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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춘 / Kim, Young-Choon

November 1, 2019

Tracks you can find here:

 

 

유성기로 듣던 불멸의 명가수 / Immortal master singers vol.15 (SYNCD-137)

 

11 버들닢 신세 / Willow Leaf (REGAL 2026) (1940)

12 항구(港口)의 처녀설(處女雪) / Maiden snow in a harbor (1940) (COLUMBIA 40838) (1940)

13 당신 속을 내 몰랏소 / I didn't know your inside  (COLUMBIA 40845) (1940)

14 홍도(紅桃)야 우지 마라 / Don't be Hongdo (?) (COLUMBIA 40855) (1940)

15 잘 있거라 인풍루(仁風樓) / Goodbye (COLUMBIA 40882) (1940)

16 바다의 풍운아(風雲兒) / Windmill of the Sea (COLUMBIA 40892) (1940)

17 항구(港口)의 전야(前夜) / The virgin of the port (COLUMBIA 40920) (1940)

 

Seen from the position of where I am, a foreigner, discovering the songs with a musical ear and interest only, I can say that these songs aren't very uncommon, and are even a bit mainstream styled trot of those days, in an almost predictable style, with some variation in the arrangements, some more up tempos here and there and with some different emphasizes, they are sung well enough but with a certain distance towards the content. The first song for instance is led by acoustic guitar, tambourine and flute, the second sounds faster and is led by accordion with some solos of sax, xylophone,.. the third one sounds a bit happier despite the common melody which has a standard sad tone. The same can be said about the Hongdo song. It is accordion led and the voice is well pronounced and that might be one of the reasons that could have led to make the song effective to the listeners. It has happy flute tune in it, contrasting the darker tone of the more Japanese-sounding melody of the trot style. In a way the song has nothing unusual but nothing that distracts either, making it a succesful song of the perfect middle point area as I have called such type of popular songs before. 

 

 

유성기로 듣던 가요사 / Meteor Songs (1925~1945) vol.4

 

15 국경특급(國境特急) / National Border Express (1938)

16 항구(港口)의 처녀설(處女雪) / Maiden snow in the harbor (COLUMBIA 40838) (1938)

 

"National Border Express" was not on the previous compilation yet. It features a (Christmas carriage) bells rhythm imitating a carriage from the start, with a few almost klezmer-like jazzy tunes and an attractive frolic vibe which makes it for sure my favourite track by Kim Young Choon so far. 

 

 

유성기로 듣던 가요사 / Meteor Songs (1925~1945) vol.7

 

1 홍도(紅挑)야 우지마라 / Hongdo Ujima (COLUMBIA 40855) (1939)

2 동트는 대지 / Dawn is the earth (1939)

 

 

The 'Hongdo' tune we already reviewed above. Here it is with the cracks to it, giving it this way a certain extra charm. "Dawn is the earth" is a fine happy tune with the same bird like flute tune, and solos by sax, xylophone, accordion and su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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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OGRAPHY:

http://www.gimhae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930

 

"홍도야 우지마라 ~" 구슬픈 멜로디에 빼앗긴 조국도 기구한 삶의 민초들도 함께 울었다<상> 김해가 낳은 최고의 명가수 김영춘(1918~2006)

2017

 

'이야기에는 거짓이 있어도, 노래에는 거짓이 없다'는 말이 있다. 노랫말은, 또 노래를 부르는 사람의 음색은 듣는 이의 가슴에 직접적으로 와닿는다는 의미일 것이다. 1939년에 처음 나온 '홍도야 우지마라'가 바로 그런 노래이다.

이 노래를 부른 가수가 김해 사람 김영춘이다. 김영춘의 노래 '홍도야 우지마라'와 연극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에 얽힌 이야기를 먼저 소개하고, 이어 김해에서 살고 있는 유족들을 통해 김영춘의 삶과 고인의 김해에 대한 사랑을 다룬다.

 

▲ 영화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의 부주제곡이었던 '홍도야 우지마라'는 주제곡을 훨씬 뛰어넘어 대히트를 쳤고, 가수 김영춘은 당대 최고의 명가수로 떠올랐다.

 

김영춘(金英椿·본명 김종재·金宗才·1918~2006)은 1918년 6월 29일 김해 어방동 471에서 부친 김치관 씨와 모친 박소분 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김해보통학교(현 동광초등학교)와 김해농고를 졸업했다. 김영춘은 청소년기까지 김해에서 살았으며,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타향에서 늘 고향 김해를 그리워했다.

 

김영춘은 한국 대중가요사에 한 획을 그은 노래 '홍도야 우지마라'를 부른 가수다. 일제강점기였던 1929년 전기식 축음기가 조선에서 판매되기 시작했다. 1926년 가수 윤심덕의 '사의 찬미'가 대히트를 치면서 사회적으로 레코드와 유행가에 대한 관심이 촉발됐던 터라, 사람들은 다투어 축음기를 들여놓고 레코드를 듣기 시작했다. 대형 음반회사들이 등장했고, 바야흐로 대중가요시대가 열렸다. 당시 가장 유명했던 레코드 회사는 '빅타'와 '콜롬비아'. 콜롬비아 레코드는 '조선 팔도에 숨은 천재'를 찾는다며 전국 10곳에서 예선을 치르는 콩쿠르대회를 개최했다.

 

<번지없는 주막-한국가요사의 잃어버린 번지를 찾아서>라는 책을 낸 이동순 시인(영남대 국문과 교수)의 말이다.

 

▲ 젊은 시절 김영춘.

"김영춘은 스무 살이었던 1938년에 콜럼비아 레코드사가 주최한 전국 가요콩쿠르에 출전해 입상하면서 가수의 길로 들어섰다. 김영춘의 첫 데뷔곡은 그해 11월에 발표된 '항구의 처녀설'(처녀림 작사, 김송규 작곡)이다. 그는 30여 곡의 노래를 불렀지만, 1939년에 발표된 '홍도야 우지마라' 한 곡의 인기가 워낙 하늘을 찌를 듯했기 때문에, 다른 노래들은 상대적으로 묻혀버리고 말았다. 이 노래 덕에 김영춘은 콜럼비아 레코드사의 대표가수 자리에 올랐다."

 

1936년 봄, 서울의 '동양극장(서대문구 충정로에 있던 우리나라 최초의 연극 전문극장. 1935년 설립. 객석 600여 석)'에서 극단 청춘좌가 연극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를 공연했다. 임선규(1910년 출생 추정, 1970년 사망 추정. 연극인·극작가)가 1936년에 쓴 4막5장의 희곡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는 기생을 주인공으로 설정한 화류비련(花柳悲戀·기생의 슬픈 사랑을 다루는 작품류)의 멜로 드라마였고, 동양극장의 주된 레퍼터리였다.

 

줄거리는 이러하다. 부모가 세상을 떠난 뒤 오빠의 공부를 뒷바라지하기 위해 홍도는 스스로 기생이 된다, 오빠는 홍도의 도움을 받아 순사가 된다, 홍도는 기방 일을 그만두고 오빠의 친구와 결혼을 한다, 시어머니는 기생 출신 며느리를 못마땅해 하고 마침내 쫓아낸다, 홍도를 오해한 남편마저 부잣집 딸과 재혼을 하고 홍도는 절망한다, 분하고 억울한 마음에 홍도는 남편의 새 여인을 살해한다, 그제서야 홍도의 결백이 밝혀지고 남편도 오해를 풀지만 홍도는 순사인 오빠에 의해 손목에 수갑을 찬 채 경찰서로 끌려간다….

 

당시 조선인 관객들은 이 연극을 통해 일제에 핍박받는 현실세계를 반추했고, 홍도의 삶에 자신의 삶을 대입시켰다.

 

이 연극은 조선 연극 사상 최장 공연 기록을 세웠다. 기생이 주인공이다 보니 기생들 사이에서 특히 인기가 높았다. 권번 기생 500여 명이 일시에 연극 구경에 나선 날에는 서울의 요정이 텅텅 비었다는 일화도 전해져 온다. 주인공 홍도 역을 맡았던 여배우 차홍녀(1919∼1940)의 인기를 말하는 건 새삼스럽다.

 

이 연극은 1939년에 영화로도 제작됐다. 이명우 감독(1901년∼6·25때 납북 이후 생사 미확인. 촬영기사·영화감독. 1935년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발성영화인 '춘향전'의 감독·촬영·편집)이 메가폰을 잡고, 차홍녀가 영화에서도 주연을 맡았다. 사람들은 다시 극장으로 몰려들었다. '홍도야 우지마라'는 영화의 부 주제곡이었는데, 영화가 히트를 치면서 당연히 주가가 높아졌다. 1939년 4월에 음반이 발매됐는데, 수만 장이 넘게 팔려나갔다. 동양극장 전속 극작가였던 이서구(1899∼1982. 극작가 겸 연출가)가 노랫말을 쓰고, 김준영(1907~1961. 대중음악 작곡가)이 작곡했다. 영화가 연일 대만원 사례를 이루면서 '홍도야 우지마라'는 대히트곡이 됐고, 김영춘은 당대 최고의 명가수로 올라섰다.

 

▲ 1939년에 발표된 '홍도야 우지마라'는 지금도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지만, 정작 가수 김영춘의 이름은 잊혀져가고 있다.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 극장 안은 손수건을 미리 준비해 온 여성관객들로 미어터졌다. 오빠가 지쳐 쓰러진 홍도를 위로하는 장면에서 김영춘의 '홍도야 우지마라'가 흘러나왔는데, 그러면 객석은 눈물바다가 됐다. 이 영화를 본 한 기생이 처지를 비관해 한강에 투신한 일이 신문에 보도되면서 이 노래는 더욱 유명해졌다.

 

인터넷에서 '홍도야 우지마라'를 부른 가수를 검색해 보면, 김영춘 외에도 박재홍·남일해·박일남 등 많은 후배가수들의 이름이 뜬다. 영화 역시 1965년에 전택이(1912∼1998) 감독이 리메이크했다. 이 영화에서는 당대 최고의 인기배우였던 신영균, 김지미가 주연을 맡았다.

 

'홍도야 우지마라'는 여성들 뿐만 아니라 남성들의 심금도 함께 울렸다. 고단했던 시절에 이 땅에서 부모와 형제를 위해 희생의 삶을 살아야 했던 누이들이 어디 한 둘이었는가. 그러니 이 땅의 많은 남성들도 '홍도'라는 누이 앞에서 눈물을 훔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현재 경기도 고양에서 살고 있는 김영춘의 아들 김무술(55) 씨는 "노래는 너무 유명했고 지금도 많은 사람이 부르고 있지만, 정작 가수의 이름은 잊혀져가고 있다. 아버지가 김해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들도 많다"면서 "아버지는 고향 김해에 대한 애착이 많았다. 늘 고향 이야기를 하셨고, 돌아가시기 전까지 김해를 수차례 다녀왔다. 고모님과 사촌 형들이 김해에 살고 있다"고 전했다.

 

■ '홍도야 우지마라' 발표 당시 원본 가사

발표 당시의 표기법으로 소개한다.

 

사랑을 팔고 사는 꽃바람 속에 너 혼자 직히랴는

순정의 등불 홍도야 우지 마라 오빠가 있다

안해의 나갈 길을 너는 직헤라

구름에 싸힌 달을 너는 보왔지 세상은 구름이오

홍도는 달빛 하늘이 믿으시는 네 사랑에는

구름을 걷어 주는 바람이 분다

홍도야 우지 마라 굿세게 살자 진흙에 핀 꽃에도

향기는 높다 네 마음 네 행실만 놉게 가즈면

즐겁게 우슬 날이 찾어오리라

 

<저작권자 © 김해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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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ugh translation with help Google Translate (with mistakes):

 

'The motherland, stolen by a melody, for which the grassroots of his life were crying. ' The best master singer, Kim Young-chun (1918 ~ 2006) (written 2017)

 

There is a saying that there is always a lie in a story, but there is no lie in a song. This would also mean that the lyrics through the singer's tone directly touches the listener's heart. A song that caused this, which first appeared in 1939, was called 'Hongdoya Ujima'. The singer who sang this song is Kim Young-chun, a Kimhae person. For this we need to tell first the story of Kim Young-chun's song 'Hongdo-ya Ujimara' for which the play 'Fooling in love and crying for money' will be introduced first, followed by the story of Kim Young-chun's bereaved family and his love for Gimhae.

 

`` Hongdoya Ujimara" was the main title song of the movie "Fooled by Love and Crying on Money" which became a hit far beyond the theme song, for which singer Kim Young-chun emerged as being the best master singer of his time.

 

Kim Young-chun (金英椿, real name Kim Jong-jae, Kim Seong-jae, 1918-2006) was born on June 29, 1918, at Kim Hye-gwan's 471 Gimhae Gwan from his mother, Park So-bun. He graduated from Gimhae Normal School (currently Donggwang Elementary School) and at Gimhae Agriculture. Kim Young-chun lived in Gimhae until his adolescence, and he always missed his hometown Gimhae in other cities until he passed away.

 

Kim Young-chun is a singer who sang 'Hongdoya Ujimara', a classic of a Korean pop song. In 1929, during the Japanese occupation, electric phonographs began to be sold in Korea. In 1926, singer Yoon Shim-duk's 'Han Sung-mi' received a big hit, through which social interest in records and trends were triggered. People more often started to search for gramophone records and started to listen to records. Large record companies have emerged, and the pop music era has begun. The most famous record companies at the time were 'Victa' and 'Colombia'. Colombia's record held 'concours' in 10 qualifiers in search of 'genius hidden in Chosun Paldo'.

 

Lee Dong-soon (Professor, Department of Korean Studies, Yeungnam University) published a book titled "In Search of the Lost Bungee of Korean Music."

 

Kim Young-chun entered the national singer's career in 1938 when she participated in the National Gayo Concours hosted by Columbia Records. Kim's first debut was "The Virgin of the Port'' released in November of that year. He sang about 30 songs, but because of the popularity of 1939's "Hongdo, Ujimara," which seemed to hit the sky, other songs were relatively buried. Thanks to this, Kim Young-chun has become a representative singer of Columbia Records.

 

In the spring of 1936, at the Dongyang Theater in Seoul (Korea's first theater specialty theater in Chungjeong-ro, Seodaemun-gu, founded in 1935, with 600 seats), the theater youth group performed the play 'Cooling in Love and Crying in Money'. Hwa Sun Gyu (estimated birth in 1910, estimated death in 1970. Playwright and dramatist) wrote a series of four acts in 1936, "Deceived by Love and Crying over Money"'. It was a melodrama of sad works of love) and a major repertoire of the Oriental Theatre.

 

This is the plot: After his parents passed away, Hongdo becomes an outlaw entertainer to help her brother study, through which his brother becomes strong with the help of Hongdo. Hongdo quits his job and marries his brother's friend. Hongdo's husband then remarries a rich daughter. In the end of the movie Hongdo finally is taken to the police station with handcuffs on her wrist taken in by her brother. 

 

At that time, Korean audiences reflected on the persecuted real world under Japanese drama, and substituted their lives into Hongdo's.

 

This play set the record for the longest performance in the history of Joseon Drama. Since gisaeng is the main character, it was especially popular among the gisaeng. On the day when more than 500 Kwon parasers went to the theater, an anecdote was told that the fairy of Seoul was empty. The actress Cha Hong-nyeo (1919-1940), who played the main character Hongdo, is new.

 

The play was also made it into a film in 1939. Lee Myung-woo (a cinematographer and film director with a further unknown life who in 1935 had been the directorof Korea's first film with sound, Chun Hyang-jeon) took the recording, and Hong Hong starred in the film. People flocked back into the theater for this. 'Hongdoya Ujimara' was a sub-themed song of the movie, but as the movie hit high, the stock price rose. The album was released in April 1939 and sold over tens of thousands. Lee Seo-gu (1899-1982, playwright and director), with an exclusive playwright of the Oriental Theater, wrote the song, and Kim Joon-young (1907-1961. Composer of Popular Music) composed it. As the film made a Taiwanese play every day, 'Hongdoya Ujimara' became a big hit song, and Kim Young-chun became the best master singer of his time.

 

`` Hongdoya Ujimara, '' released in 1939, is still ringing people's hearts, but the name of singer Kim Young-chun became forgotten.

 

While the movie was showing, the theater was watched by masses of female audiences who had prepared handkerchiefs in advance. Kim Yeong-chun's 'Hongdo, Ujima' flowed out from the scene when his brother comforted the worn-out Hongdo, and the audience became a sea of ​​tears. The song became even more famous as a newspaper reported that an outlaw entertainer who had watched the movie concluded a pessimistic view of his situation.

 

Searching for a singer to sing "Hongdoya Ujimara" many younger singers, including Park Jae-hong, Nam Il-hae, and Park Il-nam, appeared. The film was also remade by director Jeon Taek-yi (1912-1998) in 1965. The movie starred Shin Young-gyun and Kim Ji-mi, the most popular actors of the time.

 

'Hongdoya Ujimara' not only had effect on women but also men's heart. Where were the sisters and sisters who had to live a life of sacrifice for their parents and brothers in this difficult time? Therefore, many men in the land had to steal tears in front of the sister 'Hongdo'.

 

Kim Mu-sul (55), the son of Kim Young-chun, who lives in Goyang, Gyeonggi-do, said, "The song was so famous and many people still call it, but the name of the singer is forgotten. "My father had a lot of attachments to his hometown Gimhae. He always talked about his hometown and visited Gimhae many times before he died. My aunts and cousins ​​are living in Gimhae."

 

Original lyrics at the time of 'Hongdoya Ujimara' announcement Introduce the notation at the time of publication:

 

Are you alone in the eager of love selling it?

The genuine light shines here on Hongdo. 

She're on her way out

She has seen the moon in the clouds for which the world itself is a cloud

Hongdo is the love of the moonlight that continues to believe in it

like the wind that kicks the clouds and blows blows them away

Be Hong-do. Not Uji. Let's live hard.

The scent is high. A happy dewy day will come

 

 © Gimhae 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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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m.blog.daum.net/sscom88/221?tp_nil_a=1

 

홍도야 울지마라 - 김영춘

 

사랑을 팔고 사는 꽃바람 속에 너 혼자~”

 

1936년 신파극 대명사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 주제가

오빠 학비 벌기위해 기생된 홍도의 한 많은 사연 담아

 

(1절)

사랑을 팔고 사는 꽃바람 속에 

너 혼자 지키려는 순정의 등불

홍도야 울지 마라 오빠가 있다

아내의 나갈 길을 너는 지켜라

 

(2절)

구름에 쌓인 달을 너는 보았지 

세상은 구름이요 홍도는 달빛

하늘이 믿으시는 네 사랑에는

구름을 거둬주는 바람이 분다 

 

이 노래는 영화 속의 다른 주제가들과 달리 연극주제가란 점이 독특하다. 노래를 낳은 연극작품은 임선규의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 1936년 7월 우리나라 최초의 연극전용극장이었던 동양극장에서 전속극단 ‘청춘좌’에 의해 첫 공연됐다. 

공연 첫날부터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몰려 일제강점기 한국연극사에서 가장 많은 관객동원기록을 남겼다. 제목이 한 때 주제가 곡목인 ‘홍도야 울지 마라’로 알려졌던 이 연극은 작가 임선규가 동양극장에 입사하면서 시험용으로 쓴 대본에서 비롯됐다. 큰 기대를 걸지 않고 그냥 한번 써본 대본이 졸지에 ‘성공한 작품’으로 연극사에 올라있다. 

임선규가 처음 대본을 썼을 땐 극장관계자들 눈길을 전혀 끌지 못했다. 너무 눈물을 짜게 하는 내용이란 이유에서였다. 그러잖아도 나라 잃은 설움으로 백성들 마음이 아픈데 연극내용까지 눈물을 줄줄 흘리게 만들면 장사가 될 수 없을 것이란 판단에서다. 특히 연출자 박진의 반대가 심했다. 

그러던 중 한 쪽으로 밀렸던 대본이 어느 날 기회를 갖게 됐다. 원래 제목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었던 이 연극대본이 동양극장 홍순언 사장 손에 들어갔다. 마침 무대에 올릴 작품이 없어 고민하는 차에 ‘원고를 손질, 공연하자’는 홍 사장 고집을 직원들이 마지못해 받아들인 것이다. 사장입장에선 극장을 놀리는 것보다 다소 맘에 들진 않지만 대본을 약간 손봐 무대를 돌리면 배우들 월급이라도 벌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사장집념에 못 이겨 총지배인 최독견이 제목을 바꿔 무대에 올린 게 1930년대 성행했던 신파극의 대명사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다. 작품은 상상외로 흥행에 성공했다. 한 여성의 애달픈 사연을 담아 가슴을 찡하게 했던 데다 주제가 역시 내용에 맞게 흘렀던 까닭이다. 

홍도란 기생이 오빠(철수)의 학비를 벌기위해 기생이 된다. 홍도는 오빠친구(광호)를 만나 집안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한다. 그러나 시어머니 멸시와 시누이의 음모로 시집에서 쫓겨나고 남편으로부터도 버림받는다. 절망에 빠진 홍도는 우발적으로 칼을 휘두르고 순사(경찰관)가 된 오빠에게 수갑이 채여 잡혀가는 내용이다. 

여주인공 차홍녀와 남자주인공 황철의 돋보인 연기는 순식간에 장안에 퍼져 관객들이 몰려들었다. 인산인해로 극장출입문 유리가 박살나기도 했고 연극삯으로 보리쌀자루를 내미는 별의 별 사람들이 다 있었다. ‘현금 외는 일절 사절’이라고 써 붙여놔도 막무가내였다. 극장주변도로까지 찬 사람들로 전차가 못 다닐 정도였다. 

관객들 중 기생들은 연극을 보면서 남의 일 같지 않다며 극장에서 훌쩍거렸다. 연극이 있는 날이면 장안의 술집들엔 사람들로 꽉 찼다. 기생에서 건달에 이르기까지 한 목소리로 ‘홍도가 불쌍하고 배신한 광호를 죽일 놈’이라며 연거푸 술잔을 든 것이다.

또 하나 에피소드는 남녀주인공 얘기다. 극장 앞엔 인기절정의 두 사람을 만나러 온 팬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황철은 얼굴 한번 보게 해달라며 몰려드는 여성들 성화에 연극이 없는 날엔 숨어서 지냈다. 황철은 청양군수 아들로 이 연극에서 열연, 1930~40년대를 통틀어 조선 최고배우가 돼 이름을 날렸다. 차홍녀를 사랑했으나 결실을 못 맺고 유부녀였던 배우 문정복과 살게 된다. 차홍녀는 1915년 경기도 여천출신으로 17세 때 연극을 시작했다. 마음씨가 착해 ‘천사’로 불렸던 그녀의 이름자(홍)를 따 연극에서 홍도 배역을 맡았다. 작가 임선규가 집필 때 맘이 워낙 고운 그를 염두에 두고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쉽게도 그는 25살에 세상을 떠났다. 

연극의 인기는 주제가 <홍도야 울지 마라>로 이어졌다. 극중 노래가 나오면 갑자기 서러움에 북받친 관객들이 따라 불러 눈물바다를 만들었다. 날만 새면 남자는 징병, 여자는 위안부로 끌려가는 시대라 나라 잃은 약소국의 서러움이 노래를 통해 드러난 것이다. 노래는 단번에 인기 1순위로 떠올랐다. 요릿집, 술집은 물론 서민들도 한잔 들었다 하면 젓가락장단으로 불러댔다. 거나하게 취한 하루살이 인생들 입에서 입으로 매일 서울의 밤을 적셨다. 

가게 문에 가사를 크게 붙여놨으나 글을 몰라 답답해하는 사람들을 위해 친절하게 읽어주는 사람까지 등장하기도 했다. 마음을 울린 이 노래는 어려운 시절 누구도 위로할 수 없는 국민들을 위한, 말 그대로 국민가요 노릇을 톡톡히 한 셈이다.

노래를 부른 가수 김영춘(88)은 올해 2월 22일 밤 10시 숙환으로 별세했다. 1918년 김해출신인 그는 1932년 김해농고를 졸업하고 1935년 콜롬비아레코드 전속가수로 데뷔, <항구의 처녀설> <바다의 풍운아> <항구의 사랑> 등 대표곡들을 남겼다. 유족은 부인 박옥순 씨, 딸 옥자(일본 거주)씨, 아들 무술(두산인프라코어 대리점 운영)·한준(음악인)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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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ngdo, don't you cry

 

You are alone in the 'wind of flowers' selling your love

 

1936 musical drama

the story of Hongdo, outlaw for her brother's tuition

 

(Verse 1)

In the wind of flowers selling out her love

nothing but the light of purity to protect her

Hongdo, don't you cry. You have your brother.

Try to find your way out

 

(Verse 2)

You saw the moon in the clouds

The world is a cloud, and Hongdo is the moonlight

In your love that heaven believes

The wind blows the clouds away.

 

The song is unique in that it is a theatrical theme unlike other one used in film. The play that produced the song is Lim Seon-gyu's 'Fearing Love and Crying Over Money'. In July 1936, it was first performed by the Korean Youth Theater at the Oriental Theater, the first theater-only theater in Korea.

From the first day of the performance, people flocked like a swarm of clouds, leaving the largest audience mobilization record in Korean drama history during the Japanese occupation. The play, whose title was once known as the theme song “Hong Do, Don't Cry”, originated from a script written by the author, Lim Sun-kyu, when he joined the Oriental Theater. The script that he wrote once without high expectations is in the history of drama remembered now as a 'successful work'.

When Im Sun-kyu first wrote the script, the theater officials were not attracting attention at all. It's because it is in fact too tearful. Even so, people's heart was already hurt by the loss of their country, but if they would make tears to the contents of the play, they would not leave them buried. In particular, the director Park Jin's opposition was severe.

Then one of the scripts that had been pushed to one side got an opportunity. The play script, originally titled “People I Love,” was in the hands of the president of the East Theater, Hong Soon-un. Employees reluctantly accepted Hong's insistence on “caring and performing manuscripts” in a car that they had no work to put on stage. Although I don't like it a lot more than teasing the theater in the president's position, I thought that if I turned the stage a bit and turned the stage, I would earn an actor's salary.

Choi Dok-dok, the general ruler who overcame his boss's devotion, changed the title for the stage, into ‘being deceived by love and crying for money’. The work was a success of imagination. It was because of the sad story of a woman that made her grimace and the theme flowed according to the contents.

Hong Do becomes an 'outlaw-entertainer' (?) to earn her brother's tuition. Hong-do meets her brother's friend (Gwang-ho) and marries to his family. However, her mother-in-law despises her sister-in-law and therefore she is thrown out of her husband's house and then is abandoned by her husband. Despaired Hongdo accidentally wields her brother's sword and therefore ends up being handcuffed by his brother, who is a police officer.

The prominent acting of the heroine Cha Hong-nyeo and the male hero Hwang Chul spread quickly where audiences gathered. Due to the turmoil, the entrance door was shattered, and there were people pushed out. It was crazy. The streets around the theater couldn't handle the crowd.

The entertainers as spectators in the audience fluttered in the theater, saying that it was not something else. On the day of the performance, the bars in Chang'an were filled with people. From Gisaeng to Gundam, they raised a glass with a single voice shouting, 'Hongdo will kill the poor and betrayed Kwangho.

Another story is with the main character. In front of the theater, he made a long picture with fans who came to meet two of the most popular people. Hwang Chul was hiding on the day when there were no dramas on the women's torch that flocked to see the face. Hwang Chul was the son of Cheongyang general, who became famous in this play and became the best actor in Korea throughout the 1930s and 40s. The actor was in love with Cha Hong-nyeon, but it didn't work out living with actor Jung-bok Moon. Cha Hong-nyeo was born in Yeocheon, Gyeonggi-do in 1915. Mr. Mae played Hongdo in a play named after Hong, who was called "Angel." It is known that when the author, Im Sun-gyu wrote it, his heart was with beautiful expressions. Unfortunately, he died at age 25.

The popularity of the play led to the theme song "Hong don't you cry." When the song came out, crowded audiences sang along to create a sea of ​​tears. It is an age when men are taken to conscription and women are taken to be comforting women. The song quickly rose to popularity. The restaurant, the bars, as well as the common people listened to the records. 

The lyrics were largely posted on the door of the stores, and there were people who read them kindly for those who were frustrated because they do not know how to read. This song rang out for the people who couldn't comfort anything in difficult times.

Singer Kim Young-chun (88), who sang, died of 10 o'clock Sukhwan on February 22 this year. Born in Gimhae in 1918, he graduated from Gimhae High School in 1932 and made his debut as a singer of Colombian Records in 1935. His family includes his wife Park Ok-soon, daughter Okja (resident in Japan), son martial arts (operated by Doosan Infracore dealership) and Han Jun (music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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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YRICS:

 

잘있거라 인풍루/김영춘(1942) 만포선 천리길에 기적이 우니 인풍루 옛자태에 정회 깊구나 잘막령 지는해에 날이 저물고 자북사 우는종에 눈물 흐르네 독봉의 진달래에 잔체 베풀고 독노강의 흰돛아래 노닐던 옛일 남산의 송림에선 두견만 울고 뗏목도 말없으니 찾을길 없네 만포선 천리길은 정회의 산길 돌고개 이별에서 젖은 옷자락 구현령 넘어서도 아니 마르네 인풍루 잘있거라 갔다오리라 -유도순 작사/하영랑 작곡/김준영 편곡- ★ 앨범 : SP [잘있거라 인풍루/아리숭 고개] ★ 발매및제작사 : (1942) 콜롬비아 C-40882-AB Side A 1.잘있거라 인풍루(김영춘) Side B 1.아리숭 고개(옥잠화)

Goodbye Inpungru 

 

Goodbye Inpung-Loo / Ari-Song Pass: Colombia C-40882-AB

Side A 1.Goodbye In-Pung-Loo (Kim Young-Chun)

Side B Kim Youngchun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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