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복희 / Kim Bok-Hee


You can find tracks at:

유성기로 듣던 불멸의 명가수-신카나리아, 김복희, 박단마 편 (SYNCD-141) vol 19

Immortal singers from the meteor period-Shin Canaria, Kim Bok-hee, Park Danma

8 단장원(斷腸怨) / Director (VICTOR 49352)

9 제주(濟州) 아가씨 / Jeju lady (VICTOR 49380)

10 울고싶은 마음 / Wanting to cry (VICTOR 1155)

11 애꾸진 달만 보고 / Watching the Moon (1936)​ (VICTOR 1161)

12 술집의 비애(悲哀) / Bar of Sorrow (VICTOR 1161)

On “Director”, I hear a high pitched, skillful and very young voice singing nicely orchestrated Japanese-styled trot. “Jeju Lady” is Japanese guitar trot with elements like what sounds like picked violins. Here, her voice at some stage goes surprisingly high in tone. “Wanting to cry” starts with spoken word, whistling wind sounds and acoustic guitar pickings and flute. It evokes a filmic scene in which a woman sings on the breach of crying. - A moving scene. “Watching the Moon” is a bit more rhythmical with jazzy touches, keeping up a subtle feeling, a song drifted by the emotion of Kim Bok Hee’s voice. Brilliantly the acoustic guitar goes a few second into dual harmony there. “Bar Of Sorrow” is a bit lighter in rhythm and mood, sung with nice eastern voice qualities almost like being inspired like a bird.

30년대 신민요 Victor Gramophone series Pork Song

11 함경도 아가씨 / Hamgyeongdo lady

I assume that this is a Korean Folk song, hearing the voice, the playful tone and kind of rhythmic leads of accents, and of course some small clarinet parts. Other arrangements include accordion and other background instruments.

See also full review at V.A. "Pork Song" 2CD

유성기로 듣던 가요사 (1925~1945) [Disc 3]

10 애꾸진 달만 보고 / Watching the Moon (1936)

This is a nicely arranged story-like song in a calm rhythm with subtle use of Jazz instruments, accordion and guitar and piano if I heard well. Also here are some nice accents with slide guitar effect in harmony with the voice ay some poi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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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OGRAPHIES:

http://www.seoulstory.kr/front/kor/story/view.do?searchCondition=&searchKeyword=&sStatus=9&sDivi=0&sTag=가수&pageIndex=1&idx=1891

1918년 안주 입석에서 태어난 김복희는 12살 되던 해에 아버지가 위암으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녀는 결국 기생이 되기 위해 평양기생학교에 들어가게 되는데요.

그 후 1934년 빅타사에서 <애상곡>을 발표하면서 가수 활동을 시작합니다.

그녀의 대표작으로는 <하룻밤 맺은 정>, <울리고 울던 때가 행복한 시절>, <청춘비극>, <술집의 비애> 등이 있습니다.

출처 : 문화콘텐츠닷컴 www.cultureconten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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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 Bok-hee was born in Ahn Seok in 1918. She eventually enters Pyongyang Gisaeng School to become 'a low life singer' (translation?).


After that, she started his career as a singer in 1934 by Bigta. Her masterpieces include "The Night-bound Jung" (?), "The Happy Hours of Ringing and Crying", "The Tragedy of Youth", and "The Woes of a Bar" (="Bar of Sorr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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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ponki.kr/pop/pop_musicstory_view.asp?fa1=37&sa3=0&sa4=0&sa10=story

이밖에 300표 이상을 얻은 여자가수로는 강석연(태평), 이애리수(빅타), 김선초(시에론), 최창선(폴리돌), 손금홍(빅타) 등이 있다

https://pub.chosun.com/client/news/viw.asp?cate=c03&nNewsNumb=20140214131&nidx=14132

이동순교수의 가요 이야기 최고의 신민요 가수-김복희

인기(popularity)란 말 그대로 어떤 대상에 쏠리는 대중의 높은 관심이나 좋아하는 기운입니다. 인기에만 의존해서 오로지 인기를 먹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으니 그들은 바로 가수와 배우들입니다. 아무리 대중들에게 인기가 높았던 스타라 하더라도 흐르는 세월 앞에서는 덧없는 실바람이나 물거품과도 같습니다. 우리가 줄곧 다루고 있는 한국근대의 대표적인 가수들이 살아갔던 삶의 경과를 살펴보노라면 이러한 인기의 본체를 실감하게 됩니다.

인기의 상승은 독이요, 인기의 하강은 조바심이란 말이 있습니다. 실제로 하늘을 찌를 듯한 인기가 하루아침에 안개처럼 사라지고 난 뒤 그 허탈감을 참지 못해서 삶을 비관하거나 절망에 빠져서 마약, 혹은 자살의 방법으로 비극적 최후를 맞이하는 경우를 허다하게 볼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보더라도 인기란 품에 비수를 감추고 있는 여인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인기가 높았건 낮았건 간에 비정한 세월은 모든 내용을 허무의 세계로 완전히 매몰시켜버립니다. 오늘 우리가 다루고자 하는 1930년대 빅타레코드사가 간판 격으로 자랑하던 가수 김복희(金福姬, 1917∼?)의 경우도 바로 이 허무의 기슭에 매몰된 대중음악인으로 여겨집니다.

김복희의 생애는 베일에 가려져 있어서 구체적 자료를 확인할 수 없으나 다만 가수 자신의 인터뷰와 구술을 토대로 재구성해보면 1917년 평남 안주 입석동에서 출생한 것으로 보입니다. 12세에 부친이 위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가정형편이 몹시 곤궁해지자 김복희의 어머니는 가족들과 평양으로 거처를 옮기게 됩니다. 복희는 동생의 학비를 조달하기 위해 평양의 그 유명한 기성권번으로 들어가 기생수업을 받고 기생노릇을 하며 살아갑니다.

평양 기생학교 시절의 김복희

연광정을 지나 채관리(釵貫里)라는 곳에 세워져 있던 평양의 기생학교에는 화초병풍을 두른 방안에서 약 200여명의 어린 기생아씨들이 승무와 검무, 국악기 연주, 가창을 연습하는 소리가 담 밖으로 낭랑하게 울려 퍼졌습니다. 당시 김복희가 다니던 평양기생학교에는 선우일선(鮮于一扇)이 동갑나기 친구로 둘이 다정하게 지냈습니다.

선배 왕수복(王壽福)이 이미 가요계로 데뷔해서 이름을 날리고 있었고, 친구 선우일선도 폴리돌레코드사로 불려가 인기가수가 되었던 시절이라 김복희의 경우도 은근히 그런 기대를 가슴속에 품지 않은 것은 아니었겠지요. 김복희의 나이 17세가 되던 1934년, 서울의 빅타레코드사 문예부장 이기세(李基世, 1889∼1945)의 집에 가 있던 평양기생 곽향란(郭香蘭)이 이기세에게 김복희의 뛰어난 가창능력을 추천했고, 이기세는 직원을 보내어 곧장 서울로 불러왔습니다.

이기세가 시험해본 김복희의 가창능력은 그 솜씨가 과연 부족함이 없었을 뿐더러 파르르 떠는 발성의 울림에서 기묘하게도 슬픈 여운을 느끼게 하였습니다. 이기세는 시인 이하윤과 작곡가 전수린에게 특별히 부탁해서 어린 기생 김복희의 첫 음반이 반드시 성공리듬을 탈 수 있도록 신신당부했습니다.

이런 전후사정이 1935년 잡지 <삼천리>지에 실린 글 ‘거리의 꾀꼬리인 십대가수를 내보낸 작사 작곡가의 고심기’에 잘 그려져 있습니다. 전수린이 김복희의 첫 작품 <애상곡(哀傷曲)>에 대한 작곡을 먼저 했고, 가사는 작곡을 완료한 뒤에 시인 이하윤에게 의뢰했던 것 같습니다. 먼저 작곡가 전수린의 회고를 들어보시지요.

‘김복희의 <애상곡>은 실로 나의 고심을 짜낸 것입니다. 처음에 김복희가 노래를 우리 회사에 와서 부르는 데 그 노래를 들음에 그 몸집같이 휘청휘청 마치 능라도 수양버들 같아서 그만 그 목청조차 몸 스타일에 따른 듯 하겠지요. 그래서 그 성대를 들음에 간드러지고 늘어지고 흔들리는 것이 애상적이었어요. 그래서 돌아가서 이 멜로디에 맞는 곡조를 지어본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김복희의 노래와 맞춰보니 아주 적당하다고 보아서 내가 처음 뜻을 발표해 보았으나 되지 않고 해서 마침 이하윤 씨에게 작사를 청한 것입니다. 그 늘어진 곡은 조선의 정조를 나타낸 것이었습니다. 이 <애상곡>에 있어 그 처분처분 넘어가는 것을 대중이 퍽 좋아한 모양입니다마는 나로서는 나의 힘이 부족했더라도 장차 김복희가 불러낼 노래에는 더욱 그 묘한 점을 완전히 발표할 날이 올 줄로 믿습니다.’

김복희의 첫 작품인 <애상곡> 가사를 맡았던 시인 이하윤은 또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순서인즉 작사도 먼저 되고 그 다음 작곡이 되고 그 후에 노래를 불러 주어야 옳을 터인데 이 <애상곡>은 아주 거꾸로 되었지요. 김복희의 목청을 듣고 거기에 맞을 곡을 지어주면서 이러이러한 의미에서 했으면 좋을듯하다고 하기에 내 생각해보아야 아무래도 잘 나오지 않습니다. 첫째 김복희가 입사해서 세상에 처음 알리는 것인 만큼 독특한 것을 내려고 애를 쓴 것입니다. 그래서 구슬프게 가장 애상적인 그 목소리를 배합해서 짓노라고 매우 힘이 든 것이외다.

그 목소리는 보통의 목청이 아니고 갈피갈피의 눈물과 한숨이 섞인 듯 연약한 여자가 달빛아래 홀로 서서 검푸른 못을 들여다보는 그 미묘 신비한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몇 날을 두고두고 생각하면서 작사한 것이나, 이것을 김복희의 목에 맞춰 몇 번이나 수정했던지 사실 나로서 힘든 작사의 하나이외다.

그래서 연습을 마치고 취입해서 테스트 판을 듣고 좋다고 해서 거리거리 악기점에서 구슬프게 빼는 <애상곡>은 듣는 이로 하여금 눈물짓게 만듭니다. 여기에서 김복희는 자기의 묘성(妙聲)을 완전히 아직은 발해보지 못한 줄로 압니다. 그 목소리에 알지 못할 깊은 점은 언제나 풀릴 런지 앞으로 나올 것을 주목치 않을 수 없습니다.’ 평양기생출신 가수 김복희의 첫 데뷔 작품 <애상곡>의 노래는 이렇게 만들어졌습니다. 김복희의 음색을 가만히 음미해보면 내지르는 가운뎃소리를 중심으로, 그 소리를 다시 한 맺힌 슬픔으로 비비며 껴안는 또 다른 소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바람에 나부기는 버들가지 같기도 하고, 가을날 적막한 숲에서 혼자 지저귀는 꾀꼬리의 하염없는 흐느낌 같기도 합니다.

어린 기생의 가창(歌唱)에서 어찌 이렇듯 한과 슬픔과 삶의 고뇌가 함께 어우러진 깊은 배합의 울림이 빚어져 나오는 것일까요? 당시 언론에서는 김복희 가창의 특색을 ‘북국적인 침착과 풍부한 성량’으로 손꼽았습니다. 빅타레코드사에서는 인기가 높고 음반판매량이 많은 김복희를 ‘금간판’이란 별명으로 불렀다고 합니다. 이처럼 김복희의 노래는 출반되자마자 장안의 큰 화제와 인기를 집중시켰습니다. 특히 지식인 계층에서 김복희의 노래에 깊이 몰입된 가요팬들이 많이 생겨났습니다. 김해송과 혼성듀엣으로 불렀던 노래 <명랑한 양주>란 노래는 장안의 화제를 모았습니다.

얼굴이 고와서 계집입디까

조밥에 된장을 먹으면 어때

아들 딸 잘 낳고 바느질 잘 하는

그러한 여자가 실상 좋더군

덩치만 크다고 사내랍디까

땅딸보 몸집에 곰보면 어때

소리나 잘 하고 마음도 구수한

그러한 사나이가 한결 좋더군

입성을 잘 입어 마누랍디까

속세배 치마를 입으면 어때

봉자질 잘 하고 마전질 잘 하는

그러한 여인네가 마냥 좋더군

-<명랑한 양주> 전문

배우와 가수를 겸했던 복혜숙의 평에 의하면 김복희는 미인형에 속하는 인물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사진으로 보는 김복희는 재색을 겸비하고 성음이 뛰어난 기생출신 가수로 보이며 마침내 인기와 명성을 한꺼번에 얻었습니다.

1934년에 빅타레코드사 전속가수가 되어서 이후 5년 가까운 세월동안 무려 87편의 가요곡을 발표합니다. 그러다가 김복희의 나이 22세가 되던 해인 1939년 4월에 포리도루레코드사로 전속을 옮기었고, 포리도루에서는 5개월 동안 11편의 가요곡을 발표하다가 이후 가요계를 완전히 떠나면서 잊어진 가수가 되었습니다. 가수로서 마지막 발표곡은 포리도루에서 1939년 10월에 발표한 <엇저면 그럿탐>으로 확인이 됩니다. 가요계에서 가수로 활동했던 시간은 도합 5년가량입니다.

김복희 노래의 특색은 <하로밤 매진 정>, <날 다려가오>, <탄식하는 술잔>, <연지의 그늘>, <농속에 든 새> 따위에서도 느껴지는 바와 같이 삶의 고통 속에서 헤매는 기생의 하소연과 탄식을 주로 다루고 있습니다. 음정이 환하고 성량이 크게 느껴지지만 한편 부드러운 맛이 있어서 그에게는 무슨 곡조를 주더라도 실패가 적다는 평을 들었습니다.

김복희 노래를 장르별로 분류해 보면 신민요(민요)가 21편, 속요 1편, 주제가 1편, 째즈쏭 1편, 기타 모두는 유행가 장르에 속합니다.

기생학교 시절에 갈고 닦은 성음인지라 역시 신민요 장르에서 두각을 나타내었습니다. 다음 노래는 김복희가 발표한 신민요 <함경도 아가씨>입니다,

명사십리 단두바위에 석굴 따는 아가씨야 신고산이 우루 우루루 멋들어진 콧노래에 갈매기도 흥에 겨워 닐리리야 춤추누나 해당화는 시들지라도 아가씨는 늙지 마오

길주명천 두메산골에 베를 짜는 아가씨야 치마 춤에 멀구 다래는 누굴 주려 감췄느냐 싱글싱글 웃음 주는 떠꺼머리총각에게 물그릇은 줄 지라도요 손목을랑 조심하오

삼수갑산 주막거리에 그네 뛰는 아가씨야 치렁치렁 드린 머리채 갑사댕기 풀어질라 민며느리 삼년 석 달 울고 오던 큰 애기도 아리아리 살금 내 주리 스리스리 바람났소

-<함경도 아가씨> 전문

박화산 작시, 이기영 작곡으로 1939년에 발표된 이 노래는 북관지역(北關地域)의 여러 장소를 배경으로 바닷가에서 굴 따는 처녀, 산촌에서 길쌈하는 처녀, 농촌마을에서 그네 뛰는 아가씨를 표상으로 하여 한국인의 전통적 삶과 아름다운 생활풍속을 정겨움과 사랑스러움이 듬뿍 느껴지는 필치의 분위기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너무도 생기로운 북방정서(北方情緖)를 이 노래에서 경험해볼 수 있지요. 이보다 4년 앞서 발표되었던 신민요 <제주아가씨>도 <함경도 아가씨>와 유사한 내용입니다. 제주도를 테마로 한 노래로서는 매우 희귀한 초창기 작품으로 기록이 됩니다.

김복희 노래에 가사를 보내준 작사자는 당대 최고의 전문가들이었습니다. 그들의 명단을 보면 이하윤, 김벽호, 이고범, 조영출, 전수린, 김동운, 유도순, 이현경, 이하윤, 강남월, 오관자, 고파영, 김팔련(김동환), 고마부, 홍희명, 박화산, 유춘수, 김포몽, 이부풍, 조벽운, 김송파, 강해인 등입니다. 이 가운데서 고마부의 노랫말이 9편, 박화산, 고파영이 각 4편입니다. 함께 활동했던 작곡가로는 전수린, 김교성, 김준영, 나소운(홍난파), 탁성록, 김저석, 김면균, 형석기, 문호월, 이기영, 최상근, 고창근 등과 일본인 세전의승, 좌좌목준일 등이 확인이 됩니다.

이 가운데서 전수린이 15편으로 가장 많고, 나소운, 즉 홍난파의 작품이 7편, 일본인 작곡가 좌좌목준일이 5편입니다. 듀엣으로 함께 노래를 불렀던 가수로는 이규남, 김교성, 손금홍, 이복본, 김해송, 이훈식 등으로 도합 11곡의 듀엣곡 중 이규남과 4편, 이복본과 2편을 불렀습니다. 특이한 것은 작곡가 김교성과 듀엣곡을 취입한 음반도 보입니다.

김복희가 가수로 활동하던 전성기에 세간의 평은 대체로 양호합니다. 1936년 7월5일자 매일신보에도 김복희 특집 인터뷰 기사가 발표되었고, 대중잡지 <삼천리>에는 김복희 관련 기사가 여러 차례 발표되었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김복희가 가수활동을 하면서 평양의 기성권번 소속 기생을 겸했다는 사실입니다. <삼천리> 취재기사에 의하면 김복희는 평양 경재리 18번지에 하얀 사기로 제작한 ‘김복희’ 문패까지 붙어있는 별채에 살면서 단골고객들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김복희의 특별한 인기를 짐작할 수 있는 것은 여러 대중적 무대에 단골로 초청을 받았던 경과를 볼 수 있습니다. 1935년 3월5일 평양 금천대좌(金千代座)에서 열린 평양축구단후원회주최 “각레코드사 연합 유행가 실연의 밤”에 30명 가수가 한 무대에 출연할 때 김복희는 빅타레코드사를 대표하는 가수로 유일하게 참가했습니다.

김복희가 출연하는 한 무대의 안내문에는 ‘레코드로만 듣고 그 미성에 취하든 김복희 팬들에게는 이번이야말로 스테지 우에서 부르는 그 득의의 <애상곡>을 들을 기회가 될 것’이라고 하면서 사뭇 분위기를 고조시켰습니다. 김복희의 가장 대표곡으로 평가되는 노래 <애상곡>의 선율이 궁금하지 않습니까?

날 저무는 바닷가에 희미한 저 별 괴로운 꿈 모두 잊고 따라서 가리 노래 불러 밤을 새던 정든 포구여 사랑하는 님을 두고 홀로 떠나네 별을 따라 나는 가네 내 사랑아 잘 있거라 나는 가네 님을 두고 가네

가는 나를 잡지 마라 다시 올 것을 젖은 소매 뿌리치는 가슴만 쓰려 인제 가면 언제 오나 묻지를 마라 몸은 가도 사랑만은 두고 떠나네 별을 따라 나는 가네 내 사랑아 잘 있거라 나는 가네 님을 두고 가네

-<애상곡> 전문

경성방송국(JODK) 라디오 프로에도 자주 출연해서 자신의 대표곡들을 불렀던 신문기사가 획인이 됩니다. 이처럼 평양에서 서울로 자주 왕래할 때에는 비행기를 타고 다닐 정도로 위세가 대단했던 것 같습니다. 1935년 <삼천리>지가 실시한 레코드가수 인기투표에서 김복희는 왕수복, 선우일선, 이난영, 전옥에 이어서 5위의 자리에 오릅니다. 레코드의 양은 늘고 질은 떨어진다는 언론의 비판이 쏟아질 때에도 김복희의 노래가 지닌 품격만큼은 예외로 칭찬을 들었습니다.

“순정을 노래하는 북국의 가인(歌人), 비행기 원정(遠征)의 김복희” 이처럼 성대한 소개문구로 존재를 과시하던 시절이 있었으나 가수 김복희는 포리도루레코드사에서 불과 5개월 동안만 활동 한 뒤 젊은 후배가수들에게 존재가 가려져 빛을 못 보게 되자 주저 없이 가요계를 떠났습니다. 은퇴한 뒤에는 조용한 노후를 보낸 것으로 추정이 되지만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1960년대에는 동아방송에 잠시 출연했던 기록이 보이고, 1990년대 초반에는 서울에서 가톨릭교회 신자로 여생을 보낸다는 증언을 듣기도 했으나 이제는 1930년대 빅타레코드사 대표가수였던 김복희의 이름마저 제대로 기억하는 이조차 없습니다. 바람찬 망각의 언덕에 쓸쓸히 묻혀 있는 왕년의 화려했던 한 가인을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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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lated with help of Google Translate):

Best Shin Min-yo Singer-Kim Bok-hee,

by Lee, Dong-Soon Professor, Yeungnam University, 2014-02-22

Popularity is literally a high interest or a favorite energy of the masses when focusing on something. There are people who rely solely on popularity to consume and live for popularity, so therefore we have singers and actors to represent this. No matter how popular a star is, it is like a fleeting wind or bubble in front of the flowing time. If we look at the life of the representative singers of Korean modernism we are dealing with this aspect all the time, and we can realize how this popular body works.


The rise in popularity is like poison, the fall in popularity creates unfulfilment. Indeed, the popularity of the sky has disappeared like a fog in a day, and we can't stand the despair because we can't stand the despondency, or we become desperate and could end up with a tragic end with drugs or suicide.


Even if you look at it, you may think that popularity is a woman who hides her arms (translation??). Whether it is high or low in popularity, timelessness completely buries everything into a world of vanity. Today's singer Kim Bok-hee (金 福 姬, 1917-?), Who had been proud of being a signboard in the 1930s, is considered a popular musician who became buried at the foot of this vanity.


Kim Bok-hee's life is covered by a veil, so no specific data can be confirmed. However, reconstructed based on the singer's own interview and dictation, it seems that he was born in Iseokseok-dong, Anju, Pyeongnam in 1917. At the age of 12, when his father died of stomach cancer and her family became in need, Kim Bok-hee's mother moved to Pyongyang with her family. Bok-hee enters the famous ready-made ticket number in Pyongyang to pay for her brother's tuition.


In Pyongyang's lowlife art (?) School, which was set up in a place called Chae Management (Yori) after the Yeongwangjeong, there are about 200 young children practicing crew, sword dance, playing Korean traditional instruments, and singing in a room surrounded by plants. At the time, Kim Bok-hee attended Pyongyang Lowlife Art (??) School, where Sunwoo Il-sun (鮮 于 一扇) was of the same age whom she befriended.


Kim Wang-bok had already made his debut as a singer, and her friend Sunwoo Ilsun was also called as a polydolrec and became a popular singer, so Kim Bok-hee would not have kept this expectation in his heart. In 1934, when Kim Bok-hee was 17 years old, Pyongyang Gwak Hyang-ran, who was at the home of Lee Ki-se (李 基 世, 1889-1945), head of Literary Records at Bigta Records in Seoul, recommended Kim Bok-hee's excellent singing ability. Lee Ki-se sent the staff straight to Seoul.


Kim Bok-hee's singing ability, which Lee Ki-se tried, not only lacked skill but also made me feel strangely sad from the reverberation. Lee Ki-se had specially requested poets Lee Yun-yoon and composer Jeon Soo-rin to ensure that the first album of the young lowlife artist Kim Bok-hee could ride the rhythm of success.


This post-war situation is well illustrated in the 1935 magazine Samcheon-ri, "The Composer of a Songwriter Composing a Street Orchestra." Jeon Soo-rin wrote the first song for Kim Bok-hee's first work, Ae Sang-song, and the lyrics seemed to be commissioned to the poet Hae-yoon after completing the song. Let's listen to the composer Jeon Soo-rin...


'Kim Bok-hee's <Love Song> really squeezed my pain. At first, when Kim Bok-hee sang a song to the company and one listened to the song, it's like a whistle and a weeping willow. So it was sad to hear the vocal cords tickling, hanging and shaking. So that's when he went back and made a tune for this melody.


So matching it with Kim Bok-hee's song it became very suitable, so he first announced the meaning, but finally asked Lee to write lyrics. The sagging song represented the tone of Joseon. It seems that the public has been very fond of skipping the disposal of this song, but I believe that even if I lacked my strength, there will be a day when Kim Bok-hee's song will be fully revealed.


The poet Lee Hae-yoon, who played the lyrics to Kim Bok-hee's first work, Aesop, also says:


"In order, it's right to write a song first, and then sing a song, this song approach is very upside down. When I listened to Kim Bok-hee's voice first and made a song that fits it, I think it would be nice to do it always in this sense. First, Kim Bok-hee joined the company and tried to do something unique as the first to tell this the world. That's why it's very hard to bet your voice with the most pathetic voice.

The voice was not an ordinary voice, but that of a weak woman, as if mixed with tears and sighs of gallop, stands alone in the moonlight and discovers the subtle mystery of looking through the dark blue pond. So I spent a few days thinking about writing lyrics, and how many times I modified this to fit Kim Bok-hee's approach.

That's why, after finishing the practice, you can listen to the test board. Here, Kim Bok-hee knows that she has not yet fully unveiled what she has. I can't help noting that the deepest point in the voice is always coming out."


The song for the first debut film <Love Story> by singer Kim Bok-hee was born in Pyongyang. If you savor the tone of Kim Bok-hee, there is another sound that cuddles the sound with the sadness again, centered around the sound of the gown. It's like a willow branch blowing in the wind, or like a silent sorrow of an oriole who sings alone in a quiet forest in autumn.


How can the sorrow and anguish of life come together in a young lowlife art song? At the time, the press named Kim Bok-hee as a `northern calm and abundant voice'' Victoria's record company, Kim Bok-hee, is known for his popularity and record sales. As soon as Kim Bok-hee's song was released, he focused on Jangan's great topic and popularity. In particular, many intellectual fans have been deeply immersed in Kim Bok-hee's songs. The song sung by Kim Hae-song and the mixed duet, The Bright Yangju, gathered the topic of Jangan.

-<Bright beer>

My face is so thin

How about eating miso in jobab

My Son's daughter is good at sewing

That girl is really good.

Are you guys big enough already?

How about a teddy bear of a guy

That Sounds good and it saves my heart

Such kind of a man was even better.

I'm happily married.

How about wearing a short skirt

She's Good at sewing

I like that woman.

(with mistakes in translation !!)


According to Bok Hye-sook, who used to be an actor and singer, Kim Bok-hee was not a beauty figure. However, Kim Bok-hee, who is seen in the picture, appears to be a low life art singer who has recolor and excellent voice, and finally gained popularity and fame.


​In 1934, she became a singer of Victoria Record Company and released 87 songs in the next five years. Then, in April 1939, when Kim Bok-hee was 22 years old, she transferred to Poridoru Records Inc., who released 11 songs in the next 5 months, and then suddenly she left the music industry and became a forgotten singer. The final song as a singer is confirmed as being <Gotham Gram Tam> released in October 1939 by Poridoru. She has spent only about 5 years as a singer in the music industry.


The characteristics of Kim Bok-hee's song are Hae-yeon, a 'parasitic' wanderer in the pain of life, as seen in <Sold out every night>, <Go to me>, <Sorrowful drink>, <Shade of yeonji>, <Bird in the air>. It mainly deals with cries and sighs. The pitch is bright and the volume feels great, but with the soft taste, she is said to have less failure in whatever tune she is given.


If you categorize Kim Bok-Hee's songs by genre, in the Shin Min-yo style we have 21 songs, there's 1 theme song, 1 jazz song, and all others belong to the trending (trot) genre. She was also a voice that was polished in the days of KSIA, and was also outstanding in the genre of Shin Min-yo.

-<Hamgyeongdo lady>

She's a lady who grinds on a rock

"To Shinoru uru hum"

Even the Seagulls are excited about her dancing.

Even though the painting is withered, the lady is not old

She's a girl weaving in Dumesan Valley, Gilju Myeongcheon.

Who is hiding behind her appearance dancing?

a Single pigtail a bachelor's pigtail

She will give you a bowl of water, be careful how you take it.

I'm a girl who swings on Samsugapsan's main street.

With long hair that has been given to me

The oldest daughter who was crying for three years and three months

the Ariari's coming along

(with mistakes in translation !!)

Published in 1939 by Park Hwa-san and Lee Ki-young, the song features a maiden who digs at the beach, a maiden weaving in a mountain village, and a girl who swings in a rural village. The traditional life and the beautiful life style of the painting are depicted in an atmosphere of strokes with a feeling of hospitality and loveliness. You can experience a very vivid Northern sentiment in this song. Shin Min-yo's ``Jeju's Lady'', released four years earlier, is similar to `Hamgyeongdo Lady'' It is a very rare early work written on the theme of Jeju Island.


Lyrics for Kim Bok-hee's song 'My Hometown Chilbiri'


The lyricists who sent the lyrics to the Kim Bok-hee song were the best experts of the time. Their list shows Lee Yun-yoon, Kim Byuk-ho, Lee Go-bum, Cho Young-chul, Jeon Soo-rin, Kim Dong-un, Judo Soon, Lee Hyun-kyung, Lee Ha-yun, Kang Nam-wol, Oh Kwan-ja, Go Pa-young, Kim Pal-ryeon (Kim Dong-hwan), Ko Mabu, Hong Hee-myung, Park Hwa-san, Yu Chun-su, Kim Po-mong Pung, Cho, Byun-un, Kim Song-pa, and Kang Hae-in. Among them, there are nine writings of Gomabu, four pieces of Park Hwasan and Gopa Young. The composers who worked together include Jeon Soo-rin, Kim Kyo-sung, Kim Joon-young, Na So-un (Hong-nan), Tak Sung-rok, Kim Je-seok, Kim Myun-kyun, Hyeong-seok Ki, Moon Ho-wol, Lee Ki-young, Choi Sang-keun, Ko Chang-geun, and the Japanese Sejeon (???).


Among them, Jeon Soo-rin is the most numbered, with 15 pieces, Nassoon (7) by Hong Nanpa, and 5 by the Japanese composer. The singers who sang with the duet were Lee Kyu-nam, Kim Kyo-sung, Son Geum-hong, Lee Bok-bon, Kim Hae-song, and Lee Hoon-sik. It is also unusual to see a record of composer Kim Kyo-sung in duet.


In the heyday of Kim Bok-hee's career as a singer, the reviews of her performances are generally good. In the July 5, 1936 Daily Newspaper, Kim Bok-hee's special interview was published, and in the popular magazine Samchully, Kim Bok-hee's articles were published several times. An interesting fact is that Kim Bok-hee was a singer in Pyongyang's ready-made Kwon. According to an interview with Samchully, Kim Bok-Hee lived in a detached house with a nameplate of Kim Bok-Hee made of white porcelain at 18, Gyeongjae-ri, Pyongyang.


It is possible to guess Kim Bok-hee's special popularity as he has been invited to many popular stages. Kim Bok-hee is a representative singer of Victa Records when 30 singers appear on a stage at the Pyongyang Soccer Team Sponsorship Conference held on March 5, 1935, at the Pyongyang Football Club Sponsorship.


In the announcement on the stage where Kim Bok-hee appeared, 'she listened to the record and it is drowned in its aesthetics,' 'It will be a chance for Kim Bok-hee fans to listen to the devotional song that Stejiu sings'.


-<Praise song>

A star that is very faint on the beach

Forget all the painful dreams

while Singing songs

Being Left alone from the beloved

just follow the stars, my love

Goodbye, because I will leave you

Don't hold on me of going to come back

I'm only trying to close my chest with wet sleeves

Don't ask me when I will come back

My body goes but I will leave my love alone

Just follow the stars, my love

Goodbye, I will leave you

Newspaper articles frequently appeared and her songs were frequently selected on the JODK radio program. She became so popular that when she traveled from Pyongyang to Seoul more frequently, she could afford to fly by plane. Kim Bok-hee was ranked fifth in the record singer's popular voting in 1935, followed by Wang Soo-bok, Sun Woo Il-sun, Lee Nan-young, and Jeon-ok. Even when the media criticized that the volume of records increased and the quality decreased, the praise of Kim Bok-hee's song was exceptional.


“Beautiful Cain (??) of North Korea and Kim Bok-hee on an airplane expedition” There was a time when people showed off their existence with such a magnificent introduction phrase, but singer Kim Bok-hee was still young after only five months of activities at Poridoru Records. When the junior singers were hidden from existence, they left the song without hesitation. After retirement, it is presumed to have a quiet retirement, but there is no way to confirm it.


In the 1960s, one saw a brief appearance on Dong-A, and in the early 1990s, one heard testimonies that she would spend the rest of his life as a Catholic in Seoul. Imagine how a glamorous Cain of the past who was lonesomely buried in the winds of obliv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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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LATION OF LYRICS:

(based upon Google Translations only !!)

[유성기 가요] "울고싶은 마음 - 김복희

"울고싶은 마음"

李扶風 작사/ 李冕相 작곡/ 노래 金福姬/ 대사 全玉

(1937년 11월 Victor레코드 발매 KJ-1155A)

<대 사>

찬 바람이 붑니다

조각 달빛조차 창백하게 얼어 붙었습니다

어쩌면 이다지도 쓸쓸하고 외로운 밤일까요?

아~ 저 바람 소리

그 날도 이렇게 바람부는 밤에

당신은 가버리고 말았겠지요?

사랑을 잃어버린 이 가슴 속에

물결치는 이 설음을 어이 할까요?

생각할수록 怨望스럽습니다

怨望스러워요.

이 밤이 다가도록 울어 볼까요?

울어도 못 오시는 사나히의 마음

열 일곱 풋사랑을 다 바친 것이

아~ 한없이~ 怨望스러워~

<대 사>

怨望하고 怨望하면서도 잊을 수 없는

지난 날의 傷處를

나만 혼자 부둥켜 안고 애태우는 이 瞬間

얼마나 잊으리라 잊어버리자

거듭거듭 맹세하였던가요?

아~ 그러나 모든 것이 다 꿈이었어요

애타는 생각도 한없이 그리움도

부질없는 꿈이었어요

이제는 눈물만 구비구비 사모친 이 가슴에

옛 사랑의 痕跡만이 남아 있으니

그대여 이 한밤을 끝없이 울어볼까요?

사랑은 하염 없는 꿈이던가요?

눈물만 구비구비 사모친 가슴

이제는 나의 품에 痕迹만 남아

아~ 한없이~ 울고 싶어요~

<대 사>

아- 울고 싶어요

(울고 싶은 마음 - 김복희)

1930년대 명가수 김복희와

<울고 싶은 마음> KBS 사우회

1930년대를 대표하는 남, 여가수는 1935년에 삼천리지에서 실시한 레코드가수 인기투표결과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남자, 여자 각 5명씩 모두 10명을 선발한 가수의 곡을 골라 춘하추동방송 사연깊은노래 카테고리에 올렸습니다. 오늘은 그 마지막 편으로 김복희님에 관한 얘기입니다.


그 인기투표에서 선발된 5사람의 여자가수 중 1위 왕수복, 2위 선우일선, 5위 김복희님이 (오늘 말씀드리는) 평양기생 출신이고 활동 시기나 연배가 비슷하며 신민요라고 하는 가요로 인기를 모았던 분들입니다. 주로 평양에서 기생 활동을 했던 이 분들이 바쁜 틈을 내어 레코드 취입을 하기위해 서울을 왕래 할 때면 그 어렵던 비행기를 타야 했다는 얘기는 잘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 최고의 작곡가로 알려진 홍난파, 전수린님이 작곡한 노래를 많이 불렀던 김복희 노래는 품격이 있어서 지식층으로부터 많은 인기를 모았습니다.


오늘 듣고 계시는 이부풍작사 이면상작곡 울고 싶은 마음 역시 당시 최고의 작사 작곡가의 노래입니다. 이면상은 북한에서 활동한 작곡가여서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일제 강점기나 월북 후에 북한에서 최고의 작곡가로 대우받던 분이었습니다. 데뷔곡, 애상곡, 1935년에 제작한 춘향전의 주제곡 「그리운 광한루」을 비롯해서 제주 아가씨, 함흥 아가씨, 단장원, 굴 따는 아가씨, 우리고향, 사향루, 가시옵소서 등 많은 불후의 곡을 남겼습니다.

"I want to cry"

A cold wind blows.

The sculptures in the moonlight looks pale frozen

It is a desolated night

Ah ~ that wind.

Would you have gone on that windy night?

In this heart one's lost love,

How do you sense this waving sound?

The more I think about it, the more it fits.

Let's cry for the night to come

The heart of Sanahi is not able to cry

All seventeen green loves long

Ah ~ it fits so well ~

The Stiff and unforgettable Past day

I'm the only one who hugged alone and he teases me

Forgetting how much of it I will forget

Did you not swear again and again?

Ah ~ But everything was a dream

Even the longing thoughts

It was a silly dream

Now I only have tears left in my heart

Only the love of old days remains

Let's cry in this endless night

Is love but a dream without a dream?

My heart is filled with tears

Now only my eyes remain embedded

Ah ~ I want to cry ~

Ah- I want to cry

Written by 李 扶風 / Composition by 李 冕 相 / Song 金 福 姬 / Performer 全 玉

(November 1937 Victor record release KJ-1155A)

With famous singer Kim Bok-hee in the 1930s

<Heart to cry> KBS society

Kim Bok-hee sang many songs written by Hong Nan-pa and Jeon Soo-rin, known as the best composer at the time, has gained popularity from the knowledgeable class because of her dignity. Lee Bu-pung lyrics of the "I want to cry" song were written by the best composer of the time. Lee Myung-sang was not well known because he was a composer who worked in North Korea, but he was treated as the best composer in North Korea after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or North Korea. In addition to his debut song, besides Aesop, and Chun Hyangjeon's theme song `Great Gwanghanru'' from 1935, we have left many other immortal songs such as "Jeju lady", "Hamheung lady", "Jangwon", "the oyster picker", "our hometown", and so on.


김복희 - 잊으시면 몰라요 (36/7)

님이여 잔약하온 이내 몸을요

한시도 잊으시면 나는 몰라요

언제나 당신만을 그리는 이 몸

어린 몸이오니 잊지 마세요 네

잊으시면 몰라요 잊지를 마세요 네

님에게 바친 마음 변하오리까

열두 번 죽어도요 한 맘이지요

죽으라 하시오면 죽사올 이 몸

어린 몸이오니 잊지 마세요 네

잊으시면 몰라요 잊지를 마세요 네

님께서 정이 없다 버리셔도요

깨끗이 한 맘으로 기다리옵다

언제나 부르시면 다시 가올 몸

어린 몸이오니 잊지 마세요 네

잊으시면 몰라요 잊지를 마세요 네

이 밤도 달빛 아래 홀로 앉아서

내 사랑 당신을요 생각하면서

가슴에 타는 정을 달래는 이 몸

어린 몸이오니 잊지 마세요 네

잊으시면 몰라요 잊지를 마세요 네

side A 01 무정의 꿈 김복희

side B 01 잊으시면 몰라요 김복희

<잊으시면 몰라요>는 가수 金福姬님이 36년 7월에 빅터레코드에서 발표한 노래입니다.


<아랫마을 彈實이;V49429/李圭南노래>와 같이 발매된 이 노래는,高馬夫作詩/細田義勝作曲의 작품으로,38년 3월에,<無情의 꿈>과 같이 대중반(KJ-1172)으로 재발매된 곡입니다.

'Don't Forget It'

Dear Sir, I'll be dead soon.

I don't know if you will forget me

This body that always draws only towards you

I'm young, so don't forget

I don't know if you will forget

Would you change your mind?

12 deaths. Just One heart.

If I die, this body will die.

I'm young, so don't forget

I don't know if you will forget

Even if you have no affection

Wait for someone's heart

Always call me back to you

I'm young, so don't forget

I don't know if you will forget

This night is sitting alone under the moonlight

Thinking of you my love

This body calms the burning heart

I'm young, so don't forget

I don't know if you will forget

side A 01 Heartless Dream

side B 01 Don't You Forget

(1936/1937)

<Don't Forget Me> on Victor Records, by singer 金 福 姬.

This song, which was released along with Song of the Lower Town; V49429 / 李 圭 南 This song, was written by Takamatsuki and Takada, which in March 38, was a popular song (KJ-1172).

Victor KJ 1210

#30s #Japaneseoccupation #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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