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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초 / Kim, Seon-Cho / Kim Sun Cho / 金 仙草

October 13, 2019

 

 

유성기로 듣던 불멸의 명가수 : 막간 가수들 Interlude singers (vol 21)

 

16 나그네 / Wayfarer (COLUMBIA 40333)

17 어디든지 같이 가요 / Let's go anywhere together (COLUMBIA 40333)

 

“Wayfarer” is not so incredibly well sang song, a waltz with jazzy arrangements. The second track is similar, an old styled trot song with jazzy arrangement. Kim Seon-Cho’s singing was in fact not so great. I assume she was an actress who also sang and thus promoted the films.

 

 

유성기로 듣던 북(北)으로 간 가수들 / Singers that went to North Korea (1994)

 

9 아가씨여 / Lady

10 강남을 가자 / Let's go to Gangnam

 

Accompanied by violins, clarinet and banjo and humpapa rhythms, this is an old trot song with a fit voice this time. The second track is an old music styled waltz. Parts of its arrangements are still rather interes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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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OGRAPHIES:

 

김선초: 1910년 함경남도 원산 출생. 1949년 월북. 사망 연도는 미상(未詳). 1930년대 초반에,배우겸 가수로 활동하면서 좋은 작품을 많이 남긴 金仙草님의 작품

 

Seoncho Kim: Born in Wonsan, South Gyeongsang Province in 1910. Monbuk, 1949. The year of death is unknown. 金 仙草 worked in the early 1930s, where he left a lot of good work as an actor and sin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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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pub.chosun.com/client/news/viw.asp?cate=C03&nNewsNumb=20140113730&nidx=13731

 

이동순교수의 가요 이야기

식민지와 분단의 쓰나미에 쓸려간 가수 김선초

북한 인민들, “영화는 문예봉, 무용은 최승희, 연극은 김선초”

글 | 이동순 영남대 국문과 교수

2014-01-05 15:33

 

​서핑(surfing)이란 스포츠가 있지요. 타원형 널빤지를 타고 해안으로 밀려오는 높은 파도의 위나 안을 아슬아슬하게 빠져나가는 즐기는 운동입니다. 가수 김선초(金仙草, 1910∼?)가 살아갔던 삶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면 바로 그녀의 삶 자체가 파도타기의 연속이었던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그것도 민족사의 참으로 거칠었던 대파란(大波瀾)의 연속을 온몸으로 받으면서도 엄청난 충격을 요리조리 운수 좋게 피해가다가 기어이 그 격류에 휘말려 깊은 바다 속 어딘가로 사라져버린 한 선수의 불행한 결말을 보는 듯합니다. 

 

가수 김선초는 동해의 파도소리가 들리는 함경남도 원산(元山)에서 장사를 하던 아버지의 6남매 중 장녀로 태어났습니다. 고향에서 보통학교를 다닐 때 원산기독교예배당을 다니며 독창과 찬양대원으로 활동했습니다. 이때부터 주변에서 이미 손색없는 성악가란 소리를 들었지요. 그 말에 의기가 오른 김선초는 음악가가 되기 위해 서울로 가려는 뜻을 밝혔지만 부모는 한사코 거절하며 만류했습니다. 

 

특히 완고한 어머니는 “그저 여자는 평범한 가정주부로 살아가는 것이 제일이란다”라며 대문 밖을 못 나가게 했습니다. 그리하여 김선초는 16세에 보통학교를 졸업한 뒤로 여러 해 동안 너무 갑갑했던 나머지 바깥바람이라도 쐬고 싶어서 아버지를 졸라 원산의 루씨여고(樓氏女高)에 진학했습니다. 

 

재학 중에도 여전히 음악가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지만 아버지가 하던 사업이 돌연히 망하게 되자 김선초는 학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김선초는 어느 날 보따리를 싸서 무작정 가출을 감행했습니다. 그녀가 찾아간 곳은 서울이었고, 극작가 홍해성(洪海星) 선생이 주도하던 극예술연구회의 신무대였습니다. 신무대에서 배우로 입단하여 연기수업에 전념했습니다. 

 

신흥극단에 연구생으로 들어갈 때는 김선영(金鮮英)과 함께 입단했지요. 1930년 11월11일 저녁 7시, 서울 단성사에서 공연된 신흥극장 창단작품으로 발표된 영화 <모란등기(牧丹登記)>에 당시의 유명배우 심영, 박제행, 석금성, 강석연, 강석제, 김연실 등과 함께 출연했습니다. 

 

이어서 임서방(任曙昉)이 이끌던 예술좌에 들어가 전국을 순회공연하면서 연기자로서의 꿈을 키워갔습니다. 나중에 김선초는 이 무렵을 떠올리면서 자신의 생애에서 결코 잊을 수 없는 은인은 홍해성과 임서방 두 분이라고 회고했습니다. 김선초는 연기수업에 전념하는 틈틈이 극단의 기악부 연주자들로부터 음악수업을 받는 것도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노력은 자연스럽게 무대메뉴로 이어져 연극공연 사이사이의 공백시간에 출연하는 막간가수로서 인기를 얻어가게 됩니다. 

 

하지만 당시의 극단운영과 현실은 참으로 영세하고 생명 또한 짧았던 것 같습니다. 새로 극단이 꾸려졌다는 소식이 들렸는데 어느 틈에 바람처럼 사라진 경우가 비일비재했습니다. 김선초가 참가했던 극단 신무대, 예술좌, 토월회, 신흥극장, 명일극장, 태양극장, 동양극장, 아랑, 중외극장의 미나토좌 등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이 극단들에서 김선초가 맡은 역할은 배우로서 연극작품의 배역과 막간가수(幕間歌手)로서 무대에 오르는 일이었지요. 

 

김선초 방송출연 광고기사

배우보다도 막간가수로서의 인기가 점점 드높아가던 무렵에 콜럼비아레코드사로부터 전속 제의가 왔고 김선초는 이를 감격스럽게 받아들였습니다. 그것이 바로 김선초가 정식가수로서 데뷔음반을 발표한 1931년입니다. 그 음반에 수록된 작품은 유행소곡 <애달픈 밤>과 <안해의 무덤> 등 두 곡입니다. 유명변사이자 대중연예인이었던 김서정(金曙汀, 본명 김영환)이 작사 작곡을 맡았습니다. 드디어 당당하게 인정받는 콜럼비아레코드사 전속가수가 된 것입니다.

 

그로부터 콜럼비아레코드사를 통해서 김선초는 무려 68편이 넘는 음반을 발매하게 됩니다. 김선초가 전 생애를 통해 남기고 있는 음반은 77편 가량입니다. 콜럼비아 이외에는 이글, 시에론, 빅타사에서 소수의 음반을 내고 있지만 오로지 콜럼비아사가 김선초의 주된 터전임을 알 수 있습니다. 김선초 음반을 자세히 분석해보면 가요곡이 56편으로 가장 많고 다음으로는 넌센스 등이 21편입니다. 

 

가요의 종류로는 유행소곡, 유행가, 민요, 유행만곡, 가요곡으로 붙은 명칭들이 모두 포함됩니다. 유행소곡이란 이름은 1933년 4월까지만 사용됩니다. 김선초의 대표곡은 데뷔곡을 포함하여 <님 그리운 밤>, <꼴불견>, <울산 큰 애기>, <긴 한숨>, <수집은 꿈>, <진달래의 애심곡(哀心曲)> 등입니다.

 

김선초 '진달래애심곡' 가사지

 

김선초의 '강남을 가자' 가사지


1930년대의 대표가수 김선초 음반제작에 함께 했던 작사가로는 김서정, 홍로작, 학수봉, 이고범, 춘오일, 박한, 유파, 유도순, 이일해, 이백수, 김잔듸, 김안서, 이하윤, 전기현 등입니다. 작곡가로는 김서정, 고하정남, 삼전양조, 인목타희웅, 학수봉, 이광덕, 서영덕, 송정, 일호, 광원, 유파, 유일, 김준영, 전기현, 김흥산, 이면상, 안일파, 콜럼비아문예부 등입니다. 당대 최고의 작사가, 작곡가들이 김선초 음반발매를 위해 도왔습니다. 김선초와 함께 혼성듀엣을 부른 가수로는 역시 당대 최고란 평을 받았던 채규엽과 김문규가 있습니다.

 

대중예술가 김선초의 출발이 배우였던 만큼 그녀의 음반 중에는 역시 연극, 영화와 관련된 것들이 많았습니다. 가극, 희극, 희가극, 화류애화, 아동비극, 아동비화가 각 1편씩이요, 오늘날의 개그나 만담, 코미디에 해당하는 넌센스 장르가 11편입니다. 이것은 이애리수, 강석연, 이경설, 김연실 등과 마찬가지로 배우출신 경력이 적극 활용된 결과입니다. 이 계열에 속하는 음반으로는 <레코드카페>, <꼴불견전집>, <멍텅구리 서울구경> 등이 있습니다.

 

김선초 가요공연의 밤


 인기가수로서, 그리고 방송국 라디오프로의 단골출연 등으로 대중적 인기가 한껏 높아진 김선초는 전국 어딜 가나 박수갈채와 환호의 세례를 받았습니다. 서울에서 열리는 각종 대형무대를 비롯하여 부산, 인천, 평양, 대구, 청주, 진주, 광주, 신의주 등 지방공연 무대에서 김선초가 출연하면 일천 명 관객이 넘는 장내는 거의 떠나갈 듯했다고 합니다. 워낙 인기가 높아서 시에론레코드사에서는 김선초 음반을 내고 싶은 욕심에 몰래 가수와 협약을 맺어 본명을 감추고 ‘미스.조선’이란 예명으로 두 장의 앨범을 발매했었는데, 한 가수의 두 레코드사 동시발매를 둘러싸고 시에론측은 콜럼비아와 심각한 분쟁까지 벌어진 적이 있었습니다.  

 

김선초 노래 가운데서 특히 우리의 시선을 끄는 작품은 유행만곡으로 만들어진 <꼴불견>이 아닌가 합니다. 이 작품은 1930년대 초반 식민지사회의 무관심과 비인간적인 세태와 현실을 풍자하고 비판하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유행만곡은 만요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콜럼비아 문예부에서 작곡을 맡았고, 채규엽과 김문규 두 남성가수와 함께 혼성으로 김선초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방갓 쓰고 자전거탄 꼴불견, 쪽진 머리에 일본식 게다를 신은 꼴불견, 갓망건을 친 머리에 일본식 지까다비 신발을 신은 꼴불견 등등 온갖 꼴불견들이 속속 적출이 됩니다. 식민지적 근대의 속성과 허위위식이 그대로 느껴져 옵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1930년대 초반에도 머리에 쪽진 부유층 여인이 골프채를 들고 다니는 광경입니다. 그러고 보니 한반도에서 골프열풍이 불기 시작한 것이 꽤 오래되었군요.   

 

꼴불견 꼴불견 꼴불견 꼴불견 
가지각색 이상야릇 꼴불견 
여:어쨌든지 꼴불견은 남자에게 많구요 
남:천만에 꼴불견은 여자에게도 많지 
방갓 쓰고 자전거 타야 꼴불견인가 
쪽진 머리 게다를 신어야 꼴불견인가 
갓망건 아래 지까다비 신어야 격인가 
선도부인 단장입고 다녀야 이쁜가 
꼴불견 꼴불견 꼴불견 꼴불견 
가지각색 이상야릇 꼴불견 


양산허리 놔두고 묶어야 꼴불견인가 
양복쟁이 바지에 다님을 써야 실순가 
밤중에 양산 받쳐 들고 다녀야 실순가 
중산모 쓰고 모자 집에 들어야 실순가 
꼴불견 꼴불견 꼴불견 꼴불견 
가지각색 이상야릇 꼴불견 


가슴 짝짝 카페로 가야만 꼴불견인가 
쪽진 여자 골프채 들어야 꼴불견인가 
연미복입고 당나귀를 타야만 격인가 
아서라 고만 둬라 너도 꼴불견 왜 하나 
꼴불견 꼴불견 꼴불견 꼴불견 
가지각색 이상야릇 꼴불견 
-<꼴불견> 전문 

 

최고인기가수로서 명성이 높았던 1933년 10월5일, 김선초는 서울 장곡천정 경성부 사회관에서 윤백남(尹白南, 1888∼1954)의 주례로 당시 유명한 프로문사이자 영화제작에 관계하던 서광제(徐光霽, 1906∼?)와 결혼에 골인하게 됩니다. 1935년에는 시인 김동환(金東煥)이 운영하던 잡지 <삼천리>사에서 실시한 레코드가수 인기투표에서 김선초는 8위에 올랐습니다. 비록 순위가 상위에 오르진 못했지만 당시 김선초 음반에 대한 대중적 인기가 얼마나 높았던 것인가를 말해주는 생생한 자료입니다.

 

이후 김선초는 각종 대표적인 음악회 공연과 경성방송국의 여러 라디오프로, 이따금 펼쳐지는 극단의 연극공연, 영화 따위에 열정적이고도 화려한 출연을 계속 펼쳐갑니다. 1938년에는 영화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에 차홍녀, 황철, 김동규 등과 함께 출연해서 시어머니역을 맡았습니다. 홍도 역에는 그 유명한 차홍녀, 남편 역에는 김동규가 배정되었지요. 

 

하지만 이 영화는 녹음이 실패하는 바람에 결국 연속흥행을 이어가지 못한 채 이후 동양극장이 문을 닫는 계기로 이어지고 말았습니다. 일제 말에는 국민연극경연대회, 전선(全鮮)가요무용경연대회, 조선연극협회 주최 연극경연대회, 군국영화 <조선해협(朝鮮海峽)> 출연 등으로 다수의 상을 받거나 군국체제를 위해 적극 활동하게 되는데, 이는 김선초의 생애에서 커다란 오점이자 얼룩이 되었습니다.

 

드디어 1945년 8월, 해방이 되자 김선초는 과거의 극단동료들과 함께 재빨리 조선연극동맹서울지부를 결성하고 중앙집행위원에 선출됩니다. 뿐만 아니라 남로당결성을 축하하는 연극작품 <하곡(夏穀)>(함세덕 작, 안일영 연출)을 공연하고, 문화공작단 간부로 충청남북도 일대를 순회하며 <태백산맥>, <미스터 방> 등 좌파적 성향의 연극공연 활동에 집중하게 됩니다. 이러한 공로로 김선초는 1948년 8월25일 남한지역 조선최고인민회의 대의원선거에서 대의원으로 선출됩니다. 그녀의 나이 불과 30대 후반의 일입니다. 

 

김선초가 불렀던 가요작품들을 살펴보면 현실에 대한 풍자성이 강한 노래가 많습니다. 그 중에서도 다음에 소개하는 <무심>은 봉건적 굴레와 속박에서 여전히 자유롭지 않은 여성성에 대한 탄식과 불만을 다룬 노래는 자못 의미심장합니다. 김선초는 이 땅에서 여성들이 처한 불리한 조건과 환경에 대해서 자주 비판하고 노여워했습니다. 이런 가운데서 사회주의적 의식이 점점 확장되어간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나고 보니 움막은 내 살림이라 
열여덟은 꿈속에 해가 저물고 
울긋불긋 봄꽃도 모두 지건만 
중매 녀석 이렇단 말도 없구려 


바람이라 구름을 따라 들으랴 
서방이라 잡놈을 따라 갔더니 
매일 장취 서방은 술만 처먹고 
손길 잡고 가는 곳 내 집이구려 


오다가다 새들은 남게서 자고 
높은 영은 구름도 쉬어 넘건만 
맑은 하늘 푸른 물 이 넓은 땅에 
이 내 몸은 쉴 곳이 하나 없구려 
-<무심> 전문 

 

 

남한에서 공산당활동이 금지되자 김선초는 1949년 이면상, 채규엽 등과 함께 38선을 넘어서 북으로 올라갔습니다. 부부가 같이 월북했지만 북에서 두 사람의 운명은 갈라지는 것으로 보입니다. 월북 이후에도 김선초는 김일성 정권 초기에 모범적 공산주의 연기자로서 열정적으로 활동했고, 북한의 인민들도 “영화는 문예봉(文藝峰), 무용은 최승희(崔承姬), 연극은 김선초”란 말을 즐겨 썼다고 합니다.

 

6.25가 발발하고 인민군이 남침했을 때 김선초는 점령지 서울에 인민군 복장으로 나타나 시공관에서 연극공연에 참가했습니다. 여기서 고향 아우이자 예술좌 후배였던 신카나리아를 만나 북으로 가자고 제의했지만 이를 거절한 신카나리아에게 혹독한 보복을 안겼습니다. 1950년대 중반, 김선초는 평양에서 기독교 감리교 계열의 목사였던 홍기주(洪箕疇)의 후처로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김선초 생애의 마지막 선택이었고 그것이 불행의 나락이었음을 누가 알았으리오. 홍기주는 이미 목사로서 김일성 정권수립을 위해 혈안이 된 사람이었는데, 최고인민회의 부위원장이라는 고위직까지 오른 그는 연안파를 몰아낼 때 남로당계열로 월북해온 자신의 아내마저도 냉혹하게 숙청시켜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로부터 가련한 김선초의 이름은 북한의 어떤 자료에서도 찾아볼 길이 없습니다. 자신이 불렀던 노래가사 <무심>의 마지막 대목처럼 이 넓은 땅에서 그녀가 진정 쉴 곳은 아무데도 없었습니다. 

 

식민지와 분단의 모진 쓰나미가 밀려올 때 그 격랑을 아슬아슬 타면서 기회주의적 처신을 노리다 침몰했던 사람이 어디 김선초 하나뿐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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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lated with help of Google Translate (with mistakes):

 

Singer Kim Sun-cho sweeped away by the Tsunami of Colonization and Division. 

Remember the North Korean Movie Moon Ye-bong, its Dancer Choi Seung-hee, and its Theater personality is Kim Sun-cho,

by Lee, Dong-Soon Professor, Yeungnam University, 2014

 

Let's compare this to surfing. It's a fun way to get on the oval planks and move on the high tide that's coming towards the shore. Following the footsteps of the singer Kim Seon-cho (金 仙草, 1910 ~?) she lived and felt as if her life was acting like a surf event. One sees an unfortunate ending of a player who has suffered a huge turbulence of national history with firstly an avoiding of a tremendous shock but then still being caught in the torrent and disappearing somewhere in the deep sea.

 

Singer Kim Sun-cho was born as the eldest daughter of her father's six siblings in Wonsan, Hamgyongnam-do where the sound of the waves of the East Sea was heard. When she was a regular school in my hometown, she attended the Wonsan Christian Chapel and worked as a solo singer and choir member. From this time on, she heard the sound of a comparable singer. Kim Sun-cho, whose spirit was uplifted, expressed her intention to go to Seoul to become a musician, but her parents refused and kept her from it.

 

In particular, her stubborn mother said, “It's best for a woman to live as an ordinary housewife.” So, after graduating from ordinary school at the age of 16, Kim Seon-cho had been so hard for many years that he wanted to breathe the outside wind, with the help of her father she left went to the High School in Wonsan.

 

While still in school, she did not give up on the dream of a musician, but when my father's business suddenly went down, Kim had to stop studying. Kim Sun-cho wrapped a bag one day and ran away. She visited Seoul, where she found out about a theater research group led by the playwright, Hong Hae-sung. Shee joined the new stage as an actress and devoted herself to acting classes.

 

When she joined the emerging theater company as a research student, she joined this with Kim Sun-young. In the movie <Moran Deunggi>, which was released on November 11, 1930, at the opening of a new theater in Danseongsa, Seoul, famous actors Shim Young, Park Je Haeng, Seok Geum Sung, Kang Seok Yeon, Kang Seok Je, Kim Yeon Sil, etc. appeared together.

 

After that, she entered the art class led by Lim Seo-bang, and toured the country to develop his dream as an actor. Later, Kim recalled about this time and recalled that the only two people who could never forget in his life were Red Sea and Imseobang. Kim Suncho did not neglect to take music lessons from the instrumental musicians of the theater. This effort naturally led to the stage menu, which became popular as an interlude singer who appeared in the gap between theatrical performances.

 

However, the extreme operation and reality of those days was very small and life seemed short. She heard that a new troupe was being set up, and there was an occasion when it again disappeared like a wind. The theater company where Kim Sun-cho participated, the art seat, the Towol society, the emerging theater, the Myeong-il theater, the solar theater, the oriental theater, the Arirang, and the Minato seat of the Sino-Korean theater were no exception. Kim Sun-cho's role in these troupes was to play the role of an actor as an actor and to get on stage as an interlude singer.

 

At the time when the popularity of interlude singers became more popular than the actors, an exclusive offer came from Columbia Records, and Kim Sun-cho was very impressed with it. That is 1931 when Kim Sun-cho released her debut album as a full singer. There are two pieces of music on the album, including the popular song "Awkward Nights" and "The Tomb of the Sea". Kim Seo-jeong (金 曙 汀, real name Kim Young-hwan), a well-known advocate and celebrity, composed the lyrics. Finally, she became an exclusive singer of Columbia Records.

 

Since then, Kim has released more than 68 records through Columbia Records. Kim has a total of 77 albums she has left throughout her life. In addition to Columbia, there are a few records from Eagle, Sierra, and Bigta, but only Columbia is the main place of Kim Suncho. If you analyze the Kim Seoncho record in detail, there are 56 songs, the most followed by silent films and 21 regular films.

 

Kinds of songs include popular songs, popular songs, folk songs, popular songs, and songs. The name is only used until April 1933. Kim Seon-cho's representative songs include his debut songs, <Neam Missing Night>, <Legendless Dogs>, <Ulsan Big Baby>, <Long Sigh>, <Collected Dreams>, and <Azalea's Love Hearts>.

 

The singers who participated in the album production of the 1930s singer Kim Sun-cho were Kim Seo-jung, Hong Ro-jak, Hak Su-bong, Lee Go-bum, Chun-oil, Park Han, Youfa, Yu-sun Soon, Lee Il-hae, Lee Baek-soo, Kim Jang-seon, Kim An-seo, Lee Ha-yoon, and Jeon-hyun. Composers include Kim Seo-jung, Ko Ha-jeongnam, Samjeon Brewing, Inmok Ta-heeung, Hak Su-bong, Lee Kwang-deok, Seo Young-deok, Song Jeong, Ilho, Light Source, Youpa, Yul, Kim Jun-young, Jeon-hyun, Kim Heung-san, Lee Myung-sang, An Il-pa, and Columbia Liberal Arts. The best songwriter of the time, composers helped to release Kim Suncho album. The singers who sang the mixed duet with Kim Seon-cho are Chae Kyu-yeop and Kim Mun-kyu, who were also highly rated.

 

Since the start of popular artist Kim Sun-cho was an actor, there were also many related to the play and film. There are one play, one comedy, one comedy, one love story, one child tragedy, and one story about children, and there are 11 nonsense genres that correspond to today's gags, talks, and comedies. This is the result of the active use of the actor's career as Lee Ae-soo, Kang Seok-yeon, Lee Kyung-seol, and Kim Yeon-sil. Records belonging to this series include <Record Cafe>, <Full Collection of Dogs>, and <Bullet Dog Seoul Viewing>.

 

Kim Seon-cho, who became a popular singer and popularly on the radio show, was praised with applause and cheers everywhere. When Kim Seon-cho appeared on local stages such as Busan, Incheon, Pyongyang, Daegu, Cheongju, Jinju, Gwangju, and Sinuiju, as well as various stages held in Seoul, the venues with more than 1,000 audiences seemed to leave. Because of their high popularity, Sierra Records secretly signed an agreement with a singer because of the desire to release Kim Sun-cho's album and concealed his real name and released two albums under the title 'Miss. Chosun'. In the meantime, Sirón had a serious conflict with Columbia.

 

Among the songs of Kim Suncho, especially, the works that catch our attention are the <trained dogs> (??) made out of fashionable songs. This work satirizes and criticizes the indifference, inhuman situation and reality of colonial society in the early 1930s. Trendy curvature is a word that refers to hold. Composed by the Columbia Department of Literature, Kim Sun-cho's voice is mixed with two male singers, Chae Gyu-yeop and Kim Mun-gyu.

 

All sorts of ugly dogs will be extracted one after another, such as a dog wearing a bicycle, a dog wearing a Japanese crab on a straight head, or a dog wearing a Japanese Zikadabi shoes on a head with a freshly squeezed head. Colonial modernity and falsehood are still felt. One interesting fact is that even in the early 1930s, a wealthy woman with an importance carried a hat but was also associated with golf clubs. As a result, it's been a long time since the golf craze began to blow on the Korean Peninsula.

 

Being a full dog.

 

Nasty Dogs Nasty Dogs Nasty Dogs

All kinds of strange dogs

W: Anyway, there are a lot of ugly dogs.

M: You don't have to be a woman

Is it bad to ride a bicycle?

Do you have to wear a straight hair crab?

It's hard to wear under the hood

Is it pretty to wear a leading lady?

Nasty Dogs Nasty Dogs Nasty Dogs

All kinds of strange dogs

 

Is it impossible to tie up the mass production waist?

It's only true that you have to wear your pants in suit pants.

You have to carry a parasol in the night

Wearing a bowler hat and entering a hat house

Nasty Dogs Nasty Dogs Nasty Dogs

All kinds of strange dogs

 

You have to go to a cafe

I'm not sure to pick up a woman's golf club

Don't wear a tail and ride a donkey?

Let's just be Arthur. Why are you one?

Nasty Dogs Nasty Dogs Nasty Dogs

All kinds of strange dogs

 

On October 5, 1933, when she was well-known as a popular singer, Kim Seon-cho was a famous professional writer and director of film production at the Janggok Ceiling Kyungsung Ministry in Seoul. ?) They married. In 1935, Kim Seoncho was ranked eighth in the popular record singer's voting held by the poet Kim Dong-hwan, the magazine Samchully. Although the rankings did not rise to the top, it is a vivid resource that tells how high the popularity of the Kim Suncho album was at the time.

 

Since then, Kim has been passionate and splendid in performing various concerts, various radio shows from Gyeongseong Broadcasting Station, and occasionally performing theater performances and movies. In 1938, she starred in the movie <Fooled by Love and Crying over Money> along with Cha Hong-nyeo, Hwang Chul, and Kim Dong-kyu. The famous Cha Hong-nyeo was assigned to Hongdo Station and Kim Dong-kyu was assigned to her husband.

 

However, because the film failed to record, the theater did not continue, and the theater eventually closed. At the end of Japan, he received numerous awards and active activities for the military system, such as the National Drama Competition, Jeonjeon Music Dance Competition, Drama Competition hosted by the Korean Drama Association, and the appearance of the military film Chosun Strait. It became a big blot and a stain in Kim's life.

 

Finally, after liberation in August 1945, Kim Sun-cho quickly formed a Korean branch of the Korean Drama Alliance with the past extremities and was elected to the Central House. In addition, she performed the theater piece <Hagok (夏 穀)> (directed by Ham Se-deok and Ahn Il-young) in celebration of Namro Dangseong, and toured the Chungcheongnam-buk region as an executive director of the Cultural Works Group. With a focus on theatrical performances of Because of this, Kim Suncho was elected as a delegate in the representative election of the Supreme People's Assembly of the Republic of Korea on August 25, 1948. She now is in her late thirties.

 

Looking at the songs that Kim Suncho sang, there are a lot of satirical songs about reality. Among them, the next article, Uncertainty, is notable for songs that deal with sighs and dissatisfaction with femininity, which is still free from feudal bridle and bondage. Kim Sun-cho frequently criticized and angered the adverse conditions and circumstances that women faced on this land. It may be that socialist consciousness has expanded in the midst of this.

 

Tireless

 

I find out that the hut is my house

Eighteen is the sun setting in my dreams

I'm tired of all the spring flowers

A matchmaker doesn't have to mention this

 

Because of the wind

I went west and followed him

Every day, the West is drinking alcohol

My house is where you go

 

Birds sleep on the other side

The high spirits break the clouds

Blue sky and clear water

This body has no real place to rest

 

When the Communist Party activity was banned in South Korea, Kim Seoncho moved up to the north beyond the 38th parallel in 1949 with Lee Sang-sang and Chae Gyu-yeop. Although the couple went North together, the fate of the two in the North seems to diverge. Even after North Korea, Kim Sun-cho was enthusiastic as an exemplary communist actor in the early days of the Kim Il-sung regime, and the North Koreans also said that they enjoyed saying that "movie is Moon Ye-bong, dance is Choi Seung-hee, and drama is Kim Sun-cho."

 

When the Korean Army broke out and the People's Army broke out, Kim Seon-cho appeared in the occupied capital of Seoul in the People's Army costume and participated in a theater performance at the construction hall. Here, he offered to meet with his native brother and father of the art seat, Shin Canaria, but offered severe retaliation to her which was refused. In the mid-1950s, Kim Seon-cho entered Pyongyang's successor as Hong Ki-joo, a pastor of Christian Methodism.

 

But who knew this was the last choice of Kim Suncho's life leading to misery. Hong was already a pastor for Kim Il-sung's establishment as a pastor, but when he became a senior vice chairman of the Supreme People's Assembly, he ruthlessly purported his wife, who had been in North Korea with the South Korean party, to drive off the coastalists. The name of Kim Sun-cho, a poor woman, cannot be found in any data in North Korea. There was no place for her to truly rest on this vast land, as in the last part of her song Lyrics.

 

Where is Kim Sun-cho the only person who sunk in the ripfall of the colonial and divisional tsunami and sought opportunistic behavi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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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LATED LYRICS:

 

"無心"

 

나고 보니 움막은

내 살림이라

열 여덟은 꿈 속에

해가 저물고

 

울긋불긋 봄꽃도

모두 다 지건만

仲媒 녀석 이렇단

말도 없구려.

 

바람이라 구름을

따라 돌으랴?

書房이라 잡놈을

따라 갔더니

 

每日長醉 書房은

술만 처먹고

손길 잡고 가는 곳

내 집이구려.

 

오다가다 새들은

낭게서 자고

높은 嶺은 구름도

쉬어 넘건만

 

맑은 하늘 푸른 물

이 넓은 땅에

이내 몸은 쉴 곳이

하나 없구려.

 

金岸曙 作詩/ 金興山 作曲/ 奧山貞吉 編曲/ 노래 金仙草

(1934년 3월 콜럼비아 레코드사 발매)

 <無心>은 가수 金仙草님이 1934년 3월에 콜럼비아레코드에서 발표한 노래입니다. <우는 꽃; C.40493/ 尹玉仙 노래>과 같이 발매된 이 노래는, 金岸曙 作詩/ 金興山 作曲/ 奧山貞吉 編曲의 작품으로, 1934년에 들어,<이래야 할는지>,<진달래의 哀心曲>에 이어 발표된 곡입니다. 1930년대 초반에,배우겸 가수로 활동하면서 좋은 작품을 많이 남긴 金仙草님의 작품,<無心>, <雲水衲子> 

 

"Mindless

 

I noticed a hut, My house

in a dream

After sunset

 

Even spring flowers bloom

I'm very tired and

in a state like this

without words.

 

The clouds in the wind

Will you turn along?

I allow myself so

 

Every day goes by

let's drink

of going to where

My house is.

 

Birds come and go

and sleep in the wild

High dark clouds

rest over the place

 

Clear sky blue water

In this vast land

The body has no place to rest

no place to rest

 

<無心> was released by the singer 金 草 in March 1934 at Columbia Records. It was released along with C.40493 / 404 玉 尹. It was released in 1934 following "What Should I Do?'' And ``The Heart of the Rhododendron''.

 

"사랑의 이슬안개"  (1934)

劉道順 作詩/ 金駿泳 作曲/ 奧山貞吉 編曲의 / 노래 金仙草

(1934년 7월 콜럼비아 레코드사 발매)

 

多紅빛 치마에

물 긷는 것은

맘 담어 나르는

사랑 길이고

 

풀피리 불면서

나무 진 것은

愁心을 띄우는

그림 길이네

 

풀밭에 달리운

이슬 방울이

수줍은 處女의

눈물이라면

 

앞산에 떠도는

잦은 안개는

純直한 總角의

한숨이라네

 

풀밭에 이슬이

방울지면은

네 눈물 내 받아

품에 싸리니

 

앞산에 안개가

어리우거든

네 품에 가만히

 싸서 안아라 

 

 

<사랑의 이슬 안개>는 가수 金仙草님이 1934년 7월에 콜럼비아 레코드에서 발표한 노래입니다. <첫 사랑; C40517/ 全玉 노래>과 같이 발매된 이 노래는, 劉道順 作詩/ 金駿泳 作曲/ 奧山貞吉 編曲의 작품으로, 1934년에 들어, <이래야 할런지>,<진달래의 哀心曲>,<無心>에 이은 발표곡입니다. <雲水衲子>

 

"Dust Fog of Love"

 

On a multicolored skirt

drops of water

felt by a heart

in love

 

Blowing the flute

of thin wood

imagining and Floating its heart

 

Runaway upon the grass

Dew drops

A woman shy, for her tears

 

Drifting on Apsan

its Frequent fog

streched out like sighs

 

Dew on the grass

with Drops on the ground

Take my tears

I'll be wrapped into my arms

 

The Mist in Apsan

is young

I am Still in your arms

 Wrap up and hugging

 

 

(July 1934 Columbia Records) Composition Shinkichi Kim, Arrangement by Sadayoshi Sasayama ; Dew Mist of Love is a song by singer 金 草 released on Columbia Records in July 1934. C40517

 

김선초 - 애달픈 밤 1931년 12월 (데뷔 작품)

  

별동자 꽃입술 맑은 그 향기 어여쁜 그대 가진 것은 모두 내게로 

굳이 얼굴이 곱다고한들 저래서 고울까 훌륭한 그대 얼굴로야 볼 것 있나요

지금은 온 세상이 모두 잠들고 나 홀로 여기서 기다려요

애달픈 이 밤이 다 새기 전에 달같이 반기며 문을 열어요

별같이 빛나게 웃어 주어요

 

거울로 가리운 그대 가슴에 아무도 모를 그대 맺은 옳은 맹서는

왜 아니 얼굴이 곱다고한들 저래서 고울까 훌륭한 그대로 가려서 더벅거리오

지금은 온 세상이 모두 잠들고 나 홀로 여기서 기다려요

애달픈 이 밤이 다 새기 전에 달같이 반기며 문을 열어요

별같이 빛나게 웃어 주어요

 

Sad Night

  

Another lip of flower lips with a clear scent

Does your face look nice?

Now the whole world falls asleep and I wait here alone

We welcome you like the moon and open the door before this sad night ends

Smile like a star

 

The right oath you made that no one knows in your heart

Why is my face so fine?

Now the whole world falls asleep and I wait here alone

I welcome you like the moon and open the door before this sad night ends

Smile like a star

 

Recorded december 1931 (Debut Fi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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