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남용 - Choi Nam-Yong (Nam-Young)


유성기로듣던 불멸의 명가수 Vol.14 이인권편

Immortal Master Singer Vol.14 Lee In-kwon

14 가여운 하로밤 / Poor night

15 청춘시대(靑春蒔代) / Young

* 16 박타령(打鈴) / Park, Ta-Ryung

17 들꽃타령(打鈴) / Taryeong Wildflower

18 버들닢 하나 / Willow

On the phonograph series, 4 tracks from Choi Nam Yong seems to have been preserved to reissue, which on this release are tracks 14-18.


The atmosphere and performance is original and highly pleasant, in a by Japan music influenced early Korean pre-Trot style (with subtle humpapa rhythm) with sweet warm singing, and in comparison with several other releases from the time a very attractive positive vibe.


The first track features some distinctive banjo pickings beside the usual guitar picking, accordion, violin, flute, some 30s jazz trumpet following subtly the pompom rhythms.


More original is the second track with a happy marching rhythm, the introduction of the happy life energy like a kind of joyfuly walking-in-a-movie marching music, with more worked out accents from rhythm blocks and a bit of flute/violin/accordion layers and with responding choir harmonies of girls/women, and a bit of jazz trumpet. The influence here is I guess taken more from Korean folk.


Also the next, more jazz orchestrated track is happier and could almost be from a Hollywood movie. The contrasts between the available voices, with funny variations (from child to grotesque woman’s voice, to deep male voice) give it a comic-like effect, all in harmony. I have the impression this is life story folk song of Korean origin. Somewhere appears an eastern zither or banjo. A very pleasant, happy song.


Also the next track gives a musical and filmic music impression, governed by happy life rhythms, sung with eastern variations in voice and clarinet solos.


The last track is more early trot with beautiful singing and acoustic picking lead with some responses by a small combo of musicians.


Recommended.


Choi Nam Young also appears on the Pork Song compilation reviewed on a separate page. The Lee In-Kweon part of the CD is reviewed on a separate page.


Tracks with * I consider essential listens or classics, also very suitable for western radioshow airplay. Tracks that are only underlined, without *, can be considered interesting tracks as well, for various reasons.


Other tracks can be found here:

유성기로 듣던 가요사 (1925~1945) [Disc 3]

* 9 돈바람 분다 / Valid Wind Blows (1935)

with 이은파 / Lee Eun-Pa

This is a happy cabaret-like walking rhythm honkytonk-flavoured jazz song with some duets and different voice singing (by Lee Eun-Pa).

30년대 신민요 Victor Gramophone series "Pork Song"

12 이팔청춘 / Youth

This song with clarinets and softly swinging rhythm I assume is from Korean Folk origin. Choi's voice is very pleasa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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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OGRAPHY & TRANSLATED LYRICS:

http://m.blog.daum.net/jamyong/7766697

잠용의 타임머신... 영원한 시간 속에서

[유성기 가요] '꽃 피는 北滿線' - 최남용 노래

2016.02.04 15:23

잠용(潛蓉)

카테고리 음악/애청곡 댓글쓰기

'꽃 피는 北滿線'

박향민 작사/ 전기현 작곡/ 노래 최남용

< 1 >

꽃을 실은 기차냐, 봄을 실은 기차냐?

북만벌 천리 길에 새 고장의 해가 뜬다

낭랑객 기타 우는 청춘의 고개 넘어

달려라 달려~ 아아아아 아아 아~

나부끼는 검은 연기 희망의 깃발이냐?

< 2 >

노래 실은 기차냐 춤을 실은 기차냐?

북만벌 개척지에 새 고장의 달이 뜬다

豊年鳥 두견 우는 축복의 물을 건너

달려라 달려~ 아아아아 아아 아~

구성진 기적 소리 황금의 軍號러냐?

< 3 >

웃음 실은 기차냐 감격 실은 기차냐?

북만벌 신 천지에 새 고장의 별이 좋다

農産隊 놀이 좋은 광명의 들을 지나

달려라 달려~ 아아아아 아아 아~

꾸냥의 웃음 소리 당연히 마음 편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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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꾸냥: 중국어 姑娘에서 유래한 일본어 구냥 (クーニャン). 소녀, 아가씨라는 말

◆ [이동순의 가요 이야기]

의리파 가수 최남용의 쓸쓸했던 삶 (상)

쌀 장사 하다가 고향 선배 이애리수 권유로 가요계 데뷔

한국 가요사의 흐름을 눈으로 따라가다 보면 그 명성이나 활동의 내용이 상당히 화려했음에도 불구하고 후대에 이름이 별로 알려지지 않은 경우가 자주 보입니다. 대표적 사례가 가수 최남용(崔南鏞`1910∼1970) 선생이 아닌가 합니다. 한 번 유명가수로 고정된 분들의 이름은 줄곧 가요사에 등장하는데 최남용의 경우는 어떻게 해서 이토록 대중들의 기억에서 아주 사라져버린 것일까요?

가수 최남용을 떠올리기 위해서는 먼저 1935년 10월에 당시의 인기 대중잡지였던 ‘삼천리’지가 실시한 ‘레코드가수 인기투표’의 결과를 먼저 눈여겨보아야 합니다. 그 투표의 결과에서 1위는 채규엽, 2위는 김용환, 3위는 고복수, 4위는 강홍식, 그리고 5위에 오른 가수가 바로 최남용입니다. 서양의 테너가수 티토 스키파(Tito Schipa)를 연상시키는 맑고 깨끗한 미성에다 얼굴이 워낙 잘 생겨 희랍의 조각 작품을 떠올리게 하는 꽃미남이었다고 합니다. <사진: 최남용>

최남용은 1910년 경기도 개성에서 수완이 좋고 부유한 ‘송도상인’의 아들로 출생했습니다. 성장기 때부터 내성적이고 감상적 기질이었던지라 문학, 음악 쪽으로 호감을 가졌었고, 송도고보를 다니던 중에는 달 밝은 밤에 기타와 바이올린을 들고 선죽교와 만월대로 가서악기연주와 가창연습에 심취했다고 하네요. 그러던 중 부친의 사업 실패로 가정형편이 기울게 되자 학업을 중단하고 쌀을 전문으로 거래하는 미곡상(米穀商)으로 나서게 되었습니다. 최남용은 사업에 종사하면서도 틈틈이 악기를 손에서 놓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황성옛터’의 가수 이애리수가 고향 개성을 다니러 왔다가 평소 친하게 지내던 후배 최남용에게 찾아와 서울로 가자고 권유했고, 이애리수는 그를 자신이 전속으로 활동하던 빅터레코드사 이기세(李基世) 문예부장에게 소개했습니다. 그것이 최남용이 22세 되던 1932년 가을이었습니다. 당시 빅터레코드사에는 이애리수 외에도 동향 선배인 작곡가 전수린 선생까지 있어서 한결 마음이 편안했습니다. 최남용은 오디션을 거친 다음 1932년 12월, 데뷔 작품으로 ‘갈대꽃’(이고범 작사`전수린 작곡), ‘마음의 거문고’(이고범 작사`김교성 작곡) 등 두 곡이 담긴 앨범을 발표하면서 가수로 데뷔하게 됩니다.

이후 빅터사에서 ‘덧없는 봄비’ ‘방아타령’ ‘산나물 가자’ ‘눈물과 거짓’ ‘서울소야곡’ ‘사공의 노래’ 등 30여 곡을 발표했습니다. 1935년 8월 ‘애달픈 피리’를 마지막 작품으로 발표하고 무슨 사연이 있었던지 빅터레코드와 결별하게 되었지요. 빅터 시절에는 ‘홍작’(紅雀)이란 예명으로 일본 빅터사에서 음반을 내기도 했습니다. 빅터사에서 활동할 때 가장 콤비를 이루던 작사가는 이고범(이서구), 이하윤, 이현경 등입니다. 그 밖에도 시인 김안서, 김팔봉 등과 이벽성, 유백추, 고마부, 이청강, 박영호, 두견화 등과도 함께 했습니다. 콤비 작곡가로는 단연코 15곡의 김교성, 8곡의 전수린 등 두 분입니다. 그 밖에도 장익진, 정사인, 이하윤, 이경주, 조일천, 이경하 등이 있습니다.

당시 가수들은 한 레코드사에서 전속으로 활동하면서 조만간 다른 회사로 소속을 옮길 계획이 있는 가운데서도 두 회사 이름으로 제각기 음반을 발표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최남용도 이에 해당합니다. 1935년 1월에 ‘즐거운 연가’와 ‘거리의 향기’ 등 두 곡이 수록된 음반을 태평레코드사에서 발표합니다. 소속사를 완전히 옮긴 다음에 지난 시절을 돌이켜보노라면 바로 이 음반이 태평에서 발표했던 첫 앨범으로 기록이 됩니다. 태평레코드사에서는 구룡포(具龍布)란 예명과 최남용이란 본명을 함께 사용했습니다.

[이동순의 가요 이야기]

의리파 가수 최남용의 쓸쓸했던 삶 (하)

남 돕는 데 앞장섰지만 정작 자신은 곤궁한 생활

태평레코드사에서 발표한 최남용 앨범의 곡목들은 상당히 많습니다. 돈바람 분다’ ‘황금광(黃金狂) 조선’ ‘조선의 봄’ ‘비오는 선창’ 등 80여 곡이나 됩니다. 태평레코드사에서 발표한 마지막 곡은 1938년 6월의 ‘홍등야화’(紅燈夜話)입니다. 이 내용을 통해 보더라도 30여 곡을 발표했던 빅터사보다 무려 여든 곡 넘게 발표했던 태평레코드사가 가수 최남용의 실질적인 터전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1939년에는 오케레코드사에서

‘통사정’ 등 4곡을 발표합니다. 1939년 12월에 발표한 ‘눈 쌓인 십자로’가 최남용이 가수로서 발표했던 마지막 곡입니다. 그러니까 최남용이 식민지 가요계에서 활동했던 기간은 도합 7년 남짓한 세월입니다.

1939년 조선영화주식회사에서 박기채 감독이 이광수의 원작소설 ‘무정’(無情)을 영화로 제작하게 되었는데 이때 최남용은 형식의 배역을 맡아 주연배우로 출연했을 뿐만 아니라 시인 김안서가 작사한 주제가 ‘무정’을 직접 불렀습니다. 여주인공 영채 역에는 배우 한은진이 출연했고, 그 밖에 조연으로는 김신재, 이금룡, 김일해 등의 이름도 보입니다. 이후 일제 말에는 주로 영화계와 그 주변에서 머물며 친일영화 ‘반도의 봄’(1941) 주제가를 직접 작곡했습니다. 하지만 대중들에게 지난날 특별한 사랑을 받던 가수로서의 기억은 점차 그 자취가 엷어져가기만 했습니다. 1945년 광복이 되자 최남용은 무궁화악극단을 조직해서 공연을 다녔습니다. 말하자면 극장 쇼 무대의 프로모터로서 남다른 기질을 나타내 보인 것입니다. 당시 1세대 가수 채규엽(蔡奎燁)이 자기관리에 실패해서 몹시 고생한다는 소식을 듣고 최남용은 선배가수를 돕는 공연을 열었는데 그 수익으로 채규엽의 삶에 새로운 용기를 북돋워주었습니다.

1946년 7월에는 서울 동양극장에서 무궁화악극단 주최로 특별한 공연 하나가 막을 올렸습니다. 그것은 바로 25세의 꽃다운 나이로 요절했던 여성가수 박향림(朴響林) 추모공연입니다. 이 공연의 전체기획과 진행을 가수 최남용 선생이 맡았던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1950년 6`25전쟁이 일어나자 최남용은 대구로 피란 내려와 당시 대구 육군본부 휼병감실(恤兵監室) 소속의 군예대(KAS) 조직사업에 앞장섰고, 정훈공작대의 기획실장으로도 일했습니다. 이후 영화제작 일을 계속하게 되었을 때 배우지망생 김경자가 최남용의 절대적인 후원 속에 영화에 출연할 수 있었는데, 나중에 김경자가 정식으로 예명을 만들게 되었을 때 은인이었던 최남용을 아버지처럼 생각해서 최지희(崔智姬)로 지었다고 합니다.

최남용의 일생을 돌이켜보면 고보 학업을 채 못 마친 상태에서 쌀장사를 하다가 문득 가수의 길로 접어들어 빅터, 태평 두 레코드사에서 대중적 인기를 얻으며 활발한 활동을 펼쳤습니다. 그러다가 영화계로 활동 방향을 바꾸어서 새로운 변화를 시도했지만 별반 성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평소 남을 돕는 의리파로서의 명성은 높았어도 정작 자신의 삶은 늘 곤궁하고 쪼들리기만 했습니다. 1967년 최남용은 회갑도 되기 전에 뇌일혈로 쓰러져 병석에 눕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도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일에 두 팔 걷어붙이고 나서던 최남용을 찾아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슬하에는 일점혈육도 없는 채로 1970년, 쓸쓸한 병상에서 회갑을 맞이한 최남용은 오직 부인 윤난성(尹蘭星) 여사 혼자서만 머리맡을 지키며 흐느끼는 가운데 한 많은 생을 마감했습니다. [영남대 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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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Sleeping Time Machine ... In Eternal Time

[Song] 'Flower 北 滿 線'-Choi Nam Yong Song

A latent dragon in the Category Music / Love Song

`` Flowers 北 꽃 線''

Written by Hyang Min Park /

Composed by Jeon Hyun / Song Nam Yong

Is it a train with flowers or a kind of train for spring?

The year of the new town is coming near

Romantic guitarist, sing

Run, run, run ~

Are these fluttering black smoke flags of hope?

Is it a just a plain train or will it be a singing train?

A new local moon rises in the North

豊 年 鳥 Cross the crying blessing waters

Run, run, run ~

...(???)

I Laugh: Is it just a plain train or a thrilling train?

The Star of new town is great in the north and south a new world

農 産 隊 play past good light

Run, run, run ~

It is The sound of laughter of course

* Kuan: Japanese hunter originated from Chinese ン (ク ー ニ ャ ン). Girl, la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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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g Soon's Song Story]


The lonesome life of loyal singer Choi Nam-yong.


While selling rice, he debuted as a senior in his hometown.


When you follow the flow of time of Korean songs, you will often notice that some names are already no longer known in the future, despite the fact that their fame and activities were quite colorful. One of the best examples of this is singer Choi Nam-yong (崔 南 鏞 `1910-1970). Having been amongst the names of the famous singers that have appeared in the song history, how did Choi Nam-yong disappear from the memory of the public so easily?


In order to recall singer Choi Nam-yong, we first need to look at the results of the popular record singer's voting in October 1935 by Samchully magazine. In the result of the vote, Chae Kyu-yeop first, Kim Yong-hwan second, Ko Bok-soo third, Kang Hong-sik fourth, and Choi Nam-yong are fifth. It was a clear and beautiful aesthetic reminiscent of Western tenor singer Tito Schipa, with his face so handsome recalling Greek sculptures.


Choi Nam-yong was born in 1910 in Kaesong, Gyeonggi-do, as the son of a resourceful and wealthy Songdo merchant. He was introverted and sentimental from the time of growth, with an interest in literature and music, and while living in Songdo Gobo, he went to Sunjukkyo at Full Moon with a guitar and a violin on a bright night. In the meantime, when my father's business failed and his family was inclined, he stopped studying and started to work as a rice trader. While being in business, Choi did not get his hands on the instrument.


One day, singer Lee Arisu of Hwangseong Ancient Ruins came to Kaesong for his hometown, and invited his junior Choi Nam-yong to come to Seoul to come to Seoul. It was the fall of 1932 when Choi was 22 years old. At the time, Victor Records was comfortable with Lee Ari-soo, as well as trend composer Jeon Soo-rin. After auditioning, Choi debuted in December 1932, debuting on two albums, `` Reed Flower '' (composed by Lee Go-bum) and ` Song Soo-in'' and with ``God of Lyrics'' (composed by Kim Gog-sung). His debut.


Since then, Victor has released more than 30 songs, including ‘Flood Spring Rain’, ‘Fang-Ata-Ryeong’, ‘Sanmul Herbs’, ‘Tears and Lies’, ‘Seoul Soya Song’ and ‘Saongong Song’. In August 1935, he released his last record, “The Furious Flute,” then broke up with Victor Records after what happened just then. In the days of Victor, he made a record at Victor, in Japan under the title of Hongzak (紅雀). The most composing lyrics in the company of Victor are Lee Go-beom (Lee Seo-gu), Lee Yun-yun and Lee Hyun-kyung. Other poets, Kim An-seo, Kim Pal-bong, Lee Wall-sung, Yoo Baek-chu, Komabu, Lee Cheong-gang, Park Young-ho, and Dukhwahwa were also included. Other composers are by far Kim Gyo-sung (15) and Jeon Soo-rin (8). Others include Jang Ik-jin, Jeong Sa-in, Lee Ha-yun, Lee Gyeong-ju, Jo Il-cheon, and Lee Kyung-ha.


At the time, singers were working exclusively at one record company and were planning to relocate to another company in the near future. In January 1935, an album was released by Taepyung Records, which includes two songs, “Happy Love Song” and “Street Scent.” If you look back on your past after you've moved completely, this is the first album you've released in Taiping. At Taepyeong Records, we used the title of Kowloon cloth and the name of Choi Nam-yong together.


[Lee Dong Soon's Song Story]

Lonesome life of loyal singer Choi Nam-yong (Ha)


He was leading the way in helping others, but felt himself in need. There are quite a few songs from Choi Nam-yong's album released by Taepyung Records. There are more than 80 songs, including "Wind Wind Bunda", "Golden Gold Mining", "Spring of Chosun", and "Rainy Dock." The last song released by Taepyeong Records Company was “Hongdeung Yahwa” (紅燈 夜話) in June 1938. This shows that Taepyung Records, which released more than eighty songs, was the actual platform of singer Choi Nam-yong. In 1939, Oke Records was releasing 4 songs including “Tong Pak”. In December 1939, ‘Snowful Crossroads’ was the last song released by Choi Nam-yong as a singer. So, the period that Nam-Yong Choi was active in the colonial music scene was seven years in total.


In 1939, at the Chosun Film Co., Director Park Ki-chae produced Lee Kwang-su's original novel, 'No Feeling' as a movie, while Choi Nam-yong starred as a leading actor in the form of a form, as well as singing a theme song written by poet Kim An Seo. Called directly Actor Han Eun-jin starred in the lead role of Yeong-chae, the heroine, and other supporting roles include Kim Shin-jae, Lee Geum-ryong, and Kim Il-hae. Later, at the end of Japan, he stayed mainly in and around the film industry, where he wrote the theme song for the pro-Japanese film, "The Spring of the Peninsula" (1941). But the memory of the singer, who was specially loved by the public, only faded. When Korea became liberated in 1945, Choi Nam-yong organized and performed at the Mugunghwa Theater Company. In other words, as a promoter of a theater show stage, he showed a distinctive temperament. At the time, when the first-generation singer Chae Gyu-yeop (蔡 奎 燁) failed to manage himself, he suffered very hard and Choi Nam-yong held a concert to help senior singers.


In July 1946, a special performance was held at Seoul Oriental Theater hosted by Mugunghwa Theater. It is a memorial performance of Park Hyang-rim, a female singer who died at the age of 25. Not many people know that singer Choi Nam-yong was responsible for the overall planning and progress of this performance.


In 1950, when the Korean War broke out in 1950, Choi Nam-yong descended to Pi-gu, where he led the military arts organization (KAS) organization of the Deputy Generals Division at the Daegu Army Headquarters. Later, when he continued to work in filmmaking, actor Kim Kyung-ja was able to appear in the film under the auspices of Choi Nam-yong. When Kim Kyung-jin officially made his title, he thought Choi Nam-yong, who was a secret person, was built as Choi Ji-hee (崔 智 姬). .


Looking back at Choi's life, he did not complete his studies at Gobo, but he began to sell rice before he became a singer. Then he attempted a new change by changing the direction of the film industry, but did not get any results. Although he had a high reputation as a loyalist who helped others, his life was always in trouble. In 1967, Choe Nam-yong fell to bed before he was sixty years old and suffered cerebral hemorrhage. However, no one came to Choi, Nam-yong, who had put his arms around trying to help such a difficult neighbor.


In 1970, without a single point of blood, Choi Nam-yong, who was sixtieth in a lonely bed, ended his life while weeping alone while his wife, Mr. Yunnan-sung, was left behind.


[Professor, Department of Korean Literature, Yeungnam Univers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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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RE) TRANSLATION OF LYRICS:

(with help of Google Translate only!!)

최남용 - 가여운 하로밤 1938년

몸부림 치려무나 메달리지 말고서 떠나는 소매잡고

목놓아운들 가야할 내발길을 멈출까보냐 아~

가슴에 흔들리는 쓰라린 쪼각불

나홀로 갈지라도 마음고이 남어서 애타는 그대가슴

달랠것이니 울기나 말어주렴 가슴아프다 아~

엉키고 부서지는 쓰라린 쪼각불

꼬집어 띠려무나 날울리지 말고서 하지만 어찌하남

헤어질운명 언제나 다시만날 봄이있으랴 아~

눈물의 아롱젖은 쓰라린 쪼각달


Poor Night

no translation

최남용 - 인간(人間) 서커스 1937년 6월

벌판에서 벌판으로 흐르는 신세

집없는 저 달님은 내마음 알까

술집에서 술집으로 떠도는 신세

이 땅도 저 하늘도 쉴곳이 없네

앉아 울고 서서 우는 뜸북이 신세

정든님도 누굴 주고 혼자 흐르나

천년가고 만년가고 어느 봄날에

내님을 내님이라 불러나 볼까

<人間 서커스>는 가수 崔南鏞님이 37년 8월에 太平레코드에서 발표한 노래입니다.

<港口의 스타일;C.8309/崔南鏞ㆍ盧碧花노래>과 같이 발매된 이 노래는,朴英鎬作詩/李龍俊作曲의 작품으로,新民謠 <돈바람 분다(35/5)>를 李銀波님과 불러,太平에서 활동을 시작한 崔南龍님이 불럿읍니다.35~38년간에 태평에서 활동하면서 주옥같은 많은 곡을 발표한 최남용님이 <白川打鈴(37/6)>,<月尾島>에 이어 발표한 <人間 서커스>,

Human Circus (1937)

Flowing from field to field

Does that homeless moon recognises my heart?

Drifting from bar to bar

There's no place in this land nor in the sky

Sitting, crying or standing crying

Who are you?

For One thousand years, or just one spring day

Shall I call you my Lord?

#oldtime #jazz #C #newfolkshinminyo

© 2018 PSYCHEFOLK PRODUC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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