contains masterpieces such as' Morning Dew ',' White Pig ',' Little Pond ',' Daebanggil ‘.


Released in 1973, Yang Hee-eun's "The 3rd Collection of Fine Songs" was designed from a cover photo taken at the Hanmadang Hanok, located in the former building of the Korea Daily in Chonghak-dong, Jongno-gu, Seoul. This album is the first full-length album by Yang Hee-eun, composed of songs by other creators than Kim Min Ki. Unlike previous works, there is not even one song by Kim Min Ki here. Instead, a large number of contemporary creators are interpreted such as Cho Dong-jin, Han Dae-su, Seo Yu-seok, Shin Jung-hyun.


The 10 songs in the album contain some new songs, songs that have already been released, or mixed versions of cover versions. The popularity of Yang Hee Eun, who tried to stand very much on its own, was confirmed without exception in this album. The title song "Love that can not be done" written by female college student JungShin was already famous song in university and youth before this album was released. Originally this song was first recorded in the 1971 album "The 71st Infantry Hits Collection" which was released a little earlier than the first album of Yang Hee Eun. But the ban on the omnibus album, made Yang Hee-eun record the song again for her third album.


The 'Little Boat' with a song based upon a Go 's poem was a prelude to the appearance of Cho Dong - jin who grew up as a huge Korean folk since the 1980s.


Korean Folk 's famous song "The Land of Happiness" has already been sung by many artists, including Hana Dae-Su, the creator, in numerous performances. In the album, Yang Hee-eun first introduced this song a year earlier, but it was not widely known due to the album ban. "Country of Happiness" has been widely known since it was recorded on this album once more and it has acquired the status of a famous song that is loved over time. In addition, Han Dae-Soo gets recognition as composer other than a singer thanks to this album.


In addition, singer-songwriter Seo, Seok-suk provided the song "Heaven" with a poem by Park Doo-jin, while Kim Kwang-hee, a music student at the Seoul National University, provided "poor heart" and "vacancy" to Yang. These songs are not the new songs that were made for this album, but the cover version that was already released by their own songs. "Sky" was first published in 1972, "The Remembrance of Seo," and "Vacancy" was first published in the 1972 album Omnibus "Mills".

'Fire Tree' was first published in 1972 in the album "Burning Tree", an album of “beautiful people / beautiful songs” produced by college students of Nashville's live clubs and Yang Hee's album "Fire Tree". 'Poor Mind' was also released on the album album following the work of Yang Hee Eun's Shin Jung Hyun released in 1972. Especially, in 1972, 'Fire Tree', which was recorded on the regular 1st album of Ewha female college singer-songwriter, Bong-Kyung, was banned because of the song title. On this album, Yang Hee - eun gave it a new chance and the folk fans of the day were thrilled by it.


Unlike previous works, Yang Hee-eun's big difference that she makes is in relation with the cooperation with Shin Jung-hyun. The two have already collaborated in 1972 to experiment with the first psychedelic folk sound in Korea. Shin Jung-hyun's song 'I secretly sneaked' and 'Gil' were recorded again after that album. Through collaboration with Shin Jung-hyun, Yang Hee-eun shows a clear difference from the music that was shown in her previous works. Shin Jung-hyun has enhanced his sense of presence by introducing a new psychedelic sound that has been used since the late 1960s, combining a fantastic psychedelic rock while utilizing the light texture of the folk style.

In 1973, Shin Jung-hyun cooperated with Yang Hee-eun in 1973 and released a series of psychedelic folrk albums similar to those of Seo, while he sought musical expansion through the exchange of folk and rock. Although the albums were fated to the official ban or prohibition of performance, it is worth noting that Shin Jung-hyun and Yang Hee-eun, who symbolize Korean rock and folk, have tried new musical experiments through collaboration.


This album's main song, "Unattainable Love," was one of the earliest folk songs that one tries to play when learning to sing. It contains easy finger picking combined with the most basic slow rock rhythm, and everyone can easily play with simple basic chords. So, 'Love that can not be done' was recorded as the first exercise in many other music books. In addition, the 'Kingdom of Happiness' was equally loved as one of the other earliest songs to be played when learning to sing, so that it laid the foundations for becoming a national popular song. In this regard, this album is like a learning example of how to play the music for the song.


'Love that can not be achieved’ has been on the ban list for a while due to absurd reasons because it was considered to be too pessimistic'. This LP was bound to be banned as well and the album disappeared immediately on the market just like previous works. As a result, there exist two versions of the 3rd album, Yang Hee Eun, which was officially released in early 1973 and until 1975. In fact, it is not easy to know what happened to it in the early days when the orange label on the embroidered jacket became like sold out. On the contrary to what it seemed, the original LP is more rare than the first and second. As a result, illegally produced CDs are constantly circulated on the market, and many copied records exist. This is the reason for the official re-release of this album, which was restored to its original form for the first time in 44 years.” Written by Popular Culture Critic, Representative of Korean popular song institute oopldh@naver.com


http://askakorean.blogspot.com/2010/04/50-most-influential-k-pop-artists_27.html :

(about the importance of) Yang Hee-Eun, 1971 : "In 15 words or less: Perhaps the greatest female folk rock singer. Maybe she should have been ranked because… See above.She was not ranked because… Much of her success was fueled by Kim Min-Gi who composed her songs. Kim deserves the rank."

https://jnilbo.com/2017/10/25/20171025000000534471545/

1973년 양희은(3집)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 행복의 나라

양희은의 대표음반은 ‘아침이슬’이 실린 71년 음반이다. 하지만 대중적 흥행 면에서 보면 이 3집을 빼놓을 수 없다. 70년초 중, 고, 대학생들이 통기타를 배우기라도 할라치면 가장 먼저 배워야 했고 연습했던 노래가 ‘이루어 질 수없는 사랑’이다. 한대수가 작곡하고 불렀던 ‘행복의 나라’, 여성 싱어송 라이터인 방의경이 작곡한 ‘불나무’ 등이 큰 인기를 얻었다. 자켓 사진을 보면 아직 풋내기 시절의 양희은이다. 옛 종로구 중학동 한국일보 사옥 밑에 위치한 한마당 한옥 대문의 낙서가 빼곡히 써져 있고 그걸 쓴 어린애들은 지금쯤엔 50언저리의 아저씨, 아줌마들이 되었겠다.

양희은 1, 2집이 김민기의 페르소나(분신)로서 양희은이었다면 3집은 다양한 작곡가들의 곡들을 자신 특유의 음색으로 소화해 그녀의 매력을 더해준다. ‘이루어 질 수없는 사랑’은 워낙 유명한 곡이지만 그 외 다른 곡들도 수준급의 노래들이다. 고은의 시를 가사로 쓴 ‘작은 배’, 서유석 곡 ‘하늘’은 후일 정평이 났던 수준급 곡들이다. 한국의 록과 포크로 상징되던 신중현과 양희은이 협업을 통해 새로운 음악적 시도와 실험은 크게 평가할 만하다. ‘이루어 질 수없는 사랑’은 한때 ‘왜 사랑이 이루어 질 수 없느냐, 너무 비관적이다’는 황당한 이유로 한동안 금지곡 명단에 오르기도 했다. 71년 1집, 72년 2집은 한국 포크의 명반으로 대접 받는다. ‘아침이슬’, ‘백구’, ‘작은 연못’, ‘새벽길’, ‘서울로 가는 길’은 시대를 초월한 포크의 명반임이 틀림없다. 제3집에는 ‘이루어 질 수없는 사랑’이 있어 명반 중의 명반으로 꼽는다. 그 외 ‘작은 배’, ‘불나무’, ‘행복의 나라’, ‘하늘’, ‘나도 몰래’, ‘가난한 마음’ 등이 실려 있다.

Yang Hee-eun (3rd Album), 1973

Yang Hee-eun's most representative album is its 71 year album with “Morning Dew”. In terms of public entertainment however, these three LP's are indispensable. In the early 70's, when college students learned to play guitar, they had to learn life first, and the song they practiced was love that cannot be achieved so easily. The "country of happiness," written and sung by Han Dae-soo, and the "firewood," written by Bang Eui-kyung, a female singer-songwriter, gained great popularity. If you look at the jacket picture, she's still in her fledgling days. The graffiti on the gate of Hanmadang Hanok located under the headquarters of Hanhak Ilbo, Junghak-dong, Jongno-gu, was written and the children who wrote it were now 50-year-old uncles and aunts.


Yang Hee-eun's 1st and 2nd albums are Kim Min-gi's persona, while Yang Hee-eun's 3rd album adds her charm by digesting the songs of various composers in her own unique tone. “Love that cannot be made” is a very famous song, but other songs are of high quality. The lyrics of “Goe's Poetry” and Seo Yoo-suk's song “Sky” are the high-quality songs that later became famous. With this collaboration, Shin Ji-hyun and Yang Hee-eun, symbolized by Korean rock and folk, can greatly appreciate the new musical attempts and experiments. “Love that can't be made” was once on the list of banned songs for a while because of the absurd reason why love cannot be made. The first album in '71, and the second album in '72 are treated as the alum of Korean folk. 'Morning dew', 'baekgu', 'small pond', 'dawn's path' and 'route to Seoul' must be the alum of a timeless fork. In the third house, there is a love that cannot be achieved, and it is considered as an alum of alum. Others include 'Small Boat', 'Fire Tree', 'Country of Happiness', 'Heaven', 'Sneaky Me', and 'Poor Mi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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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OGRAPHY:

Parts from https://namu.wiki/w/양희은

Korean singer and broadcaster.

Graduated from Gyeonggi Girls' High School and Sogang University.


Indispensable in the history of Korean folk. It has a strong voice, because the singer can draw the emotions of the listeners quickly. In particular, the ability to express sad feelings in songs has no singer in follow-up of her in Korea.


Born in Seoul in 1952. When she was a teenager, she went to the youth shelter "Blue Frog" run by the YMCA in Seoul. It was Kim Min-gi who had a great influence on Yang's musical life. Yang Hee-eun could not be said to have become without Kim Min-ki.


Although his father was an army colonel, he died at the age of 39, so his family leaned around and walked because of his lack of transportation costs as well as college. Because of this, Song had to sing to live and asked to be on stage.


Song Chang-sik took her to a beer house in Myeong-dong where he was singing, and allowed her to work 10 minutes off his performance. He also asked to visit him at New Year's Day Special Featured by Seibong Consat Yang Hee Eun. Yang Hee-eun asked his boss to pay the bill and she received 40,000 won. At the time, the national university tuition was 7,000 won. The boss was a huge personality. Of course, it would have been bigger to believe Song Chang-sik. Yang Hee-eun is the first person to be recommended by Song Chang-sik. From then on, she began to walk in earnest as a singer. Yang Hee Eun's first full-length album "Yang Hee Eun Fine Song Collection" was released in September 1971. Kim Min Ki's "Morning Dew" and "Senoya Senoya" became the representative songs of Yang Hee Eun.


But when "morning dew" became banned, her songs had to go through the sadness of being banned. Her representative song "Love that can't be made" became a banned song because of the absurd reason why love couldn't be undone, and "Little Pond" became a banned song because of the twisted power struggle between Kim Jong-pil and Hurakak. As many as 30 songs have been banned ... Ironically, she won the Korean Singer Award from the government in 1975. In a gloomy time, she was trying to overcome the dark times with music. This side overlaps with Jung Tae-chun, a contemporary bard poet. "One person", "Follow the way", "Fulfill your dreams", etc., which came out in collaboration with Lee Joo-won in the late 70s, are regarded as gems.


In 1981, she left Korea and traveled back to the United States and Europe for over a year. In the following year, in 1982, she was diagnosed with ovarian cancer and was at the critical stage of her life. He had two cancer surgeries and struggled with her life. Her sister, Yang Hee-kyung, was in a nursing home next to her, and she remembered her sister's struggle. This finally made her unable to have children, but she decided to live positively onwards with her husband and puppies.


In the meantime, Haduk-gyu's "Han Gye-ryeong", was released in 1985, and was praised for his outstanding performance. At the time of the announcement, it was so heavy that the record label gave up public relations, but when it was released in 1990, it was praised. The last part of the series, Wonmi-dong, "Han-Gyeong-Ryung", is named for this song.


After democratization in 1987, Yang's prohibitions were all banned and re-evaluated as outstanding musicians. In 2002, he celebrated his 30th anniversary with a 30th anniversary album and concert. In 2011, he debuted his 40th anniversary and performed his musical "Where Did You Come?" Until mid-August 2011.


The first album and the 20th anniversary album were ranked in the top 100 Korean pop songs as 67th and 91th respectively.


Although she is famous as a folk singer, she also tried psychedelic folk in collaboration with Shin Joong-hyun. The review was good but she was asked if she was too ahead of time. Review As of 2010, this record is a rare record worth KRW 600,000.


She is legendary not only as a singer but also as a radio DJ. As a young woman, she has been a pop music broadcast DJ on CBS and TBC. She returned to CBS in 1992 and proceeded to "Information Age of Yang Hee Eun", and as "She is Yang Hee Eun's friend" at SBS until 1998. Ironically, despite her career, MBC Radio did not recognize the careers of other broadcasters, so he had to win a bronze mouse (more than a decade) at MBC Radio Hall of F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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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희은 고운노래모음 2집 - 그사이-백구 (180g) (500장 한정반) 예전미디어

Yang Hee Eun Fine Song Collection Vol. 2-Gsai-baekgu (180g) (500 Limited Edition) Yea Media

SIDE 1 1. 그 사이 / Meanwhile 2. 인형 / Doll 3. 서울로 가는길 / Road to Seoul 4. 저 부는 바람 / This Blowing wind 5. 작은 연못 / Small pond

SIDE 2 1. 백구 / White bal 2. 새벽길 / Dawn 3. 등대지기 / Lighthouse Keeper 4. 아름다운 것들 / Beautiful things 5. 아무도 아무데도 / Nobody anywhere

not reissued y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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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YRICS BACKGROUNDS:

http://blog.daum.net/...


"세노야"가 무슨 뜻을 지닌 말인지 혹시 아세요?

자료에 의하면 동해안에서 그물을 끌어 올리면서 부르는 소리 가운데 어원을 알 수 없는 "쎄누야 쎄누야"라는 말이 "세노야"로 둔갑하여 시와 대중 가요로 불리게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네요.

혹은 일제시대 일본 뱃사람들이 부르던 일본 노동요의 잔재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魚謠나 童謠가 일제의 영향을 많이 받은지라 그 가능성은 상당히 높은 것 같습니다.

내친김에 좀더 알아보면 양희은의 "세노야 세노야"는 전북 옥구군 미면(米面)(지금의 군산시 미룡동)에서 태어나 자란 고은 시인이 지은 시에 곡을 붙인 노래입니다.고은 시인의 이 시는 옥구 앞바다에서 뱃사람들이 멸치잡이를 할 때 부르는 흥겨운 앞소리 ‘세노야’를 소재 삼아 지은 것이라 합니다.

그리고 "사평역에서"로 유명한 곽재구 시인도 "서울 세노야"라는 시를 지었습니다.

감상을 겸해 두 시의 전문을 올려드립니다.

세노야 세노야

고은 작사/김광희 작곡/양희은 노래

세노야 세노야

산과 바다에 우리가 살고

산과 바다에 우리가 가네

세노야 세노야

기쁜 일이면 저 산에 주고

슬픈 일이면 님에게 주네

세노야 세노야

기쁜 일이면 바다에 주고

슬픈 일이면 내가 받네


Roughly translated:


Do you know what "senoya" means?


According to the data, the words "Senuya Senuya", whose origin is unknown while pulling up the net from the east coast, what is called "Senoya" are poetry and popular songs. There is a story that Japanese laborers called it a remnant of Japanese labor. It seems that the chances are very high because the monks were influenced by Japanese imperialism.


To learn more about it, Yang Hee-eun's "Senoya Senoya" is a song written by a poet who was born and raised in Mi-myeon-dong, Okgu-gun, Jeollabuk-do, Korea. It is said that it is based on the exciting sound `` Senoya '' that they call when they are anchovy.


The poet Kwak Jae-gu, famous for "From Siping Station", also wrote a poem called "Seoul Senoya."

Goeun Lyrics / Kim Kwang Hee Composition / Yang Hee Eun Song

Senoya Senoya

We live in mountains and sea

We go to the mountains and the sea

Senoya Senoya

If you're happy, give it to that mountain.

If it's sad, I give it to you.

Senoya Senoya

If you're happy, give it to the sea.

If it's sad, I get it

1910년 한일합방 후 일본 사람들이 우리나라 어업을 장악하여 현대화 하고 일본 방식으로 고기를 잡았기 때문에 魚謠 중에는 대부분 일본 소리가 많이 남아 있지만 "그물질 소리"는 우리 소리로 비교적 잘 남아 보존되고 있는 노동요입니다. 저녁에 바다에 나가 그물을 쳐 두었다가 다음날 새벽에 나가 그물을 걷어 올린다.그물을 걷어 올리는데 힘이 들었다. 오동추야 달 밝은 새벽에 그물을 걷어 올리는 어부는 파도에 흔들리면서 고적함을 달랜다.어촌의 온 마을은 달빛 속에 잠들고 평화스럽게만 보인다.집에는 어린 자식들과 부인이 곤히 잠을 자고 있다.

그 잠이 깰까 싶어 단잠에서 일어나 바다로 나온 어부의 마음은 고기가 많이 잡혀 만선으로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소원이다.

당시는 잦은 흉년에 굶다시피하고 살 때 였다.이른 새벽 허기진 배를 움켜잡고 노래를 부르면서 힘을 내고 배고픔을 잊었던 시절.그래서 민간인 사이에 한의 정서가 담긴 민요들이 유행했을 것이며, 그 한의 정서와 함께 "새노야"란 어원을 알 수 없는 말까지 오늘날에 이어지는 듯 싶다.

After the Japanese-Japan alliance in 1910, Japanese people took control of the country's fishery and modernized it and they started to catch in the Japanese way. They go out to sea in the evening and leave the net, and the next day they go out and pick the net up. It was hard to roll up the net. Odongchuya A fisherman who pulls up the net at the bright dawn of the moon shakes the waves and heals him. The whole village of the fishing village falls asleep in the moonlight and looks peaceful. At home, young children and wives are sleeping hard. The fisherman's heart, which wakes up from the sleep and comes out to sea, wants to wake up.


At that time, they was starving at frequent famine.Early dawn, when he grabbed a hungry belly and sang, cheering and forgetting hunger. Thus, folk songs containing Han's sentiment would have been popular among civilians, and it seems to continue to this day until the word “Saenoya” with the Han's sentiment is unkn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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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CLUSION:


I haven't checked all the works of this singer yet but I am convinced she's ao,gst the artists Western collectors should look after as well. We have the singer/songwriter and singer with guitar and voice who delivers honest and somewhat sad expressions. These are definitely already worth tracing. Secondly we have the cooperations with Shin Yung Hyun, which of course no longer need an introduction, it is the psychedelic area that is combined with her approach and voice which of course are also worth trac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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