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일로 - Yun Il-Ro


You can find tracks here:


Two tracks can be found on the CD V.A. "Asian Takeaways" on Normal Rec., Q.D.K. Media ‎– CD 038 2001, mentioned as coming from Yoon Il-Loh:


* 2 기타부기 / Guitar Boogie (1959)

* 14 "A Moody person's life"

One of my first acquaintance with the artist was through this Asian restaurant music compilation, from which for me at least one of both Yun Il Ro’s track stood out very much. It is also because of its wrong accent of “boogie” for the word play of “guitabugi” which is great entertainment with its different rhythm a boogie is most logically not supposed to have, which makes it in fact somewhat funny. The track is first led by electric picking guitar, bass and handclaps, as it can be done with boogie. Its lyrics play comically with the mood from the start. Other instruments added to the singing were accordion and piano. It was one of these track which shifted my attention and interest further to the past, and it didn’t stop there. The second track is a well arranged mambo. Also here the singer is well-articulated to make the best entertainment. The arrangements are rooted in the 50s but with while having the core of fun of the 60s, I guess it must be from early 60s.


Tracks with * I consider essential listens, suitable also for western radio shows. This doesn't mean the other tracks are not or cannot be enjoyable.



유성기로 듣던 가요사 두번째(1945~1960)

The second generation singers in the meteor group (1945 ~ 1960)

CD1 16 황금(黃金)의 사랑 / Golden Port of Love

(with 유성진 / Sungjin Yoo)

The first track is acoustic picking guitar based trot with song and spoken word. I assume it is sung by Sungjin Yoo and with spoken word by Yun Il-Ro. Other instruments are clarinet and accordion. It is not outstanding for its genre. ​

CD8 14 추억의 영도(影島)다리 / Youngdo Bridge of Memories

CD8 15 죄(罪) 많은 과거사(過去事) / Sinful past

CD8 16 사나이 순정(純情) / pure man

* CD8 17 서울의 밤거리 / Seoul night street (1959)

* CD8 18 잊지 못할 그대 / You will never forget (1960)

“Bridge of Memories” is another mainstream old trot acoustic guitar/accordion song. Also “Sinflul past”, well sung, is another trot track, led by accordion, enriched with several other filling up arrangements. “Pure Man” is slower and more sad is the third trot song led by accordion, strings, resinating vibes and other instruments.

"Seoul Night Street" is the first differently styled track, in mambo-style (-if I sense this right), which is in fact a great progress from the past to something more vivid. “You will never forget” is more tango-like like with moody improvised horn solos. Both tracks feel much more like the right thing at the right moment.

CD10 14 청춘 아베크 / Youth Abeck (?)

(with 차은희 / Eunhee Cha)

This light song a kind of Sunday morning post-trot "tango", with female harmony singers responding (mentioning "Sunday" too), sounding like a happy film song. The tune is led by accordion and a rhythm accompaniment. The song is like a step from one world (the trot one) into the next, with a lighthearted mood...

가요(歌謠) 박물관 / Music Museum Best 220

CD1 6 연분홍 로맨스 / Pink Romance (1958)

CD1 9 항구의 사랑 / Golden Port of Love (1959)

CD1 15 기타부기 / Bookkeeping ?? ("gitabugi") (1959)

Pink Romance” has the right elements of a "tango" and the being a song of romance.


“Port of Love” is once more in Trot-style, with still convincing somewhat vibrating vocals. Accordion and electric picking guitar lead the melody. We know the track already from an earlier compilation. And then we also have the “guitarboogie” track on this release. The dynamics of the sound on the Asian Takaway release I think has slightly improved the sound of it.

* CD2 기분파 인생 / Mood wave life (1962) -chachacha-

CD2 13 도라오라 / Dora comes (1960)

CD2 15 집 없는 아이 / Homeless children (1956)

“Mood Wave Life” is another example of one of these many bright moments of early Korean chachacha songs. “Dora Comes” I think is a tango in which the singing melody nicely has rhythms of its own, a characteristics which were always strongest at Yun Il-Ro’s tracks. “Homeless Children” is an older mainstream trot track, led by accordion and acoustic guitar. It has child’s spoken word to it. Such tracks are nice of course but in a way hang more somewhat sadly in a nostalgic past, with still a bit less chance of the feeling for more hopeful exceptional expression within its genre.

Domido Best Collection 100 Vol. 1

* CD4-2 내가 울던 파리 / Paris I cried (1960)

CD4-6 내품에 돌아오라 / Coming home / My home letter

“Paris I cried” clearly is another tango-styled song, a nice one too. And also “Coming Home” swings with light footsteps as floric and gay as ever.

Domido Best Collection 100 Vol. 2

[Yun-Il-O] :

CD1-12 마도로스 부르스 / Madorus Blues

* CD2-11 헤이차차차 / High chachacha (1959)

“Madorus Blues” is based upon old trot but it seems to direct its mood directing towards the mood swings of that of a tango, which improves its power and its inner potential including certain open aspects for improvised accents (with sax for instance). Of course, “Hey, Chachacha” is another winner. It has nice slightly freed flute arrangements in it too besides the leads in singing, rhythm and melo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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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OGRAPHIES:


http://www.newsmaker.or.kr/news/articleView.html?idxno=42594

[박성서 평론] 영원한 로맨스 그레이, ‘기타 부기’‘월남의 달밤’의 가수 윤일로 Story[1]

경쾌한 리듬으로 우울한 전후시대를 밝게 만들다

2017년 04월 06일 (목) 23:40:03박성서 webmaster@newsmaker.or.kr

윤일로씨는 음악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갖춘 스타 가수다. 50, 60년대 거리마다 골목마다 울려 퍼지던 ’기타부기’와 ‘월남의 달밤’의 주인공인 동시에 ‘내가 울던 파리’, ‘재즈붐’, ‘청춘 아베크’, ‘남국의 룸바’, ‘심야의 탱고’ 같은 모던한 분위기를 구사하는 로맨티스트였다. SP시대에 창작 캐럴 ‘성종이 울리는 밤’도 발표했다.

'일로(一路)'라는 이름은 '오로지 한 길로만 가라'는 뜻으로 지은 이름. 하지만 한 길로만 가기에는 재주가 너무 많았다. 직접 작사, 작곡은 물론 MC, 그리고 코미디언 보다 더 놀라울 정도의 성대모사까지 구사하는 만능 엔터테이너였다.

64년 전성기 시절, 대한뉴스 화면을 통해 소개된 선배가수 현인과 함께 부르는 ‘신라의 달밤’ 영상이 화제가 되면서 당시에 회자되던 유행어가 ‘몸은 현인, 마음은 윤일로’였다. 강아지 성대모사까지 똑 같이 구사하는 노래 ‘강아지 부기’는 또 어땠는가.

부기우기, 룸바, 탱고, 왈츠 등 유행을 리드했고 다양한 장르를 소화해냈던 만능 엔터테이너 윤일로씨의 특별함은 오늘날 우리 연예계를 풍성하게 다지는 밑거름이 되었다. 현재도 중요한 날, 의미 있는 날에는 어김없이 카톡 메시지로 안부를 주고받는 멋쟁이다. 물론 부인이 대신 보내지만 말이다. 현재 매니저 겸 비서 역할을 맡고 있다는 부인 박수전 여사(본명 박순자, 78세)도 60년대에 ‘사랑의 물새 한 쌍’, ‘희망의 청춘’ 등을 발표한 가수라는 사실을 아는 이가 많지 않다. 76세에 노익장을 과시하며 발표한 신곡 ‘돈돈’이 그렇듯 언제 어디서나 우리를 즐겁게 했던 원로가수 윤일로씨의 삶과 사랑, 그리고 지금 살아가는 이야기, 첫 번째.

글 I 박성서(음악평론가, 저널리스트)

전후 복구시대에 등장한 ‘기타부기’, 세상을 밝게 만들다

1950년대 후반, 전쟁의 상흔으로부터 점차 벗어나기 시작할 무렵 ‘기타 부기’가 발표된다. 이 경쾌한 리듬의 멜로디는 전후사회의 우울한 분위기를 밝게 전환시킴과 동시에 삶에 지친 이들을 즐겁게 해주기에 충분했다.

1. 인생이란 무엇인지 청춘은 즐거워/피었다가 시들으면 다시 못 올 내 청춘/마시고 또 마시어 취하고 또 취해서/이 밤이 새기 전에 춤을 춥시다/부기부기/부기우기 부기부기 부기우기 기타부기. 2. 인생이란 무엇인지 청춘은 즐거워/한 번 가면 다시 못 올 허무한 내 청춘/마시고 또 마시어 취하고 또 취해서/이 밤이 다 새도록 춤을 춥시다/부기부기/부기우기 부기부기 부기우기 기타부기. -기타부기/이재현 작사, 작곡, 윤일로 노래, 1959년.

미군들이 귀국할 때 음반을 사갔을 정도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는 일화로도 유명한 이 노래는 우리나라에 부기우기 열풍을 몰고 온 진원지였다. 이 ‘부기우기 열풍’의 주인공 윤일로씨는 ‘기타부기’ 외에도 ‘그라스 부기(천지엽 작사, 서영은 작곡)’, ‘사랑의 부기(반야월, 송운선)’, ‘강아지 부기(윤일로, 윤일로)’, ‘즐거운 부기 사랑(송운선)’ 등을 발표, 부기우기 붐을 주도했다.

‘이 밤을 그대와’라는 기획 음반에서 보듯 그는 트위스트, 룸바, 탱고, 도돔바, 스케이팅 왈츠 등 다양한 장르의 노래와 춤을 완벽히 소화하는 멋쟁이 가수로 특히 극장무대에서 인기 절정이었다.

1950년대 후반은 무엇보다 노래와 춤, 그리고 위안이 필요한 시절이었다. 전후 궁핍한 시대에 등장, 삶에 힘겨워하는 지친 국민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달래주었다.

중학교 때부터 매일 인천 바닷가에 나가 목에서 피나도록 연습

본명 윤승경(尹昇京), 1935년 평양 태생으로 어느덧 82세다. 윤일로라는 예명은 데뷔 초 킹스타레코드사 전속가수 시절, 작곡가 나화랑 선생과 가수 백년설씨가 지어준 이름이다. ‘오로지 가수 한길로만 가라’는 의미다. 어려서부터 숟가락을 들고 남들 앞에서 노래하기를 좋아했던 그는 대여섯 살 때부터 남인수의 ‘서귀포 칠십 리’, ‘인생선’ 등을 불러 동네 어른들로부터 ‘신동’소리를 들었다.

해방 이듬해인 46년 3월, 11살 때 서울로 온 뒤 인천으로 옮겨 초등학교 3학년으로 편입한다. 이때부터 해군에서 제대할 때까지 무려 14년 동안 축구공을 놓지 않았을 정도로 축구광이기도 하다. 해군에 입대해서도 별도로 축구팀을 직접 만들 정도였다. 몸놀림이 빨라 공격과 백, 중계 플레이를 맡는 라이트 이너(Right inner) 포지션을 주로 맡았다. 송도고 1학년 때는 전국대회 우승도 여러 차례 했고 축구로 인해 고등학교를 네 군데나 옮겨 다녔다.

어릴 때부터 노래를 좋아했던 그는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가수로써의 꿈도 키웠다. 숭의동 집에서 낙섬 바닷가까지, 삼십 리 거리를 매일 새벽 4, 5시면 일어나 뛰어갔다. ‘노래를 제대로 하려면 목에서 피가 나야 한다.’라는 당시의 속설로 인해 바닷가에 나가 죽기 살기로 소리를 질렀다. 이런 훈련은 5~6년 간 계속되었다. 날계란 먹는 것도 빼놓지 않았다. 물론 효과에 대해서는 반신반의했지만... 그 때문인지 이후 콩쿠르에 나가면 어김없이 상을 휩쓸었다. 고1 때 인천에서 열린 콩쿠르에 첫 출전해 ‘비 나리는 고모령’을 불러 1등을 차지한 이후 스무 살, 해군에서 제대할 때까지 무려 20여 차례 콩쿠르 무대에서 우승하는 저력을 보이기도 했다. 에피소드 또한 많다. 영등포에서 열렸던 콩쿠르에서는 화장실에 있을 때 하필 수상자를 호명하는 바람에 바지지퍼를 미처 올리지 못한 채 시상대에 올라 객석을 웃음바다로 만들기도 했다.

음폭이 넓은 만큼 주로 따라 부르기 어려운 곡 위주로 취입

▲ 전성기 시절 ‘무랑루즈’ 무대에서의 윤일로

그가 본격적으로 음악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해군 27기생으로 입대, 해군 군악대에 들어가면서 부터다. 이때 그는 클라리넷을 불었다.

진해에서 해군 복무 중에도 부산에서 열린 콩쿠르에 참가해 심사위원이었던 작곡가 백영호 선생과 교류를 갖게 되었고 서울 해군본부로 근무지를 옮긴 뒤에도 계속 콩쿠르에 참가, 이때 작곡가 손석우 선생, 나화랑 선생과 만나게 된다.

‘제대 후 가수가 되려면 찾아오라’는 권유와 함께 명함을 받은 뒤 1955년 제대 후 나화랑 선생를 찾아갔다. 그는 이때를 ‘인생의 갈림길’이라고 표현했다. 만일 손석우 선생을 찾아갔더라면 가수 인생이 또 어떻게 바뀌었을까, 싶어서다. 그는 결국 나화랑 선생에게 테스트 후 발탁, 킹스타 레코드 전속가수가 된다. 레코드사가 많지 않았던 때였던 만큼 음반사 전속가수가 된다는 것은 ‘스타 보증수표’나 다름없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나화랑 선생으로부터 고음과 저음, 높낮이가 풍부하다는 평을 받은 윤일로씨는 음폭이 넓은 만큼 주로 어려운 곡을 받았다고 회고한다. ‘너 없는 세상이란(강사랑 작사, 나화랑 작곡)’, ‘그림자 한 쌍(반야월, 나화랑)’ 등을 취입했으나 악상이 어려워 대중적으로 히트를 하지 못했다는 것. 반면 얼마 뒤 대구에서 올라온 도미(본명 오종수)씨의 경우 상대적으로 따라 부르기 쉬운 노래들인 ‘청포도 사랑’, ‘비의 탱고’ 같은 노래를 불러 크게 히트했다고 회고했다.

SP 시대의 명곡‘항구의 사랑’, 부산을 노래하다

그로부터 2년 반 뒤 신신레코드사(이후 신세기레코드사로 이름이 바뀜) 전속가수로 옮긴 뒤 작곡가 이재현, 김부해 선생 등을 만나 비로소 ‘기타 부기’, ‘항구의 사랑’, ‘추억의 영도다리’ 등을 발표하며 스타의 반열에 오른다.

그가 신세기에서 처음 발표한 노래들은 ‘남국의 룸바(윤일로, 김부해, 1958년)’, ‘연분홍 로맨스(양류상, 벽호)’를 비롯해 ‘청춘 아베크(이철수, 이재현)’, ‘재즈봄(이재현, 이재현)’, ‘돌아오라(이재현, 이재현)’ 등등이다. 모던하면서도 로맨틱한 멋이 물씬 풍기는 이 노래들이 SP시대에 발표된 명곡들이다. ‘기분파 인생(강남풍, 김부해)’, ‘내가 울던 파리(차경철, 하기송)’, ‘순정의 탱고(차경철, 한복남)’, ‘인디안 로맨스(이철수, 김성근)’ 등도 모두 이무렵 축음기 음반으로 발매되었다. 당시는 녹음실 여건이 매우 좋지 않을 때였다. 녹음 장비도 열악했지만 방음시설 조차 제대로 되어있지 않아 창문을 미군 담요나 가마니로 가리고 녹음해야 했다. 때문에 엿장수라도 지나갈라 치면 녹음을 중단했다가 가위소리가 멀어지고 나서야 다시 녹음해야 했을 정도로 열악한 환경이었다고 회고한다.

당시 대중가요도 전쟁의 상흔으로부터 점차 벗어나면서 본격적인 사랑노래로 눈 돌리기 시작했다. 이때 크게 히트한 곡이 ‘항구의 사랑’이다. 1959년에 발표된 이 노래는 안정애의 ‘대전블루스’와 함께 음반 앞뒷면에 함께 실려 발표됐다.

1. 둘이서 걸어가던 남포동의 밤거리/지금은 떠나야 할 슬픔의 이 한 밤/울어 봐도 소용없고 붙잡아도 살지 못할 항구의 사랑/영희야 잘 있거라 영희야 잘 있거라. (대사)영희야 울지 마라 응? 울어 봐도 소용없고 붙잡은들 무엇 하니? 어차피 떠나가는 마도로스가 아니냐. 응? 영희야 잘 있어. 2. 네온 불 반짝이는 부산극장 간판에/옛 꿈이 아롱대는 흘러간 로맨스/그리워도 소용없고 정들어도 살지 못할 항구의 사랑/영희야 잘 있거라 영희야 잘 있거라. -항구의 사랑/최치수 작사, 김부해 작곡, 윤일로 노래. 1959년.

이 노래는 부산항에 잠시 머문 마도로스와 부산아가씨의 짧은 사랑을 그린 노래다. 노래 속에 나타나 있는 남포동 거리, 부산극장 등이 사랑의 배경이 되어준 장소다. 당시 젊은 아베크족들의 최고의 데이트코스였던 부산극장, 그리고 남포동 거리는 최근 부산국제영화제와 함께 다시금 전국 젊은이들의 데이트 장소로 되살아난 곳이기도 하다.

‘추억의 영도다리’그리고 ‘제3의 고향 부산’...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에서 바다와 항구에 관한 노래는 대중들로부터 꾸준히 사랑을 받아왔다. 특히 만남과 이별의 장소인 부산항과 더불어 마도로스(항해사) 관련 소재는 50, 60년대 대중가요에 자주 등장했던 주요 테마였다. 입에 문 파이프 담배, 멋진 마도로스 모자는 남성적인 매력이 한껏 돋보였다. 이러한 마도로스 관련 노래 중 하나가 ‘항구의 사랑’이다.

또한 ‘추억의 영도다리’를 비롯해 본인이 직접 만든 노래 ‘멋쟁이 마도로스’, ‘내 사랑 희야’가 그렇듯 그는 부산 관련 노래들을 유독 많이 발표했다. ‘청춘 12열차(한산도, 백영호)’, ‘메리켕(아메리카라는 뜻) 부두(월견초, 김부해)’, ‘잘 있거라 제3부두(천봉, 허경구)’, ‘야속한 부산열차(반야월, 김병수)’ 등등. 스스로 부산을 ‘제3의 고향’이라 여기듯 실제로 그는 80년대에 직접 부산으로 이사, 당시 부산에서 녹화했던 ‘장수무대’ 같은 TV프로그램의 MC를 맡아 진행하기도 했다.

작사, 작곡, 진행까지 네 박자를 모두 갖춘 엔터테이너

▲ 전성기 시절의 윤일로

가수로서 ‘기타부기’, ‘항구의 사랑’ 같은 많은 히트곡을 남겼지만 그는 작곡에서도 뛰어난 실력을 발휘한다. 정식으로 음악 공부를 하지는 않았지만 해군 군악대 시절, 배운 실력을 바탕으로 직접 싱어송라이터로 활동을 시작한다. 특히 제대할 때 행진곡을 하나씩 만들어 제출해야 하는 엄한 제도가 그에게 작곡에 눈 뜨게 해준 계기가 되었다.

첫 작곡은 ‘화류 일야’와 ‘파리의 마돈나’, 1962년도에 발표되었다. 계속 해서 ‘눈물의 키스’, ‘그대 없는 일요일’, ‘비 젖은 골목길’ 같은 노래를 발표한 데 이어 후배가수 남진씨에게 ‘타향에서 뼈를 묻으리’와 전국노래자랑의 MC 송해씨에게 ‘노총각 맘보’ 등을 만들어주어 취입시켰다. ‘싱어송라이터 윤일로’에 관한 부분은 다음 호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다룰 예정이다.

전쟁고아의 아픔을 그린 ‘집 없는 아이’

1961년에 발표한 ‘집 없는 아이(최치수, 김성근)’ 또한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린 노래다. 당시 수많은 전쟁고아들과 마찬가지로 혼혈아 문제 역시 전쟁이 남긴 비극이었다.

1. 하늘에서 떨어졌나 땅 속에서 솟았나요/날 버리고 가실 때는 부모님도 울었으리/나는 이제 울지않아/다방에서 다방으로/담배장사 하더라도 눈물 닦고 살리다. (대사) 아저씨 담배사세요, 그럼 만년필 하나 사세요. 싫어 싫어 오늘은 꼭 사야 해, 맨날 거짓말만 하는 걸 뭐. 2, 눈물 나고 사람 났나 사람 나고 눈물 났나/나를 두고 돌아설 때 하늘땅도 울었으리/나는 이제 죽지 않아 피를 팔아 고학을 해도/모진 세파 싸우면서 눈물 닦고 살리다. -집 없는 아이/최치수 작사, 김성근 작곡, 윤일로 노래. 1961년.

때를 같이 해 ‘생일 없는 소년(최치수 작사, 김성근 작곡, 김용만 노래)’이 등장했고 ‘집 없는 천사’라는 제목의 영화도 개봉되었다. 혼혈아 문제를 정면으로 ‘엄마 나만 왜 검어요’라는 소설이 많은 국민들을 울렸고 기지촌을 살아가는 혼혈아 에니박의 실화가 소설로 출간, 영화화되며 주제가 ‘내 별은 어느 하늘에’가 사회문제로 부각되었다. ‘거리에 핀 꽃(이재현 작사 작곡, 윤일로 노래)’이 발표된 것도 이 무렵이다. 미군이 들어오고 ‘헬로, 오케이’ 같은 영어 단어가 국민들 입에 오르내렸다. ‘기브 미 초콜레트’가 어린이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어린 구두닦이 소년들은 구두통을 들고 다니며 ‘슈샤인!’을 외쳤다. 담배 장사하는 아이, 신문팔이라 불리던 소년들도 쉽게 볼 수 있었을 만큼 전쟁고아들이 거리에 넘쳐 났다. 당시 공연 전단지 아래에 적혀 있던 ‘내 자식 귀엽거든 전쟁고아 사랑하자’는 글귀만큼이나 전쟁의 후유증이 컸던 시절이었다.

대한뉴스와 함께 등장한 유행어, ‘몸은 현인, 마음은 윤일로...’

윤일로씨의 놀라운 모창 실력을 실감케 했던 영상 중 하나가 1964년 2월, 대한뉴스 456호에 소개된 ‘노래의 선물’이다. 바로 소개된 선배가수 현인과 함께 부르는 ‘신라의 달밤’ 영상이다. 1절은 현인이, 2절은 윤일로가 부르는데 특히 윤일로씨가 과장된 모습으로 눈을 치켜뜨며 현인의 제스처와 목소리를 흉내 내는 모습에 관객들은 배꼽을 잡았다. 웬만한 전화번호는 모조리 외우는 탓에 전화번호 수첩을 가지고 다닐 필요가 없다는 소문난 기억력과 예리한 눈썰미가 빚어낸 명장면이었다. 이 영상이 화제가 되면서 나온 유행어가 바로 ‘몸은 현인, 마음은 윤일로...’였다. 이 유행어는 시대에 따라 계속 이름이 바뀌며 회자되었다. 여전히 멋진 중절모 차림의 모습에서 새삼 현인의 풍모와 오버랩된다. 한때 ‘몸은 현인, 마음은 윤일로...’에서 이제는 ‘몸은 윤일로, 마음은 현인...’인 듯 외모까지 닮아가는 모습이 한편, 신기하다.

60년대 중반, 박수전 여사와의 결혼과 더불어 윤일로씨는 거침없는 질주를 계속한다. 바로 ‘월남의 달밤(반야월, 김성근)’이 발표된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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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ial translation, with some mistakes still in it. [Article by Park Sung-seo]


Eternal Romance Gray, Yun Il-ro, Singer of Guitar Guitar Boogie. Light rhythms brightens the gloomy post-war era. April 06, 2017


Yoon Il-ro is a star singer with both musicality and popularity. In the 50s and 60s, there had been a Jazz boom, with an influence of Southern Rumba, It was a romantic atmosphere that introduced Tango.


The name 'Ilo' means 'to o only one way'. There was too much talent to go one way. He was an all-round entertainer who wrote his own compositions and compositions, as well as more amazing vocal simulations than comedians.


During the heyday of 64 years, 'Silla's Moonlight', which was introduced with senior singer Hyun-hyun introduced on the Korean news screen, became a hot topic. Who sang the song ‘Doggy Boogie’, which also used the same voice as the dog?


The uniqueness of all-time entertainer Yoon Illo, who led the trends such as boogie-woogie, rumba, tango, and waltz, and handled out various genres, became the foundation for enriching our entertainment world today.


Ms. Park Soo-jeon (78-year-old Park Soon-ja, 78), who is currently a manager and secretary, is also a singer who announced “a pair of waterfowl of love” and “youth of hope.”

Like the new song “Don Don”, which was presented at the age of 76, about the life and love of senior singer Yoon Il-Ro, who was entertaining us anytime and anywhere, and the story of living now.


Written by Park Sung-seo (Music Critic, Journalist)


'Guitar Boogei' Appears in the Post-War Recovery Era


In the late 1950s, “the other boogie” was announced as it gradually began to emerge from the scars of war. This cheerful rhythm melody was enough to brighten the gloomy mood of postwar society and to entertain the weary times of life.


1. What is life? Youth is fun / You can't come back when you are withered. You can't come back again. You can drink and drink and drink and get drunk again.

2. What is life? Youth is fun / I can't go back once. My youth is empty. Drink, drink, get drunk, get drunk / drunk all night long./ Boogie boogie / Boogie boogie Boogie boogie boogie.


-Other boogie / Lee Jae Hyun lyrics, composition, Yoon Il-ro songs, 1959.


The song, which is famous for anecdotes that caused the sensation that Americans bought records when they returned home, was the epicenter of the boogie boom in Korea. Yoon Il-ro, the hero of this boogie-woogie craze, is not only known for ``other boogie'' but also for ` grass boogie" (written by Cheon Ji-yeop, Seoyoung is composed) '"boogie by love" (Banyawol, Song Woon-sun) '' and ``dog boogie'' and 'Happy Boogie Love" (Song Woon Sun)' that led the boogie boom.


As you can see in the project 'This Night With You', he is a celebrity singer who perfectly performs songs and dances of various genres such as twist, rumba, tango, dodomba, and skating waltz.


The second half of the 1950s was a time of singing, dancing and solace. Appeared in post-war poverty, he comforted and healed the tired people who were struggling with life.


His real name was Yun Seung-kyung, born in Pyongyang in 1935, now 82 years old. Yoon Il-ro is the name given by the composer Na Hwarang and singer Baek Yeon-seol during the debut of King Star Records. It means ``go only one (direction) singer'' Ever since he was a child, he loved to sing in front of others since he was five or six years old.


In March 46, the next year of liberation, he moved to Seoul when he was 11 years old and moved to Incheon to transfer to third grade. From this time on, until the Navy was discharged, he was a football fan who hadn't released a soccer ball for 14 years. After joining the Navy, he also made his own football team. Due to his fast pace, he was mainly in the right inner position for attack, back and relay play. In his first year at Songdo High School, he won several national championships and moved to four high schools for football.


He enjoyed singing since he was a kid, and since he entered middle school, he also dreamed of becoming a singer. From Soongui-dong's house to Nakseom's beach, I went up and ran around Samsimni every day at 4 or 5 am.


The voice said, 'In order to sing properly, blood must be bleeding from the neck.' This training lasted five to six years. I didn't miss eating raw eggs. Of course, it had its effect ... he went to the competition afterwards and swept the prize.


At the first stage of the competition, he made his first appearance at the competition held in Incheon, where he won the first prize by calling 'Ra Nari Gomoryeong', and showed 20 years of winning the competition stage until he was 20 years old and discharged from the Navy. There are also many episodes. At the competition held in Yeongdeungpo, when he was in the bathroom, he was called to be the winner.


He became involved with music in earnest when he joined the Navy 27th parade and entered the Navy military band. At this time he played the clarinet.


During the navy service in Jinhae, she participated in the competition held in Busan and exchanged with the composer Baek Young-ho, who was a jury.


After receiving the business card with the invitation, 'Come to be a singer after being discharged'. He went to Nawarang teacher after being discharged in 1955. He referred to this as 'the crossroads of life'. After having visited Mr. Son Seok-woo, he had loved to see how the life of the singer changed again.


He eventually became a Nawarang teacher and a Kingstar record singer. As there weren't many record companies, becoming a record label singer was a star guarantee check.


However, Yun Il-ro, who was praised by Nawarang for his high, low, and high pitches, recalls that he received a difficult song mainly because of the wide range. "The world without you" (written by Gangsarang, composed by Nahwarang), and "a pair of shadows" (Banyawal, Nahwarang) were used, but the music was difficult, and they were not popular. On the other hand, Domi (real name Oh Jong-soo), who came up from Daegu, recalled that he was a big hit by singing songs such as “Love of Cheongpodo” and “Tango of Rain” that are relatively easy to sing.


Two and a half years later, he moved to Shinshin Records Corporation (later renamed as New Century Records) and met with composers Lee Jae-hyun and Kim Bo-hae, and finally `` Other Bookkeeping, '' `` Love of the Port, '' and `` The Bridge of Memories. '' which announces him to climb to the star rank.


His first songs in the new century include 'Rumba of Southern Countries (Yun-Ilo Kim, Bu-Hae, 1958)', 'Pink Pink Romance (Yang-Yu Sang-Woo)', 'Youth Ave (Lee Cheol-soo, Lee Jae-Hyun)', 'Jazz Spring ( Lee Jae-hyun, Lee Jae-hyun) ',' Come back (Lee Jae-hyun, Lee Jae-hyun) 'and so on. These songs, which are modern and romantic, have been released in the SP era. At the same time, 'the life of the sect (Gangnam Pung, Kim Bu-Hae)', 'Paris I Wept (Cha Kyung-cheol, Hagisong)', 'Pure Tango (Cha Kyung-cheol, Hanboknam)', and 'Indian Romance (Lee Cheol-soo, Kim Seong-geun) were released as a gramophone record.


At the time, the conditions were not very good. The recording equipment was poor, but even the soundproofing was not properly installed, so I one had to cover the windows with US military blankets or bales. Because of this, if he goes past the jangchijang, he stops recording and recalls that the environment was so bad that he had to record it again after the sound of scissors went away.


At that time, popular songs gradually turned away from the scars of war and began to turn to full-fledged love songs. The big hit at this time is the love of port. The song, which was released in 1959, was released along with Ahn Jung-ae's “Daejeon Blues” on the front and back of the album.


1. The night streets of Nampo-dong, where they were walking, / This night of sorrows to leave now, / The love of the port that can't live even if we cry.

Ambassador: Don't cry. It's no use crying, but what do you hold onto? Isn't Madoros leaving anyway? Huh? Young-hee, I'm fine.

2. Neon lights on the shimmering Busan Theater signboard / The old dreams of romance / Longing no avail, no love at the port / Young-hee


-Port of love / best choreographer, Kim Buhae composition, Yunilro song. 1959.


This song portrays the short love of Maduros and Busan's lady who stayed in Busan Port for a while. Nampo-dong Street, Busan Theater, etc., shown in the song are the backgrounds of love. Busan Theater and Nampo-dong Street, which were the best dating courses of the young Abeks at the time, were revived as a dating place for young people all over the country with the recent Busan International Film Festival.


'Youngdo Bridge of Memories' and 'The Third Hometown of Busan' ...


In Korea, where the sea is three sides, songs about the sea and the port have been steadily loved by the public. In particular, Busan Port, a place for meetings and farewells, and the material related to Madorus were major themes that appeared frequently in popular songs in the 50s and 60s. Tobacco mouth pipes, cool Madoros hat was a masculine charm. One of these songs related to Madorus is “Love of the P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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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LATIONS AND EXPLANATIONS OF LYRICS:

(with help of Google Translate, so with still some mistakes)

윤https://m.blog.naver.com/...

일로 하면 "기타 부기"가 생각나는데

"기분파 인생", "항구의 사랑", "월남의 달밤" 같은 빅히트곡 외에도 인기곡이 있었다.

윤일로는 "로맨스 그레이"라는 별명을 갖기도 했는데 중년 이후 중절모를 그의 마스코트처럼 쓰고다녀서다.

젊어서는 짙은 눈썹과 잘 생긴 외모로 여성팬들이 많았던 미남 가수로 불렸다.

부기우기, 룸바, 탱고, 트위스트, 도돔바, 왈츠 등 새로운 리듬를 유행시킨 윤일로는 시대를 이끈 가수라고 할 수 있다.

기타 부기로 대표되는 부기우리 리듬은 해방 이후 미국에서 유행하던 음악이 일본을 통해서 수입된 것이다.

블루스 계통에서 파생된 피아노 기반 음악 스타일로 미국 부기우기 스타일에서 조금 변형된 것이다.

국내 부기우기 리듬의 곡은 "서울 부기", "승리 부기", "기타 부기"등이 있는데 "서울 부기"는

1947년 발표된 일본의 "도쿄 부기우기"의 영향을 직접 받은 곡이다.

이렇게 일본 부기우기의 영향을 받은 한국 부기우기 리듬의 곡은 "기타 부기" 이후 1960년대 백야성의

"마도로스 부기" 같은 인기곡을 배출하기도 하나 "마도로스 부기"가 왜색 퇴폐가요로 금지곡이 되면서 이후 급격히

쇠퇴하여 지금은 사멸되다시피했다.

"블루스"가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것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부기 리듬의 전성기 때 가요라고 할 수 있는 "기타 부기"를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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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member the hits "Five Life", "Love of the Port", and "Night Moon",which were also popular songs.


Yoon Illo was nicknamed "Romans Gray," and he wore this like his mascot until after middle age. As a young man, he was called a handsome singer with many female fans because of his dark eyebrows and handsome appearance. Yoon Illo is a singer who led the era with new rhythms such as boogie-woogie, rumba, tango, twist, dodomba and waltz.


The boogie-woo rhythm, represented by guitar boogie, is a music form that was popular in the United States after liberation from Japan. It is a piano-based musical style derived from the Blues as a slight variation from the American boogie-style.


Domestic boogie-woogie rhythm songs include "Seoul boogie", "win boogie", "other boogie", etc. "Seoul boogie" The song was directly influenced by the Japanese "Tokyo boogie-woogie" released in 1947. Korean boogie-woogie rhythms were influenced by the Japanese boogie-woogie rhythms that were recorded in the 1960s


He also produced popular songs such as "Madoros Boogie". "Other Boogie" is a song from the heyday of boogie rhythm.

인생이란 무엇인지 청춘은 즐거워 피었다가 시들으면 다시 못필 내 청춘 마시고 또 마시어 취하고 또 취해서 이 밤이 새기 전에 춤을 춥시다 부기부기 부기우기 부기부기 부기우기 기타 부기 인생이란 무엇인지 청춘은 즐거워 한번 가면 다시 못올 허무한 내 청춘 마시고 또 마시어 취하고 또 취해서 이 밤이 새기 전에 춤을 춥시다 부기부기 부기우기 부기부기 부기우기 기타부기

What a life ; youth is fun

If you bloom and wither

Drink, drink, get drunk, get drunk

Let's dance before this night

Boogie Boogie Boogie Boogie

Some other boogie

What a life is, youth is fun

Once you go, you'll never come back

Drink, drink, get drunk, get drunk

Let's dance before this night

Boogie Boogie Boogie Boogie

Some other boogie

조금은 퇴폐적인 가사에 흥겨운 리듬은 전후 우울하고 고달팠던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기에 충분했던 곡이기도 하다.

윤일로(본명 윤승경)는 1935년 평양 태생으로 해방 다음해 인천으로 이사하여 이곳에서 성장한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해군을 제대할 때까지 14년간 축구선수로 활약했고,

한편 어려서부터 노래 부르기를 좋아해 남인수 노래를 따라 불러 동네 어른들로부터 "신동"소리를 듣던

윤승경은 중학교 시절 축구를 하면서도 새벽부터 운동을 하면서 "노래 제대로 하려면 목에서 피가나야 한다"는

속설을 따라 매일 소리를 질렀다고 한다. 그런 그는 고1 때 인천에서 열린 콩쿠루에 나가 "비 내리는 고모령"을

불러 1등을 한 이후 군에서 제대할 때까지 20여 차례 콩쿠루 우승의 저력을 보이기도 한다.

해군 군악대 시절 제대를 앞두고 나간 콩굴대회에서 우승하고 심사위원이었던 손석우, 나화랑 선생으로부터

"제대후 찾아오라"는 얘기를 듣고 제대후 나화랑 선생을 찾아갔고 오직 한길로 가라는 의미로 윤일로라는 예명을

받았다. 윤일로는 그때 "손석우 선생을 찾아 갔으면 인생이 어찌 되었을지 모른다"고 회상하였다.

윤일로는 직접 작사, 작곡도 하고 MC를 보기도 했고, 코미디언 버금가는 성대 모사를 선보이기도 해

당시로서는 인기 절정의 만능 엔터테이너였다.

대한뉴스 화면에 소개되었던 윤일로의 현인 성대모사 장면이 있어 흥미롭다.

제스쳐와 창법을 재미있게 모사하고 있고 목소리도 현인과 흡사한 것이 재미있다.

The rhythms and somewhat decadent lyrics, gave people comfort


Yoon Il-ro (real name Yoon Seung-kyung) was born in Pyongyang in 1935 and moved to Incheon the following year after liberation.


From the third grade of elementary school to the discharge of the navy, he played for 14 years,

He liked to sing songs since he was young. Yoon Seung-kyung played junior high school football while exercising from early morning on. According to the myth, he sang every day. He went to the Concours in Incheon at Go 1, After winning the first prize, he has shown the strength of winning the contest 20 times until he is discharged from the military. Sohn Seok-woo and Na Hwarang, who were the judges and won the Bean Cave Contest before the discharge during the Navy military band,


"Come after the discharge" means to go to Nawarang teacher after the discharge and only to go along the road. Yoon Illo wrote the lyrics, composed and watched the MC, and also showed the vocal mimicry of the comedian. At the time, he was a popular all-round entertainer.


박신자의 "땐사의 순정"과 같은 음반에 발표된 곡으로

"기타 부기"와 같은 해 발표된 "기분파 인생"도 큰 인기를 얻었던 곡이다.

강남풍 작사, 김부해 작곡 노래 윤일로 "기분파 인생"

"Other life" released in the same year as "Other Boogie" also gained great popularity. It was a song written by Gangnam Pung, Song by Kim Bo Hae Yun Il-ro

여보소 그런 말씀 행여 하지 마시요 여보소 남의 말을 너무 하지 마시요 이래 뵈도 내 기분엔 저 잘난 맛에

사는 게 인생인데 남의 말을 이러쿵 저러쿵 하지 맙시다 여보소 그런 말씀 행여 하지 마시요 여보소 남의 말을 너무 하지 마시요

그래 뵈도 그 사람도 그 사람대로 뻐기는 인생인데 남의 말을 이러쿵 저러쿵 하지 맙시다 여보소 그런 말씀 행여 하지 마시요 여보소 남의 말을 너무 하지 마시요 뭣이 어째 너도 나도 따지고 보면 똑 같은 인생인데 남의 말을 이러쿵 저러쿵 하지 맙시다

(not so well translated:)

Honey, don't do that.

Honey, don't talk too much.

I feel like this because of my good taste

It's life, it's life

Let's not do this

Honey, don't do that.

Honey, don't talk too much.

Yeah and that person as he is

a Cuckoo like life

Let's not do this

Honey, don't do that.

Honey, don't talk too much.

If you look at me

It's the same kind of life

Let's not do this

1955년 나화랑을 찾아간 윤일로는 바로 킹레코드와 전속가수 계약을 맺는다.

콩쿨에서 나화랑 선생으로보터 음폭이 넓고 풍부하다는 평을 받은 윤일로는 비교적 어려운 곡을 받았다고 한다.

악상이 어려워 대중적인 히트를 하지 못했고 당시 콩쿨에서 자주 만나던 도미가 대구에서 올라왔는데,

도미에게는 "비의 탱고", "청포도 사랑"같은 따라부르기 쉬운 곡을 주어 큰 인기를 얻었다고 윤일로는 회고한다.

도미도 그렇고 윤일로도 그렇고 현인의 노래를 좋아하고 많이 따라 불렀는데 당시 현인의 인기도를 알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1960년대 초까지 인기정상를 유지하던 윤일로는 1966년 월남파병을 소재로 한 "월남의 달밤"으로 다시 한번

큰 인기를 구가한다.

반야월 작사, 김진성 작곡 노래 윤일로 "월남의 달밤"

In 1955, he signed an exclusive singer contract with King Record. While he was praised as a teacher at Nawarang, he received a relatively difficult song to sing.

He recalls that Domi was given a song that was very easy to sing, such as "Rain Tango" and "Love Cheongpodo."


Yun Il-ro, which remained popular until the early 1960s, like with the song "moon moon night" for the Vietnam troops of 1966.

남 남쪽 머나먼 나라 월남의 달밤 십자성 저 별빛은 어머님 얼굴 그 누가 불어주는 하모니카냐 아리랑 멜리디가 향수에 젖네 가슴에 젖네 열대어 꼬리치는 사이공 항구 산호등 아롱다롱 물에 흐리면 카누에 실어보는 그 임의 노래 떠나온 수륙 만리 아득한 고향 그리운 산천

윤일로의 노래는 아닌 것 같은데 동영상 내용이 볼만하고 노래도 참 잘하신 영상이라 하나 더 돌려본다

(not so well translated:)

South South Faraway Moonlight Night

Crossing that starlight is my mother's face

Who's blowing hthe armonica?

Arirang melody gets nostalgic

Tropical Fish Flirty Saigon Harbor

Coral lanterns in the water

The random song on the canoe

Abandoned Great Land, Nostalgic Sancheon

처음 발표 당시에는 "남 남쪽 섬의 나라 월남의 달밤"으로 발표되었는데

월남이 섬나라로 표현된 것으로 각게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았고 모 초등학교 시험에 월남이

섬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에서 오답이 속출해 결국 "머나먼 나라"로 개사했다는 일화가 있다.

6.25 전쟁의 페허에서 UN의 보호하래 재건을 시작한지 10여 년

젊은이들 목숨을 담보로 돈을 벌려한다는 반대의 목소리도 있었지만,

외국으로 파병한다는 것만으로도 자부심이 생기기도 했던 당시 젊은이들은 목숨을 아끼지 않고

일주일 배를 타고 가야하는 이역만리 남 남쪽 머나먼 월남으로 떠났다.

대한뉴스에서는 "월남소식"을 통해 용감무쌍하고 대민 지원에도 전심을 다하는 월남 상황을 전해왔고

학생들은 위문편지로 파월장병을 위로했다. 위문공연단도 한 몫을 톡톡히 했는데

특히 "월남의 달밤"을 부른 윤일로는 여러차례 위문공연을 다녀왔는데 가장 인기있는 가수 중 한 명이였다.

윤일로의 조카로 배우 윤철형과 미쓰에이의 제이스가 있어 연예인 가족의 피를 이어받고 있다.

백마부대의 일원으로 월남을 다녀온 큰형이 올해 지병이 악화되 돌아가셨다.

월남전 참전 유공자로 정부의 지원을 받았고 현충원에 안장되셨다.

나이 차가 많은 형이 월남을 떠나던 때, 그리고 돌아오던 날 가족 모두가 용산역에서 형을 만나

통금을 뚫고 한강을 건너 흑석동으로 돌아오던 그날 어둡고 차던 새벽 공기가 생생하게 떠오른다.

형들이 목숨 걸고 지키려던 월남은 지금의 지도에서 찾을 수 없는 나라가 되었다.

형에게 바친다. "달려라 백마"

김석야 작사, 김강섭 작곡 노래 봉봉사중창단/이씨스터즈 "달려라 백마"

At the time of the first presentation, it was announced as "Nation of the Far South Island" Vietnam was expressed as an island country and received a strong objection to that, whether Vietnam was an island or not, and it eventually became a faraway country.


More than 10 years since the reconstruction of UN protections, there was also an opposite voice, saying that young people would make money with mortgages. At the time, young people who were proud of being dispatched to other countries were spared of it. After a week on a boat, the train left for southern Vietnam. In the news of Korea, we conveyed the situation of Vietnam that is courageous and devoted to supporting the people through "Vietnam News." In particular, Yun Il-lo, who sang "The New Year's Eve", went to several performances and this made him one of the most popular singers.


The eldest brother who went to Vietnam as a member of the White Horse Squad died because a disease worsened this year. He was supported by the government as a veteran of the Vietnam War and was buried in the Memorial Hall. When his older brother left Vietnam and when he returned, the whole family met him at Yongsan station. On that day, when I came back to Heukseok-dong through the Han River, the dark and cold dawn air comes to life.


The song "Run white horse" was dedicated to his brother. (Song by Kim Seok-ya, sung by Kim Kang-se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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