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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숙 / Lee Jung-Sook / Lee Jeong-Suk

September 15, 2019

 

 

유성기로 듣던 가요사 / Songs that I heard during the musical period  from 1925~1945 [Disc 1]

 

* 4 낙화유수(落花流水) (강남달) / Fallen Blossoms Flowing Water (1929)

* 6 오빠생각 / Brother (1930)

 

In my radio show I described the 2 songs as such : 

 

"4 This track is a waltz with piano and accordion lead. The track is a bit warbled in sound, but shows a nice song. 6 The next waltz is with trumpet/brass arrangements too. Then we have the first Japanese-like melody, interpreted with a bizarre voice and singing interpretation."

 

(tracks with * I consider essential listens, also very suitable for western radioshow airplay)

 

 

유성기로 듣던 여명의 한국동요(1924~1945) [Disc 1-2]

 

CD1 1오빠생각 / Brother

2 고드름 / Icicle

* 5 설날 / New Year

8  귀뚜라미 / cricket

9 하모니카 / harmonica

* 11이경숙 / Lee Kyung-Sook, 이정숙 / Lee Jeong-Suk, 최명숙 / Choi Myeong-Suk - 꿀돼지 / Honeypig

12 이경숙 / Lee Kyung-Sook, 이정숙 / Lee Jeong-Suk, 최명숙 / Choi Myeong-Suk- 골목대장 / Alley

 

CD2 1 이정숙 / Lee Jeong-Suk - 우리애기 행진곡 / I like our marching song 

12 짱아 / Chan

13 갈잎 피리/ Leaf Flute

 

This double album more is the essence of what nursery rhymes song had to offer, an original form of music, which seem to have been kept somewhat out of influence reach of Japanese song approach. The compilation is very special and recommended, also because the different voices give even a bit more alternation of this in fact beautiful and unique form of music. This compilation is not only worth it only for Lee Jung-Sook’s contribution alone, but here I will quickly review her songs. 오빠생각/ Brother is a super nice waltz with child-like voice and arrangements by humpapa brass and strings. A classic. 고드름/ Icicle has chamber music-like arrangements and starts with an instrumental intro, has the same shrill child-like voice of the singer, singing it’s song very slowly. 설날/ New Year also includes piano in the background quickly playing the melody with five times as much notes as the lead melody, which is a nice melodic idea. 귀뚜라미/ Cricket sounds a bit more hymn-like (piano, strings, reeds and brass). 꿀돼지/ Honeypig is a short sung by a children choir (piano, strings), and sound a bit like a wind-up song. 골목대장/ Alley  (40142 A) is an easy to sing-along song by the same children voices, nicely and almost classical arranged led by piano and combo. 우리 애기 행진곡/ I like our marching song starts a bit more jazzy, a march with sharp voice and with a great Hawaiian guitar and wooden xylophone and brass solo and duo part. 나무잎 배/ Leaf Pears by이경숙/ Lee Kyung-Sook & 이정숙/ Lee Jung-Sook is also well arranged in a slightly more jazzy way as well. It doesn’t sound too much different to some Chinese children so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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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LATED LYRICS:

 

I translated the texts with help of Google Translate only and a assumption what the context could express here. If it is too different from reality, please mail me and guide me. Thanks.

 

*                                            이정숙 오빠생각[1930,유성기로 듣는 노래]

 

 작사: 최순애

 작곡: 박태준

 뜸북 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

 뻐꾹 뻐꾹 뻐꾹새 숲에서 울 제

 우리 오빠 말 타고 서울 가시면

 비단구두 사가지고 오신다더니

 

 기럭 기럭 기러기 북에서 오고

 귀뚤 귀뚤 귀뚜라미 슬피 울건만

 서울 가신 오빠는 소식도 없고

 나뭇잎만 우수수 떨어집니다

 

(Thought of her) Brother

 

  I'm crying in the rice paddies

  Cuckoo cuckoo cowl

When my brother goes to Seoul,

  he would bring me silken shoes.

 

  Ducks geese come out of the geese drum

  Cricket cricket - Sad crying

  From the Brother in Seoul there is no news

  Only rain drops on the leaves

 

  Lyrics: Choi Soon-ae ;   Composed by Taejun Park

 

[1930, Song of the Meteor] 落花流水(강남달) sung by Jungsuk Lee was recorded in 1929. The first Korean popular song made by electric recording. 落花流水means late spring scenery, flowers are falling upon flowing brook.

 

* '江南 달' (落花流水 1927)金曙汀 작사/ 金曙汀 작곡/ 노래 李貞淑(무성영화 '낙화유수' 주제곡) < 1 >江南 달이 밝아서 님의 놀든 곳 구름 속에 저의 얼굴 가리워졌네 不忘草 핀 언덕에 외로히 서서 물에 뜬 이 한 밤을 홀로 새우나? < 2 >멀고 먼 님의 나라 차마 그리워 寂寞한 가람 가에 물새가 우네 오날밤도 쓸쓸히 달은 지노니 사랑의 그늘 속에 재워나 주오. < 3 >江南의 달이 지면 외로운 身勢 浮萍의 잎사귀에 버레가 우네 찰하리 이 몸이 잠들리로다 님이 절로 오시어서 깨울 때까지~

* 강남(江南) : 중국에서 양쯔강(揚子江) 남쪽 지방을 말한다. 물론 서울 강남지역은 아닐 것이다. 흔히 문학에서는 먼 남쪽나라를 지칭하기도 한다. '강남 갔던 제비' 처럼. 시대적으로 살펴보면일제의 탄압을 피해 북만주로 떠난 이민자들에게 강남이란 두만강 남쪽에 두고온 그리운 고향 조선(朝鮮)이 아니었을까? * 저 : 화자가 상대방에게 앞에서 언급한 사람을 낮추어 가리키는 말. '그'와 같은 뜻. 성경에서 자주 사용된다.* 불망초(不忘草) : 물망초와 같은 말.* 가람 : 강의 옛말. 가사지의 한자 伽藍은 절, 사찰이란 뜻. 誤記인 듯하다.

 

Jiangnan's moon

 

江南 Gangnam's moon was so bright

My face hidden in the clouds

Standing alone on the hill

Is this shrimp alone in the water?

 

I miss your country so far away

A Waterfowl crow along the cold Garam-river (?)

Even tonight the moon is lonely

Asleep in the shadow of love.

 

If the moon in Jiangnan is lonely

Buréa is hanging on the leaves

This body will sleep fast

Until you come to me and wake me up

 

金 曙 汀 writer / 金 曙 汀 composer / singer 李 노래 

(Themed Song of Silent Movie 'Flower Flow')(1927)

 

* Gangnam (江南): The southern part of the Yangtze River in China.

Of course, this is not the Seoul Gangnam area. In literature, in the far south,

Also called. Like 'the swallow that went to Gangnam'. Looking at the times

For immigrants who fled to North Manchuria to escape Japanese oppression,

Wasn't it a good old Joseon Dynasty, south of the River?

* Forget-me-not (不忘 草): the same words as forget-me-not.

* Garam: The old words of the river. Kanji 의 is a temple, a temple. It seems to be 誤 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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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XT INTRODUCTION: 

http://pub.chosun.com/...

 

누가 1930년대 최고의 동요가수였나?

이정숙과 서금영

 

동요(童謠)는 어린이의 생각과 표현을 담아서 만든 가사와 노래의 혼합입니다. 

어린이의 생각에는 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가장 깨끗하고 순진무구한 영혼이 그 속에 깃들어 있지요. 우리 민족이 제국주의침탈로 온갖 시련과 고통에 허덕일 때에 당시 아동문학가들은 많은 동요를 만들어서 힘든 시간을 견디어가던 겨레에게 따뜻한 위로와 격려를 보내주었습니다. 그 이름도 고결한 소파(小波) 방정환(方定煥, 1899∼1831) 선생을 비롯하여, 홍난파, 윤극영, 정순철, 윤복진, 박태준, 윤석중 등 당대최고의 아동문학가 및 작곡가들이 1923년 봄, 색동회를 조직하고 동요보급과 확장에 노력했던 일들은 이제 아득한 신화처럼 여겨집니다. 봉건시대에는 어린이란 말조차 없었지요. 그저 개똥이, 돼지, 강아지 따위의 동물명으로 부르고 최소한의 인권조차 부여되지 않았던 아동들에게 처음으로 ‘어린이’란 이름을 만들어 부르고, 그들의 존재를 하늘처럼 소중하게 생각했던 선각자들의 거룩했던 꿈과 포부를 생각해봅니다.

이런 동요는 1920년대 중반부터 대중들 앞에 그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했습니다. 기록상으로 보면 1926년 9월에 발표된 홍재유의 동요음반 <할미꼿>과 <춤추세>가 첫 음반으로 추정이 됩니다. 그로부터 1939년 5월까지 약 13년 동안 약 230여종이 넘는 동요음반이 10개의 음반회사에서 제작 발매되었습니다. 

동요라는 장르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며 왕성하게 음반을 제작 발매했던 회사는 단연 리갈레코드사였습니다. 여기서 활동했던 동요가수들은 이정숙, 서금영, 이경숙, 최선숙, 원치승, 강한일, 녹성(綠星)동요합창단 등입니다. 김복진은 동화구연(童話口演) 음반을 주로 발표했지요. 리갈 소속 작사 작곡가로는 윤석중, 선우만년, 송무익, 이정구, 신고송, 윤복진, 홍난파, 원유각, 유기흥, 김성도, 박종선, 강석흥, 박소농, 고호봉, 임원호, 이인숙, 민영성, 손정봉, 원치승, 송찬일, 지상하, 현증순, 정윤희, 한만금, 송완순, 김정임, 지상하, 박천룡, 유기흥, 남궁인, 김여수 등입니다.  

두 번째로 동요음반을 많이 제작발매한 곳은 빅타레코드사입니다. 빅타에서 활동했던 가수들은 김연실, 김순임, 윤현향, 강석연, 김정임, 전명희, 송보선, 정경남, 진정희, 계혜련, 신흥동인회 등입니다. 윤백남은 동화구연 음반제작에 참가했습니다. 빅타 소속 작사 작곡가로는 이정구, 모령, 정인섭, 정순철, 최순애, 박태준, 엄흥섭, 안기영, 윤석중, 홍난파와 일본인 중산진평입니다.

세 번째로는 콜럼비아레코드사였고 여기서 활동한 가수로는 이정숙, 채동원, 서금영, 최명숙, 이경숙, 이삼홍 등입니다. 작사 작곡가로는 윤석중, 홍난파, 박태현, 이원수, 방정환, 정순철, 유지영, 윤극영, 한정동, 윤백남 등입니다.  
오케레코드사에서도 아동물음반을 발매했었는데 동요가수로는 김숙이, 정경남, 고천명, 조현운, 김소희, 전병희, 송보선 등이며, 작사 작곡가로는 박세영, 염석정, 김태오, 원유각, 목일신, 김성칠, 조현운 등이 활동했습니다. 

닙본노홍과 같은 일본음반사에서는 홍재유(홍재후), 임건순, 이정숙, 서금영, 이경숙, 최명숙 등이 음반을 발표했고, 작사 작곡가로는 홍난파와 박태준이 전담했습니다. 이글레코드사에서는 서금영, 이경숙, 최명숙이 음반을 내었고, 그들을 위해 김태오, 김신명, 박노춘, 김수경(윤복진), 박수순, 홍난파 등이 작사와 작곡을 맡았습니다. 시에론레코드사에서는 강금자, 신카나리아, 임수금의 음반이 보이고, 닛토레코드에서는 이종옥과 이정숙의 음반이 확인이 됩니다. 디어레코드에서는 강금자와 신카나리아의 동요음반도 보입니다. 태평레코드사는 동요음반 제작발매에 가장 소극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전체목록을 샅샅이 살펴보아도 길귀송의 동요음반 하나만 확인이 됩니다. 여러 음반사마다 발간했던 동요 곡들의 제작에 참여한 가수와 작사작곡자 명단을 살펴보면 이름이 겹치는 경우가 자주 발견이 되지요. 그것은 그들의 활동이 나타내는 인기의 척도나 적극성을 말해주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 이정숙 


취입동요음반들을 가수별로 집계를 해보면 누가 가장 최고의 동요가수였었던가를 우리는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최다취입가수는 단연 50여곡 이상을 음반에 취입한 이정숙(李貞淑)입니다. 그녀는 피아노연주 2곡과 작사 1편까지 포함해서 가장 적극적인 활동을 펼친 한국근대 최고 동요가수였습니다. 이정숙이 활동했던 음반사로는 주된 터전이었던 콜럼비아, 리갈사를 비롯하여 닙본노홍, 이글, 리갈레코드사 등 여러 곳이었습니다. 그만큼 이정숙은 어린 소녀의 몸으로 한국동요사에서 동요음악을 유성기음반으로 취입하여 전국적인 동요보급 확산에 크게 기여했던 인물입니다.

▲ 리갈사에서발매된'오빠생각'가사지 


뜸북 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
뻐꾹 뻐꾹 뻐꾹새 숲에서 울 제
우리 오빠 말 타고 서울 가시며
비단구두 사가지고 오신다더니

기럭 기럭 기러기 북에서 오고
귀뚤 귀뚤 귀뚜라미 슬피울건만
서울가신 오빠는 소식도 없고
나뭇잎만 우수수 떨어집니다

-이정숙의 대표곡 <오빠생각> 전문


이정숙에 이어서 그 다음 위치를 차지하는 동요가수로는 서금영이 16곡으로 두 번째에 해당되고, 김숙이가 15곡, 그리고 녹성동요합창단이 12곡, 최선숙이 11곡, 진정희와 이경숙이 9곡, 김순임와 계혜련이 8곡, 강금자가 6곡, 신카나리아와 최명숙이 각각 5곡, 전명희, 이삼흥, 송보선, 신흥동인회가 각각 4곡씩 발표하고 있습니다. 김정임, 고천명, 임수금, 홍재유(홍재후)는 3곡씩, 강석연, 양재익, 이정옥, 길귀송, 정경남, 윤현향이 2곡씩의 동요를 발표했습니다.

한국근대 최고의 동요가수 이정숙(李貞淑)은 서울에서 태어나 성장했고 중앙보육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정확한 출생연도는 알 수 없지만 1910년에 태어난 서금영과는 거의 동년배로 보입니다. 금강키네마와 조선배우학교를 설립했던 유명영화감독 이구영(李龜永, 1901∼1973)의 누이동생이었지요. 무성영화 <낙화유수(落花流水)>를 김영환과 함께 제작했습니다. 

이때 삽입곡주제가(<강남 달>)를 유경에게 부르도록 했는데 이게 관객들의 뜨거운 반응을 얻게 되자 1929년 7월, 이미 동요가수로 장안에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던 이정숙에게 이 노래를 정식으로 취입시키고 무대 위에서 직접 부르도록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물론 오빠의 배려도 있었겠지만 이정숙은 1927년 5월 닙폰노홍 음반사에서 <이 동리 저 동리>란 동요 곡을 발표했던 이미 어엿한 동요가수였습니다. 윤극영이 조직한 최초의 어린이합창단 ‘다알리아회’가 일본의 닛토레코드 초청으로 우리 동요 17곡을 취입할 때 가장 많은 곡을 취입했던 인기 높은 동요가수이기도 했습니다. 그녀는 리갈과 콜럼비아레코드사의 대표적인 동요가수였고, 그밖에 닙본노홍과 이글, 리갈레코드사에서도 동요곡을 발표했습니다. 

이정숙은 서금영과 함께 유명작곡가 홍난파(洪蘭坡, 1898∼1941)로부터 동요창법에 대한 특별지도를 받았습니다. 1926년 7월15일, 경성라디오방송국이 체신국 방송소를 이용해서 전파를 송출할 때 여기에 최승일과 함께 출연해서 유행가 <곤돌라>, <푸른 별>, <뱃노래> 등을 불렀습니다. 배우 신일선(申一仙, 1912∼1990)은 나운규(羅雲奎, 1902∼1937)의 영화 <아리랑> 주제곡도 이정숙이 처음 부른 것으로 증언합니다. 1927년 9월에는 장충단에서 열린 시민위안 추석놀이 음악영화대회에 단성사 멤버들과 함께 출연하기도 합니다. 

취입음반은 1934년 6월, 리갈에서 내었던 동요 <참새 춤>까지 확인이 됩니다. 1937년 여름, 중앙무대에서 막을 올린 연극 <예수나 안 믿엇더면>(채만식 작) 공연에 아역배우로 출연했던 이름이 보이고, 1956년 서울방송국 어린이프로에 세 차례 출연해서 동요를 부르거나 피아노연주를 했다는 기사만 확인할 수 있을 뿐입니다. 결혼한 뒤 가정생활에 충실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 서금영 


다음으로 손꼽을 수 있는 동요가수로는 서금영(徐錦榮, 1910∼1934)입니다. 그녀는 황해도 황주에서 태어났고, 일찍이 전당포(典當鋪)를 운영하던 부모를 따라 서울로 옮겨와서 살았습니다. 1925년 동아일보 신년호에는 서울의 보통학교 재학생 중 장래가 촉망되는 아동 140명을 선발해서 특집을 꾸몄는데, ‘장래의 문학가’에는 교동보통학교의 윤석중(尹石重, 1911∼2003)과 설정식(薛貞植, 1912∼1953)이 여기에 뽑혔습니다. 그들은 나중에 자라서 예측대로 명망 높은 시인이 되었습니다. ‘장래의 음악가’에는 동덕여자보통학교의 재학생 서금영이 선발되었지요. 뿐만 아니라 수재아동의 가정을 소개할 때 ‘창가 잘 하는 아가씨’로 그녀에 대한 취재기사가 사진과 함께 실렸습니다. 

보통학교 졸업 후에는 이정숙이 다녔던 중앙보육학교로 진학했는데 재학시절 이미 이름난 동요가수로 여러 무대에 올랐습니다. 1931년 중앙보육학교 졸업생 명단에 서금영의 이름이 확인됩니다. 같은 해 이화여전 졸업생 명단에 시인 모윤숙(毛允淑)의 이름이 보이는 것을 보면 그와 동년배쯤 될 것입니다. 서금영도 이정숙과 마찬가지로 홍난파로부터 각별한 사랑을 받으며 창법지도를 받았던 제자였습니다. 1931년 1월 <바닷가에서>, <무명초> 등이 취입된 첫 음반을 콜럼비아에서 발표한 뒤 1934년 6월 <해바래기>, <봉사꼿>까지 내리닫이로 10여곡 이상을 취입하면서 명성을 얻었습니다. 높은 인기를 반영하듯 콜럼비아를 주된 무대로 하면서 리갈, 이글, 닙본노홍 등 여러 레코드사에서 초빙을 받아 다양한 음반들을 발표했지만 그해 여름 장티푸스로 돌연히 세상을 떠났다고 하네요. 당시 서금영의 나이 불과 23세였습니다. 

홍난파는 서금영의 사망소식을 접하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1931년 홍난파의 질녀 홍옥임이 동성애에 빠져서 파트너와 함께 열차에 투신자살한 쇼킹한 사건이 있었는데, 그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아끼던 제자 서금영의 사망소식을 접했으니, 홍난파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짐작이 됩니다. 이런 과정에서 ‘울밑에선 봉선화야 네 모양이 처량하다’로 시작되는 절창 <봉선화>가 빚어졌다고 하는군요. 노래 속의 봉선화는 질녀이기도 했고, 요절한 제자 서금영의 표상으로 작용했을 것입니다.


아가야 나오너라 달마중 가자
앵두 따다 실에 꿰어 목에다 걸고
검둥개야 너도 가자 냇가로 가자

비단물결 남실남실 어깨춤 추고
머리감은 수양버들 거문고 타면
달밤에 소금장이 맴을 돈단다

아가야 나오너라 냇가로 가자
달밤에 딸각딸각 나막신 신고
도랑물 쫄랑쫄랑 달마중 가자

-서금영의 대표곡 <달마중> 전문


우리들의 어린 시절, 아련한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이정숙과 서금영을 비롯한 옛 동요가수들의 노래는 한 세기의 세월을 껑충 뛰어넘어서 21세기에도 여전히 우리 심금을 울리게 합니다. 두 사람의 음색과 창법을 비교해보면 이정숙은 서금영에 비해 한층 낭랑하고 또랑또랑한 울림으로 펼쳐집니다. 가련함과 애처로움이 듬뿍 느껴지는 애수의 정서가 서금영에 비해 더욱 가슴을 아리게 합니다. 이에 대조적으로 서금영의 음색과 창법은 나직하고 은은함이 느껴지는 편안한 분위기가 온몸을 부드럽게 감싸줍니다. 

다른 동요가수들의 경우도 두 소녀의 창법과 크게 다르지 않으며 대체로 유사한 경우라 할 것입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한국어의 억양과 발음법이 10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는 동안 엄청나게 그 변화의 양상을 나타내고 있다는 점입니다. 어떤 이는 초창기동요를 들을 때 마치 북한가요를 듣는 느낌과 비슷하다는 소감을 말하기도 합니다. 그만큼 북한가요에 남아있는 1930년대 창법의 흔적도 있는 것일 테지요. 여러분은 혹시 어떤 소감을 갖는지요?

대표적인 동요전문작사가로는 윤석중, 김수경(윤복진), 유기흥, 원유각, 윤극영, 김성도, 박세영, 이정구, 유지영, 송완순, 엄흥섭, 한정동, 김태오, 방정환, 최순애 등을 들 수 있습니다. 동요전문작곡가로는 홍난파를 위시하여 윤극영, 박태준, 박태현, 정순철, 김영환, 김신명, 안기영, 원치승, 조현운, 염석정 등과 일본인 중산진평을 손꼽힙니다.

식민지시대에서 동요음반은 이처럼 가슴속에 쌓인 상처와 울분으로 고통스러워하던 민족의 삶에 마치 어머니의 손길과도 같은 부드럽고 아늑한 사랑과 평화의 분위기로 마음을 한결 안정시켜주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활동 속에 이정숙과 서금영, 그리고 이름이 아주 묻혀버린 소녀 동요가수들의 애달픈 노력이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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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gle Translation :

 

Who was the best "nursery rhyme singer" of the 1930s? Lee Jung Sook and Geum Young Seo. A nursery rhyme is a mixture of lyrics and songs made from children's thoughts and expressions.

 

In the mind of a child, the most pure and innocent soul in the world is in it. When our nation suffered from all kinds of trials and sufferings due to imperialist invasion, the children's literaries of the time made many nursery rhymes and gave warm consolation and encouragement to the people who had endured their hard times. In the spring of 1923, the best children's literary and composers such as Hong Jung-fa, Yoon Kuk-young, Jung Soon-cheol, Yun Bok-jin, Park Tae-jun, and Yoon Seok-jung, including the ?? No. The work that I tried to expand is now considered a myth. In the feudal age, there was no word for children. Just think of the holy dreams and aspirations of the pioneers who made the name 'children' for the first time for children who called dogs, animals such as pigs and puppies, and who were not given even minimal human rights, and valued their existence as heavenly. see.

 

This agitation began to appear in public in the mid 1920s. According to the record, Hong Jae-yu's nursery albums <Halumi> and <Dance Trend>, released in September 1926, are the first records of this kind. Since then, about 13 years until May 1939, more than 230 nursery rhymes have been produced and released by 10 record companies.

 

Regarding the genre of nursery rhymes, the company that produced and released the album vigorously was Regal Record Company. The nursery singers who were active here were Lee Jung-suk, Seo Geum-young, Lee Kyung-sook, Jeon-sook Won, Won Chi-seung, Kang Il-il, and Nokseong Song-song Choir. Kim Bok-jin mainly released fairy tales. Regal composers include Yun Suk Joong, Sun Woo Man, Song Mu Ik, Lee Jung Gu, Shin Song Song, Bok Jin Jin, Hong Nan Pa, Won Yok Pak, Organic Heung, Kim Sung Do, Park Jong Sun, Kang Seok Heung, Park So Nong, Go Ho Bong, Executive Ho, Lee In Sook, Min Young Sung, Son Jung Bong, Won Chi Seung, Song Chan-il, Jeon Ji-ha, Jeung Jeung-sun, Jung Yun-hee, Han Man-geum, Song Wan-soon, Kim Jung-im, Jeon Ji-ha, Park Chun-ryong, Yu-hung Heung, Nam Gung-in, Kim Yeo-su.

 

The second place that produced and released many nursery rhymes albums is Victa Records. The singers who worked in Victor are Kim Yeon-sil, Kim Soon-im, Yoon Hyun-hyang, Kang Suk-yeon, Kim Jung-im, Jeon Myung-hee, Song Bo-sun, Jung Kyung-nam, Chul-hee Hee, Gye Hye-ryeon and Shin Heung Dong-in. Yoon Baek Nam participated in the production of a fairy tale performance record. The songwriters of Victor Records are Lee Jung-gu, Moyung, Jung In-seop, Jung Soon-cheol, Choi Soon-ae, Park Tae-jun, Eom Heung-seop, Ahn Ki-young, Yoon Suk-jung, Hong Nan-pa and Japanese Zhongshan Jing.

 

The third was Columbia Records, and the singers who worked here were Lee Jung Sook, Chae Dong Won, Seo Geum Young, Choi Myeong Sook, Lee Kyung Sook, and Lee Sam Hong. The composers include Yun Suk Joong, Hong Nan Pa, Park Tae Hyun, Lee Won Soo, Bang Jung Hwan, Jung Soon Cheol, Yoo Ji Young, Yoon Kuk Young, Han Jung Dong, and Yun Baek Nam.

O'Record also released a children's music record, including nurses Singer Kim, Kyung Kyung Nam, Go Chun Myung, Cho Hyun Woon, Kim So Hee, Jeon Byung Hee, Song Bo Sun, and songwriters. Hyun-woo Cho and others.

 

On Japanese labels such as Nippon No-hong, Hong Jae-yu (Hong Jae-hoo), Lim Gun-soon, Lee Jung-sook, Suh Geum-young, Lee Kyung-sook, and Choi Myeong-sook released their albums. At Egle Record, Seo Geum-young, Lee Kyung-sook, and Choi Myeong-sook recorded the album, and for them, Kim Tae-oh, Kim Shin-myeong, Park No-chun, Kim Soo-kyung (Yun Bok-jin), Park Soo-soon, and Hong Nan-pa wrote and composed music. In Sierra Records, you can see recordings of strong contributors, new canaries, and deposits. In Nitto Records, records of Jong-ok Lee and Lee Jung-sook are confirmed. In the Dear Records, you will also be able to see nursery rhymes and new Canary songs. Taepyeong Records seems to have been the most passive in the production of nursery rhymes. Even if you look through the entire list, you can see only one song of the song. If you look at the list of singers and songwriters who participated in the production of nursery rhymes published by various labels, it is often found that names overlap. It's a measure of popularity or a measure of their activity.

 

Lee Jung Sook, the best nursery rhyme singer

 

If we count the songs by singers, we can easily see who was the best nursery rhyme singer. The most influential singer is Lee Jung-sook, from whom over 50 songs have been recorded. She was one of the most sway singers in Korean modern history, including two piano plays and one song. The music labels Lee Jung-sook played were several places including Columbia, Regal, and Nippon-no-Hong, Eagle, and Regal Records. Lee Jung-sook is a young girl who has contributed to the spread of nursery rhymes throughout the country by incorporating nursery rhyme music from the Korean nursery rhymes.

 

-Lee Jung Sook's representative song <Brother Thinking>

 

Next to Lee Jung-sook, the song was the second place with 16 songs, Seo Geum-young, 15 songs by Kim Sook-yi, 12 songs by Nok Sung-dong Choir, 11 songs by Choi Sook-sook, 9 songs by Shin-hee and Lee Kyung-sook, and Kim Soon-im and Gye. Hye Ryun has 8 songs, Kang Geumja has 6 songs, Shin Canaria and Choi Myung Sook have five songs each, and Jeon Myung Hee, Lee Sam Heung, Song Bo Sun, and Sin Heung Dong Inhoe are each presenting four. Kim Jung-im, Go Cheon-myung, Lim Su-geum, and Hong Jae-yu (Hong Jae-hu) released three songs each, Kang Seok-yeon, Yang Jae-ik, Lee Jung-ok, Gil Gui-song, Jung Kyung-nam, and Yun Hyun-hyang.

 

The best nursery rhythm singer in Korea, Lee Jung-sook was born and raised in Seoul and graduated from the Central Childcare School. The exact year of birth is unknown, but it is almost the same age as Seo Geum-young, born in 1910. He was the younger sister of Lee Gu-young (李 유명 永, 1901-1973), a famous film director who founded Geumgang Kinema and Chosun Actor School. The silent film <Flower Flowing Water> was produced with Kim Young-hwan.

 

At this time, the theme of the song was sung by Yoo Kyung. I called it myself. In the process, of course, my brother's consideration, but Lee Jung-sook was a sway singer who released the song `` Lee Lee-ri '' in May 1927. It was also a popular nursery singer whose first choir sung by Kuk Yeong-young, the `` Dalia Association '', took the most of our songs when we invited 17 songs to Japan's Nitto Record. She was a representative nurse singer of Regal and Columbia Records, as well as Nippon Noh Hong, Eagle and Regal Records.

 

Lee Jung-sook, along with Sue Geum-young, received special guidance on nursery rhyme from the famous composer Hong Nan Pa (洪 (, 1898-1942). On July 15, 1926, when Kyungsung Radio Station broadcasted radio waves using the Post Office Broadcasting Station, it appeared with Choi Seung-il and sang `` Gondola '', <Blue Star>, and <Singing Song>. Actor Shin Il-sun (申 一 仙, 1912-1990) testifies that Lee Jung-suk also sang the theme song of Na Un Kyu (羅雲奎, 1902-1937). In September 1927, she appeared with Danseongsa members at the Citizen Comfort Chuseok Games Music Film Contest held in Jangchungdan.

 

The blow record is confirmed until the nursery rhyme <Sparrow Dance> which was performed in Regal in June 1934. In the summer of 1937, he appeared as a child actress in the play `` Jesus or Not Believe '' (Chae Mansiksik), which ended on the central stage.In 1956, she appeared on Seoul Children's Pro three times and sang songs or piano. You can only check the article that said. She is believed to have been faithful to his family life after he got married.

 

Seo Geum-young

 

The next best singer is Seo Geum-young (徐錦榮, 1910-1934). She was born in Hwangju, Hwangdo, and moved to Seoul to live with her parents, who had previously run a pawn shop. In the 1925 Dong-A Ilbo New Year's Issue, 140 specially selected children from Seoul's regular schools are selected for the future. , 1912-1953). They later grew up to be prominent poets as expected. Seo Geum-young, a student of Dongduk Women's Normal School, was selected for the future musician. In addition, when introducing the home of a child with a child, a reporter about her was published with a picture.

 

After graduating from ordinary school, I went to the central nursery school where Lee Jung-sook attended. In 1931, the name of Geumyoung Seo is confirmed on the list of graduates of the Central Nursery School. In the same year, if you see the name of the poet Mo Yun-sook on the list of graduates of Ewha Women's University, it will be about the same age as him. Like Geum-sook Suh, Seo Geum-young was a disciple who received special guidance from the Hong Nang and was instructed. In January 1931, he released his first albums, including <Beach by the Sea> and <Momyoungcho,> in Columbia in 1934. . Reflecting its high popularity, he made his major debut in Columbia and released various recordings from several record companies including Regal, Eagle, and Nippon Norhong, but he died of typhoid fever that summer. At that time, she was only 23 years old.

 

The Hongnanists were shocked when they heard about Sue Geum-young's death. In 1931, Hong Ok-im, a niece Hong Ok-im, fell into homosexuality and shocked herself with a partner. She heard about the death of the disciple Seo Geum-young, who had died before the shock. . In this process, the incense <Bambonghwa> is started, which begins with 'Bambong beneath your shape'. The balsam in the song was a niece and would have served as a symbol of the disciple Seo Geum-young.

 

Come on, sweetie.

Pick it up, put it on a thread, hang it around your neck

Black dog, let's go towards the stream

 

Silky silken room

If you're riding a weeping willow

Salt is drifting into the moonlight

 

Come on, stream, sweetie.

Reported clogs in the moonlight

Let's go to the ditch

 

-Seo Geum-young's representative song <Dalmama>

 

The songs of former singers, including Lee Jung-suk and Seo Geum-young, who remind us of our old memories of childhood, are still ringing our hearts even in the 21st century. If you compare the tone of the two people and how to create a window, Lee Jung-sook is more crisp and rounder than Seo Geum-young. The feelings of sorrow, which are full of pity and tenderness, are more heart-loving than Seo Geum-young. In contrast, Sue Geum-young's tone and changgeum softly wraps the whole body with a relaxed atmosphere that is soft and subtle.

 

Other nursery rhymes are not much different from the creation of the two girls and are generally similar. One interesting fact is that Korean accents and pronunciations have changed dramatically over the course of nearly 100 years. Some people say that when they hear their first nursery rhyme, it is similar to hearing it. There may be traces of the 1930s founding that remain in North Korea. How do you feel?

 

Representative nursery rhyme singers include Yun Seok-jung, Kim Su-kyung (Yoon Bok-jin), Yu-Hung Yu, Won Yu-gak, Yoon Kuk-young, Kim Sung-do, Park Se-young, Lee Jung-gu, Yu Ji-young, Song Wan-soon, Uhm Heung-seop, Han Jeong-dong, Kim Tae-oh, Bang Jung-hwan, and Choi Soon-ae. Song composers include Hong Poong, Yoon Keuk-young, Park Tae-jun, Park Tae-hyun, Jung Soon-cheol, Kim Young-hwan, Kim Shin-myung, Ahn Ki-young, Won Chi-seung, Cho Hyun-un, and Yeom Seok-jeong.

 

In the colonial era, nursery rhythms calmed the hearts of the people who suffered from the wounds and tears accumulated in their hearts with a gentle and cozy atmosphere of love and peace, just like a mother's hand. We must remember that in these activities there was a painstaking effort by Lee Jung-sook, Suh Geum-young and the girl nurse singers whose names were so buri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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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OGRAPHIES:

http://blog.daum.net/_...

 

최초의 영화 주제가 '강남달' 

(최초로 발매된 창작가요) 

 

김서정 작사, 김영환 작곡, 이정숙 노래 

1927년 무성영화 낙화유수 주제가 

1929년 3월 음반발매

이노래는 1927년에 무성영화 "낙화유수"가 상영되던 단성사 극장 무대아래서 이정숙이 직접 부른 주제가로 1929년에 유성기 음반으로 취입되어 발매되었다. "강남의 달밤"으로 불리기도 하였으며 8.15 이후에는 "강남달"로 알려져 1960년대에 신카나리아 등 여러명의 가수가 LP음반으로 취입하였다.

 

1929년에 나온 음반의 음질은 1936년 이후의 음반과 많은 차이가 있다. 

1920년대의 음반 취입시설과 기술적인 부족으로 음질이 떨어지고 음악반주 또한 피아노, 바이올린, 트럼펫, 트럼본, 아코디온 등으로 이루어진 소규모 악단이다. 이정숙이 부른 "낙화유수"가 이러한 음반에 속한다.

 

↑ 1927년 10월 6일 단성사에서 개봉한 "낙화유수"

주연 : 복혜숙, 이원용, 장일성, 정산석 

 

1930년에 빅터레코드에서 "낙화유수"를 리바이벌 했는데 인기배우 이면서 노래 잘하기로 유명한 김연실이 불렀다. 김연실은 6.25전 월북하여 80대의 노인으로 현재 평양에 생존하고 있으며 최은희가 납북되어서 김연실과 상면하였다. 무성영화 "낙화유수"는 단성사에서 흥행에 성공을 거두어 1940년에 실시한 유성영화와 무성영화의 10대 영화선정행사에서 무성영화편의 10대 영화에 선정된 작품이다.

 

연출은 나운규와 함께 활동하던 이구영감독이고 여주인공은 1960년초에 사망한 복혜숙이 맡았다. 진주기생과 화가의 사랑이 비운의 러브스토리로 끝을 맺는 멜로물의 영화로 영화 촬영 중에는 복혜숙이 깊은 개울물에 빠져 진짜 낙화유수가 될뻔 하였다. 물에 몸을 던져 자살하는 장면을 촬영하는 도중 물속에 잠겨 떠내려 가는 것을 가까스로 구조하였다.

 

물깊이도 조사하지 않고 진행하던 초창기의 영화제작의 한 단면이었다. 청량리 일대가 촬영장소였는데 당시의 그곳은 울창한 숲과 큰 개울이 많았었는데 추측으로는 제기동의 용두천이나 중랑천으로 짐작된다. 주제가를 부른 이정숙은 전문적인 가수가 아니고 중앙보육학교(중앙대학교 전신)에서 홍난파에게 음악공부를 한 소녀로 "낙화유수" 영화감독 이구영의 동생이기도 하다.

 

1926년의 무성영화 아리랑의 여주인공인 신일선의 회고록에 의하면 이정숙은 단성사에서 아리랑을 상영할때에도 아리랑을 노래하였다고 회고하고 있다. 이정숙은 최초로 동요음악을 유성기 음반으로 취입하여 전국적인 동요보급확산에 일조를 한 인물로, 유명한 "오빠생각" "퐁당퐁당" "고드름" "봄편지" 등을 1927년 부터 1932년 사이에 많이 취입하였다. 이정숙이 취입한 유성기 음반 중 현재 남아있어 들어볼 수 있는 동요는 홍난파 작곡으로 "가을밤" "기러기" "봄편지" "고드름" "오빠생각" 등 10여 곡이 있다.

 

작곡가 김영환의 행적은 구체적으로 밝혀져 있지 않은 베일에 가린 연예인물중의 한사람이다. 무성영화시대의 일류변사로서 극장관객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았고 인력거로 장안의 권번가를 누비고 다녔다. 무성영화 시대에는 영화내용보다 변사의 인기에 의하여 극장의 관객 숫자가 죄우되던 변사의 영향력이 막강할 때 였다. 진주권번 기생의 아들로 알려진 김영환은 1924년에 무성영화 "장화홍련전"을 감독하였고, 변사활동 중에도 1928년 "세걸인(세동무)", 1929년 "약혼", 1931년 "연애광상곡"을 감독하는 등 다재다능성을 보였다.

 

하늘을 치솟던 인기도 1935년에 발성영화가 출현하면서 무성영화는 사양길에 접어들고 변사들 또한 대중들로 부터 멀어지기 시작하였다. 물 쓰듯 돈을 쓰고 화려한 생활을 하던 김영환은 시에론레코드에서 가끔 유행가, 만담, 넌센스를 만들거나 레코드를 직접 취입하기도 하였으나 마약으로 방황과 좌절의 시간을 보내다 끝내 마약중독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김영환 변사의 음성은 1930년초에 유성기 음반으로 취입한 것이 남아있는데 내용은 무성영화 중에서 일부를 간추린 음반으로 구성되어있다. 남아있는 음반은 무성영화 "젊은이의 노래" "부활" "세동무" "심청전" "풍운아" "동도" 등 몇편이 있으며 여배우들과 함게 취입한 만담, 넌센스 등도 있다. <이근태 가요사 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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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first movie theme song 'Gangnamdal' (The first released artist)

 

Lyrics written by Kim Seo-jung, Song by Kim Young-hwan, Lee Jung-suk. 1927 silent film theme song, Record released March 1929. This song was released in 1927 as a song by Lee Jung-sook under the stage of the Danseongsa Theater, where the silent film "The Falling Flow" was screened. It was also called "Gangnam Moon Night", and after 8.15, it was known as "Gangnam Moon". In the 1960s, several singers including Shin Canaria were introduced into LP album.

 

The sound quality of the record of 1929 differs greatly from that of the record since 1936. The sound quality was deteriorated due to the record-breaking facilities and technical shortages of the 1920s, and the music accompaniment is a small band composed of piano, violin, trumpet, trombone, and accordion. Lee Jung-sook's "Flower Flow" belongs to this record.

 

 "Flower Flow" released at Danseongsa on October 6, 1927

Cast: Bok Hye Sook, Lee Won Yong, Jang Il Sung, Jung San Suk

 

In 1930 he revived Victory Records at Victor Records, and was called by Kim Yeon-sil, a popular actress and famous for singing. Kim Yeon-sil, who lived in Pyongyang, lived in North Korea by the age of 6.25 before June 25, and Choi Eun-hee was abducted and faced Kim Yeon-sil. The silent film "Yu-kwa Yusu" was selected as one of the top ten films of silent films in the 1940s for the selection of voiced and silent films.

 

The director is Lee Gu-young, who worked with Na Un Kyu, and the female lead is Bok Hye-suk who died in early 1960. This film is a melodious film that ends with a love story of emptying and a love of pearls and a painter. He managed to rescue himself from being immersed in the water while shooting himself to throw himself into the water.

 

It was a facet of the early filmmaking that proceeded without examining the depth of water. Cheongnyangni area was a filming location, but there were many dense forests and large streams, but it is speculated that it is Yongducheon or Jungnangcheon in Jegi-dong. Lee Jung-sook, who sings the theme song, is not a professional singer but a younger student who studied music to Hong Nanpa at Chung-Ang Child Care School.

 

According to the memoirs of Shin Il-sun, the heroine of the silent film Arirang in 1926, Lee Jung-sook recalled that he sang Arirang even when he showed Arirang at Danseongsa. Lee Jung-sook was the first person to introduce nursery rhyme music into the meteor record and contributed to the spread of nursery rhymes nationwide. His famous brotherhood, "Fondant Fondant", "Icicle" and "Spring Letters" were taken from 1927 to 1932. It was. The song that Lee Jung-sook has recorded is a song that remains and listens to the song.

 

Lee Jung Sook and Kim Young Hwan

 

Composer Kim Young-hwan's work is one of the artists' veil hidden in the veil. As a forerunner of the age of silent film, he gained the popularity of theater audiences and traveled along Changan Kwon Street with rickshaws. In the age of silent film, the influence of the metamorphosis, when the number of the audience in the theater was condemned by the popularity of the metaphor rather than the movie contents, was strong. Kim Young-hwan, known as the son of Jinju-kwon's parasitic director, directed the silent film "Janghua Hong-ryeon-jeon" in 1924. During his career, he directed "Segal-in" in 1928, "engagement" in 1929, and "Love Guang-guk" in 1931. It was versatile.

 

Soaring popularity With the advent of talkie movies in 1935, silent films began to retreat and their speeches began to move away from the public. Kim Young-hwan, who spent a lot of money and spending a lot of money at the Sierra Records, sometimes made fashion songs, talks, nonsense, and even took a record directly. However, he spent his time wandering and frustrating with drugs. Kim Young Hwan's voice was recorded in the early 1930's as a meteor record, and the contents are composed of some of the silent films. The remaining albums include several silent films, "Song of the Young", "Resurrection", "Sedongmu", "Shimcheongjeon", "Pung Woon Ah", and "Dongdo".

 

<Keun Tae Lee Researc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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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http://www.joongdo.co.kr/...

 

그리고 1926년도에는 도월색의 노래 ‘압록강 절`일 본 어로 말한다면 ‘요록 꼬 부시`가 있다. 그리고 또 이어서 김월산이 부른 장한몽 일명 이수일과 심순애 도월색의 시들은 방초 등이 있다. 그 당시에 노래들은 구전 민요가 많았다. 또 외국 곡을 번역하여 부르곤 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요의 최초의 창작은 당시에 낙화유수라는 노래였다. 당시에는 노래라고 하지 않고 창가라고 불러질 때다. 낙화유수는 1929년 콜럼비아 레코드회사에서 4월 신보로 발표됐다. 이 노래는 당시에 이정숙이라는 가수가 첫 취입을 했다. 그리고 가사는 김 서정이며 작곡은 김영환이 했다. 

 

이들이 우리 한국 가요사에 최초로 레코드 취입을 한 사람들 이다. 이들은 우리나라 가요를 최초로 창작하여 발표한 아주 서정적이며 우리 고유의 가락을 충분히 담아낸 선구자이기도 하다. 이렇게 가요가 시작되자 이어서 강남제비 강석연 노래 등 수많은 노래들이 쏟아져 나온다. 이것이 우리 가요사의 최초의 발달사다. 여기서 작곡가 김영환에 대하여 알아보기로 하자. 김영환은 작곡만 한 것이 아니다. 그는 시나 리오작가이면서 영화감독 미술 영화제작 또는 당시에는 무성영화 시대다. 그래서 변사가 필요 했다. 그 변사는 배우들의 움직이는 입술을 따라 대본을 읽어줘야 한다. 

 

가령 여자 배우일 경우는 여자의 목소리로 변사를 해야 했다. 이런 것까지도 김영환이 해낼 정도였으니 김영환의 재능은 팔방미인으로서 지금도 우리들은 기억하며 그를 우리 대중예술사에 큰 업적을 남겼음을 밝히는 바이다. 극영화 낙화유수도 그의 시나리오로 1927년도 제작했다. 거기에 주연배우는 복 혜숙 이 원용이 열연을 하여 큰 인기를 얻었다. 

 

낙화유수노래는 그 영화주제가로서 더욱 큰 인기를 얻었다. 그리고 낙화유수는 영화대사를 레코드취입을 하여 대사대신 사용을 했으며 또 일반 구매자도 있었으니 김영환의 사업수완 또한 뛰어난 인물이 아닌지 여기서 가수 이정숙은 동료 가수로도 활약했던 인물이다. 그리고 그녀의 오빠는 영화감독 이구영이며 당시에는 몇 명 안 되는 영화감독이며 예술인 가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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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gments from the article ) Popular Songs of Ethnic Love

 

"In 1926, Dowol-color's song 'Yulnokgang Temple' is in Japanese. And then, Jang Han-mong aka Lee Su-il and Shim Soon-ae's poems by Kim Wol-san include herbicides. At that time, the songs were full of oral folk songs. They also translated and sang foreign songs. In this situation, the first creation of our song was a song called Falling Water. At that time, it is not called a song but a window. The fall was announced in April as a new report by Columbia Records in 1929. The song was first blown by a singer named Lee Jung Sook. The lyrics are by Kim Seo-jung and the song was written by Kim Young-hwan.

 

These are the first people to record at our Korean song. They are very lyrical and the first pioneers to create and announce Korean songs. When the song started, many songs came out, including the Gangnam Swallow Kang Seok-yeon song. This is the first developmental history of our song. Let's take a look at composer Kim Young-hwan. Kim Young-hwan is not just a composer. He is a scenario writer and cinematographer, art filmmaker, or at the time a silent film era. So I needed a speech. The dialect should read the script along the actor's moving lips.

 

For example, if you were a female actor, you had to make a speech in the voice of a woman. Even Kim Young-hwan's talents were able to do this, and as Kim Young-hwan's talent is beautiful, we remember that we have made great achievements in our popular art history. His first feature film was also produced in 1927. Actor actress Bok Hye-sook won a big hit with Won Yong.

 

Nakhwa Yu-song became more popular as the movie theme. And Nakhwa Yusu used the record ambassador as a substitute for the ambassador, and there were also regular buyers. And her brother was a movie director, Lee Gu-young, a few film directors and a family of artists at the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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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이후부터 노래가 태어나기 시작 한다. 번지 없는 주막은 그 후에 그러니까 레코드업계가 전성시대라고 보면 맞을 것이다. 그리고 백 년설 이 부른 노래들은 거의가 반일 감정이 내포된 노래가 많았다 그래서 일제는 백 년 설을 더욱 감시하는 등보이지 않는 감시를 했던 것이다. 

특히 백년설은 지방공연을 가면 그곳에서도 백년설의 일거일동 감시하며 노래 역시 부르는 것을 하나하나 체크하는 웃지 못 할 일들이 간혹 발생하여 배우들로부터 조롱을 당하는 일들도 있었으며 일본인들은 어찌 보면 모자라는 사람들도 있었으니 말이다. 

때로는 짖궂은 연예인들은 일본 순사들을 아주 노골적으로 골탕을 먹이는 일들이 하나 둘이 아니었다 한번은 임검석에 있는 순사에게 술을 한잔 하자고 유인하여 돈 봉투를 만들어서 주고 술을 한잔 하자고 했다. 당시에는 이러한 일들은 공공연하게 있었다. 의례적으로 그 지방에 공연을 가면 초대권과 술값을 주는 것이 당연했다. 

 

그렇게 안 하면은 여러 가지로 골치 아픈 일들만 생긴다. 그러니까 우선 공연을 못하게 함은 물론이요 입장하는 조선 사람들을 하나하나 씩 조사를 하니 극장구경을 할 수가 없게 된다. 그러니 인사를 할 수 밖에..그날도 순사를 데리고 요정 엘 갔다 그리고 요정에서 술을 잔뜩 먹였다 그리고 방에다가 오줌을 싸게 만들었다. 그렇게 해놓고 왔다 그랬드니 그 후부 터는 그렇게 시시콜콜 하질 못했다는 이야기는 지금도 우리 가요인들이 모여 그런 말을 하며 웃는 일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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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rom this point on, songs are born. The address without the bungee will be right afterwards, so the record industry is at its peak. And most of the songs that were sung by Hundred Years Old had many songs that contained half-day emotions.

 

In particular, if you go to local performances, there are occasions when you laughed at the concerts and checked songs one by one, and you were mocked by actors. I mean.

 

At times, ugly entertainers weren't the only ones who were blatantly feeding their Japanese soldiers. Once they were enticed to have a drink at Lim Gum-seok, they made a bag of money and had a drink. At the time, these things were open. As a courtesy, if you go to the local performances, it was natural to give an invitation and a drink. If you didn't you will only have a lot of trouble. First of all, not only do they stop performing, but they also check out the Koreans who are entering the theater one by one. So you had to say hel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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